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노조말살 정책이 결국 국정 파트너로 참여했던 한국노총까지 등을 돌리게 한 것이다. 한국노총은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조직적으로 지지했을 뿐 아니라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를 통해 온건, 합리적인 노동운동 노선을 표방해왔다. 그런 한국노총이 ‘사활을 건 투쟁 돌입’을 선언했다. 정부의 ‘노조전임자 임금금지 및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 강행 때문이다.
[출처: 한국노총] |
한국노총은 투쟁 돌입과 더불어 노사정위원회 노사관계선진화 논의 중단도 선언했다. 또 중앙노동위원회를 비롯한 정부 내의 모든 위원회 활동과 지역을 포함한 일체의 노사민정 협의체에 대한 참여중단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사민정 협의체는 올해 2월 23일 한국노총과 경총이 제안해 협의체를 구성했지만, 정부가 상당한 공을 들여 경제위기 극복의 성과로 상징되는 기구다. 정부는 올 상반기 내내 노사민정 합의를 통한 노사양보 교섭사례를 홍보해 왔고 이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와 노조의 임금삭감을 주도해왔다. 한국노총은 당시 일부의 반발에도 임금 절감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에 동참했다.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하는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 민간위원으로도 참석했다. 그러나 한국노총의 협력적 노사관계를 통한 대화 노력은 물거품이 됐다. 한국노총은 신임 임태희 노동부 장관이 인사청문회 때부터 “노사정위원회 논의 진행과 상관없이 노조전임자 임금금지와 복수노조를 내년에 시행하겠다”고 밝힌 것을 두고 노사정위원회 무력화와 노조말살정책으로 규정했다.
한국노총은 8일 오전 ‘노조전임자 임금금지 및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 강제 반대투쟁’을 선포하는 위원장 특별 기자회견을 열고 떠도는 소문까지 거론하며 총파업 입장을 밝혔다. 기자회견문에는 ‘국민에 대한 배신, 도발’, ‘독재정권 시절에 봐왔던 경제부처 마피아’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강경함을 드러냈다.
한국노총은 “국민과 함께 하는 합리적 노동운동을 주도해 오면서 노동계 안팎의 비판을 무릅쓰고 노사민정 합의를 이끌었던 한국노총은 노동조합을 말살하고 노동운동을 탄압하려는 경제 관료들의 어처구니없는 행위에 엄청난 자괴감과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면서 “그러한 작태를 분쇄하고 노동기본권을 수호하기 위해 사활을 건 투쟁에 돌입할 것임을 선언 한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전체 노동조합의 88%가 조합원 수 300명 미만의 영세한 기업별 노조로 존재하는 엄연한 현실을 무시하고 13년 동안이나 시행이 유예되어 사문화되다시피 한 법 조항을 내세워 노조전임자 임금지급을 금지하겠다는 것은 이 땅에서 노동조합을 아예 없애버리겠다는 심산”이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또 “복수노조 교섭창구의 강제적 단일화를 통해서 노동조합 간의 갈등과 경쟁을 부추겨 노동조합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는 계산을 깔고 있는 것 아니냐”면서 “노동기본권인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함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려는 불순한 의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노총도 노사정위 무용론, 민주노총에 노사정 대표자 6자회의 제안
이번 정부의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 밀어붙이기는 노사정위원회 무용론에 더욱 힘을 실었다. 이미 민주노총은 노사정위 무용론을 들어 노사정위원회에는 참가하지 않고 있다. 들러리로 전락한다는 이유였다. 한국노총은 “노사정 대표가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노조전임자 임금과 복수노조 문제의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를 계속해오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와 여당이 현행법 강행방침을 밝히고 나섰다는 점을 엄중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정부와 여당이 노사정위원회의 기능을 무시하고 있으며, 복수노조와 전임자문제에 대해서 노사 혹은 노사정이 어떠한 대화나 합의를 이루더라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현행법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한국노총은 이러한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노동정책에 노사정위원회 논의는 더 이상 무의미 하다며 민주노총과 , 경총, 대한 상의, 노동부, 노사정위원회 등 6자 대표가 참여하는 ‘노사정 대표자회의’를 제안 했다. 한국노총이 제안한 노사정 대표자회의는 노조전임자 임금과 복수노조 문제 뿐 만 아니라, 비정규직법과 공기업정책 등 사회적인 갈등을 야기시키고 있는 쟁점들과 현재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임금근로시간 제도개선과 고용서비스 선진화 방안 등 노사문화와 노사관계 전반의 선진화 방안까지도 논의하자는 것이다. 장석춘 한국노총은 위원장은 “이미 전날 민주노총과 실무선에서 이런 예기가 오갔다”고 밝혔다.
이수봉 민주노총 대변인은 “한국노총 6자 대표자 회의 제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신중하게 검토해 민주노총 내 공식 단위에서 논의해 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그동안 노사정위원회는 참여하지 않았다.
논의 따로, 결정 따로라는 들러리 론은 이날 한국노총이 폭로한 소문에 신빙성을 더했다. 한국노총은 “몇몇 경제 관료들이 작당하여 노동운동 말살 정책을 주도하고 있다”며 “최근 기획재정부 윤증현 장관과 청와대 윤진식 경제수석 등의 주도하에 노동계의 입장을 완전히 배제하고 자본위주의 경제논리에 의한 노동배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이어 “이를 위해 그들은 P 교수, L 교수, K 교수 등이 참여하는 비밀 TF 팀을 운영하고 있다는 소문도 확인되고 있다”고 거론했다.
또 “지난 8월경 윤진식 청와대 경제수석 주도하에 기획재정부 고위 정무직인 N씨가 경제 단체 고위 책임자와 관료들에게 ‘노사관계 제도개선은 이제 우리가 맡아서 추진할 것이며, 특히 복수노조, 전임자 문제 등 모든 노동개혁은 노동부나 노사정위원회가 아니라 자신들이 주도할 것’이므로 이에 거스르지 말 것을 주문하면서, 노동부로 하여금 관련 법안을 제출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했다고 말했다”는 사실도 폭로했다.
한국노총에 따르면 N씨는 국내 굴지의 L그룹, S그룹, P그룹 등 대기업 인사담당 임원들에게 복수노조와 전임자 문제는 현행법대로 시행하겠다며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는 협박까지 했다고 한다.
이런 소문을 공개한 한국노총은 “그동안 정책연대의 파트너로 믿어 왔던 이 정부의 핵심 고위 관료들이 우리를 ‘척결’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엄청난 충격과 함께, 그것이 사실이라면 도저히 묵과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또 “청와대 주요 인사와 일부 경제 관료들이 작당하여 노동조합 말살 정책을 몰아붙이는 이 같은 행태가 사실이라면, 이는 독재정부 시절에 봐왔던 경제부처 마피아들의 행태와 다를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한국노총은 대정부 투쟁 준비를 위해 오는 15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총파업과 정책연대 파기 등에 대한 조직적 결의를 모을 예정이다. 다음 달 7일에는 전국에서 조합원 20만 명을 집결시켜 사상 최대 규모의 노동자 대회를 개최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