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노동자의 날(메이데이)’로 선포된 1889년 5월 1일, 아르헨티나에서 핀란드까지, 미국에서 러시아까지 파업과 시위가 일어났다. 이는 새로운 사회 권력의 출현을 알리는 신호였다.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전투적인 노동자계급의 첫 번째 국제적 행위”라고 기술했던 바로 그것이 됐다. 어디서나 낙관주의가 지배했다. 사람들은 ‘최후 결전까지’ ‘인터내셔널가’에 명시된 대로 무장했다. 노동조합들은 아직은 상대적으로 약했다. 더구나 산업화한 나라에서도 노조가입률은 임금노동자의 4분의 1이 안됐다. 영국에선 1914년에야 겨우 23%가 됐고 독일도 17%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뒤 노동운동은 일시적인 패배와 후퇴는 있었을지언정 수십 년 동안 앞으로 나아갔다. 사회민주주의나 공산주의 노동자정당들의 영향뿐 아니라 노동조합운동이 세계로 확산했고 증가하는 노동인구를 조직했다. 이 경향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10년 간 가장 강렬했다. 그러나 수십 년 간 이 흐름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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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조직률
세계적으로 조합원의 비율은 미미하다. 아주 적은 임금노동자만이 독립 노조에 가입해 있고 이들 다수는 상대적으로 부유한 북대서양 지역에 살고 있다. 국제노총(IGB)이 중요한 상부조직으로 2006년 건설됐다. 이는 세속주의의 개혁적 국제자유노동조합연합(ICFTU)과 기독교주의 세계노동연합(WCL)의 합병을 통해 만들어졌다. 2014년 국제노총은 세계적으로 약 2억 노동자(중국 제외)가 노조에 가입해 있다고 추산했고 그중 1억7600만 명이 국제노총 소속이라고 밝혔다. 또 세계 노동자의 총 수가 29억 명이며 이중 12억 명이 이른바 비공식 부문에서 일하고 있다고 봤다. 그러니까 조합원은 세계적으로 7%도 되지 않는다.
노조의 약세에는 여러 요인이 있다. 첫째, 노동자계급의 구성이 변화했고 여전히 변하고 있다. 노조들은 서비스와 금융 분야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급격히 성장하는 ‘비공식’ 경제는 이 문제를 심화했다. 노동자들은 겨우 비정규직으로 여러 일자리를 전전하며 불안정한 조건에서 임금을 번다. 게다가 중국과 인도, 러시아 노동력이 세계경제에 흡수된 1990년대 초부터는 이른바 ‘공급 충격’이 생겨났다. 이로써 국제 시장에서 생산하는 이들의 수는 지난 20년간 거의 2배로 늘었고 동시에 협상력은 약화했다.
둘째, 심대한 경제적 변화가 일어났다. 선진 경제국과 신흥국에서 국외 직접투자가 급격히 증가했고 유럽연합(EU)과 북미자유협정(NAFTA)과 같은 무역블록화가 견고해졌으며 초국적기업이 증가한 한편, 아웃소싱과 생산의 재배치가 보편화했다. 브라질과 인도, 특히 중국은 경기규칙을 바꾼 중요한 새 행위자가 됐다. 1995년 설립된 세계무역기구(WTO)와 같은 초국적 무역기구도 함께 출현했다.
셋째, 많은 나라에서 ‘구식의’ 노조가 신자유주의의 공격을 받았다. 일반적인 단체 협상 관행은 지방 분권과 광범위한 개별 계약을 통해 약화했다. 특히 미국과 영국에서처럼 신자유주의의 ‘레짐 체인지’(정권 교체)가 일어난 나라는 노조를 직접 공격했다. 이런 방식으로 약화된 노조들은 변화된 노동관계에 더 잘 적응한 대안적 조직들과 심화한 경쟁 속에서 위기에 처했다. 브라질과 남아프리카, 필리핀과 한국에서는 전투적인 노동자운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1970년대부터 기존 경로 밖에서 기층노조의 노조주의 형식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국제적으로 직접 접촉하며 각 나라 노조 관계자들이 관료정치와 긴밀하다고 생각하면 이를 완전히 우회한다. 잘 알려진 사례가 초국적정보교환네트워크(TIE)다. 여기서 많은 연구그룹과 활동가들은 초국적 기업에 대한 정보를 교환한다.
노조들은 세계적으로 약화했지만 또한 계속해서 힘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노동자 정당 형태의 연합세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한편에선 공산주의자가 사라져가고 있고 다른 한편에선 사민주의자들이 신자유주의의 대리인이 됐다. 게다가 비정부기구들이 이를테면 아동노동 금지운동과 같이, 노조운동의 전통적인 역할을 부분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노동운동의 기회
그러면 노동자운동은 어떤 기회를 가지고 있을까? 현재 노동자운동은 황량하게 보이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첫째, 계급투쟁은 약화하지 않을 것이며 노동자들도 강력한 조직을 결성하고 다양한 형태의 투쟁을 수행해야 하는 불가피성을 계속해서 인식할 것이다. 이 주장은 사회에 부재한 계급투쟁에 나서는 민족주의와 종교운동의 사례가 간접적으로 뒷받침한다. 그들은 지지자들에 사회 보장과 신뢰, 자기존중감과 분명한 삶의 전망을 약속한다. 많은 빈민은 다양한 영역에서 그러한 운동에 매료된다. 라틴아메리카와 서사하라의 복음주의 교단이나 북아프리카와 중동, 중앙아시아에서의 살라피즘 등이 그렇다. 다른 사례는 힌두파시스트인 시브세나 운동이다.(중략)
둘째, 글로벌 노동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국제노동기구(ILO)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노동력 인구는 1980년에서 2005년 사이 149% 성장했다. 서사하라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에서는 약 2배가 됐고, 남아시아에서는 73%, 동남아시아에선 60%가 늘었다. 동시에 개별 지역 내에서도 상당한 변화가 나타났다. 이농과 이주가 역사적인 규모로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2000년 중국 통계청은 이주노동자를 1억1300만 명으로 추산했다. 10년 뒤 이 수는 2억4000만 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인도에서 국내 이주는 1990년 이래 폭발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세 번째로, 사회적 투쟁을 심화할 것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2012년 10월 3일, 10월 31일과 2013년 11월 11일 인도네시아노총이 최저임금 50% 인상을 위한 전국 파업을 일으켰다. 이는 총파업이 아니었지만 수십만 명의 노동자가 참가했고 특히 수도 자카르타 노동자들의 참가 폭이 컸다. 인도에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도입과 생계를 보장할 수 있도록 인플레이션과 임금인상률을 연계하는 제도 도입을 위해 1억 명 이상이 파업했다. 중국에서는 2004년부터 시작된 노동력 부족 현상이 시위로 이어지고 있다. 중국사회과학원은 2006년 6만 건 이상의 대중 소요(임금노동자와 농민 및 종교 단체들이 행한 대중 시위)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2007년에는 8만 건이다(더욱 정확한 수치는 발표되지 않았다). 그 이후 공식 발표는 없었지만, 전문가들은 이 수가 더 늘어났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 위기가 시작한 이후 그리스에서는 30건 이상의 전국적인 파업이 일어났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도 여러 번의 총파업이 벌어졌다. 2011년 이집트 무바라크 독재의 전복은 노동자운동의 강력한 지지가 없었다면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리고 남아프리카에서는 양보하지 않는, 종종 직접적인 폭력을 동반한 파업이 줄을 이었다. 노동자 조직의 힘은 일치하지 않지만 투쟁성은 늘어났다.
넷째, 사회적 저항은 세계 모든 부분에서 성장했다. 여러 연구 보고서는 1980년대 하반기와 1990년대 초 대규모 시위는 4배로 증가했고, 1990년대와 2000년대 상반기에는 현저히 줄어들다가 2000년대 하반기에 다시 늘어나 최근 최고점에 이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때 구호는 지역에 따라 시위의 형태만큼이나 다양하다. 시위는 식량과 연료 보조금, 임금 삭감 반대, 기초식료품과 서비스에 대한 부가가치세 인상, 연금과 보건제도 민영화, 노동유연화 반대, 그러나 또 환경오염과 전쟁, 성폭력과 기업의 영향에 맞서 일어났다. ‘진짜 민주주의’는 지속적인 주제였다.
그러나 다섯째로 (노동자운동의) 혁신을 말하는 명확한 징후도 있다. 병원이나 돌봄 분야 미조직 노동자 조직운동이 최근 매우 늘어났다. 2009년 이래로 국제가사노동자연맹(IDWF)의 지속적인 성공은 많은 이들에게 모범이 됐다. 이들 운동이 ‘가사노동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에 관한 권고안’인 ILO 협약 189조를 이끌어냈다. 또 최근 미국 수감인들의 시위 물결은 장기구금, 부실한 의료, 폭력과 노예노동에 맞서 새로운 층의 노동자계급이 행동에 나섰다는 것을 보여준다. 많은 나라 노동조합들은 ‘비공식’ 그리고 ‘불법적인’ 노동자들을 조직하고자 애쓰고 있다. 이때 매우 감동적인 것은 2006년 창립한 인도의 새로운투쟁의노동조합(NTUI)이다. 이는 여성들의 무급노동과 유급노동의 의미를 알리고, ‘공식’ 부문 조직 뿐 아니라 불안정노동자와 임시직, 가사노동자, 자영업자와 도농노동자이 상응하는 단체협상을 할 수 있도록 조직했다.
과도기
노동운동의 혁신을 어렵게 하는 근본적인 장애물이 있다. 지난 30-40년 동안 민족국가는 주요한 주권 사항을 잃었지만 유실된 권력은 초국적 기관을 통해 보충되지 않았다. 많은 문제가 더는 일국 차원에서 다뤄질 수 없는 과도기에 존재한다. 이탈리아 사회학자 알베르토 마르티넬리는 “오늘날 세계에서는 지구적 차원으로 시장을 규제하거나 이의 문제를 고칠 목적으로 노동이나 환경법을 공포하거나 재정과 복지정책을 개정할 수 있거나 균형적인 반독점법을 공식화하는 국민국가에 상응하는 등가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불법적인 관계를 통제하거나 제재할 수 있는 독립적인 국제기구도, 민주적인 국가기관도 없다”고 기록했다. 이는 긍정적인 대안을 나타내지 못하고 ‘반대’라고 말만하는, 많은 사회 운동의 ‘부정적인’ 태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런데도 국가들에 초점을 맞추는 초국가적인 실천은 이 불리한 상황에서도 가능할 수 있다. 국가들이 국경을 넘어 협력하도록 압박하거나 본보기가 되는 지역 활동가들이 세계의 다른 부분들에서 계속 운동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다.
이때 새 노동자운동은 국경을 초월하는 연대를 건설하는 국제주의적 운동이 돼야 한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현저히 변화해야 하지만 구 노동자운동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새로운 국제주의 노동조합운동의 윤곽은 여전히 미약하지만 그들의 형성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분명히 존재한다.
- 대상 그룹이 재정의될 필요가 있다. 19세기 노동자계급에 대한 정의는 극히 좁았고 유럽 중심적인 관점에 따랐다. 이를 수정하고 확장해야 한다. 소위 주변부와 반주변부 노동조합의 상당수는 지금 이러한 낡은 규정을 비판해왔으며 착취당하는 노동자 모두를 조합원으로 조직해야 한다고 밝혀왔다.
- 새 대상그룹은 북대서양지역의 남성 백인 노동자들이 아닌 여성과 다인종 민중 또는 불안정한 그리고 부채의 덫에 걸려 있는 노동자들이 주도해야 한다. 이 노동조합들은 이들 ‘새’ 노동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도록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활동방식을 대대적으로 바꿔야 한다. 이는 단체 교섭에 집중하는 관행도 바꿔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 국제 노동조합운동의 이중구조는 - 국제노총에서 국가단위의 상급단체 간 협력과 국제산별노조연맹들(Global Union Federations)에서의 산별에 따른 협력 - 과거의 유산으로서 개혁돼야 한다. 아마도 제일 나은 선택은 지구적 노동조합 속에서 ‘새’ 대상그룹의 통합을 쉽게 하는 새로운 통일적인 구조일 것이다.
- 현재까지 국제노동조합운동 속에서 지배적이었던 관료주의 방식은 일반 회원들에 더 많은 발언권을 주는 민주적 방식으로 대체돼야 한다.
- 오늘날까지 국제 노동조합운동의 주요 활동은 지역과 다국적 조직에 대한 로비활동이었고(1980년대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은 주목할 만한 예외였지만) 또 국가들에겐 호소하는 정도였지만, 진정으로 효과적인 조치를 위해선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보이콧, 파업 등의 조치가 그것이며 이를 위해선 다시금 내부 구조를 실질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기존 노조운동이 이 과제를 수행할 것인지 질문은 남아 있다. 아마도 새로운 운동은 어려운 과정이 될 것이다. 지난 100년 이상 형성된 조직구조와 관계모형은 변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위로부터의 개혁을 통한 새 구조와 모형은 관철될 개연성이 희박하다. 역사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노동조합 구조는 거의 마찰 없이 발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갈등과 위험한 실험의 결과이다. 아래로부터의 압력(투쟁하는 네트워크와 대안적인 행동방식 등)에 이 결과가 달려 있다.
[필자] 네덜란드 역사가. 암스테르담대 국제사회사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국내 번역된 <서구 마르크스주의, 소련을 탐구하다>(황동하 역, 서해문집) 등이 있다.
[원문] https://www.jungewelt.de/artikel/309842.aufstieg-im-niedergang.html
[번역] 정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