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선 기간 중 미국의 대표적인 친이스라엘 로비 단체 AIPAC을 방문한 트럼프 당시 후보는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영구적인 수도이며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할 것”을 약속한 바 있다. 당선 후 트럼프 대통령이 이스라엘 수상 네타냐후보다도 더한 극우파라 불리는 데이비드 프리드먼을 주 이스라엘 미국 대사로 내정한 뒤 예루살렘으로의 미 대사관 이전 가능성이 커졌고 이에 대한 국제사회와 팔레스타인의 우려와 반발도 커지고 있다.
‘예루살렘’이라고 했을 때 한국인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구시가지는 팔레스타인 동예루살렘에 속해 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동시에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서쪽을 장악하며 예루살렘은 동-서로 나뉘었다. 예루살렘을 국제 관리 지역으로 두자는 국제사회의 요구에 이스라엘은 동의했지만, 이후 그들은 1967년 전쟁으로 팔레스타인 가자, 서안, 그리고 시리아 골란 고원과 함께 동예루살렘을 점령했고, 곧바로 자신의 영토로 불법 병합했다(이 과정에서 동예루살렘 인근 서안 지역도 함께 병합됐다). 때문에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수도라고 주장해도 국제사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대사관도 실질적 수도인 텔아비브에 위치한다.
▲ 이스라엘 정착촌 [출처] al-shabaka.org |
그러나 1995년에 제정된 미국의 “예루살렘 대사관 법”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고, 그에 따라 미 대사관을 수도 예루살렘으로 이전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단, 대사관의 이전은 국가 안보를 위해 대통령이 보류할 수 있도록 해, 지난 대통령들은 6개월마다 대사관의 이전을 보류해 왔다. 오바마 정부가 1월 초 임기 마지막으로 보류한 이 법안은 6월 1일에 만료된다.
사실 ‘예루살렘으로의 미 대사관 이전’을 공약으로 걸었던 것은 트럼프만이 아니다. 빌 클린턴도, 조지 부시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아무도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그래서 공약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추측이 엇갈리는 상황이기는 하다. 그러나 실현이 되든 말든 예루살렘의 지위를 쟁점화시키는 것 자체가 이스라엘에게 좋은 상황임은 분명하다. 막상 미 대사관이 이전되지 않더라도 이스라엘은 손해 볼 것이 없다. 세계 언론에서 예루살렘이 영토 분쟁의 소지가 있는 것처럼 비춰지는 것만으로도 영토 병합을 기정사실화하려는 노력에 힘을 실어주게 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는 지난 1월 트럼프가 취임한 지 불과 이틀 만에 서안, 예루살렘 막론하고 “정착촌 어디에나 이스라엘의 주권이 미친다”며 동예루살렘에 600채가 넘는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승인하기도 했다.
불법 유대인 정착촌과 원주민 추방
이스라엘은 불법 정착촌을 확대해 유대인 이주자를 늘리는 동시에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지속적으로 추방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에 건설되는 유대인 정착촌은 모두 불법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가입당사국이기도 한 제4차 제네바 협약 49조가 점령당국이 자국의 민간인을 피점령 지역으로 이동시키는 걸 금지한 데에 비춰 봐도 명백하다. 이스라엘 군대의 보호 속에 피점령지에 점령자들의 마을(정착촌)을 만들고, 스스로도 무장한 불법 유대인 정착민들은 동예루살렘에만 30만 명을 웃돌며 불법 영토 병합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강제 이주 역시 제네바 협약 위반이다, 이스라엘은 건국 전부터 예루살렘에 살아온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 당국에 부동산 소유자로 등록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거주할 권리조차 부인하고 집을 철거해 이들을 국내실향민으로 만든다. 집을 잃은 고통에 더해 새로운 주거지 비용, 철거장을 받은 후 부동산 소유를 증명하기 위한 재판 비용, 재판이 끝나기도 전에 어느 새벽에 철거가 행해질지 모를 불안감, 철거를 위해, 또 그 잔해를 치우기 위해 이스라엘 당국이 지출한 비용까지 모두 팔레스타인인들의 몫이다. 이렇게 쫓겨난 이들이 어디에 터를 잡고 사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지난 몇 년 간 예루살렘에서 팔레스타인인의 신규 건축 신청은 90% 이상 승인되지 않았다. 승인을 받기까지 행정 절차를 위해서 약 3,500만원이 소요된다. 승인 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때문에 90% 이상의 팔레스타인 주민은 ‘불법적’으로 건물을 짓고 상시 철거당할 위험에 처해 있다.
이스라엘은 애초 건국 후인 1950년에 ‘부재자 재산법’을 제정해 이스라엘 건국을 전후한 전쟁 당시 피난가거나 추방당한 팔레스타인 난민을 ‘부재자’라 칭하며 이들의 재산을 몰수했다. 2015년에는 한술 더 떠 동예루살렘에 부동산을 소유한 서안 주민들의 재산도 부재자 재산으로 간주해 몰수할 수 있게 법을 정비했다.
이스라엘은 1980년 이래 예루살렘을 자국의 수도로 주장하기 시작한 뒤, 동예루살렘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에게 이스라엘 시민권을 부여하려 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시민권을 거부하면서 이들에게는 영주권이 발급됐다. 영주권은 주민들의 주거 혹은 직업 등 삶을 예루살렘에서 중심적으로 꾸려간다는 걸 입증하지 못하거나 유학, 취업 등을 이유로 장기간 떠나 있게 되면 박탈당한다.
예루살렘 마스터 플랜 - 예루살렘을 유대 도시로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자국의 영토로 만들기 위해 여러 개의 장기적인 청사진을 실행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세 가지 계획인 예루살렘 2020년 마스터 플랜, 마롬 플랜, 예루살렘 5800 마스터 플랜은 공통적으로 예루살렘을 국제적 도시이자 문화적 허브로 기능하게 하고자 한다. 이 지점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이 관광 산업이다. 관광 산업 개발을 통해 예루살렘을 “유대 도시”로 만들어 예루살렘을 명실상부 유대 국가의 수도로 기정사실화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점령지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역사적 팔레스타인 땅 전역을 “유대 국가”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의 일부다.
예루살렘 마스터 플랜은 더 많은 부동산 개발과, 관광 기반 시설 투자가 필요하다고 한다. 예루살렘 전역에 호텔, 공중 정원 및 공원 등의 건설을 확대하고 초고속 철도와 버스 등 대중 교통을 확대하고자 한다. 특히 사해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신규 건설하거나 연장하고, 공항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이 계획이 실현되면 예루살렘에서 사해와 신규 공항 인근, 고속도로 부지로 선정된 점령지 서안지구 땅은 대규모 몰수될 것이고, 유대인과 외국인 관광객만을 위한 도로들로 그어져 이동에 이미 많은 제약을 받고 있는 서안의 주민들은 더욱 고립될 것이다.
새로운 관광 산업에선 여행 가이드의 자격 등을 엄격히 통제하려 하는데, 이 경우 팔레스타인 쪽 입장에서 가이드를 진행하는 에이전시나 개인은 자격증을 받지 못할 공산이 크다. 이는 불균형하게나마 예루살렘에서 행해져 온 팔레스타인 여행 산업을 고사시킬 것이다.
한 마스터 플랜은 관광 산업의 활성화가 3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한다. 이는 곧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으로 이주할 동기를 부여한다. 이로써 예루살렘의 아랍-유대 인구 비율에서 유대 인구의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자 한다. 이밖에도 양질의 교육과 하이테크 산업 육성을 통해 해외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으로 유인하기 위한 정책들이 곳곳에 포진돼 있다.
이런 이스라엘은 불법행위, 점령과 식민화를 규탄하는 각종 유엔 결의안과 불법 정착촌 건설 중단을 요구하는 미국의 중동 정책마저 무시하며 안하무인인 듯 굴어왔다. ‘평화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에 성실하게 임하지 않는다는 비난도 받고 있다. 하지만 점령과 식민화를 가장 끝내고 싶어 하는 것은 어쩌면 이스라엘일지도 모른다. 그저 유대 국가만이 존재하는 한때 팔레스타인이었던 땅. 이스라엘의 큰 그림은 오직 팔레스타인 땅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쫓아내고, 그들의 역사를 지우는 것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 한복판에 예루살렘 마스터 플랜이 있다.
*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마스터 플랜 관련 정보 : https://al-shabaka.org/briefs/jerusalem-israels-little-known-master-pla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