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 하시는 분들, 어디 있나요?”

[대담] 한가위 앞둔 노동자들 이야기

이 글은 9월 30일 늦은 3시에 서울 창신동 전태일재단 교육장에서 유명자 재능교육 지부장(유), 이상헌 자티전자분회 교육선전부장(이), 고희철 동우화인켐분회 사무장(고), 서수경 명지대비정규직분회 분회장(서)이 나눈 이야기를 오도엽 작가가 정리한 글입니다. - 편집자 주

한가위를 눈앞에 둔 2009년 9월 30일 오후, 노동자들이 모였습니다. 비정규직, 특수고용직, 정규직, 하청노동자. 처지는 달라도 모두다 노동조합을 한다는 이유로 탄압을 받는 사람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 국책연구소인 한국노동교육원의 원장이라는 분은 헌법에서 노동삼권을 빼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날 모인 사람들은 모두 대꾸할 필요가 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노동자들에게 법의 보호가 존재한 적이나 있었냐? 묻습니다. 누구에게나 고르게 비추는 한가위 보름달을 보며 고통 받는 노동자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대한민국의 법, 누구에게나 평등하지는 않아도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어서는 안 될 텐데.

: 저희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은 오늘로 농성투쟁 육백오십 일이에요. 아무리 길게 농성해도 명절 두 번 이상은 지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명절을 벌써 하나 둘 셋 넷 다섯, 다섯 번째네요. 명절이라 해도 한 번도 농성장을 떠나본 적이 없어요. 솔직히 말해서 요번에는 농성장 사흘만 문 닫자 했는데...... (한숨을 쉰다) 가장 힘든 게 뭐냐면, 명절날 아침에 농성장을 누가 지킬 건가 이게 문제지요. 다섯 번 씩이나 농성장에서 명절을 맞이하니 지부장으로서 간부들한테나 조합원들한테도 미안하고. 사실 명절날만큼은 저도 하루나 이틀은 쉬고 싶어요. 요번에도 투쟁을 끝내지 못하고 명절을 또 맞이하는구나, 집에서 맘 편히 하루도 못 지내겠구나, 조합원들을 또 이렇게 만들었구나, 이런 생각이 든다는 거, 그냥 한숨만 나오죠 뭐.

  지난 4월 강제철거당한 재능교육지부 농성장/ 참세상 자료사진

: 자티전자는 노동조합 시작한지 얼마 안됐으니까 (투쟁하며) 처음 명절을 맞는 거죠. 최대의 명절 한가위니까 즐거워야 되는 날인데, 전혀 즐겁지가 않죠. 몇 달 동안 투쟁해서 저희가 얻어낸 결과가 해고를 철회하는 대신 장기휴업이에요. 휴업이 끝난 뒤에 밝은 미래가 보인다고 하면 명절을 나름대로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대표이사가 뭐, 사업장을 폐쇄를 한다는 둥, 그런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에 전체 조합원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지 못하고 불안한 상태라 마음이 착잡합니다.

: 지난 설날 때는 저랑 분회장은 조합 활동으로 구속되어 감옥에서 설을 보냈죠. 밖에 있는 조합원들은 노숙하며 보냈고요. 이번에는 다 집에 내려가요. 저희 사업장이 있는 평택에 쌍용자동차가 있기 때문에 지난 팔월까지는 쌍용차 투쟁하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쌍용차 농성이 끝났으니 다시 우리 사업장 투쟁을 힘 있게 하자 했는데, 다시 농성을 하더라도 추석을 지내고 해야 좋겠다, 그래서 요번 명절은 집에서 보낼 수 있는 거죠. 다행이죠. (웃음) 저희 동우화인켐이 삼성에 엘씨디 화면 안에 있는 필름을 납품하잖아요. 삼성 엘시디가 사상 최호황이다 이래 가지고 직원들이 상반기 특별 성과급을 한 삼천억 원 정도를 받았다고 뉴스에 나오더라고요. 동우화인켐도 상반기 결산하면서 정규직 직원들에게 평소에 주는 것보다 일이백만 원을 더 준 거 같아요. 하청업체로도 얼마씩이 내려왔나 봐요.

동우화인켐 안에 세 개 하청업체가 있어요. 세 업체가 같은 라인에 섞여서 같은 일을 하는데 어디는 이십만 원, 어디는 십만 원 이렇게 차이가 나요. 청정 어머니들이라고 방진복 입고 크린룸 안에 청소하시는 분들, 육십 넘은 분들이 있는데 이분들은 한 푼도 못 받았어요. 그래서 현장에서 (상여금) 받은 분들은 받은 분들대로 속상하고, 받지 못한 분들은 말할 것 없이 속상하고 이래요.

: 저희(명지대학교 행정조교)는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에서 승소해서 추석 전에 합의를 하고 명절을 쇠러 갈 뻔 했는데...... 그런데 학교 측에서 합의안이라고 내 논 게 너무 조합원들의 분노를 일으키게 해가지고 지금 다들 열 받은 김에 끝까지 가자, 이러고 있거든요.

: 합의안이 어떻게 나왔어요?

: 학교에 바로 복직해서 사직서를 쓰고 퇴직위로금 받고 집에 돌아가 이 년 놀다가 학교에 돌아오래. 그러니 사람들이 다 기겁을 하는 거지. 누가 이년 뒤에? 지금껏 칠 개월 넘게 지났는데, 뭐를 믿고 우리가 합의서에 도장 찍고 이 년 동안 노조 활동이고 뭐고 다 접고 어디 쳐 박혀 있다가 이 년 뒤에 학교 들어간다는 게 이게 말이나 되냐고, 다들 분노를 표출하는 거죠. 부당해고는 부당해곤데, 니네 학교에 들어오면 바로 짜르겠다는 거죠.

한가위 앞두고는 저보다는 저희 조합원들 때문에 마음 아파요. 저는 사실은 애도 있고 결혼도 했고 시댁 어른들도 (제가 하는 일을) 다 아세요. 제 주위 분들은 일단 다 이해를 하고 계시기 때문에 문제가 없어요. 저희 조합원들이 다 삼십대 초반, 한참 왜 연애하고 결혼하고 인생의 전환기를 맞아야 할 시긴데, 지금 이리저리도 못하는 여기(농성)에 매달려 잇는 거죠. 생계도 칠 개월 내내 자급자족, 자기가 알아서 생계를 해결하며 살아온 터라 다들 여유가 없는데다가 추석에 집에 가면 결혼이니 취직이니 이런 거로 분명히 말 나올 테고...... 추석날 스트레스 엄청나게 받겠지.

: 저 같은 경우에는 약간 패닉상태에 있다고 할까, 뭔 일이라도 해야 하는데 불구하고 일을 못하는 상황이잖아요. 휴업이라는 게 뭐냐면 정상적으로 다른데 아르바이트도 할 수가 없는 처지에요. 장기휴업에 들어가니까 저처럼 조합원들도 패닉 상태에 빠져 있어요. 장기휴업을 버텨낼 수 있는지도 약간 의문이고, 대표이사가 휴업기간에 기존 사업을 다 접어버리겠다는 소리도 들려오고, 모든 게 불투명하니...... 앞으로는 신규 사업을 해야 된다, 이러며 조합원들한테 희망이 없다, 아니 희망을 없게 만들어서 휴업기간에 스스로 알아서 퇴사를 해라, 뭐 이런 거 같아요. 야반도주 할 때부터 황당하잖아요.

  지난 2월 교섭파기를 선언한 자티전자는 다음날 새벽 회사를 이전했다. [출처: 금속노조 서울남부지역지회]

낙성대에 있던 회사를 직원들도 모르게 하룻밤사이에 인천남동공단으로 옮겼잖아요. 낙성대 사옥에 출근했는데 집기들이 사라져버려 거기서 사흘 동안 농성을 하다 남동공단으로 출근했잖아요. 출근을 하니까 회사의 측근들이죠, 측근들이면서 대부분 사장과 인척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회사 정문 앞에서부터 뭐 이 새끼들 왜 왔냐, 니들 왜 왔냐, 이런 식으로 십년 가까이 일한 회사에 들어가는 걸 막았어요. 그 사람들하고 실랑이를 하지 않고 일단은 피해서 회사로 들어갔죠. 곳곳에서 웅성웅성해요. 시끄러우면 무슨 일인가 하고 가보죠. 조합원들도 가보고 비조합원들도 막 쫓아가보고. 이게 근무지 이탈이 되어 교섭이나 법적인 문제가 있을 때 증거자료로 제출되었어요. 물론 비조합원들은 자리 이탈을 해도 문제를 안 삼았죠. 회사에서는 미리 각본을 짜놓은 거 같아요. 사진 찍고 캠코더로 찍고.

조합원들을 다 중앙에 배치해서 사방으로 임원들이 둘러앉아서 감시하게끔 자리배치가 되었어요. 대기발령을 내서 정상적인 자리가 아니고 출입문 앞에 협탁 하나 갖다놓고, 의자 하나 갖다놓고 거기서 보내라, 이런 식으로 압박을 하고. 조합원한테 일을 주지 않고 하루 종일 멀뚱멀뚱 앉아있게 한 뒤, 밖에다가는 회사에서는 일이 없는데 어쩔 수 없이 내보내지도 못하고 빈둥빈둥 거리는 직원들한테 월급 주고 있다고 알리고, 안에서는 우리들한테 식충이다, 이런 말까지 해가면서 굉장히 모멸감을 줘요. 이게 다 대표이사 입에서 나온 이야기니까. 거기다 비조합원들을 통해서 노노갈등을 일으켰어요. 십년동안 같이 일했던 직원들이 하루아침에 막 눈에 불 켜고 노동자끼리 다투게 만들어요. 약간 맹목적으로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일만 하는 사람이 있는데, 여성 조합원한테 가서 입에 담긴 뭐하지만 굉장히 쌍욕을 해가면서, 엑스엑스야 니들 때문에 내가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 니들 때문에 내가 죽고 있다, 이런 식으로.

: 학습지 교사는 흔히 말하는 사업자라 불리는데,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요. 수수료 개정투쟁으로 농성을 시작하니까 회사에선 이 기회에 노동조합을 없애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싸움을 확대시켜 단체협약 파괴통보를 한 거죠. 회사는 지금껏 노동조합을 인정했던 게 좀 억울하다는 거죠. 자본주가 생각할 때는. 사실 단체협약은 파기되기 전부터 누더기가 되어있는 상태였어요. 사장은 ‘잃어버린 십 년을 찾겠다’고 공언을 하며 노동조합 탄압을 하기 위해서 단체협약 파기하고 노동조합 자체 활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거예요. 투쟁만 했다하면 손해배상 가압류 벌금 고소고발이 남발이어요. 육백오십 일 하는 동안 별달리 한 것도 없이 세 명이 구속되었고, 투쟁기간 반 정도에 나온 벌금이 오천만 원이 넘어요. 현재까지 나머지 반 기간 동안 벌금이 얼마나 더해질는지 모르죠.

재능교육은 학습지 교사들이 최초로 만들었던 노조고, 특수고용 지부로서는 최초로 받았던 단체협약인데, 지금은 선생들 관련된 복지제도나 이런 거 다 파기가 됐어요. 회사는 이제까지 십년동안 니네(학습지 교사)한테 특혜와 수혜를 줬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십년동안 노동조합을 인정해줘서 너희가 이렇게 왔는데 인제 더 이상 회장이 너무 억울하고 원통해서 그걸 못하겠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고요. 지금 활동하고 있는 현장 간부들이 특수고용노동자라서, 사실 꼬투리만 잡히면 해고가 되요. 어디에다 하소연 할 데가 없어요. 우리는 부당해고라고 주장하지만 지노위 중노위 가지도 못하고 각하돼요. 니네(특수고용노동자)는 우리(지노위나 중노위)한테 들고 올 사안이 아니라는 거죠.

또 적이 늘어가지고 구청하고 혜화경찰서하고도 싸워야 해요. 혜화경찰서는 (회사의) 사설 경비대처럼 되어 있어요. 저희가 농성천막을 열다섯 번 철거당했는데, 금년 오월 달에 철거 당한 뒤론 천막을 치지를 못해요. 그 자리에 혜화서 순찰차가 이십사 시간, 일분 일초도 그 자리를 안 비워주고 있어요. 천막 없이 노상 피켓시위를 해도 도로교통법위반이니 도로법위반이니, 불법연행 체포된 게 벌써 세 번이에요. 어떻게 보면 힘들게 자학 수준으로 농성투쟁을 하고 있는 거죠. 저희하고 회사하고 똑같은 사안으로 고소고발을 하면 어쩐 줄 아세요. 저희가 진단서를 내면 ‘회사의 누가 구체적으로 직접 가격했는지 증거 사진이 없다’고 회사는 무죄예요. 반면에 회사는 어떤 조합원이 때렸는지도 모른 채 진단서 이 주짜리만 내도 저희는 무조건 유죄에요. 벌금이 못 나와도 백만 원, 삼백만 원 짜리가 나와요.

: 동우화인켐은 생산물량을 거의 다 삼성에 납품을 해요. 기자회견을 삼성 앞도 아니고 바로 옆에서 한 건데 고소를 했더라고요. 저희는 몰랐는데 삼성건물 일층이 홍보관인데, 저희가 홍보관을 가로막았대요. 근데 저희가 그때 한 여섯 명인가 있었는데 홍보관이 엄청 크잖아요. 우린 여섯 명이고 용역들이 나와 가지고 (홍보관 앞에) 줄 서 있더라고요. 자기네들이 막은 거 같은데 우리한테 고소에요. 저희들 농담 삼아 말해요.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게) 어디 올라가고 뛰어내리고 굶고 찢고 이런 건데, 법원에서 오라하고 경찰서에서 오라니까, ‘야, 이제 법보다도 돈이 무서워가지고 진짜 이제 못 하겠다’ 이런 얘기 농담 삼아 해요. 점점 법을 빌미로 벌금으로 탄압하니 비정규직 권리 찾는 게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공장 앞에서 중식집회를 열고 있는 동우화인켐 비정규직 노동자들 [출처: 동우화인켐분회]

: 저희는 탄압? 탄압은요, 사실 대학이 다른 데랑 좀 틀려요. 저희는 고소고발 들어간 것도 없고 이래저래 많이 부딪힌 게 없어요. 주로 여자들만 활동하다보니, 기껏 해봐야 세 번 집회한 거, 조용히 피켓 들고 서있고 총장 집 앞에 서있는 거, 부딪히고 큰 소리가 날 만큼 그럴게 없었어요. 기껏 탄압받아봐야 촛불 문화제 할 때 사람들 때리니까 좀 맞고, (그게 탄압이잖아요?) 처음 농성장 치고 이랬을 때는 맞고 그랬던 거 밖에 없어요. 나중에는 그것도 학교에서 포기를 하더라고요. 그냥 학교 직원 분들 세 명씩 조 짜가지고 하루 종일 우리 쫓아다니면서 캠코더 찍고, 소음측정기로 측정해주시고 그냥 그 정도예요.

그런데 사실 그래요. 인생 다 뭐 있어요. 살아봐야 백 년도 못 사는데 그냥 그잖아요. 그 사람들은 얼마나 속이 타겄어. (총장한테) 등 떠밀려 나와서 자기도 정말 비굴하고 돈의 노예가 된 거처럼 어쩔 수 없이 나와서 그러고 있는 그 사람들 심정도 이해가 되죠. 진짜 문제 되는 것은 설립자 아들, 지금 총장님이 문제되는 거지. 돈 받고 어쩔 수 없이 나올 수밖에 없는 그 사람들 문제는 아니잖아요. 그래서 저는 특별히 학교랑 크게 부딪히면서 몸싸움하고 그런 거 거의 없었고요. 탄압이라고 하면 농성장 철거하겠다는 식으로 내용증명 보내는 거. 조합에서 대자보 붙이면 한 시간 안에 뜯는 거. 그러면 우리는 죽어라고 써서 붙이는 거지. (웃음) 청소하시는 분들만 고생하시는 거죠. 청소하는 분들한테 좀 미안하기도 하고.

: 제가 노동조합 시작하기 전까지는 사실 제 자신도 노동자라는 범주에 들어가는지 조차도 관심도 없었고 몰랐어요. 노사관계라든가 이런 거 뉴스에서나 들었지 전혀 나와 다른 사람들만의 일이다, 이렇게만 생각하며 생활했었죠. 이제 우리 회사에 닥친 거죠. 아무런 사전 통보도 없이 해고를 해서 노동조합을 만들어졌죠. 그냥 쫓겨날 수 없어서. 물론 저는 해고통보를 받지 않았어요. 오랫동안 근무를 같이 해왔던 사람들이, 특별하게 잘못했거나 회사한테 해악을 끼쳤거나 이런 적도 없는데 어느 날 갑자기 회사에서 해고통보를 해버린다는 거죠. 그런 거 옆에서 지켜봤을 때 마음에 좋을 리는 없었고요. 그분(해고자)들이 어느 날 와가지고 조합을 같이 하자라고 제의를 해서 뭐 잠깐 고민을 했지만 흔쾌히 승낙을 했어요. 막상 가입하니까 정말 노동조합 활동이 힘든 길이구나, 라는 걸 하면 할수록 느껴요.

뭐 아까도 법 이야기도 나왔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법은 국민을 지켜주기 위해 만들었게니, 별 관심도 없이 그렇게만 알고 있었는데 실지로 우리가 법의 보호를 받기 위해서 사방팔방 돌아다녀도 어느 한 군데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없어요. 법은 노동자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노동삼권 보장 이런 거 있지만은 그게 실지로 노동자를 위해서 유용하게 작용하는 적이 거의 없어요. 회사에서 법망을 피해서 하든지 법테두리 안에서 요리조리 잘 엮어서 하든지 절대 노동자들에게 불리하게 상황을 만들지 노동자들에게 좋게 만들어가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저희는 가능하면 처음부터 법을 지키면서 시작했어요.

: 저희도 잘 지키고 싶어요. (웃음) 그런데 헌법이고 뭐고 없어요. 그냥 농성장 그 자리에 있는데 도로교통법 위반이에요. 노동삼권이 보장되어 있다, 아니면 집회결사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가 있는 헌법을 무시하는거냐, 따지면 그건 모르겠다, 대놓고 그래요. 그건 모르겠고 일단 댁들이 인도 통행에 불편을 주었다고 해요. 저희가 농성하는 혜화동 본사 앞이 국가 주요도로래요. 국가 주요도로이기 때문에 집회신고를 받아줄 수 없고, 저희가 혜화동로터리 밑에까지 밖으로 나와서 집회를 하는데, 그것조차도 계속 보완통보를 해요. 뭐냐면 집회신고의 내용을 다 경찰이 지시를 하는 거예요. 방송차 빼고, 행진 빼고, 선전전 빼고, 뭐 ,피켓도 삼십 개다 그러면 피켓도 열 개 이하로 줄이고, 이렇게 신고내용까지 통제해요.

집회는 신고제잖아요. 그래서 ‘그럼 허가제라고 법을 바꿔라’, 그렇게 말하면 ‘아 그건 아니고’ 그래요. 집회신고 내용에 행진이라고 안 쓰면 걔네는 어떻게 요구를 하냐면 ‘행진 없음’이라고 자필로 쓰라고 하죠. 이게 집회의 자유가 있고 집회가 신고제인 거 맞나요. 우리가 인도에서 피켓 들고 서있는 것을 처벌하면서도 말이에요. 법이라는 게, 이미 노동자에게는 법이 상실된 지 오래지요. 뭐 저희가 경찰이나 법을 다루는 재판 받으면서 어떤 절망감이 드는 줄 아세요. 이게 정말 시민을 보호할 수 있는 판사들이고 검사들인가, 참 어이없죠.

: 아니, 저희는 가능하면 법적으로 얽히고설키지 않고 다른 투쟁사업장에 비해 굉장히 온순한 방식의 투쟁방식을 선택했어요.

: 저희도 아무 것도 한 거 없어요. 온순해요. (웃음)

: 온순해도, 손해배상 걸리고 이런 것들 저희도 여태까지 만만치는 않아요. (웃음) 그렇게 합법적으로 한다고 해도 회사에서는 엮으려고 하기 때문에 그게 쉽지 않아요. 우리는 나름대로 합법적으로, 최대한 합법적으로 법 테두리 안에서 우리가 얻어낼 수 있는 것을 얻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했지만, 실제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어요.

: 법이요? 어이 장난하시나! 에이, 이기면 뭐해요. 중노위에서 복직판결 받아도 이행이 되나요. 그리고 판결을 이행하지 않으면 이행강제금을 (학교에서) 물잖아요. 그거는 노동자한테 줘야지. 그걸 왜 받아서 국가가 갖나요. 난 그거 열 받아요. 지네가 한 게 뭔데? 세금으로 월급 받으며 판결을 했으면 이행을 하게 해야 할 거 아니에요. 부당해고 시킨 총장 멱살을 잡아서라도. 그렇게 하지 못하면 벌금을 누가 받아야 되요. 피해를 입은 노동자가 받아야지. 왜 그걸 지들이 받아. 학교에서 이행강제금 내봤자 나중에 연말 정산할 때 세금으로 다시 돌려받는데요. 몇 억 내봐야 도로 다 받는대요. 장난하나! 이 이야기만하면 속이 다 뒤집어져요. 법이 잘못되었잖아요. 고쳐야 될 거 아니에요. 왜 안 고치는 거야! 이전에 노동운동 하시는 분들 다 어디 가셨어?

: 사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앞으로도 노동조합 유지하는 게 전망이나 비전 있을까, 이럴 정도로 힘들어요. 정규직이고 비정규직이고 가릴 게 없는 것 같아요. 투쟁사업장들 만나는 기회가 있어 가보면 내가 몰랐던 직군들이 너무 많잖아요. 아, 이렇게 여러 가지로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이런 생각들이 많이 들거든요. 힘든 이야기 들으면서 정말 저기도 안 되고 여기도 안 되고 우리도 안 된다, 그런 생각이 안 들었으면 좋겠어요. 말마따나 투쟁 시작하는 처음에는 총연맹 오시고 상급단체 오시고 하잖아요. 좀 지나면 사라지죠.

저희는 투쟁사업장에도 양극화 심하다, 이런 말 많이 하거든요. 총연맹이나 상급단체에서도 (투쟁사업장)봐서 붙을 때 안 붙을 때 정확하게 계산을 해요. 그래서 저희는 육백일 넘게 상급단체로부터 지원받은 적이, 지원받은 게 없어요. 아무튼 저는 투쟁하는 노동자들 연대 가서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지금 봤던 조합원들이 아직도 싸우고 있다는 거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로 잊히지 않게 서로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말을 하면서 한 번씩 울컥 하는데...... 서로가 보지는 못해도 승리보고대회 할 때까지는 분명히 (그 사업장 노동자들이) 싸우고 있겠구나, 하며 서로가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연대를 못 가더라도.

: (유명자 지부장을 바라보며) 승리보고대회 꼭 하셔야 되요. 승리보고대회를 못하시면 인생 잘 삽시다 보고대회. (웃음) 저는요, 명지대 지부장이 이렇게 상태가 안 좋나, 그래 그렇게 생각해도 할 수도 있어요. 근데 나는 좀 그랬으면 좋겠어요. 왜 이렇게 불행하게 보이시냐고? 투쟁 오래하신 분들. 여기 계신 분들은 좀 밝은데, 다들 왜 스스로 고통스러워해야 되죠. 나는 그거 잘못 됐다고 생각돼요. 저 새끼들을 고통스럽게 해야 되잖아. 사측의 사장 새끼는 밥 잘 처먹고, 왜 욕을 자꾸 하지. (쑥스러운 듯 고개를 흔들며) 사장은 밥 잘 처먹고 자가용 타고 다니면서 할 것 다하고 다니는데, 왜 노동자들은 스스로 옥쇄파업을 하면서 고통스럽게 싸워야 하는지. 고공농성 들어가서 사람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든지, 자살을 하든지 뭐 그런 식으로 좀 안 그랬으면 좋겠어요.

  서수경 대학노조 명지대비정규직분회 분회장/ 참세상 자료사진

투쟁이 재밌지는 않아요, 사실. 근데 저는 참 재밌게 했거든요. 쟤는 좀 농땡이 친다고 욕들도 많이 하셨겠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했어요. 주변 동지들은 좀 짜증을 냈겠지만 할 수 없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건데. 뭐 내가 죽을 것 같은데도 계속 싸운다는 것은, 내 스스로가 투쟁을 계속한다고 해도 전혀 즐겁지도 얻을 것도 없잖아요. ‘명지대 투쟁은 즐겁게 하자’, 이런 모토로 가고 있고, 그냥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요. 왜냐면 투쟁하는 사람들도 투쟁 속에서 즐거워야 되고 느끼는 게 있어야 되니까. 노동자의 권리, 노동자의 뭐 어쩌구 저쩌구를 느끼면서 어, 어, 어, 가열찬 투쟁, 그거 다 좋은데 거기에 함께 했던 개인 개인도 다 즐겁고 행복해야 되고 인생이 즐거워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인생 몇 백 년 살 것도 아닌데, 즐겁게 살아야죠. 민주노총 산하에 산별노조 가입해서 투쟁하며 일 년 이 년 아니면 오 년 했는데, 나 정말 다시 돌아가도 또 할 수 있고 정말 즐겁다, 이렇게 이야기가 나와야죠. 보통 선배님들 상황은 그거는 아닌 거 같고. (웃음) 저희는 한 번 해 볼만 하다, 재밌더라, 대법까지 가서 월급 받고 집에 있는 것도 괜찮더라, 아닌가? (고개 갸웃하며) 하여튼 즐겁게 하자, 이런 거예요.

: 사실 노동조합은 경제적으로는 서로가 서로한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없잖아요. 물질로는 안 되지만 마음은 모을 수 있잖아요. 다른 사람을 돌아보는 마음가짐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너무 개개인의 이익에만 쫓아가는 그런 경향들이 없잖아 있는데, 제 생각은 그냥 한 사람 한 사람이 조금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약간의 마음만 가지고 있으면 뭐 소규모 사업장이 됐든 큰 규모의 사업장이 됐든 조합원으로서 단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단결이 진짜 노동조합의 가장 큰 힘이기 때문에 그게 되면 뭐든지 잘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 아, 그런데 속 안 터져요. 나는 이거 몇 개월하고도 이렇게 터지는데. 예라, 잇. (볼펜을 던지며) 성선설을 믿었거든요. 계속 (투쟁) 하니까 성악설 쪽으로 가게 됐어요. 사측도 그렇지만 노동조합도 왜 이렇게 이기적인 거야. (서수경 씨는 하나님이 있었기에 지금껏 싸워올 수 있었다고 했다.)

: 시간을 보니까 마지막 발언 같은데, 이렇게 하는 거 아닌가요? 이런 자리를 만들어줘서 고맙습니다. (웃음) 금속노조 안에서도 비정규사업장들 투쟁본부가 있어요. 어려운 사업장끼리만 모여 (투쟁하며) 돌아다녀요. 다니면서 무슨 이야기 하냐면, 금속이 제조업이잖아요. 얼마 전에 도루코 비정규직 노동자가 이겼어요. 회사하고 합의한 내용이 뭐냐면, 법원에서 부당해고 이긴 네 명 복귀시켜준다. 그리고 노동조합일로서 불이익 주지 않는다. 당연한 걸 가지고 이 년을 싸워 현장에 돌아가면서 얻은 게 결국 이거예요. 현장 들어가는 데까지가 일라운드다. 이라운드가 또 기다리고 있는 거고요. 그래서 갈 길은 멀기만 하죠. 이 년 걸려가지고 노조활동을 해도 해고 하거나 탄압은 안 하겠다, 요 정도까지 합의 본 건데, 그래도 대개 큰 진전이라고 봐요. (도루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현장으로 돌아가셨으니까. 아마 저희도 조그맣게 이기고 나면 딴 분들 힘이 나실 거라 생각돼요. 이기고 나서 현장 들어가면 바쁘겠지만 꼭 잊지 말고 승리보고대회 해가지고 가뜩이나 고생하는 동지들에게 힘도 주고 하죠. 그럴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좀 해보겠습니다. (박수)

유난히 오프 더 레코더가 많은 좌담이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그 말을 다 표현하며 살 수가 없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선별된 목소리조차 들려줄 곳이 없다는 겁니다. 좌담은 끝났지만 밤 깊도록 이야기는 이어졌습니다. 아직은 세상에 털어놓을 수 없는 이야기들 넘쳐납니다. 이들이 긴 어둠속으로 사라지자 하늘엔 한가위를 앞둔 달이 둥그렇게 떴습니다. 희망은 있다고도 할 수 있고, 없다고도 할 수 있다는 글귀가 떠올랐습니다. 길이 있어 길을 가는 게 아니라 걸어 가다보니 길이 생겼다고 합니다. 어둠속으로 사라진 이들의 발걸음이 새 길을 낼 거고, 절망의 어둠속에서 희망을 한가위 달을 길어 올릴 겁니다. 그런데 즐거운 한가위들 보내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