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구속자 석방, 가족들 품으로

구속자 6명 남아...“사면 복권까지 싸울 것”

용산참사로 구속됐던 철거민 2명이 석방됐다. 용산 4구역 철거민인 이들은 26일 오전 각각 공주교도소와 전주교도소에서 출감했다. 2009년 1월 23일, 4년형을 선고받고 구속된 이들은 만기 3개월을 앞두고 법무부 정기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용산참사 구속자 중 재개발 당사자인 용산 4구역 철거민이 석방된 것은 처음이다.

‘용산참사 진상규명 및 재개발제도 개선위원회(이하 진상규명위)’ 관계자들과 전철연 회원들은 이른 아침 교도소를 찾아 출소하는 이들을 환영했다. 충청지역 인권단체 활동가들도 교도소 앞을 찾아 이들의 석방을 축하했다. 공주교도소에서 가석방된 김재호 씨는 마중 온 이들을 일일이 포옹하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김 씨의 아내는 남편을 부둥켜안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아내와 만난 김재호 씨

“바깥에서 고생하는 동지들에 미안했다”

진상규명위는 이들의 석방을 환영하면서도 사면이 아닌 가석방으로 풀려난데 아쉬움을 표시했다. 진상규명위는 “대선후보들은 누가 당선이 되도 반드시 구속자들을 사면, 복권해 명예회복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수감 중인 용산참사 구속자는 6명이다. 이들은 길게는 내년 10월까지 복역해야 한다.

  전제숙 씨와 부둥켜안은 김재호 씨

출감한 김 씨는 “세상이 새롭게 보인다”는 말로 석방의 소감을 밝혔다. 그는 “안에서 몸은 편했지만 바깥에서 몸도 마음도 지쳐있을 동지들을 생각하면 미안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아직 수감중인 철거민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도 전했다. 그는 “용산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고 강조하며 “용산참사가 하루 빨리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김 씨는 오랜 수감생활을 마쳤음에도 건강한 모습을 보였다. 김 씨는 “안에서 오히려 몸은 편안했다”며 거듭 “바깥에서 몸도 마음도 고생한 동지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강조했다. 그는 “안에서 제주나 명동 등 용산과 똑같은 현장의 소식을 들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전했다.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을 실감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김 씨는 “앞으로 잘 될 것이라 믿는다”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김 씨를 맞이한 가족들과 진상규명위 관계자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용산참사 유가족인 전재숙 씨는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며 기쁨을 표했다. 그녀는 “모범수란 이름으로 우리를 통제하지만 우리는 죄인이 아니기 때문에 모범수도 아니”라고 말했다. 진상규명위의 조희주 대표도 “오늘 이들이 석방됐지만 여전히 수감 중인 6명의 철거민들이 있고, 재판을 기다리는 두 명이 있다”고 강조하며 “무죄판결을 받고 사면 복권으로 명예를 회복할 때까지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시간 전주교도소에서도 가석방이 이뤄졌다. 용산 4구역에서 중국집을 운영하던 김대원 씨다. 노모를 모시고 살던 그가 구속된 후 노모는 3년 9개월간 홀로 생활을 이어갔다. 김대원 씨는 환영식을 진행하는 동안에도 내내 노모를 걱정했다.

공주와 전주에서 출감한 이들은 공주의 한 식당에서 재회했다. 4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서야 만난 이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재회의 기쁨을 나눴다.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으로

김재호 씨는 참사가 일어나기 전 용산 4구역에서 금은방을 운영했다. 용산참사가 일어나고 김 씨가 구속되자 김 씨의 딸은 심각한 우울증 증세를 보였다. 정기적으로 걸려오는 김 씨의 전화가 늦어지면 “아빠가 우리를 버렸다”며 우울해질 만큼 김 씨에 대한 의존이 컸다. 김 씨는 딸의 건강회복을 위해 매주 직접 그린 만화편지를 보냈다. 교도소 측의 제한으로 편지 발송이 어려워지자 먼저 출소한 제소자에게 부탁해 직접 만화를 전달했다. 김 씨의 정성으로 딸의 우울 증세는 상당부분 호전됐다.

  친지들과 영상통화 중인 김재호 씨. 스마트 폰을 어색해 했다.

김 씨는 당분간 오랜 수감생활 동안 떨어져있던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계획을 밝혔다. 김 씨는 “수감 기간에 어느덧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었다. 아이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아빠의 역할에 당분간 충실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가장으로서 생활과 생계를 고민해야 하기 때문에 생활문제를 먼저 고민할 것”이라는 말도 이었다.

그는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의 생활에 먼저 돌아가고 싶다고 밝히면서도 ‘동지들’에 대한 고마움을 거듭 강조했다. 김 씨는 “수감기간에 많은 동지들이 힘을 주었으니 이제는 내가 동지들에게 힘을 줄 차례”라고 말했다. 그는 “생활인으로 돈도 많이 벌어서 후원받은 이상으로 많은 동지들을 후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대원 씨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김대원 씨를 마중 온 김 씨의 형은 노모가 집에서 김 씨에게 줄 밥상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전했다. 김 씨는 식당에서 열린 환영식에서도 식사를 하지 않고 노모가 차려준 식사를 위해 자리를 먼저 떠났다.

출소한 이들과 진상규명위는 빠른 시간 안에 희생자들이 안치된 마석 모란공원과 구속자들을 찾아 인사할 예정이다. 진상규명위는 아직 구체적인 활동계획을 세우고 있지는 않지만 이들의 사면 복권과 명예회복, 구속자 석방을 위한 투쟁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계획이다.

  김대원, 김재호 씨(왼쪽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