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자인/일상의실천 |
2014년 4월 16일로부터 5년이 흐른 현재. 우리는 세월호 참사 이후의 시간들을 ‘엉망진창’이었다고 기억한다. 아직 세월호 참사의 원인도 밝혀내지 못했건만, 이를 조사하려 했던 1기 특조위는 정부와 국회의 온갖 방해 속에 보고서도 내지 못한채 활동을 마감했다. 그리고 2기 특조위는 이제야 간신히 돛을 내렸다. 이제는 잊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추모 공간은 점점 사라져 간다. 지난해에는 안산 합동분향소가 문을 닫았다. 지난 3월 18일엔 세월호 투쟁의 상징이었던 광화문 세월호 광장이 천막을 벗고, 전시공간으로 탈바꿈할 준비를 하고 있다.
정리가 아니라, 새로운 정의(定義)가 필요하다고 보는 세 사람이 모여 세월호 참사 5주기 추념전을 기획했다. 전시는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서 시작돼 서울 종로구 서촌 일대로 이어진다. 안산의 공간엔 단원고 교실을 기록한 사진, 참사 이후 5년간의 상황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연표와 텍스트, 작품들이 함께 전시된다. 서울에선 5개의 공간을 연달아 방문하는 순례길 형식으로 전시가 구성된다. 공간:일리, 통의동 보안여관, 갤러리 HArt, 공간291, 아트 스페이스 풀로 이어지는 동선은 촛불시위의 중심지였던 서촌 일대다.
서울 종로구 아트스페이스 풀에서 김현주(독립기획자), 안소현(아트 스페이스 풀 디렉터), 홍진훤(독립기획자, 사진작가) 씨를 만나 이들이 기획한 세월호 참사 5주기 추념전 <바다는 가라앉지 않는다>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해당 추념전은 4.16재단이 주최한다.
▲ <바다는 가라앉지 않는다> 기획팀 / 박기덕 |
추념전의 기획 의도가 궁금하다
홍진훤(홍) 세월호 참사 이후 가장 큰 변화는 ‘감각’이었다. 아주 단순하게는 교복 입은 학생, 그리고 노란색 같은 것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집회나 시위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이 전시는 그렇게 세월호가 뒤흔든 감각을 구체화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서울의 순례길을 걸으며 달라진 것에 대해 생각하고 되묻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다. 이와 함께 애도의 또 다른 방식을 제안하고 싶었다. 슬픔, 애도, 비통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는 것이 우리를 가만히 있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그런 처연한 감각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지 않나. 시선을 우리에게로 돌려, 그 사건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변했는지, 지금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돌아보고 싶었다. 세월호 5주기라면 좀 달라야했다.
이번 전시 기획에 참여한 이유는 뭔가?
안소현(안) 참사 2주기 때도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는 작가들도 이 참사를 어떻게 재현해야 하는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혼란한 때였다. 나 역시 사회고발이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그 다음 단계의 감정을 다뤄야 하는지 입장이 명확치 않아 고사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제도가 손을 놓기 시작할 때, 작가를 비롯한 예술이 가장 열심히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주저하지 않고 ‘네, 할게요’ 했다.
김현주(김) 홍진훤 작가와 예전에 안산에서 몇 가지 프로젝트를 제안했는데 구현 단계에서 좌절된 것들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시급한 요청이었기에 섣부른 답이 나왔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구현이 안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으니까. 이번 전시는 과거부터 이어온 고민을 현재화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또 예술이 정치, 사회를 다룰 때 어떤 예술적 형식을 갖출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의 연장선에서 참여한 것도 있다. 기존의 많은 전시에 대해 비판적 입장이 있었는데, 하나의 실험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홍 사진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참사 초기부터 붙어있었다. 이런저런 일을 보고 겪었는데 작년 즈음부터 세월호의 스펙트럼이 너무 단편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전시 쪽만 봐도 공공기관에서 하는 대규모의 전시는 명확하지 않았고, 소규모 현장 중심의 전시도 현재화할 수 없거나 현재의 단편적인 감각만 반복되고 있었다. 다양한 분포의 작업이 전시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 5주기쯤 되면 작가들도 준비가 됐을 것 같아 참여하게 됐다.
5주기를 맞은 지금. 세월호 문제를 마무리 지으려 하는 목소리와, 이제 시작이라고 하는 목소리가 공존한다.
홍 이렇게까지 진실 규명이 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다. 이른바 ‘촛불혁명’을 통해 만든 정권인데 2년 넘도록 세월호 관련해 뭐 하나 밝혀낸 게 없다는 것, 그리고 그런 노력조차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국가라는 시스템을 다시 생각해 봐야한다. 광화문에 설치한다는 기억 공간 같은 경우도 너무 정보 공유가 되지 않아 판단조차 할 수 없다. 그런 상황이 답답할 뿐이다. 세월호 싸움은 짧게 끝날 것 같지 않다. 어쩌면 완벽한 진실규명은 우리 세대에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지속시킬 것인가이다. 세월호가 어떤 문제와 연결돼 있는지, 이를 관통하는 하나의 문제는 무엇인지 각인시키고,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김 마무리냐, 시작이냐, 하는 이야기가 크게만 느껴진다. 그런 언명 자체가 구체적 내용을 담보하고 있을까 의구심도 든다. 문제를 그런 식의 특정 방향으로 수렴해서 보는 것이 과연 건강한 실천을 담보해낼 수 있을까? 큰 질문은, 의심은, 물음표 상태로 가져가면서 각자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바다는 가라앉지 않는다>라는 전시 이름은 어떻게 붙여졌나?
안 어렵게 나온 제목이다. 세월호와 연관된 키워드들이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문장에 자꾸 다른 문장이 들러붙어서 좋았다. 아주 단순하게는 ‘배는 가라앉았지만 바다는 가라앉지 않는다’ 같은 말들이 떠올랐다. 어디선가 망각을 종용해도, 사람들이 어떻게든 지키려고 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처럼 들리지 않나.
홍 배가 가라앉아 사람이 죽었다. 시신을 건지고 배까지 건져 바다는 이제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지만, 그 바다가 이전의 바다가 될 방법은 없다. 그 모습이 우리 모두의 처지 같았다. 각자가 자기 할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 전과는 절대 같아질 수 없다. 각자에게 역할이 남았다면, 그것은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마음이 아닐까.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는 선언 혹은 다짐을 ‘바다는 가라앉지 않는다’가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의 목표를 어디에 두고 있나?
안 반복돼 온 세월호 주제에 스펙트럼이 한 칸 더 생기면 성공이라고 본다. 지금껏 세월호 참사를 말할 자격이 있을까, 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결국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는 식의 자조가 있었다. 권한과 자격을 따지지 않고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자격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무언가를 보태면 낫다는 생각이다.
홍 안소현 대표의 말처럼 세월호 참사가 터졌을 때부터 자격의 문제가 얘기됐다. 이 참사가 사회적 문제이고 거기서 모두가 가해의 역할에 가담했다고 생각해서 아파하고 슬퍼했다. 모두가 피해자이자, 가해자일 텐데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무엇인가를 하지 못한다는 것은 맞지 않다고 계속 이야기를 했었다. 세월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이 아주 많다고 생각하고, 작가들 또한 대부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그 분들이 이야기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좀 더 적극적으로 세월호에 개입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세월호 이후 한국사회는 어떻게 변화했다고 보나?
홍 세월호부터 촛불, 탄핵을 지나오면서 혐오문화를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세월호부터 증폭돼 현재까지 견고한 혐오문화는 일종의 무력감에서 오는 것 같다.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은 시스템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패배감을 학습한 것이다. 세상이 나아지지도, 개인의 삶이 앞으로 나아가지도 않는 지금의 상태를 극복하거나 해소하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혐오의 시선을 돌리는 방식이 생산됐다. 지금은 상황들을 주시하며 관찰하고 있다.
“추념(追念). 지난 일과 죽어간 사람을 돌이켜 생각한다.”
각자 세월호 참사를 어떤 마음으로 추념하고 있나
홍 어떤 구체적인 의도를 갖고 추념하겠다는 계획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내가 하는 사진이나 기획 작업 등의 요소들이 추념전을 준비하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 본다. 세월호 이후에 생겨난 감각이나 나름의 생각을 숨기지 않으려 노력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발언이 뭘지, 방식은 어떠해야 할지 지속해서 고민하게 된다. 이를 통해 어떻게 사회적 공감대를 확장해나갈지 끊임없이 방향을 찾는 게 우리의 역할 아닐까? 개인적으로 몇 개의 사건과 장면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용산과 세월호가 대표적이다. 아마 앞으로 무엇을 하든지 거기서 벗어나긴 힘들 것 같다. 좀 더 솔직하게, 그리고 보다 체계화된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한마디로) 세월호 사건의 진실과 아픔에 대해서도 억누르지 않고 끊임없이 목소리 내겠다는 것이다.
안 의외성을 만드는 방식을 계속 찾고 있다. 세월호라는 키워드에 대해 사람들 각자가 가지는 모호한 이미지들이 있다. 그 이미지를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계속 보여줘서 이 이야기를 계속하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그 형식은 이번 작업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이 문제를 접근하는 또 다른 형태의 전시도 생각 중이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세월호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방법이라 본다.
김 사실은 추념의 대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2014년 4월 16일, 배가 기울어 희생자가 발생했다. 단지 이 사실만으로 추념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여전히 추념하지 못하고 있다. 바다 아래 갇힌 진실을 길어 올려야만 추념의 대상과 내용과 형식도 드러나지 않을까.
홍 전시와 함께 강의, 퍼포먼스, 공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런 이야기들을 사람들 앞에 꺼내놓을 계획이다.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같다. 이번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나눠줄 것 같다. 전시와 연계해서 진행될 다양한 프로그램도 놓치지 마시라.
세월호 참사를 더 잘 기억하고 성찰하기 위한 관전 포인트를 알려달라.
홍 안산과 서울 두 장소에서 추념전이 열릴 예정이다. 이 두 장소는 단지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공간만이 아니었다. 안산이 희생자와 그 가족들을 위로하는 연대의 공간이라면, 서울 광화문 광장은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과 안전한 나라를 만들자는 열망이 촛불로 타오른 공간이었다. 세월호를 추념하는 장소가 어딘가에 따라 사건을 바라보는 태도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두 장소에서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그리고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 무엇인지 헤아려볼 수 있다면 좋겠다. 그래서 안산과 서울 전시를 꼭 다 관람했으면 좋겠다.
김 안산 추념전의 경우, 각 쟁점과 작품을 묶어가면서 시간에 따라 전시를 구성하는 방식을 택했다. 반면, 서울 추념전은 공간이 분리돼 있기에 감상의 쟁점이 있을 것이다. 공간마다 돌이킬 수 없는 감각과 연루된 숨겨둔 열쇠가 있다. 그런 다른 결들을 다 관람하고 이후 조합해 나갔으면 좋겠다.
안 추념전에 대한 선입견만 강하지 않다면, 작가들이 말하고 싶었던 것들이 충분히 전달될 수 있으리라 본다.
이번 전시를 놓쳐서는 안 되는 이유를 말해달라.
안 이전과는 좀 다른, 지금까지 이런 전시는 없었다(웃음). 이번 전시가 성공적으로 개최된다면, 아마도 관객들은 사건과 참사를 다루는 전시가 이런 생각도 가능하게 만드는 구나, 라고 느끼게 될 것이다. 슬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저마다 가슴속에 한 가지씩은 숙제를 떠안고 돌아가는 전시가 될 것이라 자부한다. 개인적으로는 미술의 언어에 좀 더 친숙해지는 계기를 제공하는 전시가 됐으면 좋겠다.
김 세월호 참사와 과거의 재난참사 사이에는 분명히 구별 정립되는 지점이 있는 듯하다. 우리 사회는 2014년 4월 16일 이후, 재난참사의 당사자들만 고통과 희생을 감내해선 안 된다는 공감대가 비로소 생겨났다. 세월호 5주기를 맞아 이번 전시가 애도를 넘어 나의 문제, 공동체의 집단기억으로 세월호를 마주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홍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우리 다짐이 어느새 남루해졌다는 기분이 든다. 참사 당시에는 구체적 다짐이었을 텐데 시간이 지날수록 형해화되고 있는 그 약속들을 다시 되살려내는 전시가 됐으면 한다. [워커스 5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