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기업 보쉬, 노동권과 인권은 독일에 두고 왔습니까?

[연속기고]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3권을 - 노조파괴금지·교섭창구 단일화 폐기를 외친다(1)

[연재를 시작하며] 대전·충북지역에는 노조파괴·복수노조 사업장이 여러 곳입니다. 2011년 유성기업을 시작으로 보쉬전장, 콘티넨탈지회 등 노조파괴 사업장을 비롯해 엔텍, 한국타이어, 성우메탈 등 6개 사업장이 모두 복수노조 사업장입니다.

회사는 복수노조 강제적 교섭창구 단일화를 악용해 소수노조로 전락한 금속노조의 노동3권을 무력화시켰습니다. 유성기업은 금속노조가 과반수노조를 점하고 있음에도 어용노조를 이용해 차별을 정당화하고 노동3권을 무용지물로 만들어왔습니다. 벌써 7년입니다.

노조파괴 금지를 통해 노조 할 권리를 보장해야 합니다. 교섭창구 단일화 폐기를 통해 소수노조에게도 노동3권을 보장해야 합니다.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3권을 보장해야 노조 할 권리가 보장되는 것입니다.

대전충북지역 복수노조 사업장 노동자들은 7월부터 정부종합청사와 민주당사 앞에서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3권을, 노조파괴금지와 교섭창구 단일화 폐기’를 위한 1인시위에 돌입했습니다. 노조파괴·복수노조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현장 문제들도 알려나가려고 합니다. 이를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직접 연재하는 현장의 글에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



  노조 사무실로 법원이 고용한 용역들이 들이닥치는 장면

소수노조 따위가 어디 감히 현장 노조사무실을?

“지회장님, 이놈들이 쳐들어왔어요” 노조사무실에 결국 법원이 고용한 용역 수십 명이 들이닥쳤다. 부랴부랴 일손을 놓고 조합원들이 노동조합 사무실 앞에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대낮에 용역들이 들이닥친 이유는 노조 사무실 때문이다. 회사는 끊임없이 노조 사무실을 비우라고 요구했다. 한마디로 “조합원 꼴랑 몇 명 있다고 큰 노조 사무실을 쓰느냐”는 거다. 복수노조가 생기고 나서 벌어진 일이다. 노조가 이를 거부하자 회사는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은 회사 편을 들어주었다.

노동자들이 노조 사무실에서 버티기를 하자, 법원 직원들과 용역들은 노동조합이 공권력 행사를 가로막았다며 사진으로 체증하고 심지어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는 무서운 엄포를 하고 나서야 돌아갔다. 태어나서 경찰서 문턱한번 가보지 않았던 조합원들. 그런데 그들이 높은 나라님들의 공권력과 맞서며 법을 통해 풀리지 않는 부당함을 호소하고 있다.

현장 한 가운데 딱하고 버티면서 지난 25년 동안 우리와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노동조합 사무실. 현장과 가깝다보니 근무시간에라도 언제든지 컵라면으로 허기진 배고픔을 달래줄 수 있는 곳. 관리자들 아니라 회사 사장님도 노조 허락 없이는 단 한 발짝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곳. 이곳이 바로 우리 노동조합 사무실이다. 그런데 회사는 2012년 노조파괴 시작과 함께 이곳을 빼앗겠다며 모든 수단을 사용했다. 결국 국내 최고의 로펌을 고용한 회사는 법원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를 뒤바꾸는 기술 좋은 마술을 보여주었다. 법원은 서류 몇 장만으로 노조사무실을 비워줘야 한다며 회사의 손을 들어주었고, 우리는 지난 25년간 함께 했던 노조사무실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이곳은 바로 6년째 노조파괴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 전쟁터 같은 보쉬전장이다.

  보쉬전장 노조사무실로 쓰인 공간. 지난 1월 노조는 사무실에서 내쫓겨 인근에 천막을 치고 활동하고 있다

교섭만 수 백번, 무력화된 소수노조 교섭·파업권

보쉬전장은 구 만도기계 사업장이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큰 마찰 없이 순탄했던 노사관계였다. 그러다가 지난 2011년 현대자동차가 부품사 사업장들 중에 소위 강성집행부가 있는 곳으로 지목하고 나서부터 회사의 본격적인 노조사냥이 시작되었다. 2012년 창조컨설팅과 공모한 노조파괴는 2명을 해고시키고 3명은 정직, 5명은 출근정지로 살육을 시작했다. 단협은 해지되고 정문출입은 봉쇄됐으며 숨 막히는 통제는 이제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어디 그 뿐인가. 회사는 금속노조 깃발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가혹한 형벌로 금속 조합원들에게만 2012년과 2013년, 그리고 2014년까지 3년째 임금을 차별 지급하고 있다. 교섭은 이미 수백차수를 돌파했다. 그러나 마지못해 끌려 나온 대표이사의 옅은 웃음 뒤에는 교섭을 타결할 의지도 고민도 그 어떤 것도 엿볼 수 없다. 노조파괴 이후 생활고로 1명, 업무상 스트레스로 1명 이렇게 2명의 조합원들이 목숨을 끊는 끔찍한 일도 발생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인간관계는 단절되고 파괴됐으며 딱 그만큼 회사의 현장 장악력은 점차 높아져갔다. 회사는 현행법을 비웃었고 회사의 노조파괴는 노골화됐다.

노동부를 찾아가서 항의도 해봤다. 검찰에 고발장도 수십 차례 접수했고 법원 앞에서 풍찬 노숙도 해가며 호소했지만 그때마다 국가권력에게는 소귀에 경 읽기였다. 차가운 시멘트바닥위에서 수년째 농성을 해가며 차별을 해소하고 노조탄압을 중단하라고 외쳤다. 그렇지만 이미 노조파괴라는 달콤한 마약에 취해버린 회사에게 이런 상식은 들릴 리 만무했다.

  보쉬전장 노동자가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노조파괴 금지와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폐기를 요구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독일대사관 앞에서 보쉬전장 노동자가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이번엔 풍경이 바뀌었다는 서울로!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술만 먹으면 조합원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외치는 대표적인 레퍼토리다. 돈 앞에 모든 것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오만한 자본 앞에 돈 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우리가 질기게 버티고 싸우는 이유다. 최근 조합원들과 새로운 투쟁을 결의했다. 노동자들 투쟁에 마지막은 없지만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하자며 조합원들과 다시 의기투합 했다. 제일 먼저 독일 대사관으로 달려가기로 했다. 독일 대사관에 가서 보쉬라는 다국적기업의 민낯을, 그 실체를 고발하기로 했다. 알다시피 보쉬라는 다국적기업은 본사가 독일이다. 독일정부는 2016년 12월 21일 기업과 인권 NAP를 발표했다. 독일정부가 독일기업들의 인권과 노동기본권 존중문제를 스스로 관리 감독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내용을 명시한 것이다. 기업들로 하여금 자율적으로 인권침해 여부를 실사하라는 권고인데 모든 독일 기업들에게 적용된다. 그렇지만 여전히 현장은 불법이 활개를 치고 있고 노동기본권 문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인권과 노동권은 보기 좋은 선언에서만 존재할 뿐 아무런 실효성 없는 그저 부도난 백지수표에 다름 아니다.

정부종합청사 앞에서도 조합원들이 일인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소수노조의 노조 할 권리를 박탈하는 교섭창구단일화 폐기를 요구하는 피켓시위도 함께 벌이고 있다. 설령 당장 임금차별을 해소한다고 해도 교섭창구단일화라는 악법이 존재하는 한 현장에서 제대로 민주노조를 지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역에 같은 복수노조 사업장인 한국타이어, 유성기업, 콘티넨탈, 성우메탈 지회 조합원들도 같은 요구를 담아 함께 싸우기로 했다. 쉽지 않은 싸움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극복하지 못할 싸움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조파괴 6년. 새롭게 시작한 우리의 투쟁. 도도한 물결의 흐름처럼 잔잔하고 고요하게 하지만 분명하게 또렷하게 걸어간다면 결국 민주노조는 힘 있게 부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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