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유가족의 탄원서

[전문] "거대한 공권력에 무서움에 떨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그랬을 뿐입니다"

한양석 재판장님께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생존권을 위해 남일당 옥상에 올랐다 돌아가신 고 이상림씨의 장남이자, 구속수감중인 용산4구역위원장 이충연의 형 이성연입니다.

45년 인생을 살아온 저에게 지난 1월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아니, 어느 누구도 겪어서는 안 될 참담한 시간이었습니다.

먼저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 봅니다. 지난 30년 동안 아버지는 단 하루도 쉬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쉬지 않고 일만 하셨던 분이었습니다. 오히려 저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고생시키는 것 같아, 그 모습이 싫어 반항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식과 손주들에게는 어느 누구보다 자애로운 분이셨습니다.

또한 현재 구속 수감 중인 막내아들 충연이에게는 어려운 시절 성장해 키가 크지 못했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늘 연민의 정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런 안타까움과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망루에 오르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는 재판을 한 번도 빼지 않고 방청했습니다. 그런데 방청 횟수가 늘어갈수록 저의 의구심도 늘어갔습니다. 철거민들이 왜 망루에 올라갈 수밖에 없었나, 대화 한 번 없이 그리도 급하게 진압을 했었나, 어떻게 해서 발화가 되어서 그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나 하는 의구심 말입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검찰이 사건 전후 사정도 명확히 밝히지 않고 철거민에게만 잘못을 떠넘긴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저런 수사를 할 수 있는가 하는 의아심이 든 것은 저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게다가 수사기록마저 공개하지 않는 검찰에 대해 저는 심한 배심감을 느꼈습니다. 이런 점은 재판장님께서도 십분 공감하시는 부분이라 사려됩니다.

그렇습니다. 제 동생을 비롯한 철거민들은 분명 화염병과 돌을 던졌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공권력을 직접 해하려 한 것이 아니라 밀려오는 거대한 공권력 앞에서 무서움에 떨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그랬을 뿐입니다.

법 또한 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점을 표현하고 반영하지는 못하리라 생각됩니다. 이런 점을 양지하시여 법문 그대로 이번 일을 해석하지 마시고 가슴으로 느끼는 법을 실현하여 주십시오. 어린 아들이 돌아오길 빌며 오늘도 눈물로 잠 못 이루는 늙은 노모의 가슴을 대신하여 이글을 드립니다. 부디 현명하고 공정한 판결을 부탁드립니다.

2009년 10월 26일
구속자 이충연의 형 이성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