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퍼레이드가 도심에서 진행됐다. 14일 오후 1시 동대문부터 광화문에 이르는 4km 구간을 700여 명의 빈곤 당사자와 시민사회단체들이 함께 걸었다.
오는 10월 17일은 세계빈곤퇴치의 날로 60여 개에 이르는 단체들이 결합해 ‘1017 빈곤철폐의날 조직위원회’를 꾸려 빈곤퇴치를 위한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퍼레이드 후 광화문에서 열린 투쟁대회에서는 강제집행과 철거로 피해를 본 당사자들, 장애인과 성소수자 등 존재를 억압받는 당사자들이 자신의 삶을 고발하는 시간을 가졌다.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의 민명식 씨는 명동에서 ‘림벅와플’을 운영하는 임차인이다. 민 씨는 5평 남짓한 가게에서 200일째 쪽잠을 자며 강제집행에 대비하고 있다. 민 씨는 “보증금 1억에 월세 315만 원을 밀리지 않고 꼬박꼬박 냈지만, 건물주는 옆 칸에 동종업계를 들여오고 두 번이나 용역을 동원해 저를 쫓으려 했다. 조선 시대에 땅을 가진 지주들이 피땀 흘려 농사지은 결과를 가져갔는데 지금 건물주들도 조선 시대 지주들처럼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그는 “600만 임차 상인들의 생존권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고 밝혔다.
우종숙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중부지역장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을 그냥 좀 내버려 달라”고 외쳤다. 우 씨는 “노인이니까 이젠 쉬라고 하고, 자식들은 뭐하냐고 묻지만 청년실업이 심각한 오늘, 노인들도 스스로 벌어 먹고살아야 한다”며 “구청이나 시청에 가서 손 벌리지 않고 스스로 생계를 꾸릴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우 씨는 “구청에서 용역을 동원해 1평 남짓한 노점을 철거하고, 과태료까지 부과하는데 노점상들을 옥죄는 이런 조치들 때문에 빈곤을 탈피할 수 없다”고 노점상 강제철거 및 노점관리대책 중단을 요구했다.
김수환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운영위원은 성소수자들이 쉽게 빈곤해진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집과 학교에서 쫓겨나 일찍부터 빈곤을 경험하는데 10대의 노동은 낮은 가치로 취급받고, 사장으로부터 임금 떼이거나 폭언 폭력에 노출되기도 한다. 트랜스젠더는 성별 정체성과 몸의 부조화로 인해 수술이 필요하지만 의료보험 적용되지 않아서 수천만 원 홀로 모아야 하고, 가족의 지지나 국가의 지원도 없다. 취업의 어려움과 빈곤 때문에 자살 시도율도 어느 집단보다 높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쉽게 아프고 쉽게 가난해지는 구조 속에서 배제되지 않는 권리를 갖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투쟁대회 참가자들은 빈곤을 철폐하고 평등한 세상을 위해 끝까지 싸우자고 결의했다.
이들은 투쟁결의문에서 “한국에서 14년째 공시지가가 가장 비싼 명동의 땅은 한 평에 2억8천3백만 원이다.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매일 8시간씩 하루도 쉬지 않고, 한 푼도 쓰지 않고 꼬박 15년을 일해야 모을 수 있는 금액”이라며 “이러한 현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더욱 가혹하게 다가온다”고 밝혔다.
이어 “가족 중 아픈 사람이라도 생기면 의료비 부담으로 가난해지고, 아파서 일하지 못해 또 가난해진다. 집이나 가게를 소유하지 못하면 높은 임차료에 고통받고, 언제든 나가라고 하면 쫓겨나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라며 “이렇게 쫓겨난 이들이 거리에 나가 좌판이라도 펼치거나, 잠을 청하면 ‘거리미화’, ‘공공질서’라는 이름으로 거리에서마저 쫓겨난다”고 비판했다.
이들의 주요 요구 사항 10가지를 발표했다.
▴집에서, 거리에서, 가게에서 쫓겨나지 않는 세상 ▴부양의무자기준, 장애등급제, 장애인수용시설 완전폐지 ▴노점상 강제철거·노점관리대책 중단, 용역깡패예산 전면삭감 ▴선대책 후철거, 순환식개발 시행 ▴홈리스에 대한 분리와 배제 중단 ▴누구나 건강할 권리! 가난한 이들의 건강보험 체납 해결 ▴사회복지공공인프라 확대, 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 ▴과로사, 초과노동, 임금격차 OUT ▴공공주택 확충! 전월세 상한제 도입 ▴누구도 배제하지 말라,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허울뿐인 복지, 빈곤사각지대 방치하는 복지제도 개선 등이다.
한편, 오는 17일엔 광화문 광장에서 빈곤철폐의 날을 맞이한 기자회견이 열린다. 당사자와 단체들은 도시의 빈곤과 불평등을 고발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