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과 직거래로 '1석 4조'

[교육희망] 무상급식 학교를 찾아서 (2) 경남 합천군 삼가고

무상급식이 교육계를 넘어 지방선거 최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언론에서는 연일 무상급식 실태 및 관련 기사를 내보내고 정치권의 찬반 논란을 시작으로 색깔론까지 제기되는 등 현 상황은 가히 '급식 전쟁'이라 부를 만하다. 무상급식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전북을 시작으로 경남, 충남의 학교를 찾아 3회에 걸쳐 밥상머리 교육 이야기를 싣는다. <교육희망>

삼가고 학생들이 점심으로 나온 닭개장과 현미쌀밥 등을 맛있게 먹고 있다.
냉장트럭은 삼가고등학교(삼가고)를 향했다. 이미 경남 합천군에 위치한 남정초와 합천초, 대양초, 쌍백초를 차례대로 들렀다 오는 길이다.
 
짐칸에는 오늘 급식에 쓰일 재료가 학교 이름이 적힌 바구니에 담겨 있다. 삼가고 바구니에는 합천군에서 생산한 달걀과 찹쌀, 현미찹쌀, 콩나물 등이 각각 포장돼 있다.
 
자신을 친환경 급식 배달꾼으로 소개한 김호중 씨는 "전날 저녁 각 학교에 공급될 친환경 재료를 포장해 매일 이 코스로 돌고 있다"고 말했다.
 
오전 9시경 삼가면 33번국도 변에 있는 삼가고에 들어섰다. 학교 건물을 지나 교내식당 조리실 앞에 선 트럭은 식재료를 쏟아냈다. 양혜령 영양교사가 검수일지를 들고 포장상태와 수량, 특히 친환경농산물 인증 표시 등을 꼼꼼히 살폈다. 모두 확인이 되고서야 조리원들은 식재료 포장을 뜯었고 달걀은 전용 냉장고에 넣었다. 그리고 점심 준비를 위한 식재료 손질에 들어갔다. 한순이 조리사는 "다른 지역에서 나온 재료보다 합천에서 나온 재료가 훨씬 질이 좋다"고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직거래 하는 삼가고의 비밀
 
삼가고는 지난해 3월부터 농민생산자단체인 '안전한 학교급식을 위한 합천생산자 영농조합법인(영농법인)'과 직거래를 하고 있다. 학교가 위치한 합천군에서 생산된 친환경농산물을 급식 재료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1인당 급식비가 2700원에서 3200원으로 올랐다.
 
그러나 학부모가 부담하는 비용은 단 1원도 없다. 학생 수 166명인 삼가고의 1인당 급식비는 3200원. 이 가운데 97.2%에 달하는 3110원을 합천군청이 지원한다. 경남교육청이 특별회계에서 친환경농산물 구입비로 90원만 지원해 무상급식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고등학교에 군청이 운영비 등 학부모 부담 급식비를 보태면서 무상급식이 가능했다. 군청이 지난해부터 지원한 급식비 가운데 2200원은 일반식품비이고 710원은 친환경농산물 구입비다. 나머지 200원은 운영비로 사용한다.
 
올해 군청이 삼가고에 학교급식 보조금으로 지원한 금액은 모두 1억1111만원에 달한다. 합천군 내 6개 고교, 1199명에게 지원되는 학교급식비로 따지면 총 6억5860만원으로 유치원을 포함한 전체 학교에 지원하는 급식비 17억여원의 38%를 차지한다.
 
군청은 삼가고를 비롯한 각급 학교에 보낸 공문에서 "식재료와 친환경농산물 식재료를 구입할 때 우리군에서 생산되는 농축산물을 우선 구매해 달라"고 강조했다. 농가소득 증대를 위해서였다. 전체 급식지원비 17억여원 가운데 5억3000만원을 넘는 금액이 친환경농산물 구입비로 책정됐다. 도교육청 지원금 7000만 여원을 더하면 6억원을 훌쩍 넘어섰다.
 
이규수 군청 기획감사실 교육지원담당 계장은 "급식은 한 끼 식사를 해결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농촌문제와 환경, 교육여건 등과 연결된 중요한 사안임을 깊이 인식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군청의 생각은 군민들의 무상급식에 대한 요구와 도교육청의 무상급식 의지가 더해져 가능했다. 한 해 예산 3200억원 수준으로 재정자립도는 12.7%에 그친(경남 10개 군의 재정자립도는 15.1%) 합천군이 친환경 무상급식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다.
 
친환경 농산물 사용을 알리는 삼가고의 급식판.
'공동식단'으로 농민 숨통
 
그런데도 삼가고가 농민(생산자)들과 직거래를 하려하자 걸림돌이 나타났다. 식재료 구입의 양이었다. 농민들이 작은 학교에서 소비하는 식재료를 운반하는 데 부담을 느꼈다.
 
이를 풀기 위해 2008년 합천교육청과 학교, 농민이 머리를 맞댔다. 그리고 '공동식단'을 만들어냈다. 도교육청에서 짜 준 1년 치 표준식단을 바탕으로 모든 학교가 같은 식단을 사용토록 한 것이다. 여기에 학교마다 자율성을 살리고자 합천군을 6개 권역으로 나눠 납품할 수 있는 적정 수준의 소비규모를 예측했다.
 
이런 조건이 완성되자 농민들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친환경단체인 부산 한살림 등으로 농작물을 보내던 농민 몇몇이 활동하던 합천생산자협회는 지난해 4월 200여 농가와 함께 영농법인을 공식 발족했다.
 
토마토와 딸기, 쌀 등 농가에서 난 작물 모두가 합천 학교급식에 쓰인다. 무상급식으로 확실한 판매처가 생기니 자연스레 친환경 농사를 짓겠다는 농가가 늘었다. 현재는 400여 농가가 참여한다.
 
정미영 영농법인 사무국장은 "한 해 생산량을 예상할 수 있는 것도 한 몫 했다. 지난해 급식 납품을 하면서 올해는 얼마나 쓰이는 지가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토마토는 어느 집에 얼마 정도, 당근은 어느 정도 하시라고 얘기하니 계획적인 생산이 가능해졌다"고 풀이했다.
 
당연히 농가소득도 늘어났다. 정 사무국장은 "소득이 늘었다"고 웃으면서 "법인 매출은 4억8000만여원"이라고 밝혔다. 합천군 전체 친환경농산물 구입비 지원액 6억여 원의 80% 이상이 지역농민들에게 돌아간 셈이다.
 
송경순 합천교육청 교육과 보건급식담당 계장은 "예산이 부족한 다른 곳에는 국고보조금을 지원하는 등 국가가 나서 이를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친환경 무상급식 가치 소중
 
오후 1시. 종이 치자마자 아이들이 식당으로 몰려들었다. 아이들은 밥을 받으면서 옆에 놓여 있는 알림용 식판에서 오늘은 어떤 친환경 농산물이 쓰였는지 확인한다. 점심으로 나온 현미밥과 닭개장, 배추김치, 비름나물 등 식단 원산지는 모두 국내산이다. 이 가운데 현미밥과 닭개장에 들어간 깻잎과 파, 무 등은 모두 합천에서 난 것이다.
 
1학년 때 급식비를 냈지만 지난해부터 무상급식 맛을 본 심재우 학생(3학년)은 "학교에서 밥까지 직접 챙겨주니 좋아요"라며 "무상급식이 되고도 음식 맛은 똑같이 맛있어요"라고 말했다. 학생들과 함께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양문한 교사는 "솔직히 집에서도 이런 식재료 음식 못 먹는다. 훨씬 낫다"며 활짝 웃었다.
 
김의호 삼가고 교장은 "학부모들도 정말 좋아한다"며 "무상급식, 특히 지역 농산물을 사용하는 친환경 무상급식의 가치는 매우 소중하다"라고 말했다. (교육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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