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반도체 고 이윤정 씨, 마지막 가는 길

강남역 삼성본관 앞, 이윤정 씨 시민사회장 영결식


강남역 삼성본관 앞이 오열과 국화꽃 잎으로 가득 찼다.

고 이윤정 씨의 유족과 장례인단은 삼성 본관에서 이윤정 씨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했다. 10일 오전 8시, 시민사회장으로 치러진 고 이윤정 씨의 영결식에서, 유족과 추모인단은 삼성이 만들어낸 또 한명의 희생자를 보내며 눈물을 흘렸다.

여덟 살 난 상주의 손에는 ‘이윤정을 살려내라!’는 피켓이 들려있었고, 여섯 살 난 딸아이의 손에는 국화꽃이 들려있었다. 고인의 남편인 정희수 씨는 아이들을 안고 눈물을 흘렸으며, 남겨진 고인의 유족들은 그녀의 영정사진을 보며 오열했다.

이윤정 씨 이전에 죽어간 또 다른 삼성반도체 피해자 유족들은, 반복되는 똑같은 희생에 상처가 쌓였다. 생전에 이윤정 씨와 함께 산재인정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던 반올림과 시민사회 활동가들은 한 명의 동지를 또다시 잃었다. 그렇게 산 자들의 오열은 산산이 부서졌지만, 여전히 삼성의 벽은 견고했다.


1.

“내가 많이 부족한 아빠지만 정말 많이 노력할게. 우리 아이들 마음의 상처까지 어찌할 수 없다 해도 많이 사랑해주고, 귀 기울여줄게. 윤정아 너를 더 많이 사랑하고 아껴주지 못해 미안하다. 이 못난 오빠는 이렇게 후회만 하면서 바보같이 슬퍼하는구나...우리 만나 사랑하고 아이 낳고 키우면서 행복했던 기억만 가슴에 기억하자. 이제 부족한 오빠에게 모두 맡기고 고통 없는 곳에서 편히 쉬길 바란다”

이 자리에서 정희수 씨는 아내에게 마지막 편지를 전했다. 지난 2010년 5월 5일, 청천벽력 같은 아내의 뇌종양 판정 이후 2년 간을 삼성 자본, 그리고 정부와 싸워온 그였다. 아내에게 ‘윤정아, 너는 일 때문에 병을 얻었고 그렇기 때문에 산업재해로 인정받았어’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 쉼 없이 달려온 싸움이었다.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업재해 불승인 판정을 받고, 작년 4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재판과정은 더뎠다. 1차 변론기일에서의 단 5분을 위해 육개월을 기다렸고, 법원의 방치 하에 기다림은 8개월을 넘어갔다. 그 사이에 아내의 생명은 꺼졌다. 거짓말이라도 아내에게 산재인정 소식을 전하고 싶었지만, 방치돼 있는 재판진행 상황 때문에 거짓말조차 할 수 없었다.

때문에 정희수 씨는 아내가 산업재해 승인 소식을 듣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이 가장 큰 회한으로 남는다. 지난 8일, 고인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그는 아직도 단란했던 네 가족이 산산 조각나고, 고인의 목숨을 빼앗아 간 이 기막힌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겨워했다.

“당신은 일하면서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2년간 산재인정을 받기 위해 정말 노력했어요. 어떤 언론과의 인터뷰도 마다하지 않았고요. TV에도 모자이크 처리 없이 얼굴이 나가고 하니까, 아내가 걱정도 많았어요. 그래서 아내에게 ‘당신과 같은 피해자가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설득했던 일도 있었어요.

사실 집사람은 작년 10월부터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했어요. 그런데 아내가 저에게 이제 삼성을 용서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내에게 너 이렇게 만들고 우리 가정을 풍비박산 낸 삼성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느냐고 이야기 했어요. 저는 이 싸움 포기 못해요. 아내의 명예, 우리 가족의 권리 찾아서 보여 줄 거예요.”




이윤정 씨가 남긴 8살, 6살 난 아이들은 아직 죽음을 알기에 이른 나이임에도, 엄마의 부재는 실감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큰 아이는 영결식에서 오열이 들려올 적마다 간간이 귀를 막는다. 6살 난 딸아이는 아빠 품에 안겨 국화꽃을 만지작거린다.

“아이들은 아직 죽음이라는 것을 몰라요. 엄마가 하늘나라에 갔다고만 알고 있어요. 다행히 울고불고 하는 것은 없는데, 앞으로가 걱정이죠. 집사람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부탁한 것이, 아이들에게 남부럽지 않게 공부를 시켜달라는 것이었어요. 아내는 공부도 잘 했으면서, 집안사정이 안 좋아 상고 진학 후 바로 공장에 들어갔잖아요. 그래서 병도 얻은 거고요. 아내는 자식만큼은 공부시켜서 이런 일 겪지 않게 하고 싶은 거죠.

제가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다음 세상에서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거예요. 다음 생에서는 좋은 곳에서 태어나서 훨훨 날아다녔으면 좋겠고...무엇보다 화학물질 없는 곳에서 태어났으면 좋겠어요.”


2.

고 이윤정 씨는 1997년 5월, 충남 서천여상 고3 재학 중 열아홉의 나이로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 입사했다. 그 곳에서 이 씨는 고온테스트 업무를 6년간 담당했다. 일정 온도에 노출된 반도체 칩을 기계에서 꺼내 그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불량을 골라내는 일이다.

그녀는 근무 중 고온에 타버린 반도체 칩에서 발생한 검은 연기 및 분진을 흡입했고, 벤젠 등 발암물질에 노출되기도 했다. 칩을 손으로 만지면서 피부병을 앓은 적도 있었다.

2003년 5월, 퇴사 후 전업주부 생활을 했지만 2010년 5월, 30세의 나이로 악성 뇌종양(교모세포종) 진단을 받았다. 같은 라인에서 일했던 유명화 씨 역시 중증 재생불량성 빈혈에 걸렸다. 반도체 공장에서의 화학물질 노출 이외에는 발병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온양공장 채용 당시, 건강검진에서 그 어떠한 이상도 없었으며 가족 중에 뇌종양 등의 관련 질환자도 없었다.

이윤정 씨는 2010년 7월 23일,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고, 공단은 이를 불승인했다. 4월 7일에는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결국 그녀는 소송 결과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이윤정 씨의 죽음은, 삼성 반도체 직업병 제보 90명 중 32번째 사망이며, 삼성전기, 전자 직업병 제보 140명 중 55번째 사망이다. 또한 그녀는 반도체 전자산업 전체 직업병 제보 160명 중 63번째 사망자다.

이종란 반올림 활동가는 “이윤정 씨를 포함해 삼성 직업병 사망자 55명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라며 “삼성에서 이렇게 노동자들이 죽어나가는데, 왜 정부에서는 조사를 하지 않는지, 저희가 무슨 힘이 있다고 이렇게 많은 제보가 들어오는지 고통스럽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어서 그는 “윤정 씨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반도체 산업에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살아있는 자들이 결의를 모아나갔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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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목록
  • 삼성... 이 악독한 기업....
    그 죄를 다 어찌할까...

  • ...

    눈물만 흐르네요..

  • 독자

    고인이 편안한 곳에 가서 쉬시길..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유가족 분들 얼마나 아프십니까!! 힘내십시오!!! 의로운 이들이 백의종군 할 것입니다!!

  • ........

    아픕니다...편히 쉬실수 있게...

  • 성연

    마음이 아프고 무겁습니다 이제는 좋은 곳에서 평안 하시기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유가족분들 힘 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