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와 문재인, 그리고 노동자 정치

[대선을말한다](2) '진보적 정권교체', 정말 최선이었나


최악이 차악을 이겼다. 노동계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되면 최악의 상황이 도래함으로, 이를 막기 위해 과거 민주당 세력이 집권했을 때에도 반노동적인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정책을 전면화해서 노동자들을 괴롭힌 것은 사실이지만, 집권 가능성이 있는 민주통합당을 밀어주어야한다는 주장이 널리 퍼져 나갔다. 최악을 막기 위해 차악을 택해야한다는 정권교체론은 – ‘진보적’ 정권교체론과 함께 - 가장 강한 이데올로기가 되었고, 마치 블랙홀처럼 다양한 입장들을 빨아들였다. 4.11 총선 때의 닥치고 투표의 재판이 되었다. 그리고 또다시 패배했다. 대선 패배와 함께 서울시 교육감, 경남도지사 선거에서도 참패하였다. 민주당만의 패배가 아니라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후보단일화/야권연대 전략의 전반적인 패배인 것이다. 선거 패배와 함께 시끄러운 북소리는 좌절과 한탄의 한숨 소리로 바뀌었고, 시대의 격문은 종잇조각이 되었다. 대선 후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단어는 ‘멘붕’이다. 무엇보다 비극적인 것은 선거 결과에 희망을 잃은 노동자의 자살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패배의 원인을 둘러싸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역주의 문제를 강조하는 입장에 따르면, 경상도 지역의 몰표로 전라도 지역을 누르려는 지역 패권주의가 패배의 원인으로 경상도 사람들은 배척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치 지도를 보면 양당의 승리 지역을 보면 백제, 신라 시대도 아닌데 확연히 구분된다. 북쪽까지 고려한다면, 완전히 삼국시대이다. 그러나 양 지역에는 각기 반대하는 표도 있고, 이는 유동적이다. 지역 갈등은 지양의 대상이지 부추겨져서는 안 된다. 전라도와 경상도가 내전이라도 해서 경상도를 굴복시키는 것이 해답은 아닐 것이다. 연령별 투표 성향을 두고도 논란이 있는데, 50대 이상의 몰표로 승리했기 때문에 나이 든 세대를 문제 삼아야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노인들의 무임승차나 노령연금을 폐지해야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데, 선별적 복지를 주장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해서 반값 등록금이 날라 갔으니, 노인들에 대한 혜택도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인들이 보편 복지를 주장했으면 일관되게 보편 복지 확장을 지지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평소 노령화 사회론의 비합리적인 결론은 세대 간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라 우려해 왔는데, 세대 간 갈등을 조장한 후 노인 것은 빼앗고, 젊은이는 더 내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지역별 연령별 투표 행태도 고려해야 할 변수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총론에서의 실패라고 본다. 새누리당은 경제, 민생을 주된 슬로건으로 내세운 데 반해 민주당은 정권교체를 내걸었다. 민주당은 “정권연장인가? 정권교체인가?”의 슬로건 아래 MB 정권 실정의 연장으로 박근혜 후보를 이명박근혜로 지칭했고, 독재자의 딸을 부각시켰다. 반면에, 새누리당은 파란색을 버리고 그들이 그토록 증오하는 ‘빨간 색’으로 코스프레를 한 후, 과거가 아닌 ‘미래’를, MB와 ‘함께’ 참여정부에서 파탄 난 ‘민생’을, 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경제’대통령을 내세웠다. (이러한 점에서 박근혜 후보가 지난 시기 친자본 반노동 정책의 가장 큰 피해자들인 저소득층의 지지를 끌어낸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DJ의 측근들과 김지하 시인의 지지를 끌어내면서, 사울이 바울이 된 것 마냥 탄압자의 이미지는 포용력을 가진 통합의 지도자 이미지로 바뀌었다.

[출처: 뉴스셀]

실질 삶과 관련하여 중요하게 쟁점이 되는 이슈들, 즉 한미 FTA, 비정규직 문제, 정리해고 문제, 강정 해군기지 등에서는 차이점이 부각되지 않았다. 이러한 이슈들은 참여 정부 때부터 문제된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박근혜 후보는 번번이 참여정부 때부터의 일이라고 빠져 나갔고, MB의 최대 실정 중 하나인 4대강 문제의 해법에 있어서조차 마지막 TV토론에서 박근혜 후보는 문재인 후보와 같은 입장이라고 넘어갔다. 문 후보의 반론은 없었다. 민주당이 이렇게 된 데에는 기본적으로는 신자유주의적이고 친기업/반노동자적인 입장이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의 확산, 대규모의 노동탄압을 경험한 노동자들에게는 아직 그 기억이 생생하다. 87년 6월 항쟁으로 시작된 ‘민주화’, 소위 87년 체제는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낳았지만, 과거 청산, 각종 민주적 개혁은 실패로 돌아가고 - 유일하게 성공적이었던 것은 ‘노동’의 유연화였다 - MB 정권이라는 역사적 반동을 낳았다. 오죽하면 최악을 피하기 위한 ‘차악’을 택하라는 논리로 접근해야 했을까? 이렇게 궁색하게 조직된 정치는 힘을 받을 수 없다.

민주당의 이러한 모습은 한두 가지 정책의 실패가 아니라 역사적인 것으로, 태생부터 한계를 예비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1945년 창당된 한국 민주당의 주요 구성세력은 지주· 자본가적 기반을 가지고 있거나 그 후예들인 언론인과 지식인층으로서, 이 세력은 해방 직후 수립되었던 조선인민공화국 타도를 슬로건으로 좌익 탄압에 압장 섰고, 결국 좌익 세력의 무력화에 성공하였다. 주도적 인사였던 이승만이 소위 정상모리배로 불렸던 친위세력으로 자유당을 구성하고 이권을 독점하자, 권력에서 배제된 세력들이 야당의 역할을 하게된 것이다. 이후 역사는 아래로부터의 항쟁이 정권을 붕괴시키고 새로운 공화국이 여러 차례 들어섰지만, 혁명의 성과가 빼앗기고 유실되어온 역사이다. 4.19 혁명은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리고 2공화국을 출범시켰지만, 민주당은 역사의 진전을 가로막고 주저하다가 5.16으로 반동의 역사를 열었다. 80년 서울의 봄은 3김의 정치 무대를 열어 주었지만, 이들은 신군부의 등장에 무기력하게 대응했고, 광주의 피를 불러왔다. 우리 역사에서는 아래로부터의 항쟁, 성과의 찬탈, 역사적 반동이 반복되었고, 매 순환의 중간 과정에 우리는 ‘민주’의 깃발을 든 세력을 보아왔다. 60년과 80년에는 짧게, 87년 이후에는 길게...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전복’하는 데서 끝나면 안된다는 것,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세력의 힘이 미약하면 역사는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민주’는 ‘독재’에 대해서만 역사의 진보를 이야기할 뿐 ‘노동’과 ‘민중’을 위해서 역사를 진전시키지는 않고 심지어는 적대적일 수 있다. 그리하여 아래로부터의 동력을 상실한 민주는 민주주의 개혁조차 실현하지 못하고 형해화하며, 역사적 반동을 불러온다. 민주주의의 진전을 위해서조차 노동자 민중은 스스로의 정치를 구성해 나가야한다는 것이다. ‘민주적인 개혁을 이야기하나 반노동자적이었던 10년’이 MB의 5년을 불러왔듯이, 지금 시기 ‘노동’이 빠진 ‘민주’는 구시대의 망령을 불러온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2012년 선거에서 노동자 정치가 무력화된 것은 노동자 계급에게만 비극이 아니고 우리 역사 자체의 비극이다. 통합진보당과 진보정의당은 부정선거 논란과 분당사태 이후 급격히 정치적 의미를 상실하여 10% 이상의 지지율은 1%대로 줄었고, 대선에서는 ‘진보적’ 정권교체를 위해 후보들이 사퇴하면서 무대 위에서 사라졌다.

[출처: 뉴스셀]

지금의 진보 정당들은 87년 6월항쟁 이후 터져 나온 7,8,9월의 노동자 대투쟁 이래의 민주노조 운동에 힘입은 것이다. 95년 민주노총이 건설되고, 이어 96/97 총파업 이래 대선 참여와 민주노동당이 건설된 이래, 대중조직으로서의 민주노총과 정당으로서의 민주노동당 양축으로 진행되어온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십수 년의 역사가 있었다. 이 과정을 주도했던 세력들은 신자유주의, 노동 유연화는 어쩔 수 없으며, 단지 피해를 약간 줄일 수밖에 없다는 애매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고,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명목 아래 야권 연대의 하위 파트너로서 민주당 세력에 기대어 몇몇 정치지망생들은 의원이 될 수 있었다.

96-97년 총파업 시 전국의 정치를 흔들고, 국민 90%의 지지를 획득했던 노동자 세력이 국회의원 한 명만 있어도 문제가 해결되었을 것이라며 노동자 투쟁을 정리하고 대선으로 몰려갔고, 총파업의 영웅은 군소 대통령 후보로 쪼그라들었다. 98년 정리해고 2년 유예 조항을 철회하는 직권 조인에 민주노총 지도부가 서명하고, 파란이 있었고, 이를 주도한 사람들은 노사정 위원회로 들어갔다. 민주노총의 지도력을 자처했던 이 세력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는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 대중적인 구호인 비정규직 철폐가 아니다 – 외쳤고, 2006년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제정된 비정규 악법으로 이어지면서 지금의 비정규직이 만연한 사회가 되는 데 일조하였다. 최근에는 2010년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 당시, 야4당 (민주당과 야당 연대 이름으로 끌려 다니던 당시의 민노당, 진보신당, 사회당)이 적극적으로 사측과 협상에 나서 모든 책임을 지고 끝까지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고 하면서 파업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설득하여 투쟁을 정리하게 되는 사례까지 볼 수 있었다. 선거 의회 정치를 위해 노동자 투쟁은 조율되고, 활용되는 과정에 노동자 대중의 직접 정치는 억압되거나 왜곡된 것이다. 소위 선거주의, 대리주의의 문제이다. 이 당들이 스스로 당 이름에서 ‘노동’을 지우고, 민주노총이 배타적 지지방침을 철회하여 중요한 지지 기반을 잃은 지금, 이 당들의 향후 전망은 불투명하다. 십수 년간의 선거 의회주의의 귀결로 10명이 넘는 국회의원들이 있음에도 노동자를 대변하는 제도 정당 정치는 무기력하게 된 것이 지금의 현실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무소속으로 내세웠던 노동자 후보들은 0.1% 내외의 득표율을 보이면서, 적어도 지지율에 있어서는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결과를 냈고, 무시당하거나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김소연 후보의 경우에는 그간 투쟁에 앞장서 왔던 노동자들이 추대하여 직접 후보를 내세우고, 다양한 입장의 단위들이 모여 선거 투쟁을 전개했다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난 시기 여러 차례 대선에서 후원자가 있어 후보를 내 왔던 사회당 계열의 김순자 후보는 논외로 한다.) 민중 재정의 원칙에 따라 한두 사람의 독지가가 아니라 대중적으로 모금했고, 선거 강령도 투쟁하는 현장에서의 요구들을 모아 만들었다. 선거 기금이 없어 정식 후보로 등록도 못 할 것이라든지, 선거 경험이 없어 완주하지 못할 것이라든지 하는 비판들이 많았는데, 노동자 대중의 광범위한 모금과 자발적인 운동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채워 나가 완주할 수 있었다. 노동자 직접 정치의 중요한 단초를 만들어 낸 것이다.


당선 가능성이나 득표율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대선 공간에서 주체로 서서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애초의 목표라 지지율은 큰 관심은 아니었다. 삼성, 현대, 쌍차 자본 등 재벌에 대한 문제제기와 평택, 울산, 강정 등에서의 투쟁에 결합함으로써, 대선 과정에 묻힐 수 있는 투쟁들을 이어 가고 전국적인 이슈로 제기해 나가는 데에서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득표 전략에서는 실패했으나, 이슈화 전략에서는 의미 있는 성과를 내었다고 본다. 재벌 문제와 정리해고, 비정규직 문제가 우리가 사는 실제 현실의 중요한 모순들이 분명하다면, 0.1%의 정치가 가장 분명한 이슈를 제기했다는 역설을 앞으로의 역사가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선거 제도가 선거 자금을 둘러싼 각종 제도, 장치들을 통해 ‘돈’ 선거가 될 수밖에 없으며, 대선 후보들에 대해서도 경찰 등의 공권력과 언론은 한쪽만 편들고 있다는 것을 실제 경험 속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도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경험들은 본질적으로 금권, 관권, 언권 정치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 정치의 여러 장벽들을 넘을 수 있는 대응 전술을 개발하는 데 있어서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올해 총선과 대선에서 야권이 적지 않은 지지를 얻었음에도, 거대한 패배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그만큼 정치 지형이 유리했고, 승리에 대한 확신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MB의 실정으로 올 연초만 해도 여권의 지지율이 바닥을 쳤고, 보수 집권당은 패색이 짙었던 것이 사실이다.

기억하기에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에서 야당이 패배한 후 선거에서 역전의 계기를 마련한 것은 2009년 경기도 교육감 선거일 것이다. 경기도 교육감 선거 당시, 경기희망교육연대를 구성해서 경기지역의 노동운동, 그리고 인권운동, 교육운동 등 시민운동세력과 촛불세력이 광범위하게 모였고, 선거 강령의 기조를 정하고, 후보를 선정해 선거에 임했던 것이 모두의 예측을 뒤집으며 승리를 끌어낼 수 있었던 주된 요인이 되었다고 본다. 교육감 선거이기 때문에 다행히도(!) 민주당, 민노당 등 제도 정당들이 개입할 수가 없었고, 김상곤, 권오일 선본 사이의 후보 단일화는 경기희망교육연대의 후보를 선정하는 과정의 연장이었다. 실제로 활동하고 있는 세력의 결집이 전제되었기 때문에 승리를 끌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류는 이후 여럿의 진보 교육감과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으로 이어진다. 이후 과정에서는 아쉽게도 인물 중심의 내용 없는 형식적인 후보 단일화만 남게 되었는데, 이렇게 되어서는 다양한 세력이 힘 있게 결집할 수 없을 것이다. 또 한가지 사례는 희망버스 운동이다. 김진숙 지도위원을 승리와 함께 내려올 수 있게 만든 힘은 제도 정당이나 공식 조직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시민, 활동가들의 자발적인 참여에서 나왔다. 정당이나 민주노총은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동력을 뒤쫓기 바빴다. MB 정권을 무력화시킨 사례들을 볼 때, 선거든 운동이든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힘들이 실제로 결집했을 때 가능했던 것이다. 앞으로 새로운 정치가 착목해야 할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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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당 계열의 후보전술은 논쟁거리도 안되는...
    가만 생각하면 왜 김소연이 나왔는데, 노동자 후보라고 나왔는지 사회당 계열의 몽니라 여겨지더니...
    결국 논의대상도 안되는 에피소드구나.
    투쟁하는 현장을 돌아다니고 함께싸우는게 노동자 후보라는 전형과의 차이겠지....

  • 사회당 계열의 후보전술은 논쟁거리도 안되는...
    가만 생각하면 왜 김소연이 나왔는데, 노동자 후보라고 나왔는지 사회당 계열의 몽니라 여겨지더니...
    결국 논의대상도 안되는 에피소드구나.
    투쟁하는 현장을 돌아다니고 함께싸우는게 노동자 후보라는 전형과의 차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