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왜 백래시의 언어가 됐을까?

올해 대학 내 총여 폐지 움직임 다룬 ‘그 민주주의는 틀렸다’ 포럼 열려

올 한 해 미투운동은 남성중심 사회에 균열을 내며 페미니즘을 한단계 진전시킨 듯 보였다. 하지만 백래시 역시 만만치 않았다. 대학 내에선 수십년을 이어온 총여학생회가 총투표에 부쳐져 폐지되고, 총여를 재건하려는 이들은 사이버 불링에 시달렸다.

[출처: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

동국대 31대 총여학생회 ‘무빙’, 성균관대 총여 재건 모임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 연세대 29대 총여학생회 ‘모음’은 8일 오후 연세대에서 ‘그 민주주의는 틀렸다’ 포럼을 열고 올 한해 총여가 어떤 백래시에 직면했고, 그 원인은 무엇인지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들은 이번 포럼의 이름처럼 ‘민주주의’의 언어가 총여를 공격하는 데 이용당했다고 말했다. 총여의 폐지나 재개편이 ‘총투표’라는 형식으로 다수결에 부쳐졌지만, 중요한 절차는 무시됐고, 공론의 장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또 여성, 소수자 등의 목소리를 과연 투표에 부치는 게 맞는지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토론에서 전진영 씨(연세대 우리에게는 총여학생회가 필요합니다 소속)는 “‘다수가 원하고 있다’라는 논리가 모든 학교의 총여 폐지 동력이 됐다”라며 “민주주의 해석에 대한 어떤 숙의 없이 왜곡됐을지라도 내 자아를 표출하는 것, 다수주의를 민주주의라고 등치시켜버리는 게 가장 큰 문제 같다”라고 지적했다.

수빈(연세대 제29대 총여학생회장)은 민주주의를 ‘편향되지 않은 다수’로 해석하는 것이 문제라고 짚었다. 수빈은 “총여학생회 깃발을 들고 퀴어문화축제에 나갔을 때, 에브리타임 등을 비롯한 학내 커뮤니티에는 어떻게 우리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저런 곳’에 학교 깃발을 가지고 갈 수 있냐는 비난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학내 분위기를 잘 파악하고 있던 2016년 총학생회는 당시 대통령 탄핵 시국선언을 진행하기 이전에 학우들에게 구글 설문지를 통해 시국선언을 진행해도 될지 그 내용은 어떠해야 할지 의견을 받기도 했는데 유권자의 인준 절차를 거친 학생회조차 ‘연세대 XX학생회’의 이름으로 활동을 이어가지 못하면 ‘연세대학교’의 이름을 걸고 활동할 수 있을 만큼의 ‘편향되지 않은 다수’는 누구들인지 묻고 싶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동국대에선 총여학생회를 학생사회의 중앙기구로 인정하지 않았다. 문수영(동국대 여학생총회가쏘아올릴작은공 소속) 씨는 “선거를 관리하는 중선관위 회의에서는 총투표 날짜를 정할 때 ‘우리가 왜 여학생총회를 고려해야 하죠?’라는 발언까지 나왔다. 그 한마디에 여학생총회에 모인 총여학생회원 250여 명, 나아가 동국대 6,000여 명의 여학우 목소리가 삭제됐다”라고 말했다.

동국대에서 총여 폐지 요구가 나오자 동국대 총여는 대토론회 후 총투표를 진행해야 한다는 공문을 총대의원회에 전달했지만, 이 공문은 공유되지 않았다. 총대의원회는 더욱이 급박한 날짜를 박으며, 총투표를 강행했는데 ‘효율적이고 편리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11월 15일, 총대의원회는 정회원 710명의 서명을 근거로 ‘동국대학교 총여학생회를 폐지하고, 관련 회칙을 모두 삭제한다’는 안건으로 총투표 시행 공고를 내고 4일 후인 19일, 학생회 선거와 함께 총투표를 진행했다. 문 씨는 “그저 절차만 따지겠다는 ‘중립’은 또 한번 학내사회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여실히 보여주었다”라며 “4일 만에 졸속으로 이루어진 투표는 내일을 이야기할 기회조차 빼앗았다”라고 꼬집었다.

노서영(성균관대 성평등어디로가나 소속) 씨는 “‘투표는 우리의 소중한 권리입니다. 투표권을 행사하세요’라는 말은 총투표에 대한 당위성만 강조한다. 우리나라는 선거가 민주주의 꽃이라고 교육을 하지 않나. 성균관대에서 진행된 총투표는 절차의 비민주성에도 불구하고 선거 결과라는 이유만으로 민주성을 확보했다”라고 지적했다.

익명 뒤에 숨은 백래시

정작 총투표에서 중요한 절차가 가려지기도 했다. 총여 폐지를 요구하는 발의자들이 익명 뒤에 숨거나, 학생회나 중운위 측에서 명단을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동국대의 경우, 총투표 발의가 성립되는지 확인하는 절차, 즉 정회원의 서명인지 확인하는 절차는 총투표를 공고한 후에야 진행됐고, 입장문을 통해 약속했던 명단공개는 지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성균관대의 경우, 총투표를 시행하는 중요하고 무거운 안건임에도 불구하고, 이 안건에 공동발의한 대의원 명단을 공개 및 열람하지 않도록 결정한 것이다.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 측은 총학에게 열람이라도 할 수 있도록 강력히 요구했으나, ‘회칙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개는 물론 열람조차 불허했다. 발의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명단이 제대로 작성됐는지, 누락된 인원은 없는지조차 재학생이 확인할 수 없는 상태에서 총투표가 부쳐진 것이다.

‘학생 자치’ 원칙은 지켜졌나?

학생 자치의 원칙이 훼손되기도 했는데 백래시 세력들은 학교를 통해 총여를 지속하려는 이들을 압박하기도 했다.

진영 씨는 “지금 포럼이 열리는 이 공간 역시 맨 처음 잡힌 공간이 아니었는데, 어떤 무리들이 학교를 압박해 외부인 침해가 있으면 50만 원을 내라는 서약서를 쓰게 했다”라며 “학생 자치가 무너지고, 학교를 통한 압박이 들어오는 게 너무 저열하다”라고 말했다.

최새얀(성균관대 성평등어디로가나 소속) 씨는 “우리 학교의 경우 삼성이 재단으로 들어오면서 학생 자치에 개입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게시판이나, 계단 등에 총여가 필요하다는 자보를 많이 붙였는데 학교 측에서 게시물 붙이는 곳이 아니라는 이유로 뗐다. 다른 동아리나 학회의 게시물보다 훨씬 검열이 심했다”라며 “이전부터 학교 측에 친화적인 학생회가 쭈욱 세워진 것과 지금의 상황이 연장선상에 있다고 본다”라고 추측했다.

한편 이들은 9일 오후엔 마로니에 공원에 모여 ‘그 민주주의는 틀렸다’고 외치며 집회에 나섰다. 세 학교의 에브리타임 익명게시판에 올라온 혐오발언을 고발하고 찢는 퍼포먼스 ‘에브리 혐오타임’을 진행한 뒤 이어말하기, 연대발언 순서를 이어갔습니다. 또 성대 정문까지 행진해 “우린 기꺼이 경계 밖 정치를 해나갈 것이다. 대학 내 총여학생회 필요성은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선언문을 낭독하고 집회를 마쳤다.

연세대는 지난 5월 연대 총여가 인권축제에 페미니스트 은하선 씨를 강사로 초빙한 게 발단이 돼 ‘총여 재개편 요구안’이 총투표에 부쳐졌고, 결국 가결돼 현재까지 개편을 논의하고 있다. 가장 최근인 11월 27일 동국대학교에서는 총투표를 통해 폐지가 결정됐다. 성균관대학교에선 올해 초 남정숙 교수의 미투 폭로 이후 총여학생회 재건 움직임이 일었으나, 이에 대한 반발이 일면서 총여 폐지가 총투표에 부쳐졌고 가결돼 결국 지난 10월 16일 폐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