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시위를 하던 교사 옆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해직교사와 함께 다양한 교육시민단체 회원들이 참석했다. 해직교사를 응원하기 위해 무단조퇴 등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달려온 해직교사의 제자들도 있었다. 교복을 입고 실내화인 ‘삼디다스’ 슬리퍼를 끌고 온 한 학생은 해직교사가 “내 인생 최고의 선생님이었다”며 기자회견장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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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건’보다 더 빛나던 선생님
해임통보를 받은 박수영 선생님은 기자회견 동안 ‘장동건’이라 불리고 있었다. 그 이유를 물으니 9일 징계위원회가기 전 한 학생이 건네준 격려쪽지에 “장동건보다 더 잘 생긴 선생님”이라 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평범하게 생긴 외모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에게는 ‘장동건’보다 더 빛나던 그는 서울시교육청의 징계로 더 이상 교실에서 학생들을 만날 수 없게 되었다.
박수영 선생님은 이날 아침 학생들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먹먹했다”고 했다. “오늘 아침에 아이들 이름을 하나씩 다 불렀어요. 울컥하더라고요. 함께 했던 시간만큼 좋은 마무리가 이뤄져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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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맡은 학생들은 초등학생 6학년. 박수영 선생님은 행정소송에서 이겨 복직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지만, 졸업식까지 함께 하지 못하는 미안함은 숨기지 못했다.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체험학습을 간 학생들이 다음 날 학교에 돌아왔어요. 학교에서 집에 찾아가거나 전화로 부모님에게 ‘나오지 않으면 불이익이 떨어진다’고 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아이들은 학교로 돌아오기 전 부모님과 토론을 통해 시험을 보지 않겠다고 결정했고, 저는 그 결정을 존중했어요. 아이들이 자기 결정에 따라 행동을 한 경험은 자라나면서 큰 자양분이 될 거라 생각해요. 양심과 소신에 따라 행동하는 모습, 압력이나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대신하고 싶어요”
“혼자서 학교문화 바꿀 수 없어도 행동으로”
박수영 선생님은 양복을 입지 않는다고 했다. 교사 작업복으로서 양복은 학생과 함께 하기에는 불편한 옷이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반바지를 입고 출근하기도 한다고. “강요하고 권위적인 선생님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예요. 혼자서 학교문화를 바꿀 수는 없겠지만,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어울리지도 않는 반바지를 입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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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의 선택도 학생들과 호흡을 생각하는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교사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고3이었던 1991년, 친구였던 김철수 열사가 ‘학원민주화’를 외치며 분신했지만, 대입 때문에 행동하지 못했던 자신의 불행함의 원인을 교육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박수영 선생님은 그만큼 행동하는 양심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전교조가 일제고사 관련해 7명의 징계자만 있다는 것은 치열하지 못했다는 거죠. 아이들의 인권과 미래를 지켜야 하는 일에 전교조가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못한 것을 반성해야 해요” 전교조에 대한 따가운 질타를 숨기지 않는 그였지만 부드러운 말투만큼 낙관과 희망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아이들의 교육과 인권을 위해 실천하고 싸우는 선생님들이 전교조 선생님이기 때문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