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논쟁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

[주례토론회] ‘기후변화’에 관한 쟁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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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제기

기후변화에 대한 자연과학 연구는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가스가 지구 복사열을 차단한 결과 온실효과가 발생한다는 지구 온난화 이론을 기반으로 한다. 지구 온난화는 이제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다. 제19차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19)에서 발표된 글로벌 탄소 프로젝트(Global Carbon Project) 보고서는 2013년 화석연료의 연소에서 비롯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360억 톤이라는 기록적인 수치에 도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2012년 대비 2.1%, 교토의정서 기준년도인 1990년 대비 61% 증가한 수치다.

기든스(2009)는 기후변화가 불러올 엄청난 재앙의 가능성을 감안할 때 지구 온난화를 정치 의제의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제시한 기후변화의 정치학(politics of climate change)의 한 개념인 ‘최우선에 놓기’(foregrounding)는 정치 의제의 핵심에서 지구 온난화를 다룰 수 있는 정치 수단을 동원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미 국제사회는 1992년 기후변화에 관한 UN 기본 협약(UNFCCC: 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을 구성한 이래로 1997년 제3차 당사국 회의에서 참여국의 온실가스 배출목표 설정과 이의 준수를 강제하는 교토의정서를 이끌어 냈다. 이후 2007년 제13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의 쟁점은 교토의정서의 1차 의무감축이 끝날 2012년 이후를 어떻게 맞이할까에 있었다. 한국도 이른바 포스트 교토체제 논의에서 더 이상 예외 대상이 아니다.

한국은 1993년 기후변화협약에 가입한 후 1998년부터 4차례에 걸쳐 기후변화협약 종합대책을 수립했다. 이 가운데 제4차 종합대책(2008~2012년)은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 연구개발, 인프라 구축, 국제협력 등 5대 중점분야를 포함한다. 이명박 정부가 2008년 8·15경축사에서 제시한 새로운 성장모델인 ‘저탄소 녹색성장’은 기후변화의 시대적 요구와 맥을 같이 한다.

1997년 교토 의정서는 부속국가 1 국가는 2012년까지 1990년 기준 평균 5.2%의 온실가스를 감축할 것을 합의했다. 이후 교토 의정서 이행방안과 상세운영 규칙 및 세부 방식 등 관련 사항을 협상하느라 5년 이상의 시간을 지체했다. 2005년부터 진행된 교토 이후 체제에 대한 논의는 2009년 코펜하겐 논의에서 post-2012 합의 도출이 실패함으로써 이후 논의는 post-2020 논의로 전환되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국제 사회의 구속력 있는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 관한 논의를 더 연장시켜 국제 회의를 구실 삼아 온실가스 배출 감축 시간을 더 허비하겠다는 것이다. 2012년 온실가스 감축에 관한 새로운 내용이 진전되지 않은 가운데 교토 의정서는 2020년까지 연장되었다. 2009년 유엔 기후변화당사국 총회에서 post-2012 체제의 합의가 도출되지 않자, 2007년에 기후 정의 운동의 미동은 운동의 상승세를 타게 되면서 2010년 코차밤바의 세계 민중회의로 이어졌다.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국제사회의 미온적인 해결방안에 대해서 자연과학자 집단과 진보적 시민사회는 비판한다. 2009년 12월 코펜하겐에서 열린 기후회의가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나자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더는 선진국들에게 이 문제를 맡겨 둘 수 없다.”며 2010년 4월 볼리비아 코차밤바에서 ‘기후변화와 대지의 권리에 대한 세계민중회의’를 개최했다. 이 회의에서 결정한 ‘코차밤바 합의’는 기후 정의(Climate Justice)를 시급한 과제 중 하나로 결정했다.

2011년 post-2020 논의가 확정되었지만 이 논의 또한 부국과 개발도상국의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해 전망이 그리 밝지는 않다. 이런 가운데 2009년 코펜하겐 회의에서 기후 정의 운동이 부각되었듯이 2015년 파리 회의에서 기후 정의 운동은 또 다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2015년 파리 회의는 post-2020 체제의 제반 조건에 관한 논의가 마무리 되는 준비 단계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미국의 기후 운동은 7월 30일, 뉴욕 타임 스퀘어에서 기후변화정상회의를 압박하기 위한 기후변화민중행진(People’s Climate March)을 선포했다.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뉴욕에서 열릴 기후변화정상회의(UN Climate Summit)는 유엔 사무총장이 post-2020의 주요 사항에 합의할 것을 이해 당사국에게 촉구하는 정치적 자리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보자. 급작스런 기후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왜 기후변화의 원인인 온실 가스는 감축되지 않는 것인가? 기업의 친환경 광고에서 주장하듯이 기후변화는 온실가스‘만’의 문제인가? 현재 한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배출권 거래제는 불가피한 해법인가? 일부 환경단체에서 제시한 기후변화를 해결하려는 실천 방안은 올바른 방향일까? 2000년대 후반부터 제기된 세계 기후 정의 운동은 무엇인가? 이번 주례 토론은 ‘기후변화’에 대한 여러 질문을 통해 각 쟁점을 정리하고 실질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해볼 것이다.

쟁점 1 : 기후회의론과 지구 종말론

1980년대 미국 레이건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지구 온도는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는 기후부정론자와 지구 온도가 상승하더라도 그것은 중요한 사회 의제가 아니라는 기후회의론자의 입지가 강화되었다. 이들은 초기에는 지구 온난화를 부정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지구 온난화는 사실일지라도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라며 그 원인은 태양 활동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기후부정론자와 회의론자는 지구 온난화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이산화탄소를 다량 배출하는 산업계가 표적이 되는 것을 저지하려는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에서 나온 것이다.

이상 기온 등 급작스런 기후변화가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면서 기후회의론자의 정치적 영향력은 약화되었다. 이는 지구에 사는 사람들이 기후변화를 체감하게 되면서 문제의 심각성이 사회적으로 수용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2년 온난화 회의론자였던 리처드 뮐러(버클리대 교수)는 <뉴욕타임스>에 “나를 전향한 회의주의자라고 부르라”며 지구 온난화를 인정하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기후변화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진실이 되었고 이산화탄소를 다량으로 배출하는 산업계만이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은 이전만큼의 강도로 기후변화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이는 세계 최대 석유업체인 BP가 친환경 기업으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흘린 ‘악어의 눈물’에서 확인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기후회의론자들은 여전히 지구 온난화를 부정하거나 자연 현상의 일부로 해석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보자. 2013년 9월 영국 타블로이드판 보수 일간지 데일리 메일(Daily Mail)은 2012년과 2013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발표한 북극의 위성사진을 근거로 “이제 지구는 식고 있다! 북극해의 얼음이 1년에 60% 커지는 회복을 보인다.”며, “지구는 더 이상 ‘온난화’(warming)가 아니라 ‘냉각화’(cooling)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일부 한국 언론은 이 기사의 진위 여부를 따져보지도 않고 이 기사가 미국 항공우주국의 입장인 것처럼 재빠르게 보도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후회의론자의 입지가 미국 사회만큼 강하거나 탄탄하지는 않다. 하지만 대다수 기자들은 기후회의론자의 주장을 여과 없이 그대로 수용한다.

이 기사가 잘못되었음을 정정하는 기사에서조차 지구 종말론에 의지하는 언론의 선정성을 조홍섭 기자가 잘 비판하고 있다.

북극해의 얼음 면적이 지난해보다 늘어난 건 사실이지만 얼음이 줄어드는 장기 추세는 흔들리지 않고 있으며, 더구나 지구 온난화가 중단되고 빙하기가 온다는 아무런 증거도 없다.……다행히 북극해 얼음 감소에 관한 보도는 12일 들어 잠잠해졌다. 이날 오전 <한국방송> 인터넷판은 나사의 얼음 증가 사진을 소개하면서도 오미림 국립기상연구소 박사를 인터뷰해 “북극 얼음 면적은 줄었다 늘기를 반복하면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고, 장기추세로 봤을 때 해빙의 면적이나 부피가 모두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올해 면적이 다소 늘어났지만, 일시적인 현상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아뿔싸, 어찌된 일인지 내용을 제대로 짚은 이 기사에도 전날의 모든 잘못된 보도와 똑같은 제목이 달렸다. 기사는 “지금 추세라면 지구 기온이 2도가량 상승하는 2040년대엔 북극의 빙하는 모두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습니다”라고 마무리했는데, 제목은 “북극해 얼음, 지난해보다 60%↑…빙하기 오나?”라고 적고 있다.(강조 인용자).2

데일리 메일 기사는 일시적 국면에서 얼음 면적이 소폭 증가한 자료를 기반으로 북극해 얼음 면적이 줄어드는 장기 추세를 부정한 것이다. 이는 마치 주류경제학자가 미국 신경제로 인해 경기가 소폭 호전된 것을 가지고 1990년대 후반 경제위기는 회복되었다고 호언장담하던 모습과 유사하다.

지구 온난화를 지구 종말론으로 그리는 할리우드식 재난 영화도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일깨우기보다는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지구 온난화라는 진실의 거부로 나타날 수 있게 한다. 지구 종말론에서는 평범한 인간의 능동적인 역할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무기력하게 기후 종말을 기다리거나 구세주 혹은 탁월한 영웅의 등장만을 기다린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지구 온난화가 현실에서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게 되며 이는 결국 지구 온난화 거부로 나타난다.

지구 종말론적 접근은 기후변화는 단지 자연 현상의 일환일 뿐이라는 경향을 강화시킨다. 기후변화는 사회 재앙이 아니라 인간의 능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자연 재앙임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지구 종말론과 기후회의론은 매우 유사하다. 두 입장은 기후변화가 자연 현상임을 강조하고 거대한 자연 변화에 대해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인간 사회의 한계에 대해 강조한다. 따라서 지구 종말론과 기후회의론은 주장하는 내용은 다르지만 기후변화의 원인과 해결 방안은 비슷하다.

언론의 선정성은 기후회의론과 지구 종말론 사이에서 시계추처럼 작동한다. 이렇게 기후변화에 접근하다 보면 새로운 자료와 반증 자료가 나올 때마다 우왕좌왕하면서 기후현상을 다루게 된다. 이는 사회가 기후변화에 대해 인간이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모두 경계해야 한다.

쟁점 2 : 온실가스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문제는 그 ‘양’이다 _ 발상의 전환이란 함정

다량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기업들은 1990년대 중후반부터 지구 온난화 문제를 부정하던 태도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기후과학자들과 환경운동이 줄기차게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제기한 덕분에 1997년 교토의정서가 채택되었고 기후변화 문제는 국내외에서 부정할 수 없는 중대한 사회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석탄, 석유, 자동차, 철강 등의 기업은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탄소 산업으로 이윤을 뽑아내면서도 대외적으로는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친환경 에너지원의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2013년 9월 에너지 산업을 대표하는 SK이노베이션은 “석탄에게 물었다. ‘사람들은 왜 너를 공해라고 생각할까?’”로 시작되는 광고를 선보였다. 후속 광고에서는 “이산화탄소에게 물었다. ‘왜 너만 보면 지구 온난화를 이야기일까?’”

‘그린콜’ 편: 2013년 상반기캠페인이 SK이노베이션의 기업 정신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하반기캠페인은 질문을 통해 만들어낸 혁신의 결과물을 소개한다. 그 첫 번째 광고는 ‘그린콜’ 편이다. 사람들은 석탄에 대해 ‘공해를 유발하는 부정적인 물질’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이러한 사람들의 편견에 질문을 던지고 석탄을 석유, 전기, 천연가스 등의 청정에너지로 바꾸는 ‘그린콜’을 개발하고 있다. 광고에서는 석탄이 가치 있는 에너지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독특한 콤마기법으로 보여준다. SK이노베이션이 석탄에게 질문을 던지면 석탄이 가루가 되었다가 마침내 다양한 청정에너지로 재탄생하는, 심플하면서도 임팩트 있는 광고이다.

‘그린폴’ 편: 하반기 캠페인의 두 번째 소재, ‘그린폴’ 편이다. SK이노베이션은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에게 질문을 던지고, 친환경 플라스틱으로 바꾸는 ‘그린폴’을 개발 중이다. ‘그린콜’편과 동일한 광고의 구조, BGM, 기법을 사용해 캠페인에 통일성을 주었다. 시커먼 이산화탄소가 친환경 플라스틱으로 바뀌어가는 모습을 콤마기법으로 심플하면서도 임팩트 있게 표현했다.3

이 광고는 기후변화의 주요한 원인인 화석연료, 이 물질에서 발생되는 이산화탄소를 착한 물질로 변신시켰다. 왜 석탄이 나쁜 공해물질로 인식되고 이산화탄소가 지구 온난화를 연상시키는가? 광고는 발상을 전환하면 두 물질을 얼마든지 좋은 것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4

그러나 광고에서는 생산방식과 그 과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다량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는 생산과정에는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기업의 팻말만이 드리워져 있다.

1920년대 선도적 여성 카피라이터였던 헬렌 우드워드(Helen Woodward)는 효과적인 홍보 문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생산과 관련된 장소는 보여주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5 기업 광고는 생산 공정과 지저분한 현장을 직접 보여주지 않는다. 소리 없이 세상을 움직이는 포스코는 쇳가루로 뒤덮인 인근 주변 마을을 보여주지 않고 환경과 공존하며 푸른 세상을 만들어 가는 GS 칼텍스는 정유공장의 시커먼 기름덩어리와 오염 물질을 노출시키지 않는다. 기업의 이미지를 높이는 광고를 통해 기업은 더 많은 상품을 판매하면 그만이다. 그 이상의 일들은 그들이 관여하거나 고려할 대상이 아니다. 광고와 마찬가지로 환경 경영은 (개별 기업이 의도했건 하지 않았던 간에) 자본의 논리에 종속되고 결국 지구 생태계를 멍들게 하고 노동자의 생명을 앗아간다. 이러한 생산방식은 노동자와 자연환경을 소외시킨다(김민정, 2007 참고).6

여기서 두 가지에 주목해 보자. 첫 번째로 석탄이 공해물질이라는 인식은 왜 생겨났는가? 이상 기온 등 갑작스런 기후변화의 원인으로 지목된 온실가스를 발생하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지구 온난화를 유발하는 물질은 이산화탄소를 포함한 온실가스이지만 이산화탄소 그 자체가 아니라 이산화탄소의 ‘양’에 있다.

인류가 본격적으로 석탄과 석유, 가스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지난 200년 동안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대폭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자들이 처음 이산화탄소 농도 측정을 시작했을 때인 1958년의 농도는 316ppm이었고, 1989년 350ppm까지 상승했다. 그리고 나뭇잎이 무성한 여름을 제외하면 2013년 이후에는 400ppm을 넘어서고 있다. 그린란드와 남극의 빙하에서 얼음 기둥을 채취한 분석에 의하면 빙하기 180ppm, 산업혁명 이전 시기의 농도는 280ppm으로 추정된다. 자본주의 산업화 이후 짧은 기간 동안 급속한 이산화탄소 양의 증가를 주목해야 한다.

자연환경의 변형은 사회 발전 과정에서 불가피하다. 핵심은 자연환경 변형의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이다. 인간의 필요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기업의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한 것인가가 자연환경 변형의 내용과 규모, 방법 등을 결정할 것이다. 기후변화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이산화탄소를 다량으로 배출하는 산업방식이 문제의 핵심이다. 하지만 친환경 기업 광고는 이산화탄소의 다량 배출이라는 핵심 문제는 외면한 채 친환경 에너지나 제품을 생산하는 것으로 지구 온난화라는 문제가 해소되는 것처럼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여 기업의 책임을 회피하게 한다. 그리고 지구인 모두에게로 그 책임을 돌리게 한다.

쟁점 3 : 기후변화법 제정 운동

이제 심각해진 기후변화를 누구나 체감한다. 급격한 기후변화의 직접적인 원인 물질은 이산화탄소를 포함한 온실가스라는 사실은 상식이 되었다. 그렇다면 온실가스를 어떻게 감축할 수 있을까?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곳이 어디인가를 찾아야 한다.

2012년에 발표된 <국가 온실가스 인벤토리 보고서>에 따르면 “온실가스 증가율에 기여하는 분야별 기여도를 분석한 결과 2010년도의 국가 배출량 9.8% 증가분에 대해서 에너지 분야가 9.0%p, 산업공정이 0.8%p로 2010년의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 원인은 대부분 에너지와 산업공정 분야에서 기인”됐다고 밝혔다. 2010년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도 에너지(85.3%)와 산업공정(9.4%)에 집중되었다. 전년 대비 에너지(소비)는 화력발전과 철강업 배출량의 증가로 10.6% 상승했고 반도체, 디스플레이 산업의 배출 증가로 9.1% 높아졌다.

여기서 국가 온실가스 배출의 주된 원인이 산업용 에너지와 산업공정이라는 점이 확인된다. 따라서 온실가스를 단기간에 효과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에너지 부분과 산업 공정에 대한 규제와 이 두 부분에서의 혁신적인 배출 감소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제 사회에서 다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면서 산업혁신을 이룩한 부자 국가의 역사적 책임이 있듯이 국내 배출량의 최대 기여자인 석탄, 철강, 시멘트, 자동차 산업계는 그 책임을 져야 한다. 사회운동은 산업계가 실질적으로 책임을 지고 친환경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국내 환경운동은 어떻게 기후변화운동을 진행하고 있을까? 2013년 하반기에 시작된 빅 애스크(Big Ask)운동7을 통해 살펴보자. 빅 애스크는 ‘큰 요구’라는 뜻으로 2005년 영국에서 시작된 국민이 발의하는 ‘기후변화법 제정 운동’이다. 취지는 “기후변화법을 만들어 사람들이 법을 지키게 하고, 법이 기후를 지키게 하자.”에 있다.

이 운동은 1990년대 후반 교토의정서를 시작으로 한 국제 협약이 기후변화를 막는데 효과적이지 않았고 국내에서도 2008년 저탄소 녹색 성장 정책이 온실가스를 감축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던 점에 착안하여 이제는 시민이 자발적으로 실질적인 방안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몇몇 정책입안자가 만든 법이 아니라 시민들이 법안의 주요 내용을 선택하고 적극적으로 제안할 것을 주장한다. 다른 한편 기후변화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수동적인 시민의 역할을 넘어 능동적인 시민의 역할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직접 민주주의를 부각시키는 측면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동안 시민 참여가 저조했기 때문에 기후변화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일까? 법을 만드는 시민(주체)의 능동성이 기후변화의 주범을 찾아 책임을 엄격하게 지울 수 있을까?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는 올바른 개선방안은 제시된 것일까?

빅 애스크 네트워크가 제시한 기후변화법이 담아야 할 기본 내용 7가지를 살펴보자.

- 미래세대에 대한 현 세대의 책임과 의무를 명시해야 합니다.
- 기후변화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고 식량, 에너지, 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 2020년은 물론 2050년까지를 내다보는 중장기적인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명확하게 제시해야 합니다.
- 중앙정부와 지자체, 기업, 시민 등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담당해야 할 역할을 분명하게 담아야 합니다.
- 기후변화로부터 사회적 약자를 최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약자 보호우선의 원칙’을 강조해야 합니다.
- 기후변화와 관련된 모든 정보는 투명한 방식으로 제공한다는 ‘투명성의 원칙’이 담겨야 합니다.
- 지금 이 순간에도 기후변화로 삶이 파괴되고 있는 세계 시민들과의 연대와 협력의 정신을 명시해야 합니다(강조 인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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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부와 지자체, 기업, 시민 등 사회 구성원들이 담당해야 할 역할을 ‘분명’히 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기후변화의 명백한 책임은 산업계에 있다. 그렇다면 다량으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기업은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하고 강력하게 규제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기후변화대응기본법’은 각 사회 구성원들의 역할을 병렬적으로 제시하는데 그칠 뿐, 정작 기후변화를 발생시킨 주범을 명확히 부각시키거나 ‘강력하게’ 책임을 묻고 있지 않다. 이는 기후변화 해결의 쟁점을 흐리게 한다. 지구인 모두가 환경오염 유발자가 아닌가? 기업이 만들어낸 생산물을 누가 소비하는가? 그렇다면 소비자는 책임이 없는가? 등 그들이 던지는 질문은 현재 발생한 기후변화의 책임을 주목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러한 우려는 빅 애스크 운동에서도 나타난다. “빅 애스크 운동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요?”에서 제시하는 서명하기와 ‘나는 요구합니다(I Ask)’, 인증 사진 올리기의 3가지 실천 방안은 모두 개인적인 실천에 중점을 두고 있다.

빅 애스크 7가지 약속 실천하기 : 빅 애스크는 정부와 국회에 법률 제정을 요구하는 운동이지만 우리 스스로의 실천을 다짐하는 운동이기도 합니다. 빅 애스크의 약속은 7가지입니다.
첫째, 가까운 곳에서 생산한 유기농산물로 밥상을 차리겠습니다. 둘째, 육식을 줄이기 위해 ‘고기 없는 월요일’을 실천하겠습니다. 셋째, 대기전력을 줄이고 에너지효율이 높은 제품을 구입하겠습니다. 넷째, 승용차 이용을 자제하고 대중교통수단과 자전거를 이용하겠습니다. 다섯째, 양치는 컵으로, 샤워는 짧게 하는 습관을 갖겠습니다. 여섯째, 쓰레기를 줄이고 아나바다 운동에 참여하겠습니다. 일곱째, 기후변화 대응과 재생에너지 확대에 적극적인 정치인을 지지하겠습니다.


빅 애스크 7가지 약속 실천도 (의도하든 그렇지 않았든 간에) 기후변화의 핵심 주범인 산업계와 기업의 영업활동을 주목하지 않는 정치적 효과를 낳는다. 이는 기후변화법 제정운동과 마찬가지로 기후변화를 해결하기 위해서 모두의 힘이 필요하다는 명목 아래 실질적으로 온실가스 배출기업의 책임을 묻지 않게 만든다. 기후변화 운동이 기후변화를 일으킨 핵심 주범에 대한 비판을 피해가는 이데올로기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시민운동이 기후변화 운동을 개인의 실천으로 강조하면 할수록 역설적이게도 개인의 참여를 저조하게 만들 수 있다. 개인 차원에서 빅 애스크에서 제시한 7가지 실천은 얼마든지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애써 시민운동에 힘을 실어주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이는 오히려 취지와 달리 시민의 적극성을 발휘하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

집단으로 사회운동을 고민하는 것은 개인 실천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거나 개인 실천이 사회구조나 지배 권력에 맞서 저항하기에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모여 사회집단의 창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운동 조직에서 개인의 실천만을 강조하게 되면 개인을 수동적으로 만들 수 있다. 기후변화의 문제는 사회 문제이다. 따라서 사회 구조적인 측면에 주목해야 한다.

‘기후변화법 제정 운동’을 펼치는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은 2월 18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산업계의 배출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 현 상태라면 2020년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 대비 30% 목표 달성이 어렵다는 말씀인가요?
- 정책이 바뀌지 않으면 어렵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가 어디에서 이뤄지고 있나 분석해보면 결국 산업이에요. 그런데 산업 부문의 배출량이 늘어나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아줄 정책이 없어요.”
* 산업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어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우선 전력가격부터 올려야 합니다. 정부가 전기값이 올라가면 큰 타격을 받을 일부 업종 때문에 부담스러워하는 것이 이해는 갑니다만, 그러면 다른 나라에선 어떻게 하고 있는지 봐야 하잖아요. 선진국들은 그런 부문엔 다른 방식으로 지원해주고 전체를 망가뜨리지는 않는데, 우리는 제도 자체를 무르게 만들거나 아예 하지 않거나 합니다. 정부가 경제계에서 경쟁력 타령을 하면 꼼짝 못하는 게 문제입니다.”
9

산업부분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우선적 방안으로 전력가격, 전기값 인상을 언급한다. 물론 정부는 기업의 부담을 걱정하며 그마저도 실행해 옮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산업계의 전기값 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약한 처방전이다. 기업의 편의를 봐주는 방식이나 미온적인 규제로는 산업계의 온실 가스 배출량 대폭 감축을 강제하기 어렵다. 기업의 사정을 고려하든 안 하든 기업의 입장에서는 기존에 ‘부담’하지 않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으로 느낄 뿐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기업의 이익 추구는 불변의 법칙이다. 산업 부분의 배출량을 직접 규제하는 강력한 정책이 필요한 시점에서, 일부 환경단체는 느슨한 정책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정책이 실효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정책의 내용뿐 아니라 정책을 실행해 옮길 수 있도록 하는 사회 세력관계가 중요하다. 강력한 정책 규제가 작동되려면 대중의 정치력을 동원해야 한다. 지배계급이 추진하려던 정책의 내용을 수정한 것 또한 대중의 힘이다. 2008년 저항의 촛불 국면에서 이명박 정권은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4대강 살리기 사업이라고 명칭을 바꿀 수밖에 없었던 일을 기억해보자. 이명박 정권이 대운하 사업의 근간을 포기 하지는 않았지만 내용을 축소하고 숨기기 위해 ‘겉포장’을 하게 만든 것은 결집된 대중의 힘이었다. 2008년 저항의 촛불 교훈은 지배계급의 ‘겉포장’을 뛰어넘는 수준인 지구 온난화를 실질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더욱 강력한 대중 운동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빅 애스크 운동은 대중에게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리면 언젠가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정책과 법안을 제정할 수 있을 것이라 가정하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면 정부 정책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현실에서의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를 외면하는 것이다. 선출되지 않은 지배계급이 기업을 통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대중에게 알리는 작업은 기득권에 대한 도전이 병행될 때에만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정치와 계급, 계층을 초월해서 ‘지구인’이라는 관점에서 기후변화의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지 못하게 한다. 모두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라는 논리는 불평등한 사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최대 온실가스 주범자인 기업과 부자 국가에게 변명의 기회와 도피처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지구인 관점은 사태의 진실을 올바로 파악하지 못하게 한다.

대중이 기후변화 문제에 무관심하기 때문에 기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식의 주장 역시 혼란을 가중시킨다. 대중의 무관심이 기후변화의 원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너무 많은 온실가스 배출에 있다. 그리고 온실가스를 다량으로 배출하는 집단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해결 지점은 온실가스를 다량으로 배출하는 집단에게 배출량을 줄일 것을 적극적으로 강제하는 데 있다.

쟁점 4 : 정부의 대응책

2007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이제 대한민국은 환경만을 고집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환경을 간과해서는 더욱 안 된다. 환경의 양면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혜안을 갖고 보수와 진보를 함께 아울러 조율하는 통합론적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 기업에게 부담을 주는 극단적인 진보도 아니고 기업을 비호만 하는 극단적인 보수도 아닌 대통령이 진정한 환경 대통령이다(신현국, 2007).”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흐름을 수용한 이명박 정권은 저탄소 녹색성장론을 내놓았다.

2008년 이명박은 ‘광복 63년 및 대한민국 건국 60년 경축사’에서 “저탄소 녹색성장을 새로운 60년의 비전으로 제시한다.”고 말했다. 이는 녹색 기술과 청정에너지를 성장의 동력으로 삼아 일자리를 창출하고 당면한 에너지 위기와 경제위기를 타개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녹색성장을 저탄소화와 녹색산업화에 기반을 두고 경제성장력을 배가시키는 신성장 개념으로 정의한다. ‘저탄소화’라는 것은 경제활동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여 지구촌의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이를테면 ‘수비적인 녹색화’를 의미한다. 그리고 ‘녹색산업화’는 온실가스 감축이나 에너지 효율 제고, 신재생에너지 개발 등과 관련된 이른바 녹색 기술 그리고 환경친화적인 비즈니스 모델 등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함으로써 경제성장의 원동력으로 삼는 ‘공격적인 녹색화’를 말한다(이지훈 외, 2008).

탄소 배출권 시장은 ‘녹색선도 시장’을 창출한다. 선도시장이란 기술이나 규제의 표준이 설정되는 시장으로, 일단 표준이 설정되면 추후에 다른 국가도 채택하는 것이 불가피하다(이지훈, 2009). 탄소 배출권에 대한 표준을 설정한 국가 및 이에 참여하는 기업은 향후 시장을 주도하면서 선도자의 이익인 특별잉여가치를 획득할 수 있다. 예를 들면, EU의 경우 강력한 환경 규제와 법제정을 통해 선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EU 의회는 2007년 10월 자동차의 주행 거리 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현재의 140g/km에서 2015년부터 125g/km으로 제한하는 규제안을 제정했다. 이로써 이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자동차는 수입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미 저이산화탄소 배출량 차량의 기술을 획득하거나 기술력을 확보한 기업은 국가적 규제를 통해 일정정도 특별잉여가치를 확보할 수 있는 기간을 보장 받은 셈이 된다.

이명박 정권에 뒤를 이은 박근혜 정권은 저탄소 녹색성장에 방점을 두고 배출권 거래제를 통한 이산화탄소 감축을 핵심 기조로 잡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환경부 장관은 “내년부터 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해서 배출할당제를 시행합니다. 자동차 쪽에서 34%를 줄여야 하는데 큰 차의 배출량이 더 많습니다. 따라서 경차, 소형차의 비중을 늘릴 수 있도록 하는 저탄소 차 협력금제도를 내년부터 시작하려고 합니다.”10라며 기후변화의 대응책으로 배출권 거래제를 강조한다.

총량제한 배출권 거래제는 빅 애스크 운동의 ‘기후변화대응기본법(초안)’ 제26조에도 “정부는 효율적으로 국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온실가스 배출권을 거래하는 제도를 운영할 수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운동 진영 내에는 배출권 거래제 도입에 반대하는 흐름도 존재한다.11

배출권 거래제의 핵심은 거래제에 대한 찬반 논쟁이 있으므로 신중하게 지켜보자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격 기제, 시장 논리에 근거한 정책으로 획기적인 온실가스 감축이 가능한가에 있다.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한 유럽에서는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배출권 거래제가 무용지물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배출권 거래제가 규제만큼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은 이상 기후로 인한 세계 재앙이 감소하기는커녕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입증된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정부 정책의 연장선일 뿐인 배출권 거래제가 해결책이라고 일부 환경단체조차 주장하고 있다. 이미 희망도 없고 가망성도 없는 배출권 거래제는 더 이상 대안이 아니다. 실질적으로 효과가 있는 규제를 통한 감축을 요구해야 할 때이다.

박근혜 정권은 규제 완화를 국정 최대의 과제로 삼고 있다. 그러나 국민 건강과 안전 등은 국가의 관리·감독이 필요한 국가의 공적 책임이다. 이는 역설적 상황을 만든다.

배출규제의 기본 방식이 70년대 말 도입되었던 탑다운 규제 방식이다 보니 과학기술의 진보를 반영하지 못합니다. 과학기술의 진보를 잘 반영하면 경제도 살리고 환경도 보전할 수 있습니다. 환경을 지킬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입지 제한을 과감하게 푸는 것은 경제도 살리고 환경도 살리는 방식으로,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관리하는 것입니다(강조 인용자).12

기존 규제 방식이 과학기술의 진보를 반영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하지만 속내는 환경 산업이 새로운 경제 동력인데, 규제 때문에 제약을 당한다면 경제는 뒤처지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기업이 경제 활동을 하는데 있어서 환경 규제는 걸림돌이라는 것이다. “환경을 지킬 수 있는 범위 내에서”라는 단서 조항이 있지만 현재와 같은 경제 성장 방식은 환경 보호와는 양립할 수 없다. 경제 위기 때마다 환경 규제를 완화하는 방식으로 기업하기 좋은 여건을 만들어온 정부는 결국 경제 성장에 우선권을 주었다.

환경 산업을 성장의 동력으로 취급하는 환경 관리주의는 결국 경제 성장에 주안점을 두는 것이며 이렇게 되면 환경 보호는 뒷전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다. 예상했던 바이지만 이러한 환경 관리주의의 폐해는 이명박식 저탄소 녹색성장의 정책에 따라 진행된 4대강 사업에서 나타난 생태계 파괴에서도 확인되었다. 2월 25일 발표한 박근혜 정권의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서 환경 산업을 새로운 경제 동력으로 언급했다.

기후·환경·에너지 등 범세계적인 문제에도 선제적으로 대비하여 새로운 사업을 창출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청정 화력과 친환경자동차, 탄소 포집·저장(CCS) 등에 기술개발 투자를 확대하여 민간의 혁신활동을 지원하고 소각장, 매립지 등 기피시설을 ‘親환경 에너지 타운’으로 조성하는 시범사업도 금년부터 시작해서 점차 확대시켜 나갈 것입니다(강조 인용자).13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핵심은 기업의 이윤추구에 방해가 되는 규제를 완화한다는 것이고 공공재의 공급 및 관리에 있어서 기업 참여를 더욱 활성화시키겠다는 것이다. 경제 성장을 우선에 두는 환경 관리주의는 박근혜의 경제혁신계획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규제 완화로 새로운 사업과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하지만 “규제 완화란 곧 환경 재앙”이다. 박근혜식 규제 재편(조정)이 친 기업을 향하고 있는 한 규제 완화는 심각한 환경 문제를 발생시킬 것이다. 인간 생존 기반을 파괴하는 시장 논리를 확대하려는 규제 완화는 인간과 자연을 위한 지속가능한 사회의 장애물이다. 기업의 영업 행위를 자유롭게 해줄수록 지구 생태계는 점점 더 악화되는 방식이 지금의 경제 논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환경 규제 완화를 환경 산업 창출로 보는 경제 논리로는 지구 온난화를 해결할 수 없다. 그리고 환경 위기의 해결 방안으로 제시되는 시장 동력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악화일 뿐이다.

결론

교토 의정서 등 온실가스 배출 감축 협정의 역사가 15여 년을 훌쩍 넘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은 줄어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2013년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의 제5차 평가보고서 제1실무그룹 <정책결정자를 위한 요약보고서>는 “기후시스템의 온난화는 명백하며, 1950년 이후 관측된 많은 변화들은 지난 수십 년에서 수천 년간 전례가 없었다. 대기와 해양은 따뜻해지고 눈과 빙하의 양은 줄어들고 해수면은 상승하였으며 온실가스의 농도는 증가하였다.”라고 기후변화에 대해 설명한다.

이제 기후변화는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자연과학의 자료는 지구 온난화의 징후를 포착하고 문제 해결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 자연 현상이 아닌 인간의 활동에 있고 온난화의 주된 원인이 온실가스 배출이라는 것도 논란의 여지가 없어진 지 오래다.

또한 <정책결정자를 위한 요약보고서>는 “온실가스가 계속 배출되면 온난화가 더 많이 진행되고 기후시스템의 모든 구성요소가 변화하게 될 것이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서는 온실가스의 배출량을 상당히 지속적으로 줄여야 한다.”고 밝힌다. 이는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으면 지구 온난화는 가속화 될 것이기 때문에 온실가스를 “상당히” “지속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시민운동진영과 정부는 자본의 현행유지(Business as usual)라는 틀 속에서 해결책을 모색한다.

심각한 지구 온난화에 대응하는 우리 사회의 방안은 미흡하기 짝이 없다. 빅 애스크에서 제안하는 온실가스 감축목표치도 국제 사회의 요구 수준보다도 낮다. 하승수(2014)는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관련하여 2020년의 총 배출량을 2005년 대비 4% 감축하고 2050년까지 2005년 대비 50% 이상 낮추도록 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의 심각함을 생각한다면, 감축목표는 더 강하게 설정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2050년의 감축목표는 2005년 대비 80% 이상 감축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진우(2014)도 “감축잠재량은 차치하더라도 선진국이 감축목표로 제시하고 있는 2050년까지 1990년 대비 80% 감축에 크게 못 미치는데, 이 수준이라면 사실상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가 개도국 정도의 감축목표만 수용하겠다는 선언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 효과”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렇듯 현재 추진 중인 ‘기후변화대응기본법’의 감축 목표치는 심각해지는 온난화를 멈추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온실가스 배출업계에 대한 강력한 규제이다. 규제 완화를 지상최고의 목표로 삼고 있는 박근혜 정권은 지구 온난화를 더욱 부추길 것이다. 이에 맞서 진보 사회운동은 과다 배출업계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현실화될 수 있도록 집단적 사회운동을 조직하여 실질적으로 지구 온난화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만 한다.

각주
1) 이 글은 <진보평론>(2014년 여름호)에 실린 글을 소폭 수정한 것이다.

2) <한겨레신문> 2013.9.12.

3) http://www.skinnovation.com/pr/adv_01.asp

4) SK이노베이션의 광고와 유사한 접근 방식이 2000~2007년 동안 포스코의 광고다. ‘산업의 쌀은 쇠’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철은 산업의 근간을 이룬다. 휠 없는 자전거를 타고 가는 할아버지와 손자의 모습을 담은 ‘소리 없이 세상을 움직입니다.’라는 문구는 철의 유용성을 잘 표현했다. 철의 다양한 사용가치를 부각시켜 포스코는 감동의 스토리를 만들어 냈다.

5) 어떤 제품을 광고하게 되더라도 이 제품이 만들어지는 공장은 절대 보이지 말라.……일하고 있는 사람도 보지 말라.……왜냐하면 그것이 무엇이든 실제로 존재하는 내부의 진실을 알고 나면 막상 제품의 판매를 결정하는 제품의 특성에 대해 아무것도 쓸 수 없기 때문이다(스튜어트 유엔, 1998).

6) 인간소외란 기본적으로 개개인의 자율적인 ‘통제력이 상실’되는 것을 뜻한다. 개개인의 자율적인 통제력이 외부 세력에게 이전되어 개인 스스로의 목표와 의도는 무시되고 개인은 외부 세력의 결정에 종속되는 것이다. 소외는 의식주를 비롯한 물질적 생산에서 비물질적 생산인 예술 창작까지 모든 인간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 이는 소외가 단지 감정이나 의식의 문제가 아니라 물질적·경제적 사실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노동자는 자신의 손으로 만든 생산물을 직접적으로 소유하지도 통제하지도 못한다. 노동은 노동자 자신의 것이 아니라 타인의 것이고 노동할 때 그는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지배를 받는다. 노동자가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많이 생산할수록 그는 낯설고 적대적인 세계의 힘인 소외를 강화시킨다. 자본주의는 노동력을 착취할 뿐 아니라 인간 노동을 대상화·상품화하며 생산과정에서 노동자의 능동적 참여를 배제함으로써 인간 삶의 소외를 낳는다. 인간노동으로 창조된 모든 대상은 판매 가능한 상품이 되며 결국 모든 인간관계가 사물화된다. 그에 따라 상품 만능주의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게 된다(김민정, 2013).

7) 빅 애스크 네트워크에는 2014년 1월 현재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환경정의, 여성환경연대, 한살림, icoop 생협, 전국지방의제21, 푸른아시아, 인드라망, 환경교육센터 등 20여 단체와 국회의원 18명, 지방자치단체장 5명, 2000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하고 있다. 사무국을 맡은 곳은 환경운동연합과 기후변화행동연구소이다.

8) http://bigask.kr/?page_id=5

9) “산업 전기료 안 올리면 ‘2020년 온실가스 30% 감축’ 어렵다”, <한겨레신문> 2014.2.17.
http://ecotopia.hani.co.kr/181295

10) [KBS뉴스라인] 2014. 2. 21.

11) 배출권 거래제는 시민사회 내에서도 이견이 큰 사항으로, 기후변화대응 기본법에 제도 도입을 규정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려움. 빅 애스크 캠페인에 참여하는 네트워크 단체 중에서도 배출권 거래제에 반대 의견이 충분히 있을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논의와 사회적 의견 수렴이 필수적임(이진우, 2014).

12) [KBS뉴스라인], 2014. 2. 21.

13) “경제혁신 3개년계획 담화문”, 청와대뉴스, 2014.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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