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성 스무 날과 서운함

디아스포라 이경옥 이야기②

비정규직 노동자의 절규로 2007년 여름은 시작되었다. 비정규직의 눈물이 장맛비처럼 그해에는 쏟아졌다. 7월 1일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숱한 비정규직들이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월급을 올려 달라고 한 것도 아니었다. 더 편하게 일하게 해달라고 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비정규직을 보호하겠다며 만든 법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쫓겨나야 했다. 힘도 조직도 없는 비정규직들은 끽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 밥줄을 잃어야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명은 세상의 숱한 소음에 묻혀 사라질 판국이었다.

법 시행을 하루 앞둔 6월 30일이었다. 오전 10시였다. 이경옥은 조합원들과 함께 홈에버 월드컵점 매장으로 들어갔다. 오후 2시.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는 조합원들의 목소리가 매장을 완전히 점거했다. 하늘빛 티셔츠를 입은 이랜드일반노동조합 조합원들은 이대로 쫓겨날 수 없다며 계산대 틈새에 박스를 깔고 잠을 잤고 컵라면과 김밥으로 허기를 달랬다. 그 순간 그곳에는 ‘비정규직’이 아닌 ‘사람’의 목소리가 났다. 그리고 스무 날이 흘렀다. 7월 20일 오전 10시 무장한 경찰들이 들이닥쳤고, 40분 뒤 매장에는 ‘사람’이 없었다.

  2007년 7월 20일 농성 20일만에 강제 해산되고 있는 이랜드노조 조합원들/ 참세상 자료사진

“(점거농성이) 스무 날이 갈 줄은 아무도 몰랐죠. 1박2일을 목표로 매장에 들어간 거예요. 6월 10일이죠. 이랜드하고 뉴코아가 공동파업을 하기로 했죠. 6월 23일에 월드컵점에서 28일에는 면목점에서 점거 농성을 했어요. 6월 30일이 세 번째 점거인 셈이죠. 우리가 점거를 했다가 매장을 나오면 곧바로 영업을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니 조합원들이 계속 불만을 가졌어요. 저리 매장이 돌아가는데 우리가 아무리 외쳐봤자 소용이 없는 거 아니냐고. 그래서 30일에는 1박2일 농성을 계획하고 들어간 거예요. 조합원들은 농성 준비도 제대로 해오지 않았어요. 매장에서 조합원들이 토론을 통하여 농성을 이어간 거죠. 그게 스무 날이 될지는 아무도 몰랐죠. 스무 날 농성을 하면서는 이 정도면 진짜 해결되지 않겠느냐, 이렇게 싸웠는데 대화가 되지 않겠느냐, 조합원도 지도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1박2일 농성이 20일이 되었고, 20일을 싸우면 해결될 줄 알았던 싸움은 해를 넘겨 오백 날을 싸우게 했다. 가을이 오면 끝나겠지 했던 싸움은 추석 지나고 연말이 되어도 계속 되었다. 해를 넘겨 설날 전에는 끝나겠지 했는데 봄이 되었다. 끝나기는커녕 황사가 몰아친 듯 눈앞은 뿌옇기만 했다.

“이십일 농성을 하면서 어떤 사단이 나든 끝날 거라고 생각했어요. 또 유통업체 특성상 매출이 제일 좋은 추석을 앞두고는 협상이 되어 타결을 하거든요. 그 여름, 한 여름 버티면, 뜨거운 여름 지나면 추석이니 끝날 줄 알았는데…….”

타결은커녕 이경옥은 구속이 되어 구치소로 가야 했다. 김경욱 위원장도 이남신 수석부위원장도 구속이 되었다.

“저희가 구속되었던 석 달이 제일 어려웠던 시기라고 조합원들이 말해요. 왜 구속되었냐고 원망을 해요. 우리가 (구치소에) 들어가고 싶어 들어간 것도 아닌데요. 지도부가 구속이 되고나서 파업에 참여하는 조합원들이 줄어들고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하니, 답답하니까 그런 거죠. (지도부) 공백기에 기륭전자처럼 삼사 년 가는 거 아니냐 하는 두려움이 조합원들에게 든 거죠. 11월 2일 날에 석방이 되었어요. 구치소에서 나와서 점심 먹고 집회에 갔죠. 그날 여의도에서 뉴코아하고 집회가 있었거든요. 저는 풀려나니 너무 좋았죠. 다시 힘차게 싸워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그랬어요. 이제 지도부가 다 나왔다. 다시 모였으니 의기투합해서 같이 싸우자. 되게 저는 신났죠.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이대고 하면 결의에 찬 발언을 하고 그랬거든요.”

이경옥은 갇혀있는 동안 바깥 분위기를 몰랐던 것이다. 집회에서 발언도 하고 기자들하고 인터뷰도 하며 출소의 각오를 밝혔는데, 집회가 끝나고 나서 조합원 실정을 살펴보니 그게 아니었다.

민주노총은 이랜드 싸움을 승리하지 않으면 민주노총 깃발을 내리겠다고 단호하게 투쟁의 결의를 밝혔었다.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랜드 기업과 총력투쟁을 선포하며 “노동조합을 인정치 않고, 노조와의 상생을 거부한 기업인 이랜드를 이 땅에서 기업을 못하도록” 하겠다는 말도 했다.

출소한 뒤 조합의 현실은 이경옥의 결의와 상관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한 여름 뜨거웠던 지지와 연대는 시들해졌고, 기세등등했던 조합원들의 사기는 꺾일 대로 꺾여 있었다.

“분위기가 그게 아니었는데 혼자 업(up)되어 그런 거죠. 되게 챙피하고 어색했죠. 저희가 구속되어 있어 차마 현장으로 복귀하지 못한 조합원들도 있었어요. 출소를 하면 복귀를 하겠다고 준비한 조합원들이 있다는 걸 알고……, 이게 내 맘 같지 않다는 걸 알았죠.”

  2007년 홈에버 상암점 점거농성/ 참세상 자료사진

조합원들에게 서운한 적은 없었냐고 물었다. 머뭇거린다. 오백일을 싸웠는데, 어찌 서운한 게 없었을까? 이경옥도 조합 간부 이전에 사람이 아닌가. 짜증이 나는 일도, 조합원이 미운 적도, 관두고 떠나고 싶은 날도, 감정이 있는 사람인데 어찌 없겠는가. 서운한 점은……, 하고 운을 뗀 이경옥은 한참을 주저한다.

“……글쎄요, 저희는 조합원들이 지도부한테 서운해 했을 거 같긴 해요. 조합원들이 서운해 했겠죠. 저는 서운함은 없어요.”

이제 파업은 끝나고, 부위원장도 아닌데, 머뭇거리는 게 아직도 파업 지도부의 자세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

“너무나……, 아니 끝까지 싸워왔던 조합원들이 저는 너무 고마워요. 그런데…….”

하지만 ‘그런데’에서 다시 멈칫한다.

“아니, 다만 그런 거는 있어요. 조합원들이 솔직한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지 않았던 게 진짜, 솔직히 서운했죠. 오히려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정확하게 이야기해주고 그랬으면……. 그런 걸 터놓고 이야기해야 되는데……, 그러지 못한 부분들이 있어요. 그래서 후유증도 있고 그랬었는데……, 조합원들끼리 반목도 있고는 했는데, 조금은……, 모르겠어요.”

이경옥이 울먹인다. 늘 다부지게만 여겼던 이경옥이 눈물을 글썽이며 울먹이자 더는 물을 수가 없었다. 무엇을 솔직하게 이야기 하지 않았는지, 조합원들이 무엇을 감추고 있었는지, 왜 터놓고 말하지 못했는지, 어떤 반목이, 어떤 후유증이……. 입 밖으로 나오려는 물음표를 집어 삼켜야 했다.

이제는 이경옥을 비롯한 몇몇 간부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현장으로 돌아갔다. 새로 노동조합 집행부도 꾸렸다. 현장에 돌아가 일을 시작한 동료들은 정신이 없을 것이다. 이경옥이 자신의 곁에서 일을 하지 않는다는 걸 생각할 겨를도 없을 것이다. 홈플러스로 바뀐 경영체제에 적응하기도 버거울 것이다. 파업의 진통을 추스르기도 전에 새로운 문제들이 불거져 나와 혼을 빼 갈 지경일지도 모른다.

이경옥은 재빨리 심하게 흔들리던 자신의 목소리를 되잡는다.

“글쎄 모르겠어요. 하여간 힘들었어도 투쟁을 거부할 수는 없었던 거잖아요. 저는 신나게 하려고, 즐겁게 (투쟁을) 하려고 했던 사람이라서. 내가 정확히 조합원들이 힘들었던 거를 알고 나 있었던 건가, 이런 생각을 하거든요. 조합원들이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거. 남편과 관계가 진짜 힘들어서 집회 나올 때는 몰래 시장가는 것처럼 하고 나와서 (집회 참여하고) 있다가 해 떨어지기 전에 빨리 들어가고 그래야 했던 조합원들의 고통 같은 거. 남편과 싸움을 제일 힘들어 해요. 그리고 투쟁한다고 자식들한테 변변한 밥도 못 챙겨주고 용돈 한 번 못 주고, 길바닥에 나와서 싸우고 있으니까, 그게 처량 맞은 거죠. 조합원들은 그래서, 그게 제일 힘들었던 거 같아요. 그건 거가 아무리 싸울 의지가 있고 그래도, 울컥울컥 하는 거죠.”

이경옥은 자신의 서운함은 눈물로 감추고 조합원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한참 이야기한다. 있으나마나 하는 남편, 남편 구실도 못하는 남편 이야기까지. 그런데 정작 자신의 남편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계속)
덧붙이는 말

오도엽 작가는 구술기록작가로 전태일 어머니 이소선의 구술기록작업을 했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의 소중한 목소리를 찾고 있습니다. 기록하고 세상에 널리 알려야 될 일이 있는 분은 참세상이나 메일(odol@jinbo.net)로 연락을 하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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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 이랜드 , 홈에버 , 홈플러스 , 이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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