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세의 여성 창고노동자도 비슷한 불만이다. “젊잖아요. 그래서 생각했죠. 마크롱이 전 대통령들과는 다르게 많은 걸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예요. 그런데 그는 우리와 아이들의 목을 조르고 있어요. 내 가정이 공격 받는데 가만히 있어야 할까요. 우리를 공격하는 저기 저 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만두지 않는다면, 내전이라도 일어날 겁니다.”
[출처: 르몽드 화면캡처] |
8일(현지시각)에도 검은 연기가 파리 중심부를 휘감았다. 노란조끼 시위가 일어난 지 4번째 토요일. 프랑스 정부의 강경한 입장에도 시위는 어김없이 진행됐다. 시위대는 도로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쇼핑센터 유리창을 깼으며 폭죽과 돌을 던지며 경찰과 대치했다. 번화가 샹젤리제의 호화쇼핑센터에도 어김없이 불길이 날라들었다. 성대한 크리스마스트리도 검게 타들어갔다. 경찰은 10여 대의 장갑차를 배치하고 최루탄과 물대포로 시위대를 몰아 부쳤다. 전국에 경찰 89,000명이 배치됐고 파리에만 8,000명이 투입됐다. 그럼에도 전국적으로 77,000여 명(프랑스 정부 추산)이 이 시위에 참가했다. 지난달 17일 마크롱 정부의 주유세 인상 방침에 맞서 시작된 노란조끼 시위는 이제 반정부 운동의 성격을 분명히 하고 있다. 아무도 주유세 인상안이 철회된 데에 만족하지 않는다.
보통사람들의 반란
노란조끼 시위는 노조나 정당이 아니라 조직되지 않은 일반 시민의 공개 청원과 SNS 포스팅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시위가 격화되면서 언론은 애초 극우가 이 시위를 주동했다거나 도중에 극우나 극좌가 평화시위를 ‘납치’했다고 주장했다. 프랑스 정부가 한 말을 받아쓴 것이었다. 하지만 3일 파리 경찰청과 검찰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더라도, 폭력 시위를 주도하는 이들은 대게 30-40대의 다양한 계층의 일반 시민들이었다. 단지 극우가 득세한 소외된 지역 출신의 사람들이 많을 뿐이다. 프랑스 극우 국민전선의 마린 르 펜도 이 시위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그래도 노란조끼 시위대의 공통점이 있다. 시위대는 대게 프랑스 북서부 대도시 외곽이나 농촌 출신으로 공장, 배달, 돌봄, IT, 사무 직종에서 일하며 모두가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도시에서 밀려나 교외에서 저임금 일자리와 실업에 고전하는 이들인 것이다.
이러한 노란조끼 시위대가 애초 거리로 나온 것은 정부의 주유세 인상안 때문이었지만 사실 인상분 자체가 큰 것은 아니었다. 세금 비중으로만 본다면 20년 전 수준이다. 물가와 임대료는 오르지만 일자리는 구하기 어렵고 구하더라도 저임금인 경우가 태반인 것이 더욱 큰 문제였다. 사회인프라나 교통, 복지는 대도시에 비해 더욱 형편 없는 것도 큰 문제였다. 그래서 노란조끼 시위대 주유세 인상안 폐기뿐 아니라 조세제도 개혁과 최저임금 인상 그리고 친기업 경제 정책의 철회를 바란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많은 이들이 의회 해산과 마크롱 퇴진을 원하고 있다.
이들이 맞서고 있는 마크롱 대통령은 애초 지난 대선을 앞두고 자신은 좌도 우도 아니라며 ‘전진하는 공화국(La République en marche)’이란 시민운동을 만들어 보통시민들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약속하며 반향을 얻었다. 사르코지의 우파연합이나 올랑드 사회당 좌파에 신물 난 프랑스 유권자들은 이 젊은 개혁가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선택했다. 그러나 마크롱은 보통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사실 귓등으로도 이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오히려 ‘초신자유주의’의 개혁을 밀어붙이며 부자들의 대통령을 자임했다.
실제로 이 같은 친기업 정책 덕분에 마크롱은 집권한 지 18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프랑스의 빈곤을 더욱 심화시켰다. 대표적으로, 지난 2년 간 생활지원금을 받는 25세 이하 인구는 10%에서 15%로 늘어났다.
부자들의 대통령에 맞선 잊혀진 사람들의 저항권
노란조끼 시위대는 이러한 부자들의 대통령에 맞서 폭동을 선택했다. 특히 도로 봉쇄를 비롯해 소비거리나 주요 관광지에서도 유사한 폭동을 일으키며 경제과 질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고 그러면서 2년 전 흐리부지된 밤샘시위와는 다르게 프랑스뿐 아니라 전 세계를 긴장시켰다.
노란조끼 참가자들 내에서도 폭동에 대한 입장이 다 같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이를 정당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지난달 17일 첫 시위 때부터 친구들과 함께 노란조끼 시위에 참가한 40대의 프랑수아 그레니어의 경우에도 수많은 바리케이드를 쌓았고 돌을 던졌지만 이를 두고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권리를 위해서라면 폭력을 사용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와 같은 많은 노란조끼 참가자들은 폭동은 자신이 아니라 정부나 경찰이 유발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프랑스 학계에서도 노란조끼들의 반란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드물지 않다. 외신에 따르면, 파리 1대학 명예교수인 미셸 피네츠(Michel Pigenet)는 이 전복적 행위가 법적 권리라고 말한다. 그는 “1793년 헌법은 권력자가 민중의 말을 듣지 않을 때 반란의 권리를 명시한다”며 “집단적인 기억에 이는 집권자들이 민중이 일어나면, 그것이 나쁘게 진행될지라도, 정부가 유념해야 한다는 사상으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역사학자 올리비에 칸(Olivier Cahn)도 “프랑스 거리에서의 직접적인 대립은 정치 문화에 속한다”고 강조한다. 농민들이 폭력적으로 시위하거나, 학생들이 학교를 점거하거나 파업 노동자들이 사측을 가금하고 협상을 요구해도 어느 정도는 사회적으로 수용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단체교섭을 회피하는 사측을 감금하고 이를 강제한 노조운동의 사례가 드물지 않게 벌어져 왔다. 70% 이상의 프랑스인들이 노란조끼 시위를 여전히 지지하고 있기도 하다.
가디언은 2일 “이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라도 노란조끼는 성공했다”며 “노동계급과 저소득계층이 다시 보이도록,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을 보이도록 한 행위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가세하는 대중조직들
노란조끼 시위에는 초기부터 함께 했던 농민단체와 화물노조와 더불어 이제 일반 노동조합들도 가세하기 시작했다. 학생들도 마크롱의 교육개혁을 이유로 이미 어깨를 걸었다.
프랑스노동총동맹(CGT)은 8일 대규모 행동의 날로 정했고 9일부터 무기한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SUD 등 다른 노조들도 연대를 나타내고 있다. 화물노조는 9일 저녁부터 전국 파업에 돌입한다.
중고교생들은 동맹휴업과 학교 봉쇄로 대응하고 있다. 6일 기준 360개의 중고등학교가 최소 일시적으로 폐쇄됐다. 87개 학교는 전면 폐쇄됐다. 한편으로는 프랑스 경찰이 북부 망트 지역에서 12세 소년을 포함해 학생 150여 명의 무릎을 꿇리고 손을 머리에 올리한 처벌을 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장 뤽 멜랑숑 등 프랑스 좌파세력도 “노란조끼 운동은 국가권력의 실패를 의미한다”며 지지의사를 밝히고 있다.
8일 저녁 에두아르 필리프 프랑스 총리는 경찰의 통제조치가 잘 수행됐다고 평가했지만 이들 정부가 프랑스를 다시 잠재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내주 초 마크롱 대통령은 공개 연설을 진행할 계획이다.
국경을 넘어
한편, 노란조끼 시위는 프랑스 국경을 가로질러 계속 확산되고 있다.
벨기에에서도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생활비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며 중도우파 연정 해산을 요구하고 있다. 텔레수르에 따르면, 수도 브뤼셀 경찰은 8일에만 400여 명을 구금했다. 노란조끼를 입은 시위대는 유럽연합 본관과 정부 청사로 행진하면서 돌을 던지고 쇼핑센터와 차량을 부셨다. 지난 8일 간 벨기에 수도에서 폭력시위가 벌어진 것은 2번째이다.
세르비아, 헝가리, 스페인, 독일과 이라크에서도 이 운동에 영향을 받은 시위가 조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