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0일, 황상기 씨는 이른 아침부터 반도체 노동자의 상징인 방진복을 입고 삼성전자 본사 앞에서 선전전을 시작했다. 황상기 씨와 삼성 반도체· LCD 직업병 피해자들과 반올림은 ▲교섭을 파기하고 일방 보상절차 강행한 삼성의 사과 ▲조정위원회를 통한 사회적 대화에 성실히 임할 것 ▲삼성의 교섭단 즉각 교체 ▲배제없는 보상, 내용있는 사과, 실효있는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반올림은 2013년 삼성과 교섭을 시작했다. 교섭은 진전이 없었다.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하며 1년 넘는 시간을 보냈다. 교섭 과정에서 일부 피해 가족들이 별도의 가족대책위원회(아래 가대위)를 만들었다. 지난해 9월 가대위는 제3의 조정위원회(아래 조정위) 구성을 제안했고 삼성은 즉각 이를 받아들였다. 반올림과 피해 가족들은 당사자끼리 직접 교섭으로 문제를 해결하자고 요구했지만 2014년 10월 삼성은 조정위 출범을 일방 발표했다.
▲ 10월 20일 아침 황상기 씨가 삼성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와 공평한 보상, 실효있는 재발 방지대책을 요구하며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황상기 씨와 반올림은 10월 8일부터 강남역 8번 출구 삼성 본관 앞에서 농성하고 있다. [출처: 금속노동자 성민규] |
그해 12월 조정위가 반올림에 ‘독자적인 주체로 조정에 참가해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이때부터 반올림, 삼성, 가대위 3주체는 조정위를 통한 논의를 진행했다. 2015년 7월23일 조정위는 1차 권고안을 발표했다.
조정위 권고안 핵심 내용은 ‘삼성전자와 한국반도체산업협회의 기부를 바탕으로 독립적인 공익 법인을 설립, 법인을 통해 보상과 재발방지 대책 등을 총괄한다’는 것. 황상기 씨는 “우리는 권고안에 동의한다. 삼성이 권고안을 받아들여 반도체 공장의 안전 예방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권고안 거부, 일방 보상 강행하는 삼성
황상기 씨는 “삼성은 자신들이 동의해 구성한 조정위의 조정 절차에 무성의하게 임했다. 권고안을 보류해달라며 사실상 거부했다”고 삼성의 태도를 규탄했다. 삼성은 가대위와 별도의 보상위원회를 구성, 보상절차를 진행하겠다고 일방 발표했다.
“삼성의 보상위는 반도체 노동자들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황상기 씨는 단호하게 말했다. “반도체 공장을 안전하게 만들지 않으면 또 다른 노동자들이 병에 걸린다. 삼성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확히 사과해야 재발방지 대책을 제대로 세울 수 있다. 삼성의 보상안에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 내용이 하나도 없다.”
황상기 씨는 무엇보다 현재까지 200여 명에 달하는 피해 제보자들과 밝혀지지 않은 더 많은 노동자들이 왜 병들고 죽었는지 원인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한다. 황상기 씨는 “내 딸 유미같은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아야 한다. 노동자가 병들고, 이 때문에 가정이 파탄나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고 재발방지 대책이 중요한 이유를 몇 번이나 강조했다.
▲ 10월 20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아래 반올림) 회원들과 지지하는 시민들이 서울 강남역 8번출구 삼성전자 본사 앞에서 아침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출처: 금속노동자 성민규] |
황상기 씨는 삼성이 일방으로 보상을 운운하는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황상기 씨는 “보상위원은 삼성이 선정한다. 보상 대상자, 위로금 액수도 삼성이 정한다”며 “삼성은 가해자다. 얼마나 많은 반도체 노동자가 죽었느냐. 말 그대로 살인이다. 살인자가 위로금 액수 정해서 피해자에게 받을테면 받으라고 배짱부리는 형국이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삼성은 보상대상을 조정위 권고안보다 대폭 축소했다. 조정위는 6개월 이상 근무, 퇴사 14년 미만자를 보상 대상으로 권고했다. 삼성은 1년 이상 근무, 퇴사 10년 미만자로 축소했다. 삼성은 난치병, 희귀병 피해자를 보상대상에서 제외했다.
“삼성이 매 년 벌어들이는 몇 십 조원의 돈은 노동자들 목숨값이다. 지금껏 노동안전을 소홀히 하고 치료해야 할 사람들 치료해주지 않으면서 번 돈이다. 글로벌 기업이라고 할 수 없다.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될 옹졸하고 비열한 행동이다.” 황상기 씨는 삼성이 조속히 조정위 권고안을 받아들이고 노동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전대책 없으면 또 죽는다”
황상기 씨는 “유미의 백혈병을 처음 알았을 때 나는 삼성이 몸에 해로운 물질을 공장에서 사용해서 병에 걸린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은 자신들은 유해물질 쓰지 않는다고 뻔뻔하게 거짓말했다”며 “삼성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로 말한다. 도대체 언제까지 피해자와 가족들을 방치할 것이냐. 100년이 지나서야 사과하고 책임질 생각이냐”고 울분을 토했다.
▲ 10월20일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운명한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는 “더 이상 삼성이 국민들에게 사기치고 거짓말하지 못하도록 가족들과 반올림이 눈 똑바로 뜨고, 귀 쫑긋 열고 있겠다. 삼성이 노동자들이 건강하게 일 할 수 있는 반도체 공장을 만들도록 관심 갖고 함께해 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출처: 금속노동자 성민규] |
황상기 씨는 “지난해 5월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처음으로 사과했다. 지금 돌아보니 모두 언론플레이였다. 또 국민들에게 사기쳤다”고 삼성의 태도를 규탄했다.
황상기 씨는 지금껏 수차례 삼성에게 보상 제의를 받았다. 개인 문제로 치부하며 위로금으로 정리하려는 삼성의 제의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황상기 씨는 “내 딸이 병에 걸리고 죽었다. 지금도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누군가의 딸이고 아들이다. 이 노동자들이 또 병에 걸리면 부모들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느냐. 나같은 고통을 겪는 사람을 한 명이라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해서 가족과 함께 살고 회사를 발전시킨다는 큰 꿈 갖고 회사에 들어간다. 이런 노동자들은 당연히 건강하게 일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노동자는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위험물질을 쓰는지 알아야 한다. 동료와 노조와 함께 조사하고 같이 바꿔야 한다.” 황상기 씨가 또 다른 위험한 일터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전하는 당부다.
황상기 씨는 “삼성이 더 이상 국민들에게 사기치고 거짓말하지 못하도록 가족들과 반올림이 눈 똑바로 뜨고, 귀 쫑긋 열고 있겠다. 삼성이 노동자들이 건강하게 일 할 수 있는 반도체 공장을 만들도록 관심 갖고 함께 해 달라”는 말을 덧붙인다.(기사제휴=금속노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