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소수자 단체들이 9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성소수자 인권 증진 책무를 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최근 한국이 유엔 인권이사회 의장국으로 선출됐으나, 과연 한국이 의장국이 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이 여전히 성소수자를 비롯한 소수자 인권 보장에 미흡한 수준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성소수자 단체들은 정부와 국회가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요구하는 대로 성소수자 인권 보장을 위한 법 제개정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아래 무지개행동),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 등은 유엔 세계인권선언 67주년을 하루 앞둔 9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제사회가 요구한 성소수자 인권 보호 책무를 한국 정부가 이행하지 않는다고 규탄했다.
유엔 등 국제사회는 지속해서 성소수자가 낙인과 차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해왔다. 2010년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양심을 가진 인간으로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차별을, 특별히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거부한다. 누군가 성적 지향을 이유로 공격받고, 학대받거나 감옥으로 보내질 때, 우리는 반드시 이에 맞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라고 천명한 바 있다.
그러나 한국은 성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어떤 제도적 장치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성소수자 인권 보장을 위한 대표적인 법률인 차별금지법의 경우 2007년 말부터 17, 18대 국회에 발의됐으나, 반동성애 단체들의 반발로 성소수자 관련된 내용이 삭제되고 국회 회기를 넘겨 자동 폐기되었다.
19대 국회에서도 2013년 초에 김한길, 최원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차별금지법을 발의했으나 보수 기독교 단체의 거센 항의로 자진 철회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무지개행동에 따르면 이후 현재까지 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한 어떤 논의도 진행되지 않고 있다.
이에 11월 6일 유엔 시민적·정치적 권리규약 위원회(아래 자유권 위원회)는 한국 사회에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개선할 것을 촉구했다. 자유권 위원회는 합의된 동성애를 처벌하는 군형법 92조와 반동성애 행사에 대한 국가 기관 장소 대여 등의 행태가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있다며 성소수자 등을 포함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한 바 있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지난 7일 유엔 인권이사회는 한국을 2016년도 의장국으로 선출했다. 이에 대해 정현희 무지개행동 집행위원은 “차별금지법을 국제사회가 꾸준히 요구하고 있음에도 정부와 국회는 발뺌하는 상황이다. 오히려 국회는 보수 기독교 단체의 반동성애 행사를 유치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무지개행동은 올 한해에만 국회에서 동성애문제대책위원회 등 보수 기독교 단체가 관련 행사를 8회 개최했다고 설명했다.
정 집행위원은 “차별금지법을 입법할 힘도 없던 국회는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차별해야 한다는 세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19대 국회 내에서 반드시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을 명시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류민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국제사회의) 권고를 이행할 책임은 사실 입법부에 있다. 권고의 이행을 위해 법률의 제·개정이 필요하다면 국회는 즉각적으로 입법활동에 착수해야 한다.”라며 “인권이사회는 지금껏 성소수자 차별 철폐에 앞장서왔다. (의장국으로서) 성소수자를 차별한다는 오명을 쓰기 전에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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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홍식 기자는 비마이너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비마이너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