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이 넘는 역사학자와 교사, 학부모 등의 반대선언에도 박근혜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한 가운데 진보교육감들은 “국정화를 수용할 수 없다”며 행정예고 철회를 요구했다.
프랑스 파리시교육청을 방문 중인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행정예고 당일인 12일 오후 내놓은 서면 논평에서 정부의 국정화 강행을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조희연 교육감은 “우리 사회가 이룩해 온 민주주의의 가치와도 부합하지 않고 자율성과 다원성의 가치에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조 교육감은 “교육계를 비롯해 역사학계의 반대가 거세고 국민적 공감대도 충분하지 않은 일을 교육부가 강행하는 것은 교육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국론의 분열과 혼란을 부추기는 일이다”고 비판했다.
행정예고 당일, 5명 교육감 “반교육적, 반민주적 결정”
정부가 주장하는 '바른 역사관 확립을 위한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해서도 “서로 존중할 수 있는 다양한 관점과 시선이 조화롭게 공존할 때 비로소 교육 내용의 질적 발전을 도모할 수 있으며 이런 건강한 토론과 논쟁으로 오히려 더 높은 수준에서 바른 역사관이 수립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조 교육감은 “한국사 교과서의 행정 예고를 철회하고, 다양성과 창의성을 가진 자율적 인간 양성을 위해서 합리적 절차를 거쳐 검인정 제도를 보완하는 방향으로 가야할 것”이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민병희 강원도교육감도 이날 발표한 논평에서 “국정화 시도 중단”을 강조했다. 민병희 교육감은 이번 행정예고로 “반헌법적, 반민주적, 반교육적 결정으로 학교 안팎의 갈등과 혼란, 분열은 더욱 극심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민 교육감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선택의 자유를 원천봉쇄하는 것이며, 이는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적 가치를 외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같은 날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역시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을 “교육적 차원에서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재정 교육감은 “1974년 유신시대로 돌아가는 역사의 퇴행이며 역사교육의 파행을 초래하고 역사교육을 근본적으로 훼손하게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김승환 전북교육감도 이날 확대간부회의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사실 정권교과서를 만드는 것”이라며 “이것이야말로 역사교과서에 대한 분서갱유 아니겠냐”며 국정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특히 김승환 교육감은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확정되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정교과서라는 타이틀은 같지만 그 내용은 완벽하게 다른 국정교과서가 등장할 것”이라고 우려하며 “이 혼란을 어떻게 감당하고 누가 책임질 거냐”고 따져물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회장인 장휘국 광주시교육감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인정도서나 대안교과서 개발 등의 방침을 밝혔다. 장휘국 교육감은 “교육감의 권한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다해서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장 교육감은 먼저 역사철학이나 역사와 인문학 등과 같은 선택교과를 개설하기로 했다. 또 교육감 권한인 인정 도서를 개발하기 위해 내년도 예산에 관련 비용을 편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동시에 장 교육감은 “뜻을 함께 하는 전국의 교육감들과 교재의 공동개발과 공동대처 방안 등을 제안해 교육감으로서의 역사적 책무를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보수교육감들은 국정화 찬성... 15일 교육감협 주목
이들 교육감들은 오는 15일 오후 4시 강원 강릉에서 열리는 시·도교육감협의회 간담회에서 지방교육재정 문제와 함께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공동 대응 논의를 제안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 간담회에서 국정화 관련 공동 대응 여부가 결정될 지는 미지수다. 이른바 진보교육감을 뺀 보수성향의 교육감들은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찬성하는 입장을 밝힌 탓이다. 지난 달 중순께 전국 17명의 교육감 가운데 보수 성향의 대전교육감을 포함한 14명의 교육감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낸 바 있다.
울산과 대구, 경북 교육감은 이 성명서에서 이름이 빠졌다. 이 3명의 교육감은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행정예고에 “균형잡힌 한 권의 국정화 교과서로 교육돼야 한다”며 찬성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도교육감협의회 관계자는 “국정화 중단 촉구 성명서 때도 반대하는 교육감을 빼고 권역별로 진행했다. 이번에 협의회 차원에서 입장이 나올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기사제휴=교육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