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밥엔 찬성하지만 낚이는 건 싫습니다

[워커스] 아무말 큰잔치

이제와 고백하건대 2012년 대선에서 난 문재인을 찍었다. 그즈음 숱했던 술판에서 “문재인이 이명박이나 박근혜와 다를 게 뭐냐”고 말했다. FTA와 대추리, 비정규직법, 부안, 이라크 파병 등등등. 참여정부는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만큼, 혹은 그보다 더 노동자와 농민, 민중들을 괴롭혔다. 그 때도 지금도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난 문재인을 찍었다.

이번엔 좀 빠르게 고백하자면 난 심상정을 찍었다. (더구나 나 혼자 조용히 심상정을 찍는데서 그치지 않고 주변에 심상정을 찍자는 독려도 좀 했다.) 여전히 숱했던 술판에서 난 “심상정은 또 문재인과 다를 게 뭐냐”고 했다. 진보정치를 참칭하는 자유주의 정치, 페미니즘을 자처하면서 당내에 창궐하는 ‘한남충’들에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비겁함, 피와 눈물이 치열하게 쌓아올린 진보정당의 성과를 갉아먹은 기회주의. 그런 말을 했다. 이런 생각도 당분간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이번엔 심상정을 찍었다.

[출처: 자료사진]

# 떡밥에 낚이지 마세요

당연하지만 문재인이 대통령이 됐다고 달라질 것은 별로 없다. 새 대통령은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했지만 실상 인천공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직고용 정규직 전환보다는 임금을 비롯한 노동조건은 그대로 둔 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중규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문 대통령이 인천공항을 찾았을 때 이런 우려를 제기한 노동자에게 “한 번에 다 얻으려 하지 말라”고 답한 건 우려를 더 키운다. 인천공항공사가 ‘좋은일자리 TF’를 만들면서 자회사 설립을 언급한 것도 마찬가지의 맥락이다. 정규직화, 노동중심 같은 말은 사실 떡밥이다. 떡밥의 달콤한 유혹을 따라간 결과 비정규직 법안이 만들어졌고 대추리와 이라크엔 군대가 파병됐다. 떡밥에 낚이면 실상 우리의 삶은 저들의 정치에 포섭된다. 그 포섭은 저들의 알리바이가 된다. 그들은 여전히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너희들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어, 늬들도 좋아했잖아.” 안타까운 건 아직도 자기들이 낚인지 모르는 어망 속의 물고기들이다.

정의당으로 표상되는 한국의 ‘진보정당’도 마찬가지다. 본래 진보 운동은 거개의 권력과 자본에 적대적인 스탠스를 취함으로 ‘다른 것’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적대함으로 균열을 만들고 그 균열에 진보와 정치의 공간을 만드는 작업. 그러나 진보정당은 진보보다는 정당에 방점을 찍음으로 공적 영역과 권력에 포섭됐다. 진보 ‘정당’의 정치는 새로운 것으로의 전복보다는 체제를 용인함으로 얻는 안정적 지위에 국한됐다. “사회적 합의가 용인하는 진보”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같은 거다. 중식이 밴드의 여성혐오 가사에 대처하는 방식이나 김지연 성우 부당해고에 이은 당내 메갈리아 논쟁에 대처하는 정의당의 방식이 그랬다. ‘안정된 진보’의 떡밥에 낚이면 상상력과 자생성을 박탈당한다. 균열을 두려워하게 되고 마침내 체제에 순응하게 된다.

# 그렇지만, 떡밥을 버리진 마세요

문재인이나 심상정이 대통령이 된다 해서 나의 삶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이토록 지껄이면서도 정작 그들을 찍은 이유는 어쩌면 그게 ‘연대’의 본질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연대란 본질적으로 서로가 가진 힘을 이용하는 것이다. 2012년, 문재인은 쌍용차 해고자의 복직을 최우선으로 하겠다고 공언했다. 당연히 그의 말을 온전히 신뢰하지는 않았다. 그는 당시 노동 문제의 상징과 같던 쌍용차를 언급함으로 자신의 개혁 이미지를 공고히 하려 했을 뿐이다. 그가 대통령이 됐다고 쌍용차의 해고노동자들이 일거에 복직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 건 고작 대통령 따위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그러나 적어도 노조가 박근혜 정부에서보단 조금 더 유리한 고지에서 투쟁하고 협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대통령의 ‘언급’의 힘은 딱 그만큼이다. 그리고 딱 그만큼을 위해 난 문재인을 찍을 수 있었다. 문재인은 표를 얻고 ‘우리’는 딱 그만큼을 얻는 거다. 이번 선거에서 심상정에게 표를 준 이유도 마찬가지다. 계속 열세였던 심상정이 TV토론에서 성소수자 문제에 자기의 1분을 할애하는 순간, 멀리서 찾아왔다는 성소수자 청년과 얼싸안던 그 순간 심상정의 지지율 그래프가 움직였다. 그렇지만 심상정이 대통령이 된다고 소수자의 인권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지는 않는다. 그저 심상정이 득표한 수만큼 혐오가 조금 ‘주춤’할 것이란 기대. 그녀에게 준 ‘표값’으로 내가 기대한 건 딱 그만큼이다. 그렇게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얻어내고 쿨하게 다시 헤어지는 것. 그게 연대의 본질이다.

정치인을 이용하는 건 그들을 논리적 모순에 처하게 만드는 일이다. 그들이 대통령이 되고 싶어 표를 구하러 다닐 때와 이후의 말이 달라진다면 우리는 말의 무기를 쥐고 그들을 다그칠 수 있게 된다. 어쩌면 죽어도 그들은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시혜와 권력의 크기를 이미 인정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그저 애초부터 그들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이용할 거리들은 차고 넘친다. 낚시 바늘을 피해 떡밥을 야금야금 물어뜯을 방법은 많다. 난 낚이는 것은 싫지만 떡밥엔 찬성한다.[워커스 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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