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반도체 79번째 사망자 유족 “자식 같은 노동자, 더는 희생 없어야”

고인, 산재 불승인에 따른 불복 소송, 삼성 보상금 문제로 괴로워해

“자연으로 돌아가 더는 아프지 말라고, 선산에 잔디장으로 묻어 주고 왔습니다.”

정옥숙 씨는 아들을 떠올리며 힘들게 말을 이어나갔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급성골수성 백혈병으로 사망한 김기철 씨의 어머니이다. 정 씨는 16일 새벽, 고인의 발인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슬픔을 추스르기도 전에, 기자의 전화를 받아 이야기를 꺼낸 건 “더는 아들과 같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에서였다.

[출처: 반올림]

김기철 씨는 만 31세의 나이로 지난 14일 새벽 4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반올림에 제보된 삼성반도체 LCD 직업병 피해자 중 79번째 사망자다. 2006년부터 삼성반도체 화성사업장 협력업체 (주)크린팩토메이션에서 일하다 2012년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고 투병생활을 시작했다.

김 씨는 입사 후 삼성전자 화성공장 15라인에서 일했다. 15라인에선 수백 종의 화학물질을 이용해 반도체 웨이퍼를 가공한다. 김 씨는 이곳에서 반도체 웨이퍼 자동반송장비의 유지 보수 업무를 담당했다. 웨이퍼 자동반송장비 유지 보수 업무는 벤젠, 포름알데히드, 비소 등 발암물질과 메탄올 등 독성화학물질과 마주해야 했다. 작업 동선도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김 씨가 작업을 위해 오래 머물렀던 곳은 전리방사선 노출로 알려진 이온주입 공정, 벤젠 등 발임물질 노출이 알려진 포토 공정 주변이다. 2013년, 고용노동부는 삼성전자 화성공장을 특별감독했는데 무려 2,004건의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하고 있었다. 김 씨는 직전 해에 백혈병 판정을 받았다.

김 씨는 6년간 병마와 싸우는 한편, 백혈병이 산업재해였다는 것을 입증해야 했다. 2012년 9월 혈액 이상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급성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은 김 씨. 당시 고인을 진단했던 아주대병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는 고인의 업무내용을 듣고선 “질병과 직업과의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진단서에 기록했다. 입사 전 무척 건강했고, 백혈병과 관련된 어떠한 병력이나 가족력도 없었기에 김 씨는 백혈병이 산재라는 생각을 굳혔다.

김 씨는 2012년 10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요양급여 신청을 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2014년 3월, 유해물질 노출 수준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불승인을 통보했다. 김 씨는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제기한 지 2년이 다 돼가지만, 결론을 향해 나아가기는커녕 자료제출 공방이 한창이다.

재판부는 삼성전자에 김 씨의 업무환경 자료를 요청했지만, 1년 6개월이 넘도록 아무런 답변도 받지 못했다. 한차례 독촉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재판부가 문서제출명령을 내리려 하자 그제야 답변이 왔다. 그마저도 “해당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영업비밀에 해당한다”는 등의 불성실한 답변이었다.

고용노동부와 그 산하기관들 역시 자료 제출에 인색하긴 마찬가지였다. 사업장의 안전보건 관리 실태를 점검한 자료들(작업환경측정 보고서, 특별감독보고서, 종합진단보고서 등)을 “사업주의 영업비밀에 해당한다”거나 “보관하고 있지 않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제출하지 않았다. 특히 고용노동부는 관련 자료를 제출하라는 법원의 문서제출명령이 있었지만 “지방고용노동관서가 판단할 문제”라며 책임을 떠넘겼다.

지난한 소송 과정은 김 씨를 지치게 했다. 김 씨는 “내가 이렇게 해도 (소송에서 이기긴) 힘들 것 같다”라는 말을 부모님께 종종 했다고 한다.

2015년 말, 삼성은 조정위원회의 권고안을 거부하고 직업병 보상 문제를 일방적으로 마무리 지으려고 했다. 같은 시기, 백혈병이 재발했다는 소식에 김 씨는 보상신청을 두고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삼성의 일방적 보상안을 거부하고 사회적 중재 기구 만드는 것에 힘을 보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당장 들어가야 할 치료비에 눈물을 머금고 사인했다. 정옥숙 씨는 그 광경을 지켜보며 억장이 무너졌다고 했다. “(삼성이) 미안한 기색도 없고, 원래 안 주는 건데 이만큼 해준다는 식으로 말을 하더라고요. 그런 돈을 받아야 하나 싶었는데 부모님 힘들까 봐 사인을 결정한 기철이는 어떤 심정이었겠어요. 재발 충격도 컸는데 이때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어 했죠”

정옥숙 씨는 이제 젊은 사람들이 희생되지 않기만을 바란다고 했다. 영정사진을 공개한 것도 이 일을 알리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장례식장에 아들 동료들이 왔는데 그 또래잖아요. 다들 착하고, 순수한 사람들인데 아직도 너무 위험한 데서 일하고 있어요. 우리 아들은 제대로 치료도 못 하고 보내지만 더는 이런 억울한 사람 나오면 안 되잖아요. 삼성 공장이 무서운 곳이라는 것, 여러 사람이 죽었다는 게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김 씨의 발인이 있던 같은 날 오후, 박영수 특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뇌물공여죄 등을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6일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최순실 인지 시점과 관련해 거짓증언을 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 청문회에서 삼성전자 반도체 직업병 사망자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이 부회장은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 씨를 알고 있다고 답했다. 직업병 관련해 질타가 쏟아지자 “모든 일에 막중한 책임을 느끼고 있고, 앞으로 저희 사업장 말고도 모든 협력사까지 작업환경이나 사업환경 (챙기는 것을) 열심히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반올림에서 활동하는 임자운 변호사는 이런 사회적 약속에 대해 신뢰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임 변호사는 “지난 10년간 보인 삼성의 태도, 노동자 진술을 종합해보면 안전 문제를 삼성에게 맡겨선 안 된다는 것이 반올림의 판단”이라고 밝혔다. 임 변호사는 “국가가 관리감독을 하고, 외부 전문 기구가 안전 보건 관리를 점검하고, 삼성이 적극 협조를 하는 시스템 필요한데 삼성전자는 이에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라며 “알아서 잘하겠다는 약속은 전례를 보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씨의 사망 직후 반올림은 성명을 통해 이 부회장의 처벌을 촉구했다. 15일 반올림은 “삼성전자 최고책임자로서 직업병 방치, 산재 은폐, 79명의 죽음에 대해서도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벌이 일으킨 문제 중, 노동자 생명을 앗아간 죄는 가장 중할 것이다. 삼성 경영진의 살인죄 처벌은 언제쯤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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