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산업재해 은폐 의혹

물량팀 진료기록 삭제 의혹 등 45건...“노동부, 산재은폐 조사 소극적”

현대중공업하청노조인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와 금속노조 울산지부, 울산산업재해추방운동연합 등으로 구성된 울산지역 노동자건강권대책위와 현대중공업노조가 산재은폐로 의심되는 62건을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에 진정 접수했으나 노동부 울산지청이 대부분 산재은폐가 아닌 것으로 처리해 이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건강권대책위는 지난해 4월 20일부터 30일까지 산재은폐 건에 대한 실태조사를 6차례 벌여 산재은폐가 의심되는 건으로 총 62건을 취합했다. 하청업체가 지정한 병원에 방문해서 발각한 경우가 16건(동영상 증거 있는 경우 10건)이고 현장 설문조사를 한 경우가 26건, 현장에서 즉각 보고된 건이 20건이었다. 건강권대책위는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장과 항의성 면담을 하고 32건에 대해서 증빙자료를 첨부하는 등 노력을 했지만 결국 총 5건에 대해서만 산재은폐로 인정됐다.

건강권대책위는 노동부 울산지청이 산재은폐를 근거로 과태료를 부과한 5곳을 제외한 60건 중 일부에 대해서는 법정기한을 지켜서 산재 사실을 신고한 것으로 밝혀지는 등 산재은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건강권대책위가 산재은폐가 아니라고 밝힌 15건을 제외하더라도 산재은폐로 의심되는 건은 모두 45건에 이른다. 45건은 크게 7가지로 분류할 수 있었다. 1)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된 산재 신고 기한을 넘겨 신고한 경우 2) 휴업 기간이 3일 미만인 경우 3) 소속 사업장을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 4) 법인이 폐업한 경우 5) 근골격계 질환인 경우 6) 진료기록이 없는 경우 7) 개인질환인 경우거나 그 외의 경우다.

산안법 기한 넘긴 경우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된 산재 신고 기한을 넘긴 경우는 총 2건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은 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노동부에 1개월 안에 보고하도록 돼 있지만, 해당 하청업체가 이 기한을 넘겨 보고한 경우다. 산업재해 발생 보고에 대한 규정인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제4조 1항은 “사업주는 산업재해로 사망자가 발생하거나 3일 이상의 휴업이 필요한 부상을 입거나 질병에 걸린 사람이 발생한 경우에는 법 제10조 제2항에 따라 해당 산업재해가 발생한 날부터 1개월 이내에 별지 제1호 서식의 산업재해 조사표를 작성하여 관할 지방고용노동청장 또는 지청장에게 제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ㅈ업체 소속 ㄱ씨는 2014년 10월 23일 물청소 도중 미끄러져 왼쪽 손목을 다쳤지만, 업체는 사고 발생 약 두 달 뒤인 그해 12월 18일 산업재해조사표를 제출했다. ㅇ업체 소속 ㅊ씨는 2014년 9월 18일 440볼트 케이블 코드를 빼다가 스파크가 일어나며 양쪽 손목에 2도 화상을 입었다. 하지만 업체는 법정기한인 한 달을 10여 일 넘긴 10월 28일 산업재해조사표를 제출했다.

현미향 울산산업재해추방운동연합 사무국장은 “법정기한을 넘겨 산재 발생 사실을 신고했지만 노동부가 산재 은폐가 아니라고 조사를 마무리한 건”이라며 “이유 없이 관대하게 처리를 해준 건이다. 자진신고 기간이었을 경우 은폐가 아닌 것으로 처리해주기도 하지만 이 경우는 그런 경우는 아닌 것 같다”고 꼬집었다. 현미향 사무장은 “굳이 1개월을 넘겨 신고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재해자가 원해서 산재은폐로 신고한 건이다. 또 관련 법이 산재은폐를 막기 위한 법이고, 산재은폐를 근절하기 위함이라는 실태조사 취지를 보더라도 엄정하게 집행해야 하는 부분”이라며 노동부 울산지청이 산재은폐로 처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노동부 울산지청 관계자는 “관련 조항이 개정되면서 산재 발생 사실을 노동부에 따로 보고하도록 되었다. 개정된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이 많은 점을 고려해 노동부 본부에서 법정기한 관련 지침이 내려왔었다”며 “2015년 12월 31일까지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라고 해명했다.

휴업 3일 미만인 경우

노동부 울산지청이 휴업일이 3일 미만이라는 이유로 산재은폐로 처리하지 않은 경우는 총 13건이었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제4조 1항은 “사업주는 산업재해로 사망자가 발생하거나 3일 이상의 휴업이 필요한 부상을 입거나 질병에 걸린 사람이 발생한 경우” 산재 발생으로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노동부 울산지청은 이 조항에 근거해, 3일 이상 휴업을 하지 않은 총 13건에 대해서 산재은폐로 보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건강권대책위는 이 13건에 대해서 3일 이상의 휴업이 필요한 부상을 입었는데도 3일 이상 휴업하지 않은 경우로 서류상 처리한 건으로 의심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부상을 입은 경위를 봤을 때 뻔히 3일 이상 쉬어야 하는 건인데도 노동부 울산지청이 심층적인 조사를 벌이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ㅈ업체 소속 ㅇ씨는 2014년 10월 29일 5.3미터 아래로 떨어지는 족장 파이프(2.7킬로그램)에 등이 가격 됐지만 업체는 휴업일을 1일로 처리했다. 현미향 울산 산추련 사무장은 “사고에 비해서 휴업 일수가 짧은 경우들이 있다”며 “이 사례의 경우 휴업일이 1일로, 사고 다음날 출근 했다는 것인데 출근을 해서 정말 일을 했는지 알 수 없다. 붕대를 감고 혼자 출근할 수 없어 동료 오토바이 뒤에 타고 출근하는 경우도 있다”고 우려했다. 현미향 사무장은 “산안법 시행규칙 제4조 1항이 2013년 7월 개정되면서 산재 보고 기준이 ‘3일 이상 치료한 경우’에서 ‘3일 이상 휴업 치료한 경우’로 바뀌었다”며 “개정된 법 조항을 악용한 사례다. 이 법 조항을 악용한 사례가 더 있을 것이므로 노동부가 적극적으로 실태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노동부 울산지청 관계자는 “병원 쪽에서는 전치 진단만 하지 휴업이 며칠 필요한지는 진단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진단서만으로 휴업일이 얼마나 필요한지 판단하기 어렵다”며 “노동부 입장에서도 곤란한 부분”이라고 해명했다.

소속 사업장을 확인할 수 없는 경우

노동부 울산지청이 재해자의 소속 사업장을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로 산재 은폐로 인정하지 않은 건은 총 7건으로 제법 많았다. 건강권대책위가 울산지청에 제출한 자료에는 재해자의 소속 업체 이름이 명시돼 있지만, 막상 해당 업체 노동자 명단을 봤더니 재해자가 없는 경우다. 이는 재하도급의 일종으로, 재해자가 ‘물량팀’ 소속이었을 경우로 추측된다. 물량팀은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부를 중심으로 성행하고 있는 납기 단축을 위한 다단계 하도급으로 알려져 있지만 노동부가 불법이라고 지적한 고용 형태다.

건강권대책위가 지청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14년 11월 28일 보조로프와 터보팬 사이에 오른쪽 손가락이 끼면서 부상을 입은 ㄴ씨는 ㅌ업체에 소속된 것으로 적혀 있다. 2014년 6월 말 개구부를 통과하다 부딪히면서 머리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은 ㄱ씨는 ㅅ업체에 소속된 것으로 명시돼 있다. 2014년 11월 22일 철판에 부딪혀 손등이 찢어진 ㅈ씨는 ㅈ업체에 소속된 것으로 써 있다. 하지만 이 사례들은 모두 조사 결과 소속 업체를 알 수 없다는 이유로 산재 은폐로 인정되지 않았다. ‘소속 확인 불가’ ‘소속 사업장 확인 불가’ ‘사업장 불명’ 등의 이유로 산재 은폐로 처리되지 않은 사례만 7건이다.

현미향 사무장은 “재해자가 노동부가 불법이라고 인정한 물량팀 소속인 것으로 추측된다”며 “이런 경우 노동부 울산지청이 심층 조사를 벌여 물량팀 사업주를 밝혀내야 하지만, 소극적으로 조사를 마무리했다”고 비판했다.

법인이 폐업한 경우

법인이 폐업한 경우는 산재 은폐 여부를 떠나 처벌 대상인 업체가 폐업해 조사를 마무리한 경우다. 이 경우는 총 5건으로, 산재가 발생하고나서 업체가 폐업했다는 이유로 산재은폐가 아닌 것으로 처리한 경우여서 문제가 되고 있다.

ㅇ업체 소속 ㅇ씨는 2014년 9월 15일 도장작업 중 에어호스가 눈을 가격하는 산재를 겪었지만 노동부 울산지청은 산재가 발생한 지 6개월여 뒤인 2015년 3월 31일 법인이 폐업했다는 이유로 이 건을 산재은폐로 인정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ㅅ업체 ㄱ씨는 2014년 6월 말 용접 도중 어깨를 다쳤지만 6개월여 뒤인 2014년 12월 31일 법인이 폐업했다는 이유로 산재은폐로 인정하지 않았다. ㅋ업체 ㄱ씨도 2014년 8월 21일 족장 위에서 추락하면서 갈비뼈가 골절 됐지만 4개월여 뒤인 2014년 12월 31일 업체가 도산했다는 이유로 산재은폐로 인정하지 않았다.

현미향 사무장은 “작년 10월 건강권대책위와 현중노조가 울산지청장과 면담에서 ‘업체가 폐업 했더라도 산재은폐 사례로 인정하고 통계에 반영해야 한다’고 요구한 내용인데 여전히 반영되지 않았다”며 “노동부 울산지청이 해당 업체가 폐업을 했다는 이유로 산재은폐가 아닌 것으로 처리하면서 통계에도 반영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통계가 현실을 왜곡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지적이다.

노동부 울산지청 관계자는 이에 대해 “법인이 없어졌을 경우는 해당 업체 직원이 없어서 객관적으로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확인이 된다면 관련 건을 통계에 포함시켰을 것”이라며 “노동계 쪽에서 가져온 자료만 가지고 직권으로 판단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근골격계 질환인 경우

근골격계 질환이라는 이유로 산재은폐로 인정되지 않은 건은 총 5건이다. 사고를 겪고 진료를 받았지만, 원래 있던 근골격계 질환이라는 이유로 산재은폐로 보지 않은 경우다.

ㄱ업체 소속 ㄴ씨는 2015년 4월 13일 사내에서 교통사고를 겪고 어깨를 다쳤다. ㄴ씨는 어깨 관절의 염좌 및 긴장이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산재은폐로 인정되지 않았다. 병원 또는 노동부 쪽에서 사고로 인한 증상이 아니라 근골격계 질환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현미향 사무장은 “어깨 관절의 염좌 및 긴장은 교통사고를 겪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라며 “교통사고로 인한 건인데 근골격계 질환으로 둔갑한 것일 수 있다. 추가로 조사를 벌여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노동부 울산지청 관계자는 “의학 전문지식이 없는 근로감독관이 질병에 대해서 판단하긴 어렵다”며 “(건강권대책위가 제출한) 해당 사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아는 바가 없지만, 원래 있던 근골격계 질환이 작은 충격을 받고 증상이 도드라지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진료기록이 없는 경우

진료기록이 아예 없어서 산재은폐로 인정되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았다. 진료를 했음에도 병원 쪽에서 진료기록을 찾아볼 수 없는 경우다. 산재를 은폐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진료기록을 삭제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대목이다.

건강권대책위가 산재은폐 건으로 재조사가 필요하다고 보는 45건 중 이러한 경우는 무려 5건이나 된다. 이중 2건은 진료를 받은 상황을 촬영한 영상 자료가 있어, 이 자료를 노동부 울산지청 쪽에 증거자료로 제출한 경우인데도 진료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산재은폐로 인정되지 않은 것이다. 또 다른 2건은 골절상을 입었거나 수술을 한 경우여서 장기간 치료했을 것으로 보이는데도 병원에 진료기록이 남아있지 않았다.

ㄱ업체 소속 ㅇ씨는 2015년 4월 10일 ㅋ병원을 찾아 오른손 검지 수상 진단을 받았다. 진료를 받았다는 영상 증거가 남았다. 하지만 노동부 울산지청은 회사가 확인되지 않고 병원 진료 사실이 없다는 이유로 산재은폐로 승인하지 않았다.

ㅅ업체에 함께 소속된 ㅈ씨와 ㅈ씨는 각각 2013년 3월과 12월 ㄱ병원을 찾아 손가락 골절상 진단과 오른쪽 손목에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두 건 모두 장기간 치료를 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경우다. 하지만 노동부 울산지청은 두 건 모두 재해 발생 및 진료사실이 없다는 이유로 산재 은폐로 인정하지 않았다.

현미향 사무장은 “업체가 지정한 병원이 일부러 진료기록을 남기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업체와 병원이 조직적으로 산재를 은폐한 정황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의료법에 걸리는 행위로 엄연히 의료 범죄다. 돈을 벌기 위해서 의사가 양심을 버린 행위다. 집중조사를 더 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현 사무장은 “(기존에 산재를 은폐하는 방식으로) 초진기록을 조작하던 수법이, 이제는 아예 기록을 남기지 않는 형태로 수법이 고도화된 것이다. 기록이 없으면 조사가 어렵다는 점을 노린 것”이라며 “2013년 동구 10개 병원에서 적발한 103건 중 65건에 대해서 건강보험공단에 조사 의뢰를 했는데 당시 건보공단이 5건만 밝혀냈었다. 담당 직원이 하는 말이, 2/3에 달하는 건이 병원 진료기록이 아예 없어 조사가 어려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진료기록이 없는 상황에서 건보공단 입장에서 더 조사를 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노동부 울산지청 관계자는 “건강권대책위가 접수한 사례가 이런 경우에 해당되는지는 모르지만, 재해 발생명과 일자, 경위 등 자료를 병원에 요구했을 때 병원 쪽에서 자료가 없다고 나오면 노동부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강제로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는 없고, 산안법을 근거로 협조를 요청하기 때문”이라며 “옛날에는 병원 쪽에서도 자료 제출 요청에 잘 응해줬는데 요즘은 개인정보보호법 등이 문제가 되면서 잘 안 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진료기록이 없는 경우가 지금까지 있었느냐는 질문에 “개인적으로는 옛날에는 없던 사례인 걸로 안다”고 전했다.

개인질환이거나 기타의 경우

개인질환이거나 기타 다른 이유로 산재은폐로 승인되지 않은 경우는 각각 3건과 5건이었다. 당사자가 개인질환이라고 답하거나 사업장 바깥에서 다쳤다고 진술하는 경우다. 하지만 당사자가 산재가 아니라고 진술했더라도 이를 곧이곧대로 믿긴 어렵다고 노동계 관계자는 말한다. 업체가 나서서 산재를 공상처리하려는 가운데 고용이 불안한 입장에서 당사자가 압박을 받아 거짓 진술을 했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미향 사무장은 “일하다가 다쳐도 눈치를 봐서 자발적으로 거짓말하는 경우도 있다”며 “현장 목격자가 명확하면 (당사자 진술이) 거짓인 게 입증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밝혀내기가 어려운 경우”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말

윤태우 기자는 울산저널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울산저널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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