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반도체 32번째 사망자 이윤정 씨...유족 “싸움 포기 안한다”

“아내의 병은 99.9%가 화학물질 때문”

또 한명의 삼성반도체 노동자의 빈소가 차려졌다. 올 해만 세 번째 죽음이다.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일하다 뇌종양(교모세포종) 진단을 받고 투병해 온 이윤정(33) 씨가 7일 오후 8시 경 사망했다. 2010년 5월 5일 어린이날, 병원으로부터 뇌종양 판정을 받고 투병생활을 해 온지 딱 2년 만이다.

이 씨의 슬하에는 8살, 6살 난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지난 2년간, 힘에 부치는 싸움을 해 온 남편 정희수 씨도 남겨졌다. 단란했던 네 가족은 산산조각이 났다. 남아있는 유족들은 빈소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이윤정 씨의 영정사진이 아직 낯설다.

남편 정희수 씨는 아직도 이 상황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도대체 왜 아내가 죽어야만 했는지, 행복했던 가정이 왜 파탄나야 했는지, 불행의 근원이 무엇인지 밝혀내고 싶다고 했다. 지난 2년간, 아내의 투병을 뒷바라지하며 삼성과, 근로복지공단과, 정부와 끈질기게 싸워온 이유도 이 때문이다.

고 이윤정 씨 남편 “싸움포기할 생각 없다”

8일 오후, 인천중앙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이윤정 씨의 빈소에는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활동가들과, 삼성 직업병 피해자 유족들이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2년간 아내의 직업병 인정을 위해 싸워온 고 이윤정 씨의 남편, 정희수 씨가 아내의 마지막 길을 지키고 있었다.

지난 2년간, 정 씨는 할 수 있는 모든 언론과 인터뷰를 했고, 할 수 있는 모든 활동을 했다. 하지만, 아내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당사자들과, 사망 이유를 밝혀내야 할 기관들은 하나같이 입을 다물었다.

“수도 없이 이야기 했어요. 아내가 병을 얻은 이유가 99.9% 화학물질 때문이라고요. 그런데 삼성은 부정해요. 자기들은 작업환경은 너무 깨끗해서 그럴 일이 없대요.

사촌누나가 아내와 함께 기흥공장에서 일을 했고, 사촌누나의 소개로 아내를 만났어요. 2010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날 처음 연애를 시작했고, 아내는 2003년 5월 결혼 준비로 퇴사했어요. 그 5개월 동안 아내와 연애하면서 지켜봤는데, 아내는 엄청나게 쏟아지는 물량에 체력이 바닥이 났고, 공정 과정에서 코를 찌르는 듯한 화학물질 냄새에도 노출됐어요.

퇴사하고는 전업주부로 지냈어요. 그런데 갑자기 뇌종양이래요. 도대체 왜 갑자기 그런 병이 생긴 건지 저는 너무 궁금했어요. 이유가 없거든요. 아내가 화학물질에 노출돼 온 작업환경 이외에는요.”


고 이윤정 씨는 지난 1997년, 19세의 나이로 삼성 반도체 온양공장에 입사해 고온테스트 공정에서 6년간 근무했다. 그녀는 반도체 칩을 고온기계에 넣어 열에 견딜 수 있는지 테스트하는 업무를 맡았다. 일정 온도에 노출된 반도체 칩을 기계에서 꺼내 그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불량을 골라내는 일이다.

기계를 열 때마다 연기가 올라왔다. 반도체가 불량인지 아닌지를 가려내기 위해 눈을 갖다대며 살펴볼 때 마다 역한 냄새를 들이켰다. 칩을 손으로 만들면서 피부병이 생겼다. 불량을 골라낼 때 칩 사이에 끼어있는 가루를 에어컨 바람으로 빼 내 면서 칩에 묻어있던 물질을 들이켜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는 퇴사 후 약 7년 만에 뇌종양을 얻었다. 같은 라인에서 일했던 유명화 씨 역시 중증 재생불량성 빈혈에 걸렸다. 이윤정 씨는 2010년 7월 23일,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고, 공단은 이를 불승인했다. 4월 7일에는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결국 그녀는 소송 결과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출처: 반올림]

“삼성은 책임을 부정하면서 우리를 지치게 하고, 근로복지공단은 삼성과 한통속이고, 법원은 우리를 방치해요. 4월에 행정소송 제기한 뒤 5개월 동안 1차 변론 과정을 거쳤고, 이후에 법원은 만 8개월을 방치했어요. 그 사이에 아내는 죽었고요.

아내가 살아있는 동안 조금이라도 기쁜 소식을 전해주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어요. 그런데 생명의 불이 꺼져가는 것이 보이는데도, 삼성도, 근로복지공단도, 법원도 무대응이예요. 염장 지르는 거죠.

저는 이 싸움을 포기할 생각이 없습니다. 잃을 것도 없고, 무서울 것도 없어요. 아내에게 당신은 일을 하면서 병에 걸린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이미 죽어버렸잖아요. 이제는 아내의 명예 회복을 위해서, 나와 죽은 아내, 그리고 우리 가족의 권리를 찾기 위해 계속 싸울 겁니다.”

이윤정 씨의 죽음은, 삼성 반도체 직업병 제보 90명 중 32번째 사망이며, 삼성전기, 전자 직업병 제보 140명 중 55번째 사망이다. 또한 그녀는 반도체 전자산업 전체 직업병 제보 160명 중 63번째 사망자다.

이 씨의 빈소에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2007년, 스물 셋의 나이에 숨진 고 황유미 씨의 부친과, 2004년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민우 씨의 아내 정애정 씨, 뇌종양으로 1급 장애인 판정을 받고 투병중인 한혜경 씨의 모친 김시녀 씨 등 유족과 피해자 가족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피해자가 늘어가는 만큼, 유족들도 늘어난다. 이들은 산 자의 몫을 다하겠다며, 거대 기업과 정부를 상대로 오늘도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10일 오전 8시 서울 강남역에 있는 삼성 본관 앞에서 이윤정 씨의 영결식이 엄수될 예정이다.
  이윤정 씨의 남편 정희수 씨(오른쪽)와 한혜경 씨의 모친 김시녀 씨(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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