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문제해결 위해 국정조사 실시하라"

쌍용차 국정조사 실시, 용역폭력분쇄, 정리해고 비정규직철폐 3차 범대회

‘쌍용차 국정조사 실시’를 촉구하는 3차 범국민대회가 21일 국회 앞에서 열렸다. 21일 오후 3시부터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는 쌍용차범국민대책위의 주최로 “쌍용차 국정조사 실시! 용역폭력 분쇄! 정리해고 비정규직 철폐! 3차 범국민대회”를 천여 명의 참가자들이 모인 가운데 진행됐다.

쌍용차 범대위 관계자는 “20일 열린 청문회는 한계와 문제점을 드러냈다. 증인소환의 강제장치가 없는 청문회를 통해 쌍용차 문제가 해결될 수 없기 때문에 국정조사 실시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대회 취지를 밝혔다.

[출처: 사진가 연대체 선 윤경민 제공]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대회사에서 “청문회를 보면서 1%의 탐욕을 위해 국가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아무도 쌍용차 문제에 대해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면서 “누구도 노동자의 죽음을 막지 못한다면, 우리가 나서 죽음을 멈춰내자. 노동자 서민의 미래를 위해 국정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은수미 민주통합당 의원은 “청문회를 보면서 많은 아쉬움이 있었다.”고 운을 뗀 뒤 “책임자 처벌과 경영정상화와 해고자복직 위해 정부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부당회계 조작에 대한 책임을 묻고, 22명의 노동자 죽음에 대해 즉각 사죄와 명예회복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출처: 사진가 연대체 선 윤경민 제공]

[출처: 사진가 연대체 선 윤경민 제공]

김정우 쌍용차 지부장은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연대해주시는 많은 분들의 사회적 연대로 청문회가 열렸다. 이런 힘들로 쌍용차 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집회 뒤 참가자들은 국정조사 촉구를 위해 새누리 당사 앞으로 행진하려 했으나 국민은행 앞에서 경찰병력에 의해 저지당했다.

박상철 금속노조 위원장은 “해고로 노동자 22명이 죽어야만 청문회가 열리고, 새벽에 용역깡패가 노동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나라가 대한민국의 현 주소다.”고 규탄한 뒤 “청문회에 기대할 것은 없다. 우리가 투쟁으로 돌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해 대표단을 구성해 환경노동위에 면담을 요청하고, 국회 안에서 쌍용차 국정감사 실시를 촉구하는 선전전을 진행하기도 했다.

저녁 7시부터는 시민들과 함께 하는 문화제가 열렸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은 “증인으로 나서야 하는 사람은 조현오를 앞세운 이명박 대통령”이라며 “노동자가 앞장서 국정조사를 열자”고 호소했다. 시민문화제에서는 연극팀 해방구의 공연과 쌍용차 노동자들이 참여한 ‘의자놀이’를 빗댄 퍼포먼스 공연이 큰 박수를 받았다.

마지막 발언자로 나선 박호민 쌍용차 해고자는 해고자복직과 국정조사 실시를 염원하며 “쌍용차로 돌아가 반드시 자동차를 만드는 노동자로 살아갈 것”이라는 각오를 밝혔다. (기사제휴=뉴스셀)



벌써 3년이 넘었습니다. 2009년 8월 6일 77일간의 파업을 마무리하고 공장 밖으로 나와 경찰특공대를 앞세운 폭력과 폭포수처럼 머리위로 쏟아졌던 최루액, 테이저 건을 맞은 동료…그 악몽같은 시간을 잊고 싶었습니다. 회계조작에 의한 부당한 해고로 산자와 죽은자로 나눠 동료에게 서로 새총을 쏘게 한 회사의 악랄함에 더 이상 쌍용차 공장을 바라보기도 싫었습니다.

2001년에 입사해 9년 동안 쌍용차를 만들었던 노동자였기에 파업이 끝나고 아침에 일어나, 나도 모르게 작업복을 입고 출근준비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해고되었고, 출근할 곳이 없다는 현실에 아파트 창문 아래도 출근하는 노동자들을 보면서 하염없이 담배를 피기도 했습니다. 내가 일하던 정든 일터로 돌아가고 싶어서 다시 공장 앞에 섰습니다. 억울하게 해고된 해고노동자로, 반드시 일터로 돌아가야 하는 노동자로 공장 앞에 섰습니다. 어느덧 작업복이 아니라 투쟁조끼가 일상으로 된지 3년입니다.

3년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법정관리였던 회사를 이명박 정부가 매각한다고 해 해고자 문제를 해결하는 매각이어야 한다며 산업은행 앞에서 80여 일을 노숙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해고자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고, 해고노동자들의 죽음의 소식이 이어졌습니다. 부모 모두를 잃고 고아가 된 아이들, 아빠에게 연락이 되지 않아 엄마의 시신 옆에 이틀 밤을 보낸 아이들…임무창 형님의 노제를 지내며 꽃상여를 메던 날 다짐했습니다. 더 이상 동료들이 죽지 않도록 투쟁하자고 했습니다. 한진중공업으로 향하던 희망버스를 보며 희망텐트를 쳤습니다. 눈이 펑펑 내리던 날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을 보며 희망도 느꼈습니다.

그러나…더 이상 죽지말자고 희망텐트를 쳤지만, 3명의 동료를 또 보내야 했습니다. 이윤영 동지의 분향소를 차리며 다시 다짐했습니다. 23번째의 죽음만은 안 된다고…그리고 수많은 동지들이 범국민대책위를 만들고 우리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매번 우리와 함께 집회와 행사를 진행하는 수많은 동지들, 쌍용차 책을 발간한 공지영 작가, 매일 우리를 걱정하며 정성스레 음식을 준비해오신 분들, 대한문 분향소에 말없이 와서 하염없이 울다간 시민들,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다 구속된 동지까지…

청문회에 나와서 22명의 죽음에 대해 안타깝다고 말하지만, 이윤영 동지의 영정을 모신 쌍용차 정문 앞 분향소를 철거한 이유일에게 우리는 질 수 없습니다. 수많은 정성을 모아 쌍용차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분들이 있기에 저 악랄하고 파렴치한 사람들에게는 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저는 다시 2009년을 생각합니다. 경찰의 끔찍한 폭력이 있어도 ‘함께 살자’고 외쳤던 이윤영 동지가 함께 했던 그 시간, 지금도 어느 골방에서 희망 없이 하루를 보낼 동지들이 함께 싸웠던 그 시간이 어쩌면 지금보다는 조금쯤은 더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항상 함께 하는 동지들과 희망을 만들겠습니다. 국정조사로 회계조작과 부당한 정리해고, 이명박 정부의 살인적인 진압의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저의 회사는 쌍용자동차입니다. 저는 쌍용자동차로 돌아가 반드시 자동차를 만드는 노동자로 살아갈 것입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 박호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