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11일 오후 산부인과 의사 A씨가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269조와 270조가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4(헌법불합치)대 3(단순위헌)대 2(합헌)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A씨는 ‘업무상승낙낙태’ 등으로 기소돼 재판을 진행하던 중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의사낙태죄) 규정이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해 위헌"이라며 2017년 2월 헌법소원을 냈다.
헌법재판소는 “자기낙태죄 조항은 모자보건법이 정한 일정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임신기간 전체를 통틀어 모든 낙태를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형벌을 부과하도록 정함으로써 임신한 여성에게 임신의 유지·출산을 강제하고 있으므로,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다”라며 낙태죄가 여성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적·경제적 사유로 인하여 낙태갈등 상황을 겪고 있는 경우까지도 예외 없이 임신한 여성에게 임신의 유지 및 출산을 강제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형사처벌한다는 점에서 위헌이다”라고 밝혔다.
헌법재판소는 또 의사낙태죄에 대해선 “임신한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의사를 처벌하는 의사낙태죄 조항도 같은 이유에서 위헌이라고 보아야 한다”라고 밝혔다.
헌재는 다만 낙태죄 규정을 곧바로 폐지할 수는 없다는 판단에 따라 2020년 12월 31일까지 낙태죄 관련 법조항을 개정하라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 기한까지 법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낙태죄는 전면 폐지된다. 안전한 임신 중지와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강화하기 위한 공이 국회로 넘어간 것이다.
"낙태죄 폐지, 모자보건법 전면 개정으로 이어져야"
23개 여성 및 인권 단체 등으로 이루어진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은 헌재 판결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나영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은 “이번 판결은 국가가 경제 개발과 인구통제 목적으로 생명 선별하고 여성을 통제하고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해온 역사에 마침표를 찍는 중대한 결정”이라며 “낙태의 허용과 한계를 다룬 모자보건법 제14조도 존속될 이유가 없어졌다”라고 밝혔다.
나영 공동집행위원장은 “다만 해당 조항들이 헌법에 불합치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명확한 의견으로 모이지 않고 다시 입법자들에게 변화을 책임을 넘긴 건 아쉬운 점”이라며 “국회는 다시금 낙태죄와 모자보건법의 불우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재검토하고 성과 재생산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낙태죄 위헌소원 대리인단의 김수정 변호사는 “임신, 출산, 양육에서 1차 주체인 여성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존중하라는 게 이번 헌재 판결의 선언이다. 더 이상 여성을 의심하고 규제하고 처벌해서 출산을 강제하지 말라는 것이다”라며 “입법 역시 이 뜻에 맞게 이뤄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번 헌재 판결로 미프진 등의 약물 도입과 모자보건법 전면 개정에 대한 논의 등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은 낙태죄 폐지 이후 새롭게 필요한 조건들에 대해 △안전한 임신중지가 보장되는 사회 △포괄적 성교육을 보장하고 피임에 대한 접근성이 확대된 사회 △약물적 유산유도제를 도입하고 여성건강권이 보장되는 사회 △우생학적 모자보건법 전면 개정 △낙인과 차별을 해소하고 모두의 재생산권이 보장되는 세계 등을 이야기한 바 있다.
한편 이날 오전부터 낙태죄 위헌판결을 촉구하는 각계 릴레이 기자회견이 열리기도 했다. 청년학생, 종교계, 청소년, 성과재생산포럼, 교수연구자, 장애계, 진보정당, 의료계 등 8개 그룹이 참여해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 30분까지 발언을 이어나갔다.
이날 오후 7시엔 안국역 5번 출구 앞에서 ‘더 이상 낙태죄는 없다’라는 낙태죄 폐지 환영 집회가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