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이틀째인 8일 매암부두에 정박해놓은 파업 예인선 26척 가운데 한 곳에 올라 노동자들을 만났다.
파업 노동자들은 예인선 노동자의 실상을 대부분 언론이 알려고조차 하지 않는다며 그동안 쌓여온 울분을 털어놨다.
▲ 비좁은 휴게실에서 예인선 노동자들은 VHF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대기하다가 작업 지시가 떨어지면 바로 예인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밥 때가 따로 없고, 밥 먹는 시간도 5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출처: 울산노동뉴스] |
"VHF 소리 때문에 잠을 자도 자는 게 아니예요"
VHF(초단파 송.수신기)가 있는 좁다란 휴게실에서 VHF를 통해 작업 지시가 떨어질 때까지 노동자들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36시간 연속 밤샘노동을 해야 하는 '당직'이 있는 날에는 VHF에 신경 쓰느라 밤에 거의 잠을 자지 못한다. 휴게실 탁자에 엎드려 잠깐씩 '조는' 게 전부다.
"VHF 소리 때문에 잠을 자도 자는 게 아닙니다. 밤새 작업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동이 틀 때쯤이면 사람이 멍해집니다. 몸도 지치고 정신도 지치고 녹초가 된다고 봐야죠."
예인선 두 대가 서로 평행을 맞춰야 하고 조그만 실수도 용납이 안되는 예선작업 자체도 굉장히 '예민'한 작업이라 정신적.육체적 피로는 가중된다.
파도라도 치는 날이면 4~5미터씩 오르내리는 뱃머리에서 줄을 잡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위험수당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선장, 1등 항해사, 기관장, 1등 기관사, 갑판장 등 5명의 노동자들은 오전 5시30분에 배에 올라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평일 근무는 오후 5시30분까지다.
한달에 7번 있는 당직에는 오전 5시30분에 출근해 다음날 오후 5시30분까지 꼬박 36시간을 일해야 한다. 그런데 다음날 야간까지 걸리면 40시간 이상 연속해서 일을 해야 한다.
예선작업만 있는 게 아니다. 틈틈이 선박 곳곳을 수리해야 하고, 정비해야 한다. 예인색(TUG LINE)도 보강해야 한다.
예선 노동자들은 따로 명절이나 여름휴가가 없다. 한달에 5일 쉬는 게 전부다. 이러다 보니 퇴근해서 맘 놓고 동료들과 술 한잔 마시기가 어렵다.
"몇달 전에 방제선 근무자가 밤에 술을 먹다가 배에서 자려고 부두에 왔는데 바다에 빠져 죽은 일이 있었어요. 다음날 새벽 출근하는 게 부담스러워서 집 놔두고 배에 왔다가 변을 당한 겁니다."
"30년 경력 선장 연봉이 5000만원이 안됩니다"
이렇게 일을 해서 받는 예선 노동자들의 임금은 얼마나 될까?
원양선 경력이 있는 근속 4년의 1등 항해사 000씨의 기본급은 95만원, 여기에 시간외수당(시간외 근무시간과 상관없이 정액 고정) 75만원과 승무수당 등을 합치면 205만원이다. 각종 세금과 보험료를 떼고나면 189만원이 손에 들어온다.
상여금은 기본급에 승무수당을 합친 통상임금의 600%다. 이 상여금도 1998년 IMF 때 300%로 삭감됐다가 최근에야 회복됐다. 그런데 조광선박의 경우에는 아직도 500%다.
"경력 30년 선장 연봉이 5000만원을 넘지 않습니다. 하루 걸러 야간, 당직 하면서 시간외수당이라고 받는 게 75만원이 전부고, 부식비라고 나오는 게 1인당 하루 1만500원입니다."
오전 5시30분에 배에 오르는 노동자들은 밥 때가 따로 없다. 밥과 국은 휴게실 맞은 편에 있는 주방에서 청수 탱크 물로 해 먹는다. 반찬은 근처 식당에서 시켜 먹는다.
"반찬값 아낀다고 아침밥은 누룽지 끓여서 간장에 먹는 경우도 많습니다. 집에서 음식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선원들의 경우에 노동강도가 세서 하루 4000칼로리 이상을 먹어야 한다는데 택도 없죠."
"짐승보다 못한 생활이예요"
햇수로 34년 된 2000마력급 예인선 내부는 낡을대로 낡은 모습이었다.
▲ 이 비좁은 공간에서 세수를 해야 한다. [출처: 울산노동뉴스] |
▲ 배 밑쪽에 있는 침실.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진동한다. [출처: 울산노동뉴스] |
▲ 화장실에 있는 물통. 녹물이 시커멓다. 파도가 치는 날이면 볼일 보기도 어렵다. [출처: 울산노동뉴스] |
"육지에서 물을 받아 보관하는 청수 탱크는 청소 안한지 3~4년이 됩니다. 이 물로 밥 하고 국 해먹고 샤워하고 빨래하고 합니다. 5일만 지나면 녹물이 나와요. 화장실은 또 어떤데요. 파도 치면 볼일 볼 수도 없습니다. 회사에 뭘 수리해달라고 1년 이상 얘기해도 안들어줍니다. 배만 돌아가면 된다는 심보죠. 정말 짐승보다 못한 생활이예요."
휴게실을 나와 배 밑쪽으로 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침실이 있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진동하는 이곳에서 노동자들은 피곤한 몸을 뉘어 쪽잠을 청한다.
경유값을 아끼려고 연료로 사용하는 벙커-A유가 내는 엄청난 매연을 고스란히 마셔가며 청춘을 예인선에 바쳐온 노동자들은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노동조합을 만들고 파업에 들어갔다.
조광선박, 선진종합, 해강선박 등 3개사는 직장폐쇄와 불법쟁의행위중단가처분신청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자신을 믿고 동지를 믿고 노동조합을 믿고 이 싸움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난생 처음 머리띠를 묶고 파업가를 부르는 예인선 노동자들의 팔뚝에 힘이 실린다.
▲ 난생 처음 하는 파업. 파업가를 부르는 팔뚝질에 힘이 들어간다. [출처: 울산노동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