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성폭력 피해자 중심 평가 보고서 채택

22개월만에 성폭력 피해자 고통 치유 한걸음 내 디뎌

민주노총이 김모 성폭력 사건의 평가보고서를 사건 발생 22개월만에 공식채택 했다. 민주노총 김모 성폭력 사건은 지난 2008년 12월 5일 발생한 사건이다. 민주노총은 5일 서울 성북 구민회관에서 50차 대의원 대회를 열고 평가보고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로서 22개월간 고통으로 살던 피해자가 치유와 복귀로 가는 한 걸음을 이제야 내딛게 됐다.


김모 성폭력 사건은 민주노총과 전교조를 위기로 뒤흔들 정도로 문제가 심각했지만 사건의 평가보고서를 작성하는데도 합의가 쉽지 않았다. 전교조가 2차 가해 등으로 제명 징계를 받은 징계 대상자 3인을 재심의 하면서 민주노총 2차 성폭력 진상조사 특위 보고서와 권고사항을 부정했기 때문이다. 가장 논란이 됐던 것은 조직적 은폐 조장이 있었느냐와 2차 가해자로 징계 대상자를 볼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모두 전교조가 제기한 논란으로 두 쟁점은 최종 평가보고서 작성 바로 직전까지도 큰 논란이 됐다.

민주노총은 이날 50차 대의원대회에서 이런 논란들을 명확히 잠재웠다. 이번 대의원대회에 앞서 피해자 지지모임은 피해자의 의견이 반영된 평가보고서 채택을 위해 땀이 나도록 민주노총을 만났다. 이런 지지모임의 노력에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도 피해자 중심주의에 입각한 보고서 작성과 채택의 진정성을 보였다.

김영훈 위원장은 이날 대회 대회사에서 “성폭력 사건 피해자 동지와 지지모임 구성원 여러분들이 지난 시기 겪었던 참혹한 고통에 대해 민주노총을 대표하여 사죄드린다”며 “그 어려운 날들을 오직 성평등한 민주노총을 염원하며 오늘에 이른 동지들의 용기에 대해 감사 인사를 드린다”고 보고서 채택 의지를 드러냈다. 김영훈 위원장은 이날 대회사를 직접 썼다.

김 위원장은 “오늘 제가 동지들에 제출하는 평가보고서는 지난 날 우리의 남성 중심 조직문화에 대한 반성이자, 피해자의 고통을 조직의 이름으로 조속히 치유하지 못한 원인에 대한 기록이며 향후 우리에게 어떤 과제들이 있는가에 대한 보고서”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보고서에서 아무리 미사어구를 동원하더라고 피해자의 고통과 공감할 수 없다면 진정성 없는 몇 줄의 글에 불과하듯이 사실에 기초 않는 원칙의 주입은 관념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보고서를 통해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고자 노력했으며, 과정에서 형성된 쟁점은 피해자 입장에서 평가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전교조가 논란을 제기한 부분에선 피해자의 의견을 존중한 피해자 중심주의를 보고서에 반영하기 위한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민주노총은 이날 평가보고서에서 성폭력 사건 해결 기구에 대한 평가에서부터 조직 내 공론화 과정에서 생긴 쟁점과 진단을 실었다. 또 후속조치, 문제와 한계 등을 짚었다.

전교조 징계 경감은 피해자에게 또 다른 상처

우선 2차 진상특별위 평가를 두고 “진상특위는 ‘2차 가해’에 대한 기존의 기계적인 해석을 깨는 고민을 던져주었으며 개인의 희생에 기반하는 ‘조직보위’ 논리가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한 경고를 주었다”며 “민주노총 중앙이 새롭게 제기된 문제의식을 대중적으로 공론화하지 못한 것이 더 큰 문제였다”며 특위 활동의 긍정성을 적극 평가했다. 민주노총은 전교조가 진상특위 보고서 내용에 일부 반하는 징계를 내린 것을 두고 “피해자에게 또 다른 상처를 안겨주기도 했는데 이는 진상조사와 징계를 통일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조직 내 사건해결 과정에서 네 가지의 지점에 대한 논란과 쟁점이 존재했다고 평가했다. 먼저 피해자 중심주의 철학이 빈곤했다고 설명했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목격자가 없는 상황에서 피해자의 입장에서 진상을 채택하는 것으로 ‘피해자제멋대로주의’라고 비난하기 이전에 피해자가 신뢰와 지지 속에서 안전하고 평등하게 소통할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해 주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직 보위 문제를 두고는 성찰과 반성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민주노총은 “성폭력 사건을 접한 징계 대상자들이 조직적으로 사건을 풀어가려 하지 않고 입을 닫아버린 지점과 피해 사실을 이야기하는 피해자에게 조직을 거론한 지점이야말로 피해자에게 오히려 직접 가해보다 더 큰 상처와 고통을 가중시켰다고 볼 수 있다. 조직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은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조직을 위해서 희생을 감수하라’ 는 또 다른 가해다. 향후에도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충분한 주의와 경계가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또 민주노총 징계위원회가 ‘그간 민주노총 활동 속에서 헌신적으로 기여한 점, 그리고 지도부 전체 수배상황 속에서 지도부 보위를 위해 온몸을 던져 헌신적으로 복무한 점을 감안해’ 징계를 감경한 것을 두고 ‘잘못된 결정’이라고 명확히 했다. 결과적으로 피해자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피해자로 하여금 민주노총 지도부의 성인식에 대한 실망과 조직에 대한 불신감을 증폭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전교조 재심위원회 역시 ‘정권의 폭압적인 상황과 위원장으로서의 공적을 인정하여 징계를 감경’하여 이와 같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교조 주장 일축, “2차가해 규정 안했다고 가해사실 없어지나”

민주노총은 이어 “2차 가해의 왜곡된 개념과 방지 노력이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민주노총은 ”징계 대상자들이 1차 가해자도, 2차 가해자도 아니면 무엇을 잘못했느냐고 묻는 등 개념에 대한 해석을 둘러싼 논란에 불을 지피면서 피해자한테 상처와 고통을 가중시켰다“며 ”2차 가해인가 아닌가는 종이 한 장 차이이기도 하다. 2차 가해로 규정하지 않았다고 해서 가해 사실이 없어지거나 형량이 가벼워지진 않는다“고 못박았다. 또 2차 진상규명 특위가 징계대상자들을 2차 가해자로 못 박지 않았던 것을 두고는 “민주노총 위원장 수배 보위 과정에서 벌어진 복잡한 문제들이 온전히 개인만의 잘못으로만 돌릴 수 없으며, 그동안 조직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조직에서 성폭력에 민감하지 못했던 분위기에 대한 총체적인 반성과 고민 때문이었다”며 “2차 가해인지 아닌지 개념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상처와 고통을 이해하고, 성폭력 사건 발생시 2차 가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민주노총이 무엇을 반성하고 실천할 것인가의 과제를 도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봤다.

마지막 쟁점으로 조직적 은폐조장행위의 올바른 이해 부재를 짚었다. 민주노총은 “진상특위가 ‘조직적 은폐조장행위’라 했던 핵심 내용은 성폭력사건의 해결을 주되게 고민해야 했던 핵심간부가 사건 해결보다는 위원장 수배보위의 최소화만을 위해 피해자를 압박했고, 조직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대책회의를 하던 징계 대상자들이 성폭력사건을 초기인지하고도 침묵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진상특위가 조직적 은폐 조장행위를 제기한 이유는 피해자에게 준 상처와 고통을 이해하고, 조직의 반성과 성찰로 나아가기 위해서였다”고 해석했다.

진상특위에서 인정한 조직적 은폐 조장행위가 부정되면서 징계 양정 낮아져

민주노총은 징계 대상자에 대한 징계 과정도 반성적으로 평가했다. 민주노총은 “징계대상자인 총연맹 1인은 물질적 피해를 감수하는 방식인 ‘감봉 1개월’이라는 형식적 징계를 받았으며 건설산업연맹 소속 이**는 상당한 시일이 지난 뒤에야 ‘경고’ 징계를 받았다. 특히 전교조 소속 3인은 전교조 1차 징계위원회에서 제명 결정이 났으나 이후 이들의 재심신청으로 열린 징계재심위원회에서 피해자가 1심 징계(제명)를 유지할 것을 요구했음에도, 진상특위에서 인정한 사건 관련자들의 조직적 은폐 조장행위가 부정되면서 경고로 낮춰졌다”고 평가했다.

민주노총은 이번 사건 해결 과정의 한계로 가맹조직에 대한 지도력 부재를 짚었다. 민주노총은 “이번 사건 처리과정에서 가장 큰 이견은, 전교조 관련자들의 징계를 둘러싼 과정과 논쟁이었다”며 “진상특위가 징계 권고한 5명 가운데 전교조 소속 3명이 처음엔 ‘제명’을 받았다가 재심위에서 ‘경고’로 감경 되었는데, 진상규명특위가 징계 근거로 삼았던 조직적 은폐 조장 행위에 대해 ‘조직적 공론화를 막기 위한 의도적인 행위를 확인할 수 없었고, 사건을 축소․은폐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도모한 사실 또한 확인할 수 없었다.’는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조직적 은폐조장 행위의 혐의 없음’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확실히 했다. 이는 전교조의 결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명시한 대목이다.

이어 “‘조직적 은폐조장행위 혐의 없음’이라는 전교조 재심위원회의 결정내용은 진상특위 보고서 권고의 핵심에 반하는 내용을 일부 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도 △ 조직적 은폐조장행위에 대한 정확한 해석과 공론화 부재 △ 조사(중앙)-징계(산하조직) 단위의 불일치 △ 징계권고자에 대한 명확한 사실 근거를 요청하는 전교조의 질의에 대해 책임 있는 답변 부재 실질적으로 지도 지원하는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김영훈 위원장은 이번 보고서 채택을 앞두고 “보고서 한 장으로 피해자의 고통 치유는 불가능하지만 민주노총이 반성폭력 성평등 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한 전제로 치유의 출발”이라며 보고서의 이견 없는 만장일치 채택을 호소했다.

건설연맹의 한 대의원은 “피해자 치유는 한 장의 보고서로 끝낼 문제가 아니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답게 사건에 대한 철저한 사과와 더불어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자 모두에 대한 중징계 요구를 다시 해당 조직에 해야 한다. 다시는 성폭력 사고가 일어나면 총연맹이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전교조 소속 한 대의원은 “적어도 대의원대회 이름으로 안건이 채택이 되려면 민주노총에 반하는 감경징계는 안 된다는 이런 문구가 삽입되기를 제안 드린다. 계속 2차 3차 가해가 있을 수 있는 여건을 열어 놓게 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영훈 위원장은 재차 “우리는 기록에 남길 중요한 보고서를 채택하고 있다. 제안한 의견들은 민주노총의 과제로 조사단위와 징계단위 불일치의 문제점에서 지적했다”고 호소하고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보고서가 채택되고 김영훈 위원장은 “부족한 보고서가 채택됐다. 피해자 동지의 아픔과 직간접적으로 받았던 고통들이 빨리 치유되도록 위원장의 임무를 다하겠다. 오늘 나오면서 생각해보니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게 반성하고 용서하는 것인데, 반성과 용서하는 과정은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반성은 참 보람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피해자 지지모임의 이향원 대표는 이날 보고서 채택을 두고 “민주노총의 평가보고서 채택 노력에 감사드린다. 미진한 점이 있지만 피해자의 상처에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면서 “전교조가 민주노총이 보인 책임지려는 자세를 받아 대의원 대회 결정의 의의를 느끼고 자신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