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권력감시대응팀,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등은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진모 씨 등 9명이 국가를 상대로 3천만 원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청구인들은 오늘 중 서울중앙지법에 소장을 제출할 예정이다.
김진모 씨 등 청구인들은 2014년 6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집회를 신고했으나 주민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금지통고 당했다. 김 씨는 같은 해 10월 경찰의 집회금지통고가 부당하다고 행정소송을 제기했는데 이 과정에서 경찰이 주민 탄원서를 조작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주민들이 탄원서를 적법하게 제출했는지) 매우 의심스럽다”며 경찰의 금지통고 결정이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경찰, 미심쩍은 주민 탄원서로 집회 금지
애초 2014년 6월 1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주민센터 인근에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청와대 만인대회’가 열렸다. 청와대 주변 집회가 워낙 많이 금지되기 때문에 참가자들은 61곳으로 나눠 집회신고를 했다. 하지만 경찰은 61곳 모두에 대해 ‘생활 평온 침해’(집시법 제8조 제3항 제1호) 등을 이유로 집회금지를 통고했다.
‘생활 평온 침해’ 관련 조항은 “다른 사람의 주거지역이나 이와 유사한 장소로서 집회나 시위로 재산 또는 시설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거나 사생활의 평온을 뚜렷하게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로서 “그 거주자나 관리자가 시설이나 장소의 보호를 요청하는 경우”에는 집회금지를 통고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러나 금지통고를 받은 집회 주최자 중 김진모 씨는 부당함을 느끼고 2014년 9월, 서울종로경찰서장을 상대로 금지통고처분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의 의심스러운 행적들이 포착됐다. 재판 과정에서 경찰은 집회금지통고 처분 증거로 인근 주민 탄원서를 제출했는데 작성 일자와 집회 장소가 기재돼 있지 않았다. 김 씨 측이 해명을 요구하자 경찰은 “탄원서를 분실하는 바람에 소송 중 다시 제출받았다”고 설명했다.
이후 경찰은 분실했던 탄원서를 발견했다며 이를 제출했다. 하지만 이 문서 또한 탄원인들의 인적사항과 서명만 기재돼 어떤 이유로, 무엇을 금지해달라 요구했는지 알기 어려웠다. 탄원을 제기했다던 주민들이 법정에 증인으로 소환됐지만, 탄원서 제출 시기와 문제 삼은 집회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진술하지 못했다. 이에 김 씨를 비롯한 시민사회는 경찰이 과거에 받은 탄원서를 청와대 주변 집회 금지통고마다 재활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서울행정법원 제12부(재판장 이승한) 역시 “과연 인근 주민 80명이 이 사건 집회의 금지를 요청하는 취지로 위 연명부를 작성해 이 사건 처분이 있기 전인 2014년 6월 8일 피고에게 이를 제출했는지 매우 의심스럽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민주주의 위협...똑같은 행위 반복 말아야
오늘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 씨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촛불 항쟁 속에서 많은 이들이 청와대 근처까지 집회할 수 있게 된 것을 놀라워하지만 불과 몇 달 전까지 우리의 집회시위 권리가 얼마나 짓밟혔는지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 씨는 “경찰이 집회를 평화롭게 돕는 행세를 하지만 마땅히 반성해야 하며 공권력은 어떤 형태로든 변질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소송을 담당하는 서선영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 법 변호사는 “단지 배상받기 위한 소송이 아니”라며 “이번 소송을 통해 경찰이 집회 자유를 침해하고, 민주주의 위협자가 되진 않았는지 깨닫고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지 않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집회금지통고 제도의 문제점을 설명하며 법 개정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열 차례가 넘는 촛불집회도 경찰의 청와대 인근 금지통고에 대해 변호사들이 가처분 신청을 하고 법원이 가처분 결정을 내리면, 경찰이 마지못해 최소한의 길을 열어주는 형태”였다며 “온전하게 집회시위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 집회금지통고 법 개정이 지속해서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