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도 방치한 직업병, 삼성을 용서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

[연속기고] 삼성이 변하지 않으면 범죄는 반복된다(2)

[필자 주] 이재용 삼성전자부회장의 변론 종결(결심)이 8월 7일로 예정되어 있다. 이제 변론이 종결되고 나면 8월 말경 1심 선고가 내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은 역대 삼성 총수 중 유일하게 구속된 상태에서 받은 재판이며, 그동안 삼성이 저질러온 범죄를 심판하는 상징적인 재판이기도 하다. 하지만 재판이 진행되면서 이재용 무죄론이나, 처벌 불가론이 다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삼성노동인권지킴이’와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는 이재용을 처벌하는 것이 왜 필요한지를 연속기고를 통해서 알리고자 한다. 연재는 3회에 걸쳐 진행될 예정으로 <프레시안>, <참세상>, <미디어오늘>, <오마이뉴스>에 공동 게재할 예정이다.

[연재 순서]
①이재용 구속 이후, 삼성의 지배구조는 안녕한가? | 조대환(삼성노동인권지킴이)(링크)
②이재용 구속? 삼성직업병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 이상수(반올림 상임활동가)
③이재용 무죄를 외치는 언론, 삼성의 언론지배는 살아있다 | 방희경(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

[출처: 반올림]

거짓말

“처음에 삼성은 아예 화학약품을 안 쓴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화학약품이 발견되니 해로운 화학물질은 안 쓴다고 했어요. 지금은 영업비밀이라서 화학물질을 공개할 수 없다고 합니다. 삼성은 계속해서 거짓말만 해왔습니다.”

10년을 삼성과 싸워 온 황상기 아버님의 말씀이다.

“미국 반도체칩 제조업체들에 독성 문제가 있었고, 이들은 이 문제를 외주화했다.”

한 달 전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가 보도한 탐사 기획 기사의 제목이다. 이 기사는 삼성의 거짓말을 지적한 황상기 아버님의 말씀이 생각보다 더 많은 진실을 담고 있다는 점을 공포스럽게 보여준다.

1980년대에 미국의 한 역학조사를 통해, 반도체 공장 여성노동자들의 유산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첫 조사가 논란을 불렀지만, 이어진 조사들은 거듭해서 같은 결과를 보여주었다. 1995년 IBM사는 문제가 된 화학물질의 사용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발표하기에 이른다.

조사를 진행했던 연구진은 혹시 모를 위험성도 함께 경고했다. ‘이 독성물질이 싸고 뛰어난 성능을 가졌기 때문에, 해외에서는 더 비싼 대체물질이 아니라 이 물질이 사용될 위험이 있다’

슬프게도 이 경고는 고스란히 한국에서 실현되었다. 1995년 이 독성물질의 사용을 중단했던 IBM이 같은 해 1,650억 달러에 달하는 대형 납품계약을 체결했는데, 그 상대가 한국의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였던 것이다. 한국 반도체회사를 상대로 한 이런 종류의 계약은 인텔과 HP 같은 다른 회사들로 확대되어 갔다.

세월을 훌쩍 뛰어 2009년, 삼성과 하이닉스에서 임의로 채취한 샘플의 절반 이상에서 바로 이 독성물질 EGEs(에틸렌글리콜에테르)가 검출되었다. 미국에서 1급 생식독성물질로 지정되어 금지된 후 적어도 15년 가까이 한국 노동자들은 이 물질에 노출된 것이다.

삼성이 정말 몰랐을까? 미국 반도체 회사들이 생산을 중단하고, 자신들에게 거액의 계약을 안겨주었던 그 이유를 삼성이 정말 몰랐을까? 불임, 유산, 자녀기형 등을 유발하는 1급 생식독성물질의 존재를 정말 몰랐을까? 간단한 검색만으로도 이 내용을 보도한 당시 기사를 찾을 수 있는데? 어찌 됐든 삼성이 지난 해 강행했던 비밀보상절차에는 생식질환 항목이 빠져있다. 삼성은 예외 없이 이렇게 뻔뻔하다.

무책임

황유미 님의 죽음 이후 10년, 많은 것들이 변했다. 양심적인 전문가들이 반도체 산업의 유해성에 대해 많은 것을 밝혀냈다. 덕분에 삼성과 근로복지공단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20명의 피해자들이 산재 인정을 받게 되었다.

SK하이닉스는 전문가들이 얘기하는 전자산업 직업병 대부분을 포괄하는 보상제도와 예방제도를 도입하였다. 많은 국내외 언론들이 반도체 전자산업의 유해성을 보도하고, 불합리한 법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삼성만은 이런 변화에서 여전히 비켜나 있다. 법적 의무사항인 작업환경측정도 제대로 하지 않거나, 필요한 자료 제출은 ‘영업비밀’을 핑계로 대부분 거부한다. 삼성은 법원과 국회에 제출하는 안전보고서까지 조작해서 고발당하기도 했다.

반올림과 합의했던 유일한 쟁점인 재발방지대책도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재발방지책으로 합의했던 ‘옴부즈만 위원회’의 활동을 보고하는 행사들이 최근 언론에 대대적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 자리에 토론자로 참석한 전문가들은 내용도 없고 준비도 부실한 자리에 실망을 감추지 못한다. 실제 직업병 예방에 힘을 쏟는 게 아니라 ‘옴부즈만 활동이 있다’는 언론보도용 행사에만 치중하는 게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삼성이 책임을 회피하는 동안 반올림의 농성은 660일을 넘어 이어지고 있다. 반올림은 진정성있는 사과와 투명하고 배제 없는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조정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피해자들에게 보상했다는 삼성의 또 다른 거짓말만 돌아올 뿐이다.

‘삼성전자가 조정위원회와 별도의 자체 보상위원회를 구성해서, 조정위원회가 권고한 보상기준을 임의로 수정한 후, 조정위원회와 관련 없이 보상절차를 집행하는 것’

조정위원회의 입장 발표가 있었지만, 역시 삼성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처벌

연말부터 이어진 촛불 덕분에 이재용이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삼성을 공짜로 세습받기 위해 회사 돈 수백억을 횡령해서 은닉하고 해외로 빼돌려서 검은 권력에게 뇌물을 준 혐의이다.

뇌물의 대가로 이재용을 위한 기업합병에 국민연금의 찬성을 얻어냈고, 이 과정에서 국민연금에까지 손실을 끼쳐 국민적 분노를 자아냈다. 이재용과 공범들은 이 범죄행위에 대해 온전히 죄 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재판이 이제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선고일이 다가오면서 ‘특검이 부실한 증거로 무리하게 기소’했다느니, ‘죄를 입증할 결정적 한 방이 없다’느니 하는 친삼성 언론들의 설레발이 더 극성이다. 이들 언론만 보면 이재용이 풀려나는 거 아닌가하는 걱정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국정농단 전체와 긴밀히 얽혀있는 이재용의 범죄행위는 너무나 어마어마해서 그렇게 쉽게 지울 수 있는 게 아니다. 합병 결정을 주도한 보건복지부 장관 문형표와 국민연금 기금본부장 홍완선이 이미 2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삼성의 승계를 지원했다는 광범한 증거를 담고 있는 안종범의 수첩, 최근 발견된 청와대 문서들이 모두 재판에서 증거로 채택되어 이재용의 범죄를 잘 드러내고 있다. 이 문서를 작성한 전 청와대 행정관은 우병우가 문서작성을 지시했다는 점도 증언하고 있다.

미래전략실에서 대관로비를 담당했던 장충기의 문자는 삼성이 정부 관료들을 밀착관리하고, 다음과 네이버 같은 포털싸이트의 기사까지 꼼꼼하게 관리해왔다는 점을 보여준다. 장충기가 국정원 간부를 통해 정부 인사에 개입한 정황도 드러났다. 불의한 권력을 불의한 방법으로 유지하고 세습하기 위해 기업 안팎에서 삼성이 벌여온 추악한 행동은 반드시 단죄되어야 할 것이다.

반올림은 삼성전자 뇌종양 피해자인 한혜경 님과 어머니인 김시녀 님, 그리고 황상기 아버님과 함께 종종 이재용의 재판정을 찾고 있다. 법정에 갈 때마다 삼성 사장단에게 잊지 않고 항의도 전달하고 있다.

‘삼성직업병 해결하십시오’
‘백 명도 넘게 죽었는데 언제까지 모른 체 할 겁니까’
‘우리 유미를 죽여 놓고 책임도 안 지느냐’

거짓말과 무책임으로 점철된 삼성. 회사 안팎에서 탈법과 불법을 가리지 않고 사용해 온 이재용과 삼성의 공범들. 이들은 삼성을 위해 일하다 죽고 병든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다할 생각이 여전히 없는 듯하다. 이재용과 삼성은 스스로 변하지 못한다는 걸 거듭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재용에 대해 제대로 단죄하는 것이 중요하다. 황상기 아버님이 늘 하시던 얘기가 맞다.

“삼성이 처벌을 면하려고 이제 와 쇄신한다고 하는데, 삼성이 진짜로 쇄신하려면 인적 쇄신이 먼저입니다. 거짓말만 해왔던 사람들 그대로 두고 쇄신이 제대로 될 리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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