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책6] 손세일의 <인권과 민족주의>

독재자를 건국의 아버지로 둔갑시킨 지식인

인권과 민족주의 (손세일, 1980년, 홍성사, 442쪽)

저자 손세일은 1979년 4월 4.19혁명 기념일을 맞아 동아일보에 쓴 ‘4.19를 어떻게 볼까’라는 칼럼에서 자신의 4.19 체험을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은 헐리고 없는 종로 네거리 한청빌딩 ‘사상계 편집실에서 4.19를 겪었다.” <사상계>에 대한 애정이 풋풋하게 묻어있다. 손세일은 긴박하게 돌아가는 4.19 혁명의 목소리를 <사상계>에 담기 위해 “당시 김준엽 주간과 긴급특집호 목차를 몇 번이나 뜯어 고쳤다”고 회상했다.

손세일(1935-)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사상계>(1958-62년) 편집장과 <신동아>(1964-71년) 기획부장을 지나다 71년부터 동아일보 논설위원으로 일했다. 손세일은 언론인 동아일보 사장을 지낸 고재욱의 사위다. 사상계 시절 장준하의 오른팔로 한국의 진보논단을 주름잡았던 손세일은 81년 민한당 소속으로 11대 국회에 입문해 14.15대까지 3선했다. 2000년 16대 총선에도 민주당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970년 1권 짜리 <이승만과 김구>를 펴냈다.

손세일은 지난해 가을 스스로 ‘필생의 작업’으로 이름 붙여 38년 만에 다시 같은 이름의 책 3권을 세상에 내놨다. 손세일은 이 책 1부 3권을 내놓으면서 3부까지 모두 10권으로 쓰겠다고 했다. 이 책을 놓고 조선일보는 2008년 9월 23일자 27면에 <이승만과 김구는 둘 다 건국의 아버지>란 제목으로 손세일을 인터뷰했다. 여기서 손세일은 “(두 사람은)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애국심의 소유자”였다고 설명했다. 손세일은 전날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도 “다른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두 사람의 애국심과 애족심을 후손들은 두고두고 새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8년엔 "이승만은 건국의 아버지"

30년 동안 손세일에게 ‘이승만’은 딴 사람이 됐다. 지난해 손세일은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요즘 극우단체와 조갑제가 부르는 호칭과 같다. 손세일은 이 책 <인권과 민족주의>를 쓸 70-80년대만 해도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다. 이 책 53쪽에 나와 있는 ‘이승만 박사 재평가론’(75년 4월17일 동아일보 게재)에 손세일 쓴 이승만 평가는 이렇다.

이승만 탄생 백주년을 계기로 그에 대한 재평가 내지 추모론이 나오고 있다. 이 박사의 묘가 국립묘지 안에 있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그의 무덤 앞에는 묘비도 없다. 나는 신민당이 묘비건립을 추진할 것이라는 보도를 보고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우선 이 박사는 독재자였다. 그 때문에 독립운동기간에는 많은 분규를 자아냈다. 독립 후에는 민주정치의 발전에 큰 지장을 주었다.

<대중국가와 독재>의 저자 노이만의 지적은 이 박사에게도 적용된다. “현대의 독재자는 ‘민중의 벗’이며 ‘대중의 조직자’다. 그는 광장의 소리이기도 하지만 민중 그 자체로부터는 기묘하게도 거리가 있다.” 이 박사의 데마고그는 일찍이 독립협회시절부터 드러났다. 일본의 잔재를 방치한 것은 근대화의 크나큰 저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오랜 기간 미국 오리엔테이션에도 불구하고 헌법을 부시했다는 점도 있다. 48년 정부수립 당시 내각책임제로 기초된 헌법을 이 박사의 고집으로 하룻밤 사이에 대통령중심제를 골자로 한 양제도의 어중간한 절충으로 되고 말았다. 이후 잇딴 개헌이 모두 이 박사의 고집을 위한 것이었다.


1975년엔 "이 박사는 독재자였다"

손세일은 70년대 중반 이승만을 민주정치의 발전에 큰 지장을 준 ‘독재자’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이승만의 무덤이 국립묘지에 있는 것조차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이승만의 무덤을 국립묘지에서 파내라는 거다.

또 있다. 손세일은 1979년 4월에 쓴 ‘다시 선 이승만의 동상’이란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79년 2월 26일자 주요 일간신문 사회면에는 인하대 마당에 이승만 박사의 동상이 24일 제막된 사실을 1단 기사로 보도하고 있다. 조각가 김정숙씨가 만든 높이 3.4m의 동상을 받치고 있는 3m 짜리 화강암 석대에 새겨진 한상억의 추념문에서 동상을 세운 뜻과 경위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고귀한 정신의 향기로 옷깃을 여미게 하는 그분 여기 계시다. 이 땅이 욕 속에 있을 때 국외에서 성상을 지낸 지 몇십년! 나를 버티신 기운과 삼천만 민충으로 되찾은 삼천리 고토에 돌아와 동포 민중의 품에 안기어 광복의 원공으로 반공 민주국가를 세우고 하루 빨리 한덩이를 만들어야 할 것을 산과 바다에 맹세한 초대 대통령! 이제 다시 교학의 힘으로 수성의 업에 헌신할 인재를 기르기 위하여 하와이 이민의 한 많은 눈물을 받은 이 언덕에 이름도 소소하게 인하공대에 세우게 하신 뜻 천년 봄 가을 지나도 새로우리! 이에 본교 창립에 크게 이바지한 하와이 한인 동지회의 새로운 정성으로 동상을 세우니 시금석이 있을지라도 우리 다 같이 기리는 마음 그 분의 유서로부터 의연하리라.”

인하대는 그가 대통령으로 있을 때 하와이 동포들이 거둬 보낸 돈으로 1954년 그가 설립한 대학이다. 이런 인연에서 다시 하와이 한인 동지회가 모금한 1,580만원을 들여 동상을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가 인하대 설립자로 되어 있다. 4.19 혁명을 높이 받드는 처지에서 4.19 혁명의 유발 원인이 되었던 사람이나 일들을 정당화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한 사람의 역사인식이 이렇게 표변할 수 있는가. 그것도 청.장년 시절 당대의 사상계를 주름잡았던 인물이 이토록 인식을 바꾸게 된 계기가 무엇일까. 변화의 조짐은 이미 그의 책에 묻어 있었다. 손세일이 동아일보에 논설위원이던 1974년 동아자유언론실천투쟁위원회의 ‘언론자유’를 향한 싸움이 있었다. 싸움은 군사정권의 집요한 공세에 백 명 넘는 동아일보 기자가 해고되면서 끝났다.

손세일은 이 책에서 당시 동아일보 내부의 뒤숭숭한 분위기를 담아 “지금 동아일보는 실의와 비관의 분위기다. 동아일보가 겪고 있는 시련은 완전주의의 미신이 깨어져 나가는 아픔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뜻에서 실의나 비관은 당치 않은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신의 파괴는 이 나라 역사의 새로운 단계를 위한 상징적 교훈이라는 점에서 현시점에서의 동아일보의 모습도 역시 ‘민족의 표현’인지 모른다”고 했다. 한국 언론사에서 동아투위가 이후 어떤 위치를 차지할지에 대한 식견 따위 아예 없다. 부끄러움도 없다. 살아남은 자의 비겁만 보인다.

부정축재에 분노하지만 권력유착엔 침묵

1976년 12월 탈세와 외화유출, 주식 위장분산 등으로 구속된 고려원양 주식회사의 이학수 사장의 부정 축재를 소재로 쓴 ‘호화주택의 규제’(77년 2월)는 “정부는 74년 석유파동직후 긴급조치로 건평 50평 넘는 집과 40평 넘는 아파트 건축을 허가하지 않은 적도 있다. 76년엔 독채 집은 건평이 150평, 아파트는 90평을 넘지 않도록 규제했다. 전 국민의 4분의 1이 집없는 사람이다. 도시에서 주택 부족율은 43%나 된다”고 했다. 철거민들에 대한 살인진압으로 민중의 분노가 들끓는 지금이나 예나 있는 자들의 호화주택에 대한 분노는 민심의 지렛대였다.

이학수 사장은 광명인쇄소와 고려서적인쇄를 운영하면서 원양어업에도 진출해 ‘고려원양’을 설립해 엄청난 부정축재를 일삼았다. 당시 검찰은 이학수를 8억원의 탈세와 65억원의 외화유출, 주식 위장분산 등으로 구속했다. 이학수는 주식 위장분산으로 형사처벌된 1호다. 요즘 삼성 등 재벌일가의 주식 위장분산은 모두 이학수가 원조다. 이학수는 공식 자산만 620억원이었지만 실제는 이보다 훨씬 많았다.

당시 국민들이 이학수 사건에 분노한 건 다른 데 있었다. 서울 한남동 1번지에 에스컬레이터까지 딸린 시가 6억원 짜리 호화저택과 부산 영도구에 공시지가만 12억원이 넘는 대규모 부동산 투기였다. (동아일보 76년 12월 6일자 7면) 손세일은 이 점에 주목했다. 그러나 손세일은 이학수가 5.16 쿠데타 현장에서 뿌려진 박정희 장군의 ‘혁명공약’을 미리 인쇄해준 공적으로 정권의 후원 하에 석탑산업훈장까지 받으며 고려원양을 최대 원양회사로 키워온 사실은 쓰지 않았다.

한 인쇄업자가 불과 10여년 만에 준재벌급 반열에 올랐는데도 그의 축재의 기반의 ‘쿠데타 정권’과의 유착이란 사실을 몰랐을까. 아니면 알고도 쓰지 않았을까.

  동아일보 76년 12월6일자 7면
태그

서평 , 이승만 , 손세일 , 인권과 민족주의 , 사상계 , 신동아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이정호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