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용산 참사 현장을 떠나지 못한다

[기고] 용산 참사 현장의 하루

너무도 추웠던 겨울, “살아갈 수 있게 해 달라”며 망루에 올라간 철거민들이 있었다. 하지만 공권력은 이들의 외침을 무참히도 짓밟아버렸고, 이들에게 ‘도심테러범’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씌워버렸다. 그토록 추웠던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이제 가을이 왔다. 하지만 여전히도 그들과 남은 그들의 가족들은 용산 참사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도 용산 참사 현장에서는 하루가 시작된다.

[출처: 용산범대위]

이른 아침 6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단장을 하고 분향소로 나가 상식을 올린다. 정성스런 의식이 끝나면 주방으로 사용하는 공간에선 솔솔 밥 냄새가 올라온다. 지난 9개월 가까이 생활해온 용산참사의 식구들(전철연. 유가족. 활동가. 신부님들..)은 거리에서의 노숙이 고스란히 잠긴 모습으로 수저를 든다. 어떤 날은 앰프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기운차기도 하고 어떤 날은 서러움에 눈시울이 글썽이기도 한다.

식사를 마친 사람들은 상을 치우기도하고 닳고 닳아 빗솔이 얼마 남지 않은 빗자루를 들고 골목을 청소하기도 한다. 분향소 앞에 놓인 정수기에서 봉지커피를 들고 마시기도하고 옹기종기 어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유가족들은 분향소 앞에 마련한 평상에 앉아 조문객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눈다. 신부님들은 사제단 천막에서 잠시 차를 마시며 성경을 읽기도하고 기도를 드리기도 하고 잠시 식후 밀려오는 나른함에 눈을 붙이기도 한다.

나른한 오후는 졸기도하고 조문객을 맞이하기도 하며 지나간다. “식사하세요~~”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는 저녁을 알린다.

저녁을 먹고 나면 바빠진다. 저녁 미사 준비와 밀려오는 조문객을 맞이하기도 하고, 단체들과 문화예술인들이 만들어 내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진행한다. 사제단의 저녁미사는 남일당의 트레이드마크다. 잊혀져가는 참사를 지속적으로 상기시켜주는 고마운 일이기도 하다. 신도들이 한 명 두 명 모여들고, 앰프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렇게 9개월을 지나왔다. 이토록 긴 시간이 지나도록 우리가 이 참담한 현장을 떠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도 이 곳, 용산 참사 현장에 있다. 지난 겨울의 참담했던 그 날을 잊지 못하고 말이다.

떠나간 그들이 일구었던 삶의 터전에서, 이제는 남은 이들이 다시금 희망을 찾기 위해 용산 참사 현장은 몇 곳의 공간을 거점으로 매일매일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다.

사고현장이면서 분향소가 설치된 남일당 건물(참사가 일어난 건물인데 1층에 남일당이라는 금은방이 있었다는 이유로 남일당이라는 이름을 사고현장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이 건물에는 분향소외에도 많은 사람들의 끼니를 제공하기도 하고 전철연식구들이 머물며 잠시 쉴 수 있는 식당공간이 있다. 그 앞에는 평상으로 만들어진 유가족들의 농성공간과 100여일이 넘게 노숙농성을 하는 사제단의 농성천막이 있다. 그리고 골목 안에는 문정현 신부님이 예전 평택미군기지 확장이전반대를 주장하며 전국을 돌아다니던 꽃마차가 있는데 이 꽃마차 안은 너무도 신기한 공간이다. 컴퓨터부터 침대까지 신부님의 기도공간이자 작업공간이다. 그리고 이 꽃마차 뒤에는 남일당으로 올라가는 출입문이 있는데 이 문은 흉물스런 전경차와 까만 경찰복을 입은 전의경들이 365일 24시간 보초를 서고 있다.

남일당 뒤쪽으로 돌아가면 고 이상림씨가 운영하던 레아라는 호프집이 있다. 이 건물에는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운동을 하던 활동가들이 자리를 잡고 용산참사 해결을 위한 아이디어를 만들어 낸다. 1층에는 시각미술을 하는 작가들이 전시를 하고, 원두커피를 볶아 커피를 나누어 주기도 하고, 인터넷 라디오를 통해 용산의 소식을 알리는 방송을 하기도 한다. 2층으로 올라가면 상황실이라는 작은 공간이 있는데, 회의를 하기 위해 모이는 공간이 되기도 하고, 저녁이면 술을 한 잔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는 공간이다. 위로 더 올라가면 옥상은 용산 철거현장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공간으로, 현재는 미디어 활동가들이 편집 작업을 하는 편집공간이 있다. 참사 당일 고 이상림씨의 며느리가 아버지와 함께 망루에 올라갔던 남편 이충연(전철연 용산4지구 위원장으로 현재 구속 수감 중)씨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던 바로 그 장소이기도 하다.


남일당 주변에는 만장들이 서 있다. 만장은 장례를 준비하기위해 만들었고 각종 집회와 추모행사에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경찰과 용역이 이 만장을 찢고 뜯어 가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쥐새끼들이 새벽에 남의 집 곡물창고에 들어가 야금거리듯...... 자고 일어나면 사라지고 찢어져 있는 모습에 유가족의 마음은 더욱 슬퍼진다. 지금도 얼마 전 누군지 모를 이들의 만행으로 갈기갈기 찢겨 흉물스럽게 서있다.

남일당 건물 뒤 사거리에는 철거되거나 철거중인 건물에 일반인의 접근을 막는 펜스가 쳐져있다. 이 펜스에는 많은 사람들이 흔적을 남기고 간다. 돌아가신 분들을 추모하기도 하고, MB에 대한 분노를 표하기도 하고, 경찰과 용역의 어리석음과 멍청함을 폭로하기도 한다. 그 형태도 다양하다. 그림과 시와 글씨 그리고 현수막과 만장, 다양한 설치물들...... 용산 참사가 어느 덧 9개월이 지나가고 있기에, 그 시간만큼이나 참으로 많은 흔적들이 곳곳에 새겨지고 있다.

골목을 쭉 내려가면 삼호복집이라는 간판이 붙어있는 건물이 나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용역사무실이 있어 접근하기를 꺼려하던 공간이다. 이곳에 순천향병원 장례식장에서 생활하던 유가족 5분이 생활공간으로 옮겨왔다. 다 부서져버린 공간에 칸막이공사를 하고 전기, 수도공사를 한 뒤 유족들이 집이 아닌 공간에서 힘겨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마련한 보금자리다.

유가족이 삼호복집 건물로 오기 얼마 전 1층에는 낙지도서관이라는 간판을 만들고 활동가들이 쉴 수 있고 전철연과 용산참사 현장을 찾는 이들의 쉼터로 이용하기위한 공간이 있었다. 명도가 넘어갔다는 이유로 용역과 경찰들의 폭력과 폭언을 들으며 끌려나왔고 낙지도서관은 망치와 해먹 등으로 온통 난도질당해 지금은 쓰레기처럼 버려져있다. 그래서 유가족이 삼호복집 건물로 오기까지 무척이나 걱정을 했었다. 용역들의 괴롭힘이 있지는 않을까 공간을 또 부숴버리지는 않을까하고 말이다.

지난 여름 뜨거웠던 거리가 이젠 제법 쌀쌀해졌다. 다시 겨울이 오는 것 같아 두렵기만 하다. 남일당 옆 4거리에 사람들이 차면 이 쌀쌀함도 따뜻함으로 변한다. 하루의 고단한 일정이 반복적으로 돌아가고 유가족과 남일당 언저리의 식구들은 누적된 피로감에 잠이 든다. 용역들이 새벽에 또 무슨 쥐새끼 짓을 할지 불안함과 분노를 안고 불편함 잠을 청한다.

남일당 건물 저 너머 자본의 고층건물이 달빛을 받아 이 곳 남일당을 내려다본다. 서글프다.
덧붙이는 말

이 기사는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09년 10월1호 특집기사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