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권의 탈핵 선언으로 모두가 들떠 있던 그 때. 《워커스》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경북에 살고 있다는 그는 신재생에너지 사업 때문에 살 수가 없다고 호소했다. 빨리 내려와 쑥대밭이 된 마을을 봐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진짜 생존을 위한 싸움은 다른 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탈 원전의 대안, 에너지 전환의 희망으로 각광받던 신재생에너지는 누구의 손에서 괴물이 되어 간 것일까.
[‘탈핵, 쇼미더머니’ 연재 순서]
(1) 태양광 발전소를 혐오하는 마을, 이것은 님비입니까?(링크)
(2) 산사태를 몰고 올 위험한 바람, 맞서 싸우는 사람들(링크)
(3) [관계도] 신재생에너지가 내게 오는 길(링크)
(4) 깜깜한 미래, 내게 ‘광(光)’ 같은 태양광 투자(링크)
(5) 신재생에너지에 빨대를 꽂다
(6) 삼성물산과 손잡은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재생에너지 비극
산과 맞닿은 마을 끝자락에 육중한 설치물이 들어섰다. 소나무 숲을 깎아낸 자리가 구멍처럼 까맸다. 그 속에 들어앉은 괴상한 판자 떼기를 보며 마을 주민들은 혀를 찼다. 누군가는 그것을 ‘흉물’이라 손가락질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마을의 맥을 끊어 놓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나, 밭에서 일을 하다 고개를 들었을 때, 그 흉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주민들은 비학산 밑을 갉아먹고 태어난 그것이 늘 불안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결국 조용했던 마을에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마을 노인들은 한 평생 처음으로 데모라는 것을 했다. 몸에 띠를 두르고 시청으로 몰려가 구호를 외쳤다. 그들은 또 다시 저 흉물을 마을에 들일 수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출처: 사계] |
마을 끝자락을 차지한 흉물스러운 것
경북 포항시 신광면 죽성1리 입구에서 만난 한 노인은 “깨끗한 동네를 저것이 더럽혔다”며 손가락질 했다. 노인의 손가락이 향한 곳은 비학산 밑을 깎아 만든 태양광 발전소다. 마을회관 앞을 지나던 또 다른 노인은 “이제 이 동네에 태양광은 절대 없다”라고 목소리를 높다. 탈(脫) 원전, 친환경 에너지의 대안으로 떠오른 태양광 발전소는 어쩌다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든 괴물이 돼 버린 걸까.
죽성리 마을주민 김정환 씨는 직접 눈으로 봐야 알 수 있다고 했다. 김 씨의 트럭을 타고 좁은 농로를 달렸다. 마을 끝자락에 다다르자, 비학산 밑동을 깎아 만든 태양광 발전소가 한 눈에 들어왔다. 구름에 가려진 해발 762m의 비학산 자락 아래로, 태양광 판넬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무려 5만여㎡에 달하는 부지다. “저것 좀 보세요. 보기 좋습니까? 태양광 한다고 비학산 맥을 끊어 놨어요.” 김 씨의 목소리가 커졌다.
여느 시골 마을처럼, 이곳 죽성1리 노인들도 비학산의 정기를 믿으며 살아간다. 가뭄철이면 산으로 올라가 기우제를 지내곤 했다. 평생 산 밑의 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노인들에게 토속신앙은 생존을 향한 바람과 같았다. 요즘 비소식이 없는 것도 산을 깎아 만든 저 흉물 때문인 것만 같았다. 토속신앙이든, 자연경관이든 그저 노인들의 고집 같아 보인다. 외지인들이 보기엔 그렇다. 마을 주민들도 모르지 않는다. “형이상학적 이야기는 소용없을 것이고, 진짜 주민들이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지 알고 싶으신 거죠?” 한창 비학산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던 김 씨가 서둘러 말머리를 돌렸다.
소나무를 베어낸 자리, 마사가 덮친 논둑
2년 전, 이곳 5만여㎡ 부지에 첫 태양광 발전소 건립 공사가 시작됐다. 포크레인이 들어와 소나무를 파헤칠 때만 해도, 주민들은 무슨 공사인지 알지 못했다. 마침 소나무 재선충병이 유행하던 때다. 재선충에 감염돼 말라 죽은 소나무를 베어내는 공사인 줄만 알았다. 주민 공청회도 열리지 않았다. 소나무가 잘려나간 자리가 휑하니 드러난 후에야 주민들은 공사의 진짜 목적을 알게 됐다. “나무가 수도 없이 잘려나가고 나서야 알았어요. 그제야 주민들은 반발을 했고요. 업자가 ‘공사를 막으면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겁을 주더라고요. 노인들은 겁을 먹죠. 아무리 찾아봐도 이제와 막을 방법도 없었고요. 웃기는 일이죠. 업자가 베어낸 소나무들만 팔아도 땅 값은 나왔을 겁니다.”
마을의 첫 태양광 발전소는 그렇게 어부 들어섰다. 문제는 그때부터다. 나무가 깎여나간 지반은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었다. 게다가 태양광 발전소는 농경지 바로 위쪽에 있었다. 지난해 그리 많지 않은 비가 내렸다. 빗줄기를 따라 산을 덮고 있던 마사(화강암이 풍화돼 생성된 흙)가 논둑을 무너뜨렸다. 산에서 내려온 토사는 논밭을 덮치고 마을 입구까지 흘러내렸다. 농사를 망친 주민들은 수 천만 원의 피해를 입었다. 당장 포크레인으로 흙을 퍼내야 했다. 발전소 업자는 피해를 입은 주민들에게 개별적으로 피해보상금을 지급했다. “업자가 저녁에 사람들을 불러내서 약 300만원 씩 개별로 돈을 준 모양이에요. 그리고 나선 ‘주민들이 돈을 요구했다’고 허위 소문을 퍼뜨리고 다녔어요. 그러니 주민들 사이에 반목이 생기는 거예요. 소문이 소문을 낳고. 주민들 간에 싸움이 나고. 조용하던 마을이 쑥대밭이 됐어요. 주민들 사이를 중재하느라 저는 원형탈모까지 생겼습니다.”
돈 문제로 마을이 시끄러워진 건 처음이 아니었다. 주민들이 처음 발전소 건립을 수용했을 때, 업체는 마을 발전기금으로 3,000만 원을 내놨다. 그 때도 주민들이 돈을 요구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경찰까지 마을로 찾아와 조사를 벌다. 청정했던 마을은 한동안 진흙탕 싸움을 벌여야 했다.
두 번째 태양광 발전소
발전소 전기를 처음 송출하던 날에는 마을 전체가 블랙아웃 되는 난리를 겪었다. 발전소 전기는 3상전주를 통해 한전에 송출한다. 마을 주민 100가구가 사용하는 지하수 모터 등도 3상 전기를 사용했다. 갑자기 전력양이 많아지면서 모터가 다운된 모양이었다. 김 씨는 그 때를 떠올리며 분통을 터뜨렸다. “낮부터 마을 전체에 전기가 다 나갔어요. 저도 고구마 저온창고가 작동하지 않아 피해를 봤어요. 그런데 왜 정전이 됐는지 몰랐죠. 다음날 한전에 물어보니 태양광 전기 송출했던 날이었대요. 손해 본 것 있으면 법적으로 하라더군요.” 하지만 그때까지도 주민들은 물리적인 싸움을 상상하지 않았다. 그들이 집단행동에 나선 것은 마을에 두 번째 태양광 발전소 공사가 시작되면서부터다.
이번에는 마을 위편에 위치한, 6,000여㎡ 규모의 발전소다. 주민들은 탕탕거리는 타공 소리를 듣고서야 두 번째 발전소가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부지는 발전소를 짓지 않겠다고 주민들과 약속한 땅이었다. 차명섭 죽성1리 이장은 “큰 땅에 발전소를 짓는 대신, 그 곳은 손을 대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시행사는 약속과는 다르게 그 땅까지 매입해 공사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또 다시 공사 차량이 마을 안으로 고 들어왔다. 주민들이 지난해 공들여 만든 농로가 벗겨지고 상했다. 결국 주민들은 공사 차량을 막아섰다. 공사 현장으로 달려가 포크레인에 올라타기도 했다. “포크레인이 마을에 올라왔다는 소식이 들리면 일을 하다 말고 할매들 차에 태워 산으로 달려갔죠. 평균 연령 85세 노인들이 그 추운 겨울에 포크레인 위에 올라타고 그랬어요. 업자는 안하겠다고 해 놓고 저녁에 와서 몰래 또 공사하고.”
국책사업이라는데, 왜 개인 사업자만 배불립니까?
주민들의 반대가 격화되자, 시행사는 ‘고소고발’과 ‘손해배상’이라는 채찍으로 맞섰다. 김 씨 역시 공사 차량을 경운기로 막았다는 이유로 시행사로부터 고발을 당하기도 했다. 차명섭 이장은 손해배상 협박까지 받았다. “그 (공사 차량이 지나다니던) 길은 허가받은 길이 아니에요. 작년에 농민들이 땅이랑 돈을 모아 넓혀 놓은 농로거든요. 그런데 그 길을 막았다고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내용 증명을 보내왔어요. 공사가 지체됐으니 10억 원을 배상해야 한다고요. 시골 사람들 협박하는 거죠.“
차 이장도 지난해 토사유출로 큰 피해를 봤다. 무너진 논둑을 손수 고치면서도 시행사에 손해배상을 요구하지 못했다. ‘주민들이 돈을 뜯어간다’는 헛소문이 날까봐서다. 울분이 쌓이고 쌓다. 그를 포함한 주민들은 꽤 오래, 그리고 빈번히 경고해 왔다. “몇백 년 된 소나무들이 있고, 마사토 지역이라 농가피해도 우려되니 발전소 짓는 데 신중해야 한다고 시청에 민원을 많이 넣었어요. 시에서는 행정지도로 해결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결국 이렇게 난개발이 이뤄졌어요.”
주민들의 피해와 갈등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서야 시는 공사 중지 명령을 내렸다. 앞으로는 주민 동의 없이 준공을 허가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다. 하지만 공사가 진행된 부지는 시행사가 사들인 개인 땅이다. 으레 그렇듯, 조만간 시행사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
주민들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환경보호라는 명목의 ‘신재생에너지’ 사업이 도리어 환경을 파괴하는 아이러니함을. 그리고 국책사업이라는 이름의 태양광 발전소 공사가 결국 몇몇 사업자 배만 불린다는 사실도. 김 씨는 헛웃음을 쳤다. “신재생에너지라고요. 취지는 좋죠. 그런데 태양광 전기 1kW 생산하겠다고 몇 백 년 된 소나무 100그루를 베어버리는 건 어떻게 봐야 합니까? 그리고 국책사업이라는데 왜 개인업자들만 배불리고 있느냐고요. 국가가 주도해서 주민들이 참여하는 사업이었다면, 최소한 주민 공청회만 열렸더라면, 난개발이 아닌 신중한 공사다면, 우리도 이러지는 않았을 겁니다.”
주객이 전도된 사업. 방향성을 잃어버린 태양광 발전소 사업은 혐오 시설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이 동네에 태양광은 절대 없다”던 한 노인의 호통은 단지 ‘님비현상’ 같은 지역 이기주의로 치부할 수 있을까.[워커스 3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