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6일 심상정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신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강조한 말이다. 이날 심상정 대표의 ‘당심과 민심의 괴리 극복’ 발언은 한나라당은 돈정치가 쇄신의 핵심이며. 민주당은 분명한 정체성을 갖는 것이 쇄신 과제임을 전제하며 한 말이다. 발언의 앞뒤 맥락에 따라 당심과 민심의 괴리 문제가 한나라당 돈정치 만큼의 무게감이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심상정 대표는 이어 “우리가 최초의 진보적 대중정당을 표방한 만큼, 국민들과 전면적으로 소통하고, 국민들로부터 평가받을 수 있도록 진보정당의 정책과 당운영과 실천방안, 광범한 혁신의 노력을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다.
유시민 공동대표도 최근 여러 토크쇼 등에서 당심과 민심의 괴리 발언을 종종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발언을 두고 심상정 대표는 참세상과 통화에서 “조만간 따로 분명하게 입장을 밝히겠다”며 “당내 (시도의원 사퇴) 논란뿐 아니라 진보적 대중정당으로 가는 길이 어떤 길이고 뭘 바꾸고 추구할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을 아꼈다.
사실 심상정 대표의 당심 민심 괴리 발언은 전날인 1월 15일 통합진보당 4차 전국운영위에서 먼저 나왔다.
4차 전국운영위원회에 통합진보당 대표단이 제출한 주요 안건 중 하나는 19대 총선출마를 위해 사퇴한 지역의 시도의원 보궐선거에 통합진보당의 귀책사유가 있는 만큼 사퇴 지역에 시도의원 후보를 내지 말자는 것이었다.
이 안건은 이정희, 유시민, 심상정 3인의 대표가 어느 정도 의견접근을 이뤄 제출한 안건이지만 격론 끝에 표결을 거쳐 안건반려가 됐다. 지난 12월 15일 통합을 결정한 후 통합의 주체사이에 이견이 있을 때마다 대표단 중재를 통한 합의를 해 왔던 전국운영위원회가 처음 표결을 한 것이다. 통합진보당은 5차 전국운영위에서 이 안건을 1호 안건으로 다룬다.
이 안건의 논의 과정에서 심상정 대표는 “돈 정치로부터 자유롭고, 정체성도 명확한 통합진보당에게 국민들이 바라는 쇄신과 변화의 핵심은 당심과 민심을 어떻게 합쳐 가느냐에 있다”며 “우리는 최초의 진보적 대중정당을 애기하는데, 과연 대중정당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게 고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심 대표는 또 “당원이 결정하면 다 옳고 당원의 결정이 다 절대적인지, 당원의 입장이 국민의 입장과 배치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반문하고 “시도의원 사퇴 문제는 국민의 상식에 어긋 난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에게 약속을 해서 표를 받았고, 옳고 그름을 넘어 국민과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 국민의 상식”이라며 “당원이 결정하면 절대 옳고, 국민이 틀렸다는 말이 된다. 당원 민주주의와 정당으로써 국민에게 신뢰를 받아야 할 관계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심상정 대표의 발언을 놓고 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이 문제는 진보정치도 권력 앞에서는 보수와 다를 바 없는 추태를 부린다는 얘기로 비화 될 수 있는 사안”이라며 “과거 민주노동당이 망한 이유가 당심과 민심이 멀어지고, 그걸 좁히려다가 분당사태까지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를 불러온 가장 핵심적인 민심과 당심의 괴리문제는 북핵, 종북 등 북한 관련 논란으로 드러난 바 있다. 민주노동당 주류세력들이 북한 관련 문제가 터지자 국민의 정서와는 전혀 다른 인식을 드러내면서 갈등이 벌어지고, 진성당원제에 의한 승자독식 패권주의 문제와 결합되면서 진보신당으로 분당되는 사태까지 이어졌다.
이 관계자의 설명대로라면 심상정 대표의 당심과 민심의 괴리 발언은 단순한 우려 수준을 뛰어넘는다. 심 대표가 <참세상>과의 통화에서 한 말대로 본격적인 민심과의 괴리 문제를 들고 나올 경우 당내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반면 구 민주노동당 주류세력들은 진성당원제 원칙을 당헌의 핵심으로 보고 있어 오히려 충돌을 피하기 위해 현안을 놓고 적절한 합의 지점을 찾을 가능성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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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합진보당 대표단 신년 기자회견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김창현, 정치공학과 당심 강조...“지역정치 버렸다”는 비판도 나와
4차 전국운영위에서 김창현 울산시당 위원장은 “일반 방침으로 시의원 사퇴지역에 불출마를 결정하는 것은 심각한 우려가 든다. 정치적 이득을 고려해야 한다”며 “광역 의원 두석은 전략 지역으로 이곳에서 후보를 안내면 민주통합당과 한나라당과 차별화 시킬 무기를 버리는 것”이라고 시도의원 사퇴문제를 다루는 안건에 정면으로 반발했다.
이은주 통합진보당 예비후보가 울산 동구 시의원직에서 사퇴한 것은 울산 동구 당원들의 진성당원제에 의한 전략적 결정에 따랐다는 주장이다. 이날 김창현 위원장은 “현역 공직자 사퇴 지역 무공천 방침”(안)은 재고해야 합니다“라는 10쪽짜리 문건을 준비했다.
김창현 위원장은 특히 정치공학적 의미를 강하게 부여했다. 김 위원장은 “사퇴 지역 선거구는 2006년 구청장 선거에서 패배한 뒤 어렵게 이 지역을 다지고 일구어 진보정치의 확고한 기반으로 만들었으며 지난 12년 동안 연속으로 시의원을 배출하였고, 이 지역구 출신 시의원을 동구청장으로 배출한 통합진보당의 전략적 지지기반”이라며 “이 지역에서 후보를 내지 못해 한나라당이 이기면 향후 거점을 잃고 울산 전체에도 영향을 준다”고 반박했다.
또 “동구 지역 당원들의 동요와 심각한 반발을 고려해야 한다”며 “울산의 구청장 2명을 포함한 26명의 기초, 광역의원들이 대표단에게 이 방침의 재고를 요청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의 주장은 민심보다는 정치공학적 의미와 당원의 뜻(당심)이 더 중요하다고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심과 민심의 괴리는 창원 을 선거구에서도 터져 나왔다. 지난 12일 현직 도의원직을 사퇴하고 창원 을 예비후보로 등록한 손석형 후보도 4차 전국운영위에서 당심을 강조했다. 창원 을 지역은 시민단체들 뿐만 아니라 창원 갑에 출마한 문성현 통합진보당 예비후보도 손 후보의 도의원 사퇴를 강하게 반발하는 상황이었다.
손석형 후보는 “창원 을에서는 진보신당이 사생결단을 하고 엄청난 공세를 하고 있다. 거기에 우리가 흔들려서는 안된다”며 “적어도 당원의 뜻에 따라 같이 싸울 수 있게 하면 승리 하겠다”고 역시 당심을 강조했다.
울산 동구와 창원 을의 당심을 놓고 당내에선 곱지 않은 시각도 많다. 수도권의 한 지역위원장은 “당의 지지율도 낮은 상태에서 창원 을이 저런 식으로 정리하면 창원 갑뿐 아니라 경남 선거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울산 동구도 당이 국회의원직에만 몸이 달아 지역정치를 버린 것으로 주민들에게 비쳐진다. 다음 지방선거에서 역풍이 불 수도 있다”고 우려를 드러냈다.
심상정 대표, 대중정당에 방점
심상정 대표의 당심과 민심의 괴리 관련 발언은 단순히 통합진보당 내 일부 세력의 행태를 겨냥했다기 보다는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이어온 당내 의사결정 구조 자체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엿보인다. 이는 진성당원제도의 한계와 맞닿아 있다.
4차 전국운영위에서 심상정 대표는 “대중정당이라는 것은 국민의 상식이 진보와 달라도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에 있다”며 “굉장히 오랫동안 진보정당을 하면서 고민했다”고 밝혔다. 이어서 “저희는 항상 당원 다수의 입장이며 당원의 논리로 모든 논리가 귀결되기 때문에 과연 진보적 대중정당으로 힘 있게 갈수 있을지 고민”이라며 “지금은 언론 밖에서 아주 작은 문제처럼 보이지만 곧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구 민주노동당은 대선 후보 경선 과정이나 각종 당직 선거 등에서 드러난 진성당원제에 의한 승자독식과 패권주의 문제가 주요 논란이었다. 지난해 진보신당과 진보대통합 논의 과정에서도 당원 수의 차이로 인한 승자독식 극복이 핵심 과제로 다뤄졌지만, 진보신당 당원들의 정서를 넘지는 못했다.
실제 진성당원제는 승자독식 문제가 제도적으로 발생하는 구조다. 통합 주체 간 세력 비율이 어느 정도 반영 된 결과로 대의원, 당직자, 공직후보자가 배분 되지 않고 다수 세력이 모두 장악 할 수 있다.
“진성당원제가 절대선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승자독식에 대한 우려는 19대 총선 공직후보 선출과정에서 조금씩 드러났다. 통합진보당은 상당수 지역에서 예비후보 경선 방식을 합의했지만 핵심 전략 지역 몇 곳과 비례 후보 경선 등에서 신규 당원 집단가입을 통한 당심 왜곡 현상이 지적되고 있다. 또 당내 이견이 표출 될 때마다 구 민주노동당 주류 세력들이 진성당원제를 강조하며 정치적 배려보다는 당원 투표를 통한 밀어붙이기 행태를 보이는 것도 반발이 크다.
수도권의 한 지역위원장은 “이미 승자독식 문제로 당안에서 심각한 내부 균열 조짐도 보인다”고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통합진보당 한 의원실 관계자도 “진성당원제가 절대선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이 많다”며 “당원들이 잘못 판단할 수도 있고, 집단으로 움직이면 특정 권력이 당을 좌지우지하게 돼 통합 정신을 훼손하게 된다”고 밝혔다.
따라서 주요 전략 지역 등에선 예비후보 경선에 선거인단이나 여론조사 결과가 당원 투표 보다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통합진보당 중앙당 후보조정을 맡고 있는 한 관계자는 “공직후보 선출 과정에서 당원들의 의사를 어떻게 반영하고 어떻게 규정할것인가는 정당의 발전 단계나 정당이 처한 대중적 환경 조건, 정세에 따라 획일적일 수는 없다”며 “울산 등에선 이미 당원 투표 외에 노동조합의 의사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진성당원제의 한계를 극복하려한 전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은 통합 초기이다 보니 당원들이 후보들의 자질이나 본선 경쟁력이나 이런 것을 종합해서 보기보다는 통합 세력의 출신을 보고 투표를 하는 세력 간 투표가 될 소지가 크다”며 “그것이 당의 총선 전략이나 승리에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 나올 수 있고, 내부 상처와 분란의 소지가 크게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런 부분을 어떻게 판단하고 존중할 문제라는 것도 중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