"'과다출혈'로 노숙인 죽어갈 때 경찰은 '뒷짐'"

경찰 늑장 대응에 '과다 출혈'로 사망한 노숙인 49재 열려

  이정원 기자

매년 밤이 제일 길다는 동짓날에는 서울역에서 거리에서 죽어간 노숙인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제가 열린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 조사에 따르면, 매년 거리에서 죽어가는 노숙인들은 한해 400여 명에 달한다. 노숙인들이 어떻게 거리에서 죽어갔는지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아직 없다. 다만, 거리 노숙생활 중 사망한 채로 확인되거나 사망 전에 '행려자'로 처리되어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 중 사망하는 경우가 400여 명이라는 정도만 알려져 있다.

정확한 통계가 없지만, 거리에서 죽어간 이들 중에는 심각한 질병이 아님에도 '제 때' 치료를 받지 못해 죽어간 이들도 있다. 16일 서울역 광장에서는 노숙당사자모임, 노숙인복지와인권을실천하는사람들(노실사), 빈곤사회연대 등 빈곤.인권단체 주최로 지난 5월 29일 경찰의 늑장 대응으로 사망한 한 노숙인의 49재가 열렸다.

  이정원 기자

노숙인 과다출혈로 40분 만에 사망... 경찰 대응은?

지난 5월 29일 7시 경 서울 구의동에 위치한 한 슈퍼마켓 앞에서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30대 한 노숙인이 깨진 소주병에 다리를 찔려 동맥이 끊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노숙인은 당시 가게에서 돈을 내지 않고 소주 1병을 마시려했고, 주인과 실랑이 과정에서 병이 깨져 그 위로 넘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가 나자 다행히 주변에 있던 주민들이 이 노숙인에게 응급조치를 하고, 경찰에 신고를 했다. 당시 응급조치를 한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노숙인의 출혈이 수돗물 압력과 유사했을 정도로 위급한 상황이었다.

이동연 노실사 간사는 "당시 현장 목격자들에 따르면,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어떠한 이유에서였는지 즉각 병원으로 호송하지 않고, 사진을 찍고 비닐을 찾는 등 10여 분간 노숙인을 방치했다"며 "주민들이 경찰에 '왜 병원으로 옮기지 않냐'고 항의했고, 그때서야 경찰은 인근 병원으로 노숙인을 후송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병원에 도착한 노숙인은 7시 40분 경 최종 사망했다. 사인은 과다출혈. 경찰이 방치한 시간 동안 피를 너무 많이 흘린 게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던 것.

  이정원 기자

"동맥을 누르고만 있어도 몇 시간은 생명 연장할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해 인의협에서 활동하고 있는 의사 정일용 씨는 "주변에서 사고를 목격한 시민들이 직접 지혈을 했다고 하는데, 동맥을 누르고만 있어도 몇 시간은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며 "경찰은 아예 그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단 몇 십 분을 놓쳐 사망한 것"이라고 사망의 직접적 원인으로 경찰의 늑장 대응을 지적했다.

그는 이어 "만약 그 노숙인이 경찰의 친지였다면, 과연 그렇게 했겠는가"라고 되물으며 "이 같은 노숙인들의 죽음이 또 다시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현재 응급구호체계로 되어 있는 노숙인 의료지원체계를 일반적인 질병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염형국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는 "경찰은 노숙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해 차별을 두지 말고 직무를 수행해야 하고, 어떠한 경우라도 인권을 최우선의 가치로 두어야 한다"며 "이번 사건은 경찰이 이 같은 의무를 위반하고, 직무를 유기한 것"이라고 경찰의 대응을 비판했다.

  이정원 기자

"경찰, 깡패 집단과 다른 점 무엇인가"

김상철 진보신당 서울시당 정책기획국장도 경찰이 이번 사건에서 보인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경찰과 깡패 집단과의 차이가 뭔가"라고 물은 뒤 "둘 다 폭력을 쓴다는 점에서는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경찰이 깡패들과 다른 점은 합의된 폭력을 쓴다는 것이고, 경찰의 직무 수행에 있어 노숙인이나 사회적 약자라고 해서 차별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며 "만약 차별이 존재한다면, 경찰은 깡패 집단과 똑같다"고 경찰을 비판했다.

이어 김상철 국장은 "돌아가신 노숙인이 한국사회에서 죄라고 하는 것을 지었다면, 그것은 집이 없다는 것 뿐"이라며 "만약 이번 사건에서의 경찰의 공무집행이 정당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집이 없다는 것을 이 정권이 범죄로 인정했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고 지적했다.

김흥현 전국빈민연합 상임의장은 이날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언급하며 "60억 원으로 수조원을 만들어 불법승계한 이건희는 죄가 없고, 소주 한 병 가져다 먹은 것은 경찰 앞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죽어가야 할 죄냐"고 물은 뒤 "이런 정권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 촛불이든 몽둥이든 들고 함께 투쟁하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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