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성폭력 사건, 멀고먼 피해자 치유

민주노총 김 모 성폭력 사건, 전교조 성평등 첫 번째 토론회 열려

전교조 본부와 피해자 지지모임 큰 입장차 드러내...더 열띤 토론 열릴 듯

2008년 12월 6일 발생한 민주노총 전 간부 김 모 성폭력 사건은 여전히 많은 과제를 안고 피해자 치유라는 해결의 실마리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지 1년 6개월이 넘게 지났지만 구체적으로 이 사건을 놓고 벌인 첫 번째 토론회에서 전교조 본부 소속 참가자와 피해자 지지모임 참가자들은 사실관계를 놓고서도 큰 견해차를 보였다.


김 모 성폭력 사건은 수배 도피 중이던 이석행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성폭력 사건 피해자 집에서 2008년 12월 5일 경찰에 체포된 후 대응방안을 논의하던 와중에 발생했다. 민주노총은 이 사건으로 전 지도부가 사퇴하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고 ‘김 모 성폭력 사건 진상조사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진상조사 특위는 당시 가해자 김씨의 1차 가해 외에도 피해자가 속한 전교조 소속 3인의 간부가 성폭력 사건의 공론화를 막음으로써 조직적 은폐 조장 행위를 통한 2차 가해를 했다며 징계를 권고했다. 그러나 전교조 성폭력징계 재심위원회는 민주노총 특위의 결과를 뒤엎고 ‘조직적 은폐 조장행위가 없었다’고 결론 내고 경고조치했다. 피해자와 피해자 지지모임은 강력히 반발했다. 또 재심위 결과에 따른 2차 가해자 3인의 공개 사과문도 피해자와 상의 없이 공개된 데다 가해자 변명논란과 피해자 신분 노출 논란 등이 일고 피해자가 직접 공개 반박문까지 내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1년 6개월을 거치면서 전교조 내에서 사건 평가와 피해자의 치유는 공전을 거듭했고, 전교조는 올 2월 성평등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특별위원회는 전교조 여성담당 김화자 부위원장이 특별위원장을 맡았고 피해자 지지모임 소속 교사 2명, 전교조 서울지역 여성위원장, 외부 전문가 등이 참가했다. 이런 구성 때문에 지지모임과 전교조 본부의 입장차를 두고 다양하고 격렬한 공방이 예상됐다. 지지모임이 전교조 본부가 성폭력 사건의 공론화와 피해자의 목소리를 온전히 반영하지 않았다고 비판해 왔기 때문에 토론회 성격상 본부 쪽의 반론도 가능한 상황이었다.

특위는 3일 오후 전교조 회의실에서 ‘민주노총 김 모 성폭력 사건을 중심으로 한 전교조 성폭력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는 시작부터 언론과 외부에 어디까지 공개할 지 등을 놓고 부터 첨예한 갈등을 예고했고, 본격적인 플로어 토론에선 지지모임 참가자들과 전교조 본부 소속 참가자들 사이에 격론이 벌어졌다. 발제자들에 대한 질문부터 사실관계를 두고 난상 토론이 이뤄졌고, 감정적인 공방도 나타났다. 특히 전교조 본부 쪽 참가자들이 사실관계를 놓고 적극적인 입장을 제기하면서 다음 토론회는 전교조 본부의 공식단위에서 먼저 사건의 평가서를 제출하고 깊이 있는 논의를 해보자는 제안도 나왔다.

김화자 전교조 성평등 특위 위원장은 이날 토론회를 두고 “공개적으로 한 첫 논의라 진통이 있었다”며 “이견이 있는 부분은 내부적 더 토론하고 터놓고 진단하자는 정도로 정리할 필요성이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김화자 위원장은 “지지모임과 본부의 입장차이로만 보기보다는 이번 경험을 통해 전교조가 더 성숙한 성평등 문화를 만드는 과정으로 지켜봐 달라”며 “결과 도출을 하지는 못했지만 각자의 고민 지점을 확인을 했다”고 덧붙였다.

“법원이 전교조 보다 더 나은 관점을 보여줬다”

이날 토론회 주 발제를 맡은 피해자 지지모임의 조진희 교사는 ‘민주노총 김 모 성폭력 사건을 통해 본 운동사회 반성폭력 운동의 쟁점 - 피해자 중심주의/ 조직적 은폐 조장/ 2차가해 등을 중심으로‘라는 내용을 발표했다. 조진희 교사는 전교조 성폭력 징계재심위원회가 ‘조직적인 은폐를 조장한 행위는 없었다’고 결론 내린 것을 두고 “민주노총 진상특위와 대의원대회에서 결정한 주요 징계 사유가 전교조에 와서는 2차 가해자들의 억울한 징계 사유로 역전되는 현상이 벌어 졌다”고 진단했다.

특히 재심위가 2차 가해자들의 징계양정을 놓고 ‘노동조합 활동의 공적’을 경감 사유로 밝힌 것을 두고는 “전교조가 20년 동안 교육관료나 학교장을 상대로 성폭력 문제에 단호하게 대처하면서 직위나 상장 받은 것을 근거하지 않고 성폭력 자체로 책임을 물어야한다고 운동했는데 전교조는 다시 역사를 되돌리는 행위를 했다”고 평가했다. 조진희 교사는 “가해자 김 모에 대한 항소심 법정은 피해자 중심주의와 술에 만취한 심신미약을 인정 하지 않았고 합의를 종용하는 것도 옳은 행위가 아니라는 판결을 했다”며 “특히 가해자가 어떤 훌륭한 활동을 했건 그 성폭력 행위자체로 판결을 받아야 한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오히려 법원이 운동조직보다 더 나은 관점을 보여줬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재심위 결정이 나고 2차 가해자 사후대책과 같은 이수 프로그램을 놓고도 문제점을 지적했다. 조 교사는 “2차 가해자 공개사과는 공식적이고 공개사과였지만 사과문 발표 과정과 최종 내용을 피해자에게 동의를 받지 않고 피해자에 변명하는 문구로 형식적으로 됐고, 피해자 신상까지 공개됐다”며 “가해자 프로그램은 이수를 받았다는 공문이 전부고 가해자들이 어떻게 바뀌고 변화하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조진희 교사는 “전교조가 이번 사건을 처리하는 동안 절차중심이나 규약 중심에 매몰됐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며 “조직보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동지들이 많았고 지지모임을 지도부 탄핵 모임으로 몰아가는 글들이 게시되면서 피해자가 또 다른 가해에 노출됐다”고 평가했다. 피해자를 탓하는 다양한 글들이 나오면서 피해자가 보기에는 조직전체가 자신을 지지하지 못하고 색깔공세로 몰아붙여 상처는 더 커졌다는 것이다.

‘반성폭력을 지향하는 전교조’라는 자긍심이 피해자 치유 걸림돌 돼

조진희 교사는 이번 사건으로 운동사회 반성폭력운동의 쟁점으로 △피해자 중심중의와 피해자 멋대로주의 △조직적 은폐와 조직보위 △2차 가해와 공론화 등을 들었다. 조 교사는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해 의심하는 글들이 많았는데 피해자 중심주의는 목격자가 없는 사건에서 누구의 입장에서 사건을 재구성할 것인가의 문제”라며 “피해자의 말을 믿고, 피해자가 제안하는 방식대로 사건해결 하는 것을 존중하는 것인데 사건을 구체적으로 접할 때 피해자 중심주의를 어떻게 하는 건지, 가해자를 어떻게 조치할지 매뉴얼이 없었고 교육도 없었다”고 풀이했다. 이어 “가해자에 대한 안타까움과 가해자 인생을 망치려는 피해자라는 설정을 통한 분노 표출, 조직전체가 반성폭력을 지향하는 사람들인데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도덕적 타격과 불안감이 피해자 중심주의 실현의 걸림돌이 됐다”며 “피해자는 자신이 속한 조직과 가해자 조직이 함께 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존재로 피해자의 문제제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제시했다.

조직적은폐 조장과 조직보위를 놓고는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는 조직 우선주의에 짓눌리고 그것이 압박으로 다가왔다”며 “2차 가해자들이 조직적 은폐를 적극적으로 하려고 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건 있었든 이에 경청하고 충분한 진술과 전문적 상담 지원 등을 100% 먼저 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직적 은폐라는 표현이 특히 문제가 된 것을 두고 조진희 교사는 “조직적 은폐 조장행위라고 민주노총 특위가 규정하자 전교조는 조직적으로 성폭력 사건을 은폐한 파렴치한 집단으로 매도됐다는 논리인데 여전히 조직의 명예, 운동의 명분, 위원장의 도덕성이 피해자의 아픔과 치유보다 더 중요한 가치로 자리잡혀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 이날 토론회에서도 사실관계가 논란이 된 것은 전교조 본부 소속 참가자들이 지지모임의 주장과 민주노총 진상조사 특위 결과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전교조의 명예와 관련된 부분이 쟁점으로 남아 있음이 확인되기도 했다.

조 교사는 “전교조 20년 역사는 여성주의 원칙을 운동으로 해 온 역사인데 2차 가해자 3인의 행위가 전교조에 먹칠을 하지는 않았는지 어떤 과오가 있는지 명확한 반성을 해야한다”고 제기했다. 2차가해와 공론화 쟁점을 두고는 “2차 가해의 구분은 칼로 자를 수 있는 기계적인 개념이 아닌 피해자의 진술과 느낌을 중심으로 재구성 되어야 한다”며 “2차 가해 개념에 대해 운동사회 내에서 공론화하고 2차 가해를 안하면서 어떻게 공론화를 하고 조직적 해결 할지 등의 목표를 두고 고민해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두 번째 발제에 나선 강보선 전교조 여성위원장은 ‘성평등한 조직문화 실현을 위한 우리의 과제’를 통해 “전교조 본부에서조차 지위별로 차별은 가장 많이 논의된다. 중요한 사안을 논의 할 때마다 어떤 지위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인다”며 “밖에서 볼 때 운동조직은 건강하다고 보이지만 안에선 수직적이고 서열화 됐다. 이런 구조 안에서 차이가 차별을 낳고 차별이 폭력을 낳는다”고 밝혔다. 강보선 위원장은 “수평적 구조가 아닌 상황에서 한 개인인 여성이 조직에 얘기를 하는 것은 큰 결단이 필요하다”며 “피해자가 조직에 얘기를 못한 것은 조직을 불신했다는 것이며 신뢰와 소통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강보선 위원장은 “조직 내 성폭력 사건 문제를 제기하고 공론화하는 피해자를 훌륭한 사람으로 봐야 한다”며 “개인이 거대한 조직에 대해 말하기 쉽지 않은데도 피해자가 고통과 희생을 감내해 만들어진 조직문화”라고 설명했다.

“성폭력 사건에서 중립주의를 버려라”

김성보 경수중학교 교사는 ‘남 교사가 바라본 전교조’라는 발제를 통해 성폭력 사건 해결에서 중립이 가진 환상과 관성을 강하게 지적했다.

김성보 교사는 자신이 수년 전 지회장으로 있으면서 성폭력 사건 논쟁 중 2차 가해자로 징계를 받은 경험을 털어놨다. 그는 당시 경험을 토대로 해결과정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지금도 전교조가 자신과 같은 실수는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성보 교사는 “사건 초기에 피해자와 얼마나 공감하면서 하는가가 중요한데 그러지 못하면서 그동안 피해자는 불신을 키우고 일주일만 그냥 지나가도 불신은 매우 커진다”며 “문제는 사건의 조정자가 가해자와 너무 친해 이런 문제가 사건해결을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사는 “어떤 가해자도 자기가 잘못이 없다는 가해자는 없다. 문제는 가해자가 친하다보니 좀 봐달라고 사정하는 데서 온다”며 “그러고 나면 조정자는 피해자에게 ‘네가 빨리 용서해라’는 압력을 음양으로 하게 되고, 결국 신뢰도 잃고 2차가해자로 지목을 받고 징계를 받았던 게 제 사건”이라고 고백했다.

김성보 교사는 “조정자가 절대로 중립자인 척해서는 성폭력 사건은 해결이 안 된다”며 “사건 초반에 모질게 피해자 쪽으로 관심과 시간을 기울여야 사건은 해결 된다”고 강조했다. 김 교사에 따르면 오히려 조정자는 가해자와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고 밝혔다. 그는 “조정자는 ‘가해자가 이런 얘기를 하면 피해자가 용서해 주지 않을까’ 등을 놓고 가해자와 더 얘기하게 되고 피해자에겐 ‘지금 가해자 상태가 이렇다’는 식의 얘길 한다”며 “가해자와 더 많은 얘길 하는 것은 중립자 위치를 고수하려고 하기 때문인데 대개 훌륭한 활동가들은 중립자 위치를 버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성폭력 사건에서 나는 무조건 피해자 편이라고 말하기나 그런 시각을 갖기는 어렵다”고 지적하고 “이런 부분에 중립자로 훌륭한 척 하는 간부는 피해자 편들기 교육을 받아야 한다. 뭐가 성폭력이냐 뭐가 2차가해냐 식의 교육이 아닌 실제 성폭력 사건을 설정해보고 사건을 푸는 구체적인 과정을 겪어보는 교육이 진행되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성보 교사는 “이번과 같은 사건이 생기면 조직은 잘못을 가리는데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2차 가해든 조직적 은폐든 모두 수용했으면 좋겠다”며 “스스로 잘못을 인정했을 때 피해자의 용서를 조속히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사는 “조직은 피해자가 조직을 가르치는 스승으로 인정하고, 피해자를 발판삼아 발전하는 조직이 되려면 이게 옳으냐 저게 옳으냐 라는 정리보다는 피해자 요구를 수용하는 자세가 더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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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 전교조 , 성평등 , 피해자중심주의 , 민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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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끼뿔

    김성보교사의 이야기중에 "징계를 받는았던 게 제 사건"이라는 부분의 오자를 고쳐야할 거 같네요.
    기사 잘 봤어요.
    응원의 댓글 달려다가 오타만 지적하고 가는 군요.^^;;

  • 노동자

    서로 상처주는 방식이 아니라, 조직내 성평등인식이 확산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이 또한 피해자에 대한 작은 반성과 치유의 과정이라 생각하면서.

  • 억압착취

    우리 좌파가 얼마나 정세 어두운지, 종파적인지, 포스트패미니즘적 시각 과연 누구를 겨냥하는지를 요 기사만보더라도 시사한다. 요즈음 이명박과 그에 지배계급 자신의 정치적 위기에 처하자 모멸해보려고 엉뚱한 곳(전국민 성폭력 범죄시)찾는다. 게다가 자본주의 성상품화 부추기며 자신들은 마치 순결녀라도 되는냥 침묵하다 왜 하필 적기라며 이명박 성적 혐오이데올로기에 맞장구 치는 걸까, 정말 한심하다. 노조 좌파란 사람들이 이런 정세 읽지못하고 이명박정권 장단맞추는 일 당장 그만둬라 너자신부터 성이데올로기 담론에 벗어나길 바랄뿐....

  • 상상

    토론회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주셔서 늘 감사드립니다.

  • 미루나무

    진보진영은 진실 혹은 정의에 대한 감수성을 더 키울 필요가 있습니다.
    민주노총이 올바른 방향으로 거듭나길 바랍니다.
    그리고 조직보위보위 하다가 더 조직을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다는것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살다보면 조직내에 이런사람 저런사람 다 있게 마련이지만 조직의 가치관에 걸맞게 처리하는게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