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투망식 기지국 수사 논란

특정지역 집회 참가자들을 표적 삼을 수도 있어

용산범대위 활동을 했던 K 모씨는 지난해 5월 종로경찰서에 집시법 위반 등으로 소환을 받아 조사를 받던 중 경찰이 핸드폰 통화기록 내용을 들이대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경찰은 당시 K씨가 집회에 참가해 도로를 막고 교통 흐름을 방해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통화기록을 내밀었지만 입증자료로는 불충분했다.


K씨는 집회에 참가했지만 도로에는 들어가지 않았고 인도에 있었기 때문이다. 또 통화기록에는 K씨가 가지도 않았던 광주광역시에서 통화했다는 잘못 된 정보도 나왔다. K씨는 왜 광주가 뜨느냐고 물었더니 경찰은 “간혹 그런 일이 있다”고만 대답했다. 문제는 경찰이 이런 식으로 통화기록을 확보하는 것이 K씨 한사람의 기록만 확보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지국 압수수색으로 제공된다는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2일 발표한 09년 하반기 통신사실 확인자료에 따르면 2009년 하반기 전화번호/아이디를 기준으로 15,778,887건의 통신사실 확인자료가 정보기관 등에 제공됐다. 이는 236,782건이 제공된 08년 같은 시기 대비 67배에 달한다. 무려 6,564%가 증가한 것이다. 특히 경찰에 제공된 전화번호/아이디수는 14,366,747건으로 압도적 다수를 차지했다.(91.1%) 군수사기관에 제공된 전화번호/아이디수도 1,358,496건에 달했다.

이런 방통위 발표를 놓고 인권사회단체들은 5일 오전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감청통계에 대한 분석과 입장을 밝혔다. 인권단체들은 이번 통계가 그간 경찰이 기지국 단위로 전화번호를 제공받아 온 일명 ‘기지국 수사’ 방식의 실태가 드러났다고 규탄했다.

기지국 수사는 특정 시간대 특정 기지국에서 발신된 모든 전화번호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기지국 수사를 위해 허가서를 발부하는 경우 통상 1만개 내외의 전화번호 수가 집계된다. 방통위 발표에 따르면 2009년 하반기에만 1,257건의 ‘기지국 수사’가 이루어졌으며, 한 수사당 12,000여개의 전화번호가 제공됐다. 이런 투망식 기지국 수사는 수사편의주의에다 위헌소지도 있다는 지적이다. 범죄가 일어난 주변 지역에서 비슷한 시간대에 통화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수사대상이 되거나 특정지역 집회 참가자들을 표적으로 삼아 휴대전화번호와 위치정보를 입수해왔다는 추정도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인권단체들은 “경찰이 단순히 강력범죄 수사에 12,000개의 전화번호가 필요했겠느냐”며 “특정 집회에 참가한 사람을 겨냥한 것”이라고 우려를 드러냈다. 무엇보다 경찰의 이런 수사기법 자체는 합법이지만 한 수사 당 가져간 12,000개의 전화번호 주인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은 문제가 된다. 통신비밀보호법은 전화번호를 가져간 사람들에게 일일이 ‘당신의 전화번호를 가져갔다’고 통지하도록 돼 있지만 경찰이 워낙 많은 사람의 자료를 가져가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기지국 수사가 어느 정도 이뤄지는지 실태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면서 “법에 있는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수사방법을 쓰면 안 된다”고 비난했다. 장여경 활동가는 또 “경찰이 과거 사실에 대한 위치 정보 뿐만 아니라 앞으로 어떤 지역 집회에 모일 사람의 전화번호를 다 달라는 식의 미래 사실의 위치정보를 요구할 가능성도 많다”면서 “모든 국민을 범죄자 취급하는 식의 인권침해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인권사회단체들은 “정보/ 수사기관의 갖은 편법 속에 통신의 자유와 비밀은 사라져가고 있다”면서 “기지국 수사 실태를 공개하고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태그

감청 , 통신 , 기지국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김용욱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 니멀

    경찰이 기지국 수사는 정당한거지요?? 범법자 검걸를 위해서 하는 것은 법 테두리에서 하겟지요??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위반하겠어요?? 비하하는 발언은 삼가하시는게 좋을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