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포스코는 인도 오디사(Odisha) 주정부와 MOU를 맺고 오디사주 해변에 딩키아(Dhinkia)란 마을을 중심으로 하는 부지에 거대한 제철소를 세우는 계획을 발표했다. 인도에서 생산된 철광석을 제철소로 가져와 철강을 생산하는 초대형 제철소를 건립하는 이 프로젝트는 오디사 주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시작됐지만, 사업 초기부터 갖은 문제들이 발생했다. 포스코가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선주민들의 규모도 제대로 모르는 상황에서 사업을 시작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조상 대대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던 선주민들은 제철소 건설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선주민에 대한 인권침해 및 환경파괴를 포함한 각종 이슈가 불거지게 된 것이다. 이들은 토지수용을 반대했고, 그 과정에서 제철소 건설에 찬성하는 주민들과 반대하는 주민들 간의 갈등과 폭력이 이어졌다. 공권력에 의한 폭력도 발생했다. 경찰과 주정부가 고용한 용역들의 폭력으로 인해 마을에선 사망자와 부상자가 끊이지 않고 발생했다.
경찰 진입을 막기 위해 마을 입구에서 아동을 포함한 주민들이 길에 엎드려 농성하는 사진이 보도되면서, 포스코의 제철소 프로젝트는 국제적인 인권침해 사안으로 부각했다. 급기야는 2013년 10월, 이례적으로 유엔 인권특별보고관들이 인도 정부와 한국 정부 및 포스코에 제철소 프로젝트로 발생하는 인권침해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UN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포스코에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대부분의 한국 언론은 이를 외면했고 이 사안은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국제 인권단체들을 포함해 국제민주연대를 비롯한 한국 시민사회는 한국OECD가이드라인 연락사무소에 진정하는 등의 방식으로 2008년부터 이 문제를 함께 대응하고 있다(1). 주민을 포함한 인도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저항이 계속되고 국제 사회의 여론이 악화하자 결국 포스코는 제철소 건설은 시작도 하지 못한 채 2017년 사업 철수를 선언한다. 인권침해 기업이란 오명만 뒤집어쓴 채였다.
포스코가 떠난 후
포스코가 사업을 철수한 이후, 딩키아 주민들은 자신들의 고난이 끝날 거라 믿었다. 이 프로젝트에 대응해왔던 한국 시민사회도 포스코가 무려 12년을 끌긴 했지만 철수를 결정한 이후에 딩키아 주민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딩키아 주민들의 고난은 끝나지 않았다. 인도 철강기업인 진달(Jindal)이 포스코의 제철소 프로젝트를 이어갈 것이라 밝혔기 때문이다.
이미 12년간의 투쟁으로 인해서 딩키아 주민들에게는 오디사 주당국이 발부한 소환장과 체포영장이 수도 없이 쌓여있는 상황이었다. 주민들은 이로 인해 마을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감옥 같은 봉쇄상황을 계속 견디고 있었다. 특히, 오디사 주정부뿐만 아니라 친기업정책을 노골화하는 모디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 딩키아 주민들의 고립은 더욱 가속됐다. 포스코가 사업을 추진할 때는 한국 시민사회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이를 ‘초국적기업의 인권침해 문제’로 바라봤다. 하지만 인도 기업이 제철소 프로젝트를 시작하자 이 문제는 인도의 국내 문제가 됐고, 오히려 국제사회의 관심과 연대마저 사그라들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2022년 10월부터 인도 오디사 주정부와 진달은 강제적인 토지수용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됐다. 주민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경찰과 진달이 고용한 용역 직원들은 마을에 들어와 가옥을 부수고, 주민들 및 반대 활동가들을 체포했다. 2022년 10월부터 12월까지 10명이 넘는 주민들과 활동가들이 지속적으로 체포됐고, 주민들은 계속되는 체포와 폭력을 피해 마을을 떠나 피신하는 상황에까지 처하게 됐다(2).
인도 시민사회도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딩키아 마을을 경찰이 에워싸고 봉쇄하고 있는 상황에선 외부의 연대와 지원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오래 지속한 사안이라 여론도 움직이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인도 활동가들은 한국에서 목소리를 내주기를 간절히 요청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책임
인도에서 수천 명의 주민들이 10년 넘게 한국기업으로부터 고통을 받아왔음에도, 현지를 취재하거나 이 사안을 다룰 때, 주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전한 국내 언론 기사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필자 역시도 두 차례 현지를 방문하고, 포스코 프로젝트로 고통받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알리려고 노력했지만 언론의 외면으로 제대로 보도되지 않는 것에 실망했던 기억들이 있다.
한국 언론의 무관심보다 심각한 건 한국 정부와 포스코의 태도였다. 한국 정부는 2012년 한국과 인도 및 국제인권단체가 공동으로 진정한 포스코의 OECD가이드라인 위반 사안에 대해 포스코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수용해 기각했을 뿐만 아니라, UN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우려에 대해서도 성의 없는 태도로 답변했다. 포스코는 자신들이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게 되자 부랴부랴 윤리경영에 국제사회의 인권기준을 준수하겠다는 내용을 삽입했으나, 포스코가 철수한 후 남겨진 주민들의 고통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포스코가 철수했다고 해서 포스코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포스코는 자신들의 프로젝트로 인해서 입게 된 주민들의 고통과 인권침해에 대해서 최소한의 입장을 밝혔어야 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주민들과 정부 대표와 만나 프로젝트 추진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에 대해서도 책임 있는 조치를 다했어야 했다. 기업의 활동에 있어서 자신들이 끼친 영향에 대해 책임지는 것이 바로 2011년에 채택된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UNGPs)’에서 권고하는 내용이다. 포스코는 이 이행원칙을 존중하겠다고 홈페이지에서 선언하고 있지만, 인도 제철소 철수 과정에서 어떤 책임을 다했는지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딩키아 주민들은 묻고 있다.
한국 시민사회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포스코가 떠난 이후, 남아 있는 주민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현실적으로 포스코가 관여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에서 이에 대해 마땅히 대응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주민들이 한국기업으로부터 받은 인권침해와 그 구제방안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연대했어야 했다.
올해 2월에도 계속해서 주민들과 활동가들이 체포되고 있다는 소식이 오고 있다. 2022년 11월 11일 국제민주연대는 인도 대사관 앞에서 인도 정부에 주민들에 대한 탄압을 중단하라는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기는 했지만 어떻게 연대해야 할지 고민이 큰 상황이다. 한국기업이 떠난 자리에서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