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폐암으로 사망한 한진중공업 하청노동자에 대해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서울행정법원 제3부는 지난 8일, 폐암으로 사망한 한진중공업 하청노동자에 대한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 결정이 위법하다며 업무상 재해 판결을 내렸다.
조선소 하청노동자 한 모씨(사망 당시 59세)는 1995년부터 약 10년간 한진중공업과 세일기계, 현대중공업 등의 조선소에서 취부와 용접 작업을 해 왔다. 한 씨가 주로 해 왔던 취부작업은 임시용접으로, 철판과 철판을 도면대로 연결하거나 붙이는 작업이다. 용접작업의 경우, 용접복과 방진 마스크 등의 장비가 갖춰져 있으나 취부작업은 장비가 지급되지 않는다.
임선아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한 씨와 같은 치부작업자들은 철판 절단 등의 작업 과정에서 분진이나 석면, 폐암을 유발하는 물질을 흡입하지만 하청업체 소속 등의 이유로 마스크조차 지급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한 씨는 지난 2010년 1월, 폐암 진단을 받았으며 같은 해 12월에 사망했다. 유족들은 한 씨의 질병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산재를 신청했으나, 근로복지공단은 2011년 10월 산재 불승인 판결을 내렸다.
당시 부산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불승인 이유로 “대부분 옥외작업장에서 근무했고, 역학조사 결과 작업장에서 폐암 유발 위험이 크다고 보고된 물질이 발견되지도 않았으므로 재해와 업무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서울행정법원은 산재 입증 책임을 완화한 대법원의 판례에 따라, 근로복지공단의 불승인 결정을 뒤집고 한 씨의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법원은 “업무와 재해발생의 인과관계는 근로자의 취업 당시 건강상태, 질병 원인, 작업장에 발병원인물질이 있었는지, 발병원인물질이 있는 작업장에서의 근무기간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해 업무와 질병 또는 그에 따른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되는 경우에도 입증되었다고 보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법원은 판결문에서 “원고가 약 15년 동안 보호장구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용접 및 취부작업을 하면서 폐암의 발생 원인이 되는 각종 유해물질에 노출됐고, 그 때문에 각종 호흡기 관련 질환에 시달려 왔다”며 “이 사건 재해는 망인이 장기간 노출되어 온 작업환경이 상당한 원인을 작용했다고 추정함이 상당하다”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금속법률원은 논평을 발표하고 “이번 판결은 업무상 재해의 입증책임을 완화한 대법원 판례를 직접적으로 원용한 의미 있는 판결”이라며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제도적 취지에 따라 결정기관인 근로복지공단이 입증하는 것으로 입증책임을 전환함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