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법 7년, 정말 많은 노동조합들이 이 때문에 노조파괴를 당했습니다. 정말 많은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싶어도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조파괴, 역병처럼 몰려왔다
공장정문 앞에는 두 개 노조의 현판이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걸려있습니다. 하나는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금속노조 현판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2012년 설립한 기업노조의 현판이 바로 그것입니다. 2012년 복수노조 노조파괴 역병이 지역을 한참 할퀴고 지나갈 즈음 우리 현장도 속수무책으로 무너졌습니다. 전체 320명의 노동자 중 현재는 50명의 조합원들이 남아서 5년째 금속노조를 지키고 있습니다. 시간은 기억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고 하던데 아직 우리에게 상처의 흔적은 너무나 깊게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어제 일처럼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회사는 기업노조가 설립되고 나서 얼마 후 금속노조 지도부를 통째로 해고했습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징계사유를 들어서 해고시켰고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수십 년간 맺어왔던 단체협약은 회사의 일방적인 해지 통보로 하루아침에 쓰레기통으로 들어갔습니다. 경영환경 변화로 불가피하게 단협을 해지할 수밖에 없다던 회사는 기업노조와 고작 문구 몇 개 수정해서 고스란히 마치 판박이처럼 새로운 단체협약을 체결했습니다.
소수노조, 사라진 노동3권 누구에게 갔나?
2012년 회사는 기업노조와 금속노조 모두에게 교섭권을 부여하겠다고 했습니다. ‘교섭창구단일화절차’ 생소했던 이 제도가 처음에는 그렇게 무서운 것을 함의하고 있는지 정말 상상도 못했습니다. ‘교섭비용 절감’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빌려 노조에게 교섭할 권리를 제한하고 심지어 그 선택권을 오롯이 회사에게 부여한다는 그야말로 자본에게는 도깨비 방망이 같은 제도. 그런데 노동자들에게는 다시 무서운 쇠방망이가 돼서 돌아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교섭개시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서 회사는 기업노조와 임금과 단체협약을 체결했습니다. 회사와 기업노조 대표자는 서로를 칭송하고 마치 구국의 결단이라도 되는 듯 서로에게 태평성대를 약속했습니다. 회사는 기업노조의 결단에 박수를 보낸다며 두둑한 성과급을 안겨줬습니다. 그런데 금속노조와의 교섭은 시작 전부터 삐거덕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단체협약은 전문부터 회사의 발목잡기가 이어졌습니다. 임금교섭에서는 금속노조가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회사가 임금차별을 공공연하게 떠들었습니다. 결국 회사는 교섭창구단일화절차라는 법 위에서 마음껏 춤을 추며 노골적으로 노동자들을 조롱했습니다. 금속노조에 남아있으려면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으로 낙인을 찍었습니다. 결국 마지막까지 주저했던 많은 노동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기업노조로 옮겨 탔고 그럴수록 더욱 기고만장한 회사의 교섭태도는 무성의 그 자체였습니다. 그때 5명의 노동자들이 용기를 내서 다시 금속노조로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회사가 기업노조의 임금인상 합의내용을 적용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2013년 이번에도 회사는 양쪽노조와 교섭을 개시하겠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것도 회사의 맘대로 입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회사는 또 다른 차별을 위해서 마음에도 없던 금속노조와 교섭을 개시한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는 ‘2년 연속 무분규 격려금’이라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애초 금속노조 조합원들에게만 성과급을 주지 않겠다고 분명하게 밝힌 것입니다. “돈 앞에 장사 있겠어?”, “이정도면 한줌도 안 되는 너희들이 뭘 할 수 있겠어” 아마도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노동자의 교섭권이 사용자의 권리로 돼버린 교섭창구 단일화
매질하는 사람도 지치는 모양입니다. 그렇게 몇 년을 버티니까 회사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이번에는 개별교섭이 아니라 교섭창구 단일화를 통해 기업노조에게 교섭대표권을 부여했습니다. 이 역시 사용자의 권리였습니다. 교섭권이 사용자의 권리가 되는 기막힌 교섭창구 단일화였습니다. 기업노조 간부들만 교섭에 들어갔고 소수노조인 우리는 아무 것도 알 수 없었습니다. 기업노조는 교섭경과를 알려달라는 요구에도, 최소한의 자료를 요청하는 요구에도 오로지 모르쇠로 일관했습니다. 교섭합의 내용이 도출되자 기업노조는 공문을 한 장 보내서 금속노조 역시 합의안에 대한 가부여부를 묻는 결과를 알려달라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가부여부 결과는 전체 찬반투표 집계에 반영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달했습니다. 결국 기업노조가 교섭대표권을 가지고 교섭에 들어갔지만 그것에 대한 사전 의견 반영이나 또는 합의이후 금속노조 조합원들에 의견을 묻는 절차는 과정은 깡그리 무시되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심지어 합의내용은 더더욱 심각합니다. 회사와 기업노조가 체결한 단체협약은 사실상 금속노조의 노조활동 자체를 봉쇄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기 소속 조합원들의 권리침해에도 아무런 의견개진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노동위원회와 법원을 거쳐 결국 부당한 합의라는 사실을 인정받았지만 이 역시 솜방망이에 불과합니다. 법원 판결이전에 회사는 이미 단체협약 합의내용대로 금속노조 활동에 재갈을 물렸기 때문입니다. 콩쥐노조와 팥쥐노조. 그리고 그것을 합법적으로 가능하게 만들었던 교섭창구단일화절차에 멍든 지난 5년의 자화상입니다.
우리도 당당하게 교섭하고 싶습니다!
며칠 동안 조합원들과 토론을 통해서 결국 우리는 2012년과 2013년 임금안에 대해서 최종 서명했습니다. 해고된 동료들의 빠른 복직이 무엇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조합원들의 따뜻한 마음이 결국 합의안을 통과시킨 것입니다. 합의안에 대한 서명을 마치고 회사 임원이 불쑥 내뱉은 이야기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앞으로 금속노조를 차별하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물론 앞으로는 금속노조와 교섭하는 일도 절대 없을 것입니다.”
복수노조를 통한 노조파괴는 이제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모든 노조에게 균등한 기회를 제공하고 조합원들이 스스로 자신의 결정대로 선택한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복수노조를 통한 노조파괴란 더 이상 발을 붙이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교섭창구단일화폐기는 그 첫 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섭창구단일화가 폐기돼서 모든 노조에게 동일하게 교섭권과 파업권이 부여된다면 사용자는 복수노조를 통한 노조파괴를 꿈꿀 수 없습니다.
며칠 전 우리는 조합원들과 소중한 결의를 모아냈습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싸우자” “가장 절박한 사람들이 먼저 싸움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교섭창구단일화폐기를 요구하는 일인 시위를 조합원들과 함께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파업권이 없으니 별수 없이 조합원들이 개별 휴가를 내고 서울로 상경하기로 했습니다. 작은 몸짓이지만 결국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는 노동자들과 만난다면 불가능한 싸움만은 아닐 것이라는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소수노조의 생존전략은 교섭창구단일화폐기라는 기울지 않은 운동장에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