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순서]
(1)이재용 구속 이후, 삼성의 지배구조는 안녕한가? | 조대환(삼성노동인권지킴이)
(2)알고도 방치한 직업병, 삼성을 용서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 | 이상수(반올림 상임활동가)
(3)이재용 무죄를 외치는 언론, 삼성의 언론지배는 살아있다 | 방희경(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
(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결심공판 날 있었던 일들 | 이상수(반올림 상임활동가)
‘결국 방청을 못하게 된 것도, 끊이지 않는 저 악다구니 욕설을 퍼붓는 친박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다 삼성이 한 거 아냐?’
물론 확실한 증거는 없다. 삼성이 이 모든 일의 배후에 있을 거 같다는 이 근거 없는 의심에. 그런데, 삼성과 오래 맞서 본 이들은 안다. 삼성이 못 할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을.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일일지라도. 그리고, 뭐든 뜻대로 할 수 있을 힘으로도. 괜히 삼성공화국이란 말이 생겼겠나? 돌아볼수록 어제 이재용 결심공판 날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은 자연스럽지가 않다. 우리가 겪은 일들을 기록해둬야 할 것 같다.
삼성직원들의 자리 선점
▲ 이재용 결심공판 전날 밤 법원 건물 밖에서 방청대기중인 전 삼성 미래전략실 직원들 [출처] 반올림 |
결심 전 날 이른 저녁 무렵 기사가 떴다. 이재용 재판을 방청하려는 열기가 뜨거워 사람들이 벌써 줄을 섰고,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배정된 자리를 넘어 이미 마감되었다고. 그래도 마지막 재판인데 그냥 포기할 수는 없다. 근처에 있던 동료 한 사람이 먼저 도착해서 상황을 알려준다.
‘중장년 남성 네 명과 고령 여성 네 명만 있고, 가방만 쭉 늘어놓은 상황인데 포스트잇에 번호를 써서 붙여놨네요.’
‘남성 네 분이 자리를 뜨기에 뭔가 했더니 JTBC가 카메라 들고 와서인가봐요. 뒤에 계신 할머니들이 JTBC라니까 막 소리를 지르네요. 하도 욕을 해서 JTBC 갔어요….’
‘방금 남성들이 몇 명 더 왔는데, 할머니들이랑 친하네요. JTBC 쫓아냈다고 할머니들이 막 웃으면서 자랑하고 같이 좋아하고 그러네요. 포스트잇 주는 사람하고도 인사하고 다들 친한 사람들인 듯..’
포스트잇을 나눠준 사람은 전 삼성 미래전략실 직원이다. 이날 밤을 샌 삼성직원들 중에는 전 미래전략실 홍보팀에 있던 윤종덕 상무도 있었다.
원래 311호 중법정은 방청석이 102석인데, 40석은 기자들에게 30석은 피고 측 그러니까 삼성에게, 그리고 남는 32석이 일반시민들에게 배정된다고 한다. 삼성에게 지나치게 많이 배정하는 것도 문제인데, 일반 시민들을 위한 얼마 안되는 방청석까지 삼성직원들이 차지하려 전날부터 줄을 서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원래 방청권은 서관 2층 5번 출입구에서 배부한다고 법원이 공지했고 늘 그렇게 해왔는데, 삼성직원이 법적 권한도 없이 건물 밖에서 임의로 번호표를 나눠주는 게 말이 되나?
미래전략실 해체?
지난 2월 28일 삼성은 쇄신책이라며 미래전략실을 해체한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 팀에서 일하던 윤종덕 상무는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 팀으로 소속이 바뀌었다. 이 분은 사실 이재용 재판 방청을 다니는 내내 가장 자주 보게 되는 삼성 측 인사 중 한 명이다.
윤종덕 상무가 주로 머무는 곳은 법정보다는 1층 커피숍이다. 보통 그 곳에서 커뮤니케이션팀 직원들이나 기자들과 얘기를 한다. 기자들과 두루 친분이 두터워 보인다. 오전 재판이 끝나면 점심을, 오후 재판이 끝나면 회식 같은 저녁을 기자들과 함께 먹는다고 한다. 청원서를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하려 법정에 있는 기자들에게 취재요청서를 나눠주는데, 한 기자가 안쓰러웠던지 조용히 말을 건넨다.
‘이따가 삼성이랑 밥 먹으러 갈 기자들이에요. 넘 애쓰지 마세요. 잘 써서 올려도 데스크에서 다 잘려요.’
‘근거도 없이 기소했다’느니 특검을 비난하고, 삼성을 변호하는 기사들이 이런 노력 없이 저절로 만들어지지는 않겠지. 좋아서 먹는 기자도 있겠지만, 회사 눈치를 보느라 어쩔 수 없이 삼성에게 식사 대접 받는 기자들이 있을 텐데. 시사인에 보도된 장충기의 문자들을 보니, ‘기사 제대로 써도 데스크에서 다 짤린다’며 미안해하던 기자의 말이 허투루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알겠다.
언론사 고위간부들이 그렇게 깍듯이 대하는 장충기 사장님께 우리는 어쩌자고 그렇게 소리를 질렀는지. ‘삼성 직업병 해결하라’고, ‘언제까지 모른 체 할 거냐’고. 어제 오늘 종일 듣고 있는 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욕설은 다 삼성사장단에게 우리가 무례했기 때문일 거다.
‘삼성은 배당받은 자리도 많은데, 직원들 동원해서 일반시민들 위한 방청석까지 이렇게 선점하면 되냐’고 삼성의 윤 상무에게 따지러 갔다. 방청줄에 앉아서 핸드폰 열심히 두드리시며 보고해야 돼서 바쁘시단다. 도대체 이 분은 누구에게 이렇게 바쁘게 보고를 하시는 걸까? 설마 퇴임했다는 장충기 전 사장은 아닐 테지. 수원에 있는 삼성전자 본사에? 미래전략실 해체한다고 할 때 누가 믿을까 싶긴 했지만, 너무 눈치도 안보고 막 하는 거 아닌가? 밤을 새서 이재용 재판 방청권을 얻는 게 왜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의 업무인지 나만 이해가 안 되는 건가? 지금 이재용이 공짜로 삼성을 세습 받으려고 회사 돈 수백 억 횡령해서 뇌물 준 혐의로 재판을 받는 건데, 회사 돈 훔쳐간게 너무 분해서 꼭 처벌받게 하려는 건가? 우리 같은 사람들은 삼성을 이해하는 게 참 쉽지 않다.
인간의 말이 아닌 그 말들
▲ 이재용 엄중 처벌 촉구 청원서 제출 기자회견 [출처] 반올림 |
지난 번 방청이 열흘 전이었나? 평소처럼 늘 가던 시간에 방청하러 갔었는데, 유독 방청하는 사람들이 많아 결국 못하고 왔다. 주로 박근혜 재판에 가던 친박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잔뜩 왔고, 우리에게 욕설과 독한 말들을 한 바가지씩 퍼부었다. 그 날도 저 멀리 기둥 뒤에서 삼성의 윤종덕 상무는 우리 쪽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방청이 좌절되고 나서 혹시나 삼성이 사람들을 동원한 건지 따져보려 갔는데, 한 마디 건네자마자 황급히 사라졌다.
결심공판 전 날 밤, 반올림 농성장에서 주무실 예정이었던 혜경씨와 김시녀 어머님, 이종란 노무사가 전날부터 와있었는데, 친박 할머니들이 밤새 큰소리로 욕을 해서 교대로 자리를 피해 쉬어야 했다. 1시간 잤다는 동료가 있고, 한 숨도 못잔 동료도 있다.
가방만 놓여있던 자리들. 밤새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아침부터 하나 둘 모이더니 출입문이 열린 7시경에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들은 정말 자발적인 시민들인가? 가방을 두고가는 걸 보지 못했으니 속는 기분이 드는 것까지 어쩔 수는 없다.
근데, 아침에 나타나신 분들도 한 욕설 하신다. 게다가 어제 밤새 계셨던 분들과 다 아는 사이인 듯. 서로 인사도 하고 상황을 주고받는다. 건물에 들어오고 나서, 내가 삼성 임원에게 따지고 있는 걸 보고는 하나 둘 모여들어 나와 영상을 찍던 미디어 활동가에게 또 욕을 한다. 나는 그저 삼성 임원에게 조용히 몇 마디 물어봤을 뿐인데, 나를 둘러싼 친박 분들에게 보호받고 있는 저 삼성 임원을 보니 속이 끓는다. 결과적으로 분한 마음 못 참고 삼성 임원에게 괜한 소리를 했다가 한 시간도 넘게 욕을 푸짐하게 얻어먹었다. 나만 먹으면 좀 괜찮은데, 나 때문에 동료들 모두 고된 시간이 늘었다.
“보상금 다 받아처먹고 또 받아 처먹으려고 그래. 야. 10억이 적어가지고 이 개XX 또 하냐. 백남기한테 가 받아라. 아주 XX XX 떨고 있다.”
“인천 바다에 기들어가. 백억이든 천억이든 받게. 니들은 새끼 넣고도 돈만 받으면 되잖아”
우리 이전에도 이런 모욕에 마음이 무너졌을 분들이 떠오른다. 기가 막힌 심정으로 간신히 버티던 분들에게 얼마나 비수가 됐을지. 바로 지난 몇 년간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가해졌던 패륜적인 말들. 백남기 어르신과 유족을 모욕했던 말들. 광주의 유가족에게도 가해졌던 그 말들. 인간의 말이 아닌 말들. 저 분들은 어디서 우리가 10억을 보상받았다고 들었을까? 삼성이 회유하려고 아버님, 어머님께 흘렸던 그 10억.
삼성이 ‘교섭단에 있는 가족들 보상 논의를 먼저 하자’고 집요하게 회유하던 시절. 삼성과의 교섭단에 있던 여섯 가족이 가족대책위로 분열해나가고 나서도, 우리만 보상받으면 교섭단 밖의 나머지 사람들은 삼성이 책임지지 않을지 모른다고, 함께 보상받아야 한다고 기어코 돈을 받지 않고 남아계신 분들. 황상기 아버님. 혜경씨와 김시녀 어머님. 저런 참혹한 말 들으시면 안 되는 분들인데. 귀 기울이지 말아야지 잘 흘려듣다가도 한 두 마디 참혹하게 귀에 꽂힌다. 다른 분들 귀에는 안 들어갔으면.
‘이재용 엄중 처벌 촉구 청원서’ 제출까지 끝내고 기자들에게 간략하게 설명하시는 황상기 아버님 뒤로, 우리가 청원서를 내서 약이 올랐던지 악다구니와 욕설이 날아든다.
“병X이 왜 여기 와있어? 돈 뜯어내려고 왔냐?”
혜경씨가 몸을 흔들며 귀를 막고, 속이 상한 어머님이 혜경씨에게 ‘괜찮다’고 큰소리를 내며 우신다. 종란씨가 따라 울고, 황급히 휠체어를 밀고 건물 밖으로 나오고, 몸을 들썩이며 흐느끼는 어머님. 종란. 그리고, 혜경씨.
후회가 된다. 마지막이라고 꼭 방청하자고 하는 의견을 말리지 않고 전날부터 무리하게 일정을 진행한 것이. 먹먹한 마음을 다독이고 기어이 방청권을 배부하는 오후까지 버텼는데. 우리 네댓 명 앞에서 방청권 마무리됐다고. 우리가 방청을 못하게 되었다는 순간, 갑자기 우리 뒤에 있던 사람들까지 박수를 치며 기뻐한다. 아, 이분들은 정말 방청하고 싶어서 오신 게 맞을까? 본인들 방청 못하는 것은 안중에도 없고, 우리가 방청을 못하게 된 사실에 저렇게 해맑게 기뻐하다니.
‘내가 못참고 울어서 왔다갔다 하느라 방청 못 한 거 같아 죄송해요.’
혜경씨가 침울해져서 한 마디 한 마디 하는 말에 마음이 무너진다.
‘그런 게 아니에요. 나쁜 사람들 때문인거죠. 우리끼리는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요.’
그러고 보니, 이 분들은 그 동안 봐왔던 친박분들하고는 좀 다르다.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거리에서 본 친박들, 그리고 반올림 농성장에서 기물을 파손하고 폭력을 써서 고발당한 엄마부대 분들은 쉽게 흥분하고 몸싸움까지 자연스러웠는데, 이 분들은 험악한 말, 흥분한 상태에 비하면 참 폭력은 안 쓰시는 자제력이 있으시다.
우리가 폭력이라도 써주길 바라는 사람처럼 열정적으로 우리를 자극하신 분들 보람도 없게 우리는 잘 버텨냈다. 평생 들을 욕을 10배쯤 부풀려서 1박 2일 내내 들은 탓에, 내상까지 어쩔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우리야 평생 며칠만 저런 분들 부딪히면 되는 것이니 뭐 괜찮다. 이제부터 다시 좋은 사람들과 오랜 시간 지낼 거니까. 그래도, 훗날 상처 없이 이 경험을 떠올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내내 느껴졌던 삼성의 음습한 기운도 좋은 경험일 수는 없었다.
이재용 결심공판, 보수단체회원들이 삼성반도체 피해자들을 울린 용서할 수 없는 폭언 [출처] 미디어뻐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