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병원 허용' 찬반 격돌

"영리병원 허용, 의료비 싸진다" vs "경제학 교과서 다시 봐라"

정부가 추진하는 영리법인병원(영리병원) 허용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이런 가운데 보건복지가족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13일 서울 은평구 불광동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대회의실에서 '의료서비스산업 선진화를 위한 공개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선 영리병원 허용을 둘러싼 찬반양론이 팽팽히 맞섰다. 영리병원 허용에 따른 의료비 폭등과 건강보험체계 붕괴 등의 논란에 대해 양측은 상반된 주장을 펼치며 격돌했다.

이날 토론회는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가족부 등 8개 관계부처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진행하고 있는 '서비스산업 선진화를 위한 공개토론회' 일환으로 개최됐다. 토론회엔 정부 및 보건의료 관계자 200여 명이 참석해 영리병원 허용 문제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반영했다.

"의료민영화 논란, 음모론적 시각에 입각해 있다"

우선 찬성 측 인사들은 기존 병원 대다수가 영리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영리병원'이라는 용어 자체에 문제가 있고, '의료비 폭등' 등의 비판은 이념공세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박인출 대한네트워크병의원협회 회장은 "우리나라 병원은 이미 대다수가 영리성(영리를 추구하는) 병원이고 의사들이 동업해서 세운 주식회사 병원도 존재한다. 영리병원이란 용어는 오해의 소지가 있고 '투자개방 병원'이란 용어가 적절하다"고 밝혔다.

이기효 인제대 교수는 한 발 더 나아가 "의료를 민영화한다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의료민영화' 논란은 "음모론적 시각에 입각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가 (영리병원 허용 문제 등에 대해) 일관된 메시지를 주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음모론적 시각이 존재하는 것 같다"며 이 같이 밝혔다.

이 교수는 또 "건강보험체계를 무너뜨린다는 것은 총, 칼을 들고 집권해도 어렵다. 이걸 어떻게 무너뜨리냐"며 '건강보험제도 붕괴' 주장에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교수는 영리병원 허용에 따른 의료비 폭등 우려에 대해선 "의료비가 올라간다고 얘기하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것"이라고 반대론자들을 싸잡아 비판했다. 그는 "건강보험당연지정제(당연지정제, 모든 의료기관에서 건강보험 환자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제도)를 유지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기 때문에 영리병원이 도입되더라도 기본적인 의료수가는 어딜 가나 같다. 부자들(이 이용하는 영리병원) 얘기를 하는데 부자들이 바보냐, 의료비 비싸면 부자들도 (영리병원에) 안 간다"며 이 같이 말했다.

권용진 서울대 의대 의료정책실 교수도 "경쟁이 강화되면 의료비가 올라간다는 주장을 이해할 수 없다. 가격 경쟁을 합리적으로 하게 되면 가격이 떨어지는 것이 시장 원리에 맞다"며 의료비 상승 우려를 일축했다.

"영리병원 허용, 의료비 상승 초래할 뿐"

반대 측 인사들은 정반대의 주장을 폈다. 정부가 영리병원 허용의 근거로 들고 있는 의료서비스 질 향상 등이 근거가 없고, 오히려 의료비 상승을 초래할 뿐이라는 주장이다.

김창보 건강세상네트워크 시민건강증진연구소장은 "비영리병원이 영리병원에 비해 서비스 질과 접근성 등에서 우수하다는 게 대다수 연구의 결과다. 미국의 경험에 비춰볼 때도 영리병원이 비영리병원에 비해 좋다는 근거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김창보 소장은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시설 고급화 등 영리병원의 행태를 비영리병원도 그대로 따라갈 공산이 크고 이는 국민의료비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형근 제주대 교수도 국내 대형병원의 예를 들며 "경쟁이 심화되면 서비스가 고급화되고 의료비가 상승한다. 실증적으로 재원일 당 평균 진료비는 고급 병원에서 높게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영리병원 허용 요구는 병원에 가격결정권을 달라는 것인데 결국에는 국민건강보험이 존속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일각에서 영리병원 허용 반대 세력을 '이념에 치우친 반대세력'이라고 하는데 현재 정부가 영리병원을 밀어붙이는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이념에 치우친 일방적 정책 추진"이라고 찬성 측 주장을 받아쳤다.

특히 박 교수는 '경쟁이 강화되면 의료비가 떨어진다'는 권용진 연구원의 주장에 대해 "경쟁이 심해질수록 의료비가 뛰는 것은 경제학 교과서에 나와 있는 것이다. 제대로 보고 얘기해라"고 쏘아 붙였다.

이에 권용진 연구원은 "초음파 검사에 A의원은 4만 원이고, B의원이 6만 원이면 환자들은 어디로 가겠냐"며 "박형근 교수님과 교과서 펴 놓고 얘기해봐야겠다"고 날을 세웠다.

복지부, '당연지정제 유지' 선에서 영리병원 허용할 듯

한편, 이날 정부 측을 대표해 참석한 김강립 복지부 보건산업정책국장은 '영리병원 허용을 전제로 토론회를 하는 거냐'는 김창보 소장의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그는 "당연지정제와 관련한 어떠한 부분도 논의 대상이 될 수 없고, 기존 비영리병원의 영리병원으로 전환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고 밝혔다. '당연지정제 유지'와 '비영리병원의 영리병원 전환 불가' 선에서 영리병원 허용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재확인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