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8시 40분, 시민 1000여 명이 서로 손을 잡은 채 삼성 본관을 둘러쌌다. 삼성 서초 사옥을 포위한 이들은 삼성에 노동자 살인을 멈추라고 요구했다.
‘삼성 포위의 날’로 명명된 이 날 노동자, 시민들은 기업을 대표하는 삼성 본관 앞에 모여 직업병으로 사망한 노동자를 추모하는 한편 기업과 정부에 산재의 책임과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했다. 1부 추모식과 2부 문화제, 3부 삼성 포위행동으로 이뤄진 이 날의 프로그램은 문송면-원진 노동자 산재사망 30주기 추모조직위원회, 민중공동행동, 반올림 등이 주관했다.
노동자가 산업 현장에서 영문도 모른 채 병을 얻어 죽고, 어렵게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던 과거는 30년이 지난 현재도 다를 바 없었다. 지난 2일, 반올림은 직업병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삼성 서초타운에서 농성한 지 꼭 1000일을 맞이했다. 15세 소년 문송면 군이 수은 중독으로 사망하고, 915명의 이황화탄소 중독 및 231명의 사망자를 낸 원진레이온 직업병이 세상에 알려진 진 지 30년이 된 날이기도 했다.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가 무대에 올라 삼성과 정부를 규탄했다. 황 씨는 “노동자들은 각종 화학약품 때문에 죽어가고 있는데 기업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처벌을 안 받는다. 정부는 안전 사고 일으킨 사업장에 강력한 처벌을 내려 사고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삼성은 반올림과 대화해서 지금도 화학약품으로 환자를 만들고 있는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라며 삼성 이재용은 이 문제를 풀지 않고선 제대로 된 오너 생활을 못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삼성 LCD공장에서 뇌종양을 얻은 한혜경 씨는 삼성 직업병 피해의 당사자다. 한 씨는 퇴사 후 뇌종양 판정을 받았고 수술로 죽을 고비도 넘겼지만 후유증으로 장애가 남았다. 한 씨는 “삼성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과한 적이 없다. 농성 1000일 동안에도 꿈쩍도 안 했다”라며 “왜 안전교육조차 시키지 않았는지 삼성의 사과를 꼭 받고 싶다”고 말했다.
이 자리엔 고 문송면 군의 유가족도 참석했다. 문근면 씨는 “4개월 이상 직업병 인정을 받기 위해 싸우던 때가 기억이 난다. 주변인들의 도움으로 산재는 인정받았지만 동생은 결국 고통받다 죽었다”라며 “강남이란 곳을 처음 와보지만 저 으리으리한 삼성이란 회사가 직업병 인정을 안 하니 답답하기 그지 없다. 삼성에서 산재 입으신 분들이 빨리 직업병을 인정받고 조속한 쾌유를 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원진레이온 투쟁에 앞장선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대표도 마이크를 잡았다. 박 대표는 “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를 기록하는 산재 사망률을 1/4로 줄이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의 산재 사망률은 OECD 평균의 3배 수준으로, 매년 2400여 명이 산재로 사망한다. 박 대표는 “촛불 정부라고 하지만 툭하면 재벌의 소원 수리나 하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보통의 각오와 노력으로는 산재 사망률을 낮추기 힘들 것”이라며 “촛불 시민들이 박근혜 일당을 쫓아내듯 각계각층에서 나서 정책을 바꾸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중공동행동 재벌특위 윤택근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재벌체제를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부위원장은 “죄를 저지르면 대통령도 구속이 되는데 15년간 불법파견을 저지른 정몽구와 국정농단의 주범 이재용은 현재 어디 있느냐”라며 “문재인 정부의 경제민주화 출발점은 이들을 구속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30대 기업의 곳간에 880조가 넘는 사내 유보금이 쌓였지만, 최저임금 1만 원 논의에 나라 경제가 휘청인다라며 엄살을 부리고 있다”라며 “세계 최장 노동시간을 만들고,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킨 주범은 재벌”이라고 지적했다.
1부 추모식과 2부 문화제를 마친 노동자, 시민들은 삼성 사옥을 돌며 삼성을 압박했다.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에게 대책을 약속한 문재인 정부의 약속 이행 △노동자의 알 권리, 참여할 권리, 위험한 일을 거부할 권리 보장 △삼성에서 노조할 권리 보장 △삼성에서 피해입은 노동자 구제 △이재용 구속과 재벌체제 해체 등을 함께 외쳤다.
한편 민주노총은 산재 추방을 위한 7대 주요과제를 전면화하고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 조형물 조성, 노동자 건강권 쟁취, 재벌개혁을 위한 투쟁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