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5월 19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일, 삼성 직업병 피해자 한혜경 씨.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에 따르면, 한 씨는 지난 5월 30일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업재해 인정 통지를 받았다. 한 씨는 지난 2009년 첫 산재 신청에서 불승인 통보를 받았고, 이후 법적 싸움 등 총 7번의 과정에서 번번이 산재 불인정 판정을 받았다. 그러다 지난해 10월 16일 공단에 산재 재신청에 나섰고, 올해 4월 29일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심의회의에서 산재 인정을 받았다.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판정서에서 △신청인이 약 6년간 작업공정 중에 납, 주석, 플럭스, 이소프로필알콜(IPA) 등 유해요인에 노출된 점 △2002년 이전의 사업장 조사가 충분치 않았던 점 △만 17세의 비교적 어린 나이에 유해요인에 노출된 점 △업무 수행 당시 보호 장구 미착용 및 안전조치가 미흡했을 것으로 판단되는 점 △최근 뇌종양 판례 및 판정위원회에서 승인된 유사 질병 사례를 고려할 때 신청 상병과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는 점을 들어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그동안 공단 및 법원은 한 씨의 뇌종양 발병이 납과 유기농제의 영향이 있을 수도 있지만, 노출 수준이 높지 않다고 주장해 왔다. 뇌종양 발병 원인의 ‘의학적 연구’가 부족하다는 점, 그리고 유해물질의 위험성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도 불승인 이유로 꼽아 왔다.
반올림은 이번 판정에 대해 “(그동안) 전자산업의 다양한 유해요인 중 플럭스나 유기용제, 전자기장, 교대근무 등 유해요인에 대해서는 제대로 고려되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직업병 피해 문제가 계속 드러나면서 과거 간과됐던 유해물질의 위험성이 조금씩 드러났다”며 “이제는 안전보건공단이 홈페이지 자료를 통해 납땜과정에서 플럭스가 주요한 유해요인임을 명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한혜경님이 겪었던 최초신청 과정의 문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당시 우리 사회는 아직 한혜경 님의 말을,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자들의 말을 들을 준비가 안 되어 있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성반도체 기흥공장과 온양공장 등에서 일하다 뇌종양 판정을 받은 7명의 노동자들은 한혜경 씨 보다 앞서 산재 인정을 받은 바 있다.
한혜경 씨는 지난 1996년, 만 17세의 나이에 삼성전자 기흥공장에 취직해 LCD 회로기판을 만들었다. 그 곳에서 일하는 5년 9개월 동안, 한 씨는 납으로 된 솔더크림과 플럭스, IPA등 유해화학물질을 취급했다. 안전교육도, 보호장구도 없이 12시간 맞교대 근무를 했다. 근무 중 피부질환과 생리불순이 찾아왔으며 입사 3년차에 월경이 중단됐다. 이후 2001년 7월 퇴사했지만 4년 뒤인 2005년 10월 갑자기 쓰러진 뒤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수술 후 후유증으로 시각, 보행, 언어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이번 산재 인정에 대해 한혜경 씨는 “전에는 속에 무언가 돌덩어리가 있는 듯 했지만, 지금이라도 산재인정을 받아 조금은 속이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며 “앞으로는 직장에서 현장에서 일하다 다치거나 병이 들거나 하면 기관에서는 신속하게 처리해 저 같은 사람이 안 나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한 씨와 함께 10년간 싸워왔던 한 씨의 어머니 김시녀 씨는 “늦게나마 혜경이의 산재가 인정돼 너무 기쁘다”며 “근로복지공단은 앞으로는 우리처럼 오랫동안 부당함을 겪지 않도록 판정을 올바르게 내려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한편 반올림은 10년 만에 이뤄진 한혜경 씨의 산재 인정을 기념하기 위해 오는 14일 오후 6시,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 1층에서 ‘한혜경 산재인정 축하음악회: 당신에게선 꽃내음이 나네요’를 개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