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연정] |
하체를 내놓고 다니는 사람도 있어요
8월 8일 오후, 2백여 명의 한국도로공사 요금수납노동자들이 노숙농성을 하고 있는 서울 청와대 앞. 입추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35도 가까운 무더위와 높은 습도에 가만히 있어도 지치는 날이다. 노동자들은 그늘막 밑에 돗자리를 깔고 삼삼오오 모여 부채질을 하거나 휴대용 선풍기를 돌리며 이야기를 나눈다. 얼굴에 수건을 덮은 채 열대야로 설친 잠을 보충하기도 한다. 농성장 주변에는 텐트와 이불, 개인 짐이 담긴 캐리어가 줄지어 있다.
인천톨게이트 요금소에서 일하다가 자회사에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6월 말 해고된 김영미, 박주영(가명), 최상례 씨를 만났다. 짧게는 15년에서 길게는 20년 가까이 인천톨게이트 요금소에서 수납업무를 해온 이들이다.
“차가 밀리면 왜 차가 밀리냐고 욕 하면서 돈을 던지는 사람도 있어요. 음란 비디오를 틀고 가면서 보게 하는 사람도 있고요. 안 쳐다보면 고액권을 주고 돈 거슬러 줄 때 보게 하거나 안가고 있죠. 하체를 내놓고 다니는 사람도 있어요. 통행료를 왜 받느냐고 욕하는 사람들도 있고, 갑자기 사고가 나서 차가 정체되면 돈 안내고 가는 사람도 있어요. 하루 종일 그러면 저희가 일을 못하는데, 유난히 그런 날이 있어요. 수고한다고 인사하는 고객들도 있고요.”
2002년 입사한 박주영 씨는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사람을 많이 봤다고 했다. 그래도 여기서 일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었기에 톨게이트 요금소는 소중한 일터였다. 출근해서 일하고 동료들 만나는 게 즐거웠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 가지 못했다.
하루아침에 정규직에서 용역업체로
김영미 씨 역시 2000년에 한국도로공사 인천톨게이트 요금수납 담당 정규직으로 입사했다. 그때 3살 난 아들이 23살이 되는 동안 영미 씨에겐 많은 일이 있었다. 2009년에는 하루아침에 아이로드(I-road)라는 용역업체 소속이 됐다.
“그때(2009년) 명예퇴직 공고하고, 그 사람들한테 영업소를 하나씩 주면서 ‘그거 맡아서 벌어먹고 살라’고 했어요. 도로공사에서 ‘도피아’를 준 거죠. 그 시점에 저희가 넘어간 거예요. 우리 의사와 상관없이.”
‘도피아’란 ‘한국도로공사+마피아’의 줄임말이다. 한국도로공사를 퇴직하면서 톨게이트 영업소 운영권을 받은 사람을 말한다. 외주화 초기 한국도로공사는 퇴직자와 수의계약 방식으로 용역계약을 체결했다. 퇴직자 특혜라는 논란이 일자 공개입찰 방식을 확대했으나 퇴직자가 운영한다는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우리한테 상의한 것도 아니고, 알리지도 않았어요. 어느 날 갑자기 사인하라고 하는데, 근무하기 바쁘니까…. 계약서를 누가 정확히 읽어보지도 않았고요. 몇 사람 사인하고 나오니까 해도 되나 보다 하고 사인하고 근무 들어가고 했죠.” (김영미)
이전과 동일한 업무와 근무조건으로 고용승계가 됐기 때문에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았다. 용역업체가 뭔지 간접고용이 뭔지 알지도 못할 때였다. 그 뒤로 매년 인원감축 지시가 내려왔고, 그나마 있던 복지혜택마저 없어졌다. 용역업체가 바뀔 때마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면서야 비정규직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원래 정규직이었던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수납업무는 총 3단계에 걸쳐 외주화됐다. 1995년에 도로공사는 ‘조직 비대화 방지’와 ‘경영효율성 제고’를 명분으로 신설영업소의 통행료 수납업무를 외주화한다. 1998년 IMF 구제금융시기에는 ‘공기업 경영혁신 계획’에 따라 서울 관문 영업소 10개를 제외한 나머지 영업소 수납업무 외주화를 단계적으로 진행했다. 그리고 2008년 말, 이명박 정부의 ‘민영화’와 ‘기관 통폐합’ 등을 내용으로 하는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에 따라 서울 관문영업소 10개의 통행료 수납업무를 포함해 전국의 모든 도로공사 영업소의 통행료 수납업무가 외주화 된다.
[출처: 연정] |
20년 다녀도 최저임금에 아침 술국 끓여달라는 사장까지
이선주 씨는 서안산톨게이트 요금소에서 16년 간 수납원으로 근무했다. 선주 씨 역시 정규직으로 일하다가 용역업체 소속으로 변경됐다.
“시민들은 ‘니네가 돈만 받고 주면 되는데, 왜 이리 시간이 오래 걸리냐?’고 해요. 근데 신입이 오면 이렇게 많은 일을 하는 줄 몰랐다고 해요. 수납 업무는 기본이고, 응급차나 경찰차가 오면 긴급도 쳐야 해요. 면제차거나 긴급차면 근무일지에 다 적어야 하거든요. 하이패스로 들어왔는데 못 읽는 경우도 일지에 다 적고요. 정액권 카드 판매하고 요금 정리도 하죠. 마이너스 되면 물어줘야 되거든요. 업무 끝나면 요금 정산하고, 요금소랑 영업소 화장실 청소하고 영업소 안에 쓰레기도 치워야 해요.”
신입사원 교육도 수납노동자들의 몫이었다. 조리노동자가 없는 영업소에선 수납노동자들이 밥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아침에 출근해서 밥을 해달라고 하거나 술국을 끓여달라는 용역업체 사장도 있었다. 사장이나 간부들이 회식이라도 하면, 수납노동자들에게 운전을 요구하거나 회식 자리에 오게 해 성희롱을 하는 일도 있었다.
잘못한 게 없어도 고객이 무조건 큰소리 치고 민원을 넣으면 선주 씨는 무조건 잘못했다고 죄송하다고 해야 했다. 민원은 곧 고용(해고)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요금소 안에서는 장갑이나 마스크를 착용할 수 없었고, 물도 갖고 들어가지 못했다. 고가의 기계를 사람보다 우선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마스크는 최근 미세먼지 때문에 허용됐는데, 고객이 민원을 넣어 가능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고속도로에서는 사람이 우선입니다”라는 한국도로공사의 슬로건이 무색하다. 지난해에 ‘감정노동자보호법(산업안전보호법 개정안)’이 시행됐지만, 요금수납노동자들은 그 어떤 변화도 느끼지 못했다. 회사에서 매뉴얼이나 교육도 받은 게 없다.
“오늘 들어온 직원이나 20년 된 직원이나 월급이 똑같아요. 저희는 항상 최저임금이에요. 최저임금이 오르면 식대나 교통비 같은 수당을 왔다갔다 하게 해서 최저임금에 딱 맞춰서 줘요.”
지역과 근무 연수를 막론하고 단 한 명도 최저임금 예외가 없었다. 또, 근속수당이나 호봉도 없었다. 휴일과 명절 상관없이 누군가는 근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연차 휴가를 쓰기 어려운데, 업체에선 연차수당을 주지 않을 거니 쓰라고만 했다. 한 사람이 휴가를 쓰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 근무를 바꾸는 ‘제 살 깎아먹기 식 대근’을 해야 했다.
인간의 자존감을 완전히 떨어뜨렸어요
‘도피아’가 운영하는 톨게이트 영업소는 인건비 착복과 횡령, 운영자 갑질 등 부정·비리의 온상지였다. 서울톨게이트 케노피 고공농성장 아래에서 농성하고 있는 이정희 씨(가명)를 만났다. 대전영업소 요금소에서 7년 동안 근무한 정희 씨는 이곳에서 사람이 아닌 물건이나 돈 취급을 받았던 게 가장 서러웠다고 했다.
“저는 지체장애인이에요. 제가 서른에 혼자 되서 남매를 키웠어요. 얼마나 먹고살기 어려웠어요. 어린 아이를 데리고 몸은 불편한데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돼 있고. 여기 취업하니 월급이 꾸준히 나오잖아요. 너무 좋은 거야.”
정희 씨는 감사하게 생각하며 고된 업무와 각종 갑질, 야근수당 포함해 일 년에 1,800~1,900만 원인 최저임금을 받고도 힘든 줄 몰랐다. 그저 열심히 일했다. 3년쯤 지나자 용역업체 사장이 다른 곳에 자리가 비었는데, 옮길 생각이 없냐고 했다. 의사를 묻는 게 아니었다. 옮기기 싫으면 나가라는 거절할 수 없는 압박이었다.
“외주사 사장들이 장애인을 고용하면 정부 보조금이 지원되니까 저희를 썼더라고요. 근데 3년이 지나면 보조금이 절반으로 줄어요. 그러면 사장이 그거 아까워서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아 자르는 거죠. 아니면 사장단들끼리 바꿔치기를 해요. 그래서 저도 영업소를 여러 번 옮겨 다녔어요.”
어떤 수납원은 장애등급을 다시 받지 못한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가, 뒤늦게 알게 된 사장에게 “너 때문에 손해를 얼마나 봤는지 아냐?”라는 괴롭힘을 몇 달씩 당하고는 끝내 사표를 내야 했다. 용역업체는 도로공사에서 최저임금보다 많은 인건비 등 온갖 정부보조금을 다 받았다. 하지만, 노동자들에게는 최저임금만 줬다. 심지어는 최저임금마저 주지 않은 영업소도 있다. 한국도로공사도 정부도 이를 관리감독 하지 않았다.
“일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해 하니까 외주사 사장들이 그걸 약점으로 삼은 거 같아요. ‘너 아니어도 얼마든지 있다. 너는 여기서 그만두면 갈 데 없다.’ 미팅 때 그런 식으로 얘기해요. 인간의 자존감을 완전히 떨어뜨려요.”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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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이 사장보다 높아 보여 이상했어요
수납업무가 외주화 된 뒤에도 한국도로공사는 모든 일에 관여했다. 용역업체 사장·직원과 도로공사 직원이 한 사무실에서 근무했고, 용역업체가 사용하는 사무실과 사무용품의 거의 대부분은 도로공사 소유였다. 도로공사는 용역업체 수납원들의 교육·훈련·포상을 맡았다. 그런가하면 업무일지와 근무현황, 근무확인서, 개별고객응대 모니터링 점검일지, 급여지급대장 등 각종 업무 관련 일지와 대장 등에 해당 영업소 사무장의 결재란 외에 도로공사 소속 직원인 대리·과장·소장의 결재란을 둬 도로공사가 결재했다.
“업체 들어오고 나서도 소장님이나 대리님이 와서 결재 사인을 받았어요. 저희 하루 근무 끝나고 플러스 마이너스 결과가 나오면 도로공사 대리님 있는 사무실에 한 사람씩 들어가서 사인을 받았거든요.” (이선주)
“처음에 도로공사 직원으로 입사한줄 알았어요. 면접을 외주사 사장하고 도로공사 영업소장이 봤거든요. 출근했는데, 도로공사 관리자들이 인사도 하고. 도로공사 관리자 6명이 우리 영업소에 근무했거든요. 출근하니 (용역업체)사장보다 (도로공사) 과장이 더 높아 보여 이상하다고 생각했죠. 모든 영업소 직원이 도로공사 마크가 찍힌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일을 했어요.” (도명화)
도로공사 요금수납노동자들은 2013년 2월에 자신들이 도로공사 정규직 노동자라는 것을 확인해달라는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냈다. 이들이 소송을 제기하자 도로공사는 영업소에 있던 도로공사 직원들의 자리를 빼고 공간을 분리했다. 그러나 2015년 1월 1심 승소에 이어 2017년 2월에는 2심 승소 결과가 나왔다.
해당 판결에서는 ‘도로공사 수납노동자들이 도로공사 사업장인 영업소에서 도로공사의 지휘·명령을 받아 도로공사를 위한 근로에 종사하였으므로 도로공사 외주업체에 소속되어 요금소에서 2년 이상 근무한 요금수납노동자들을 한국도로공사가 직접 고용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서울동부지법 2013가합2298)
결실 보기 전까지 내려가지 않겠다
대법원 판결만 남은 상황에서 도로공사는 요금수납노동자들을 직접고용 하지 않고, 자회사(한국도로공사서비스)를 만들어 전적을 강요했다. 그리고 이를 거부한 1,500명을 해고했다. 한국도로공사는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따라 ‘자회사 방식의 정규직 전환’을 시행한다고 공고했다.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직후 인천국제공항을 방문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언했고, 두 달 후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하지만, 간접고용의 정규직 전환에서 자회사를 설립하고 활용하는 방식을 허용하면서 대상 기관의 상당수가 직접고용이 아닌 자회사를 선택하는 결과를 낳았다.
“우리는 이미 정규직이에요. 정부에서 가이드라인만 안 내놨어도 우리는 이미 1심, 2심 정규직 지위를 확인받았기 때문에 대법 판결만 나면 직접고용될 수 있는 건데, 그걸 바꿔 놓은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회사 갈수 없고, 직접고용 가야 돼요. 우리가 옳다고 생각해요.” (박주영)
현재 총 354개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영업소에서 근무하던 6,500여 명의 요급수납원 중 5천여 명은 자회사로 갔다. 이외 1,500명의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톨게이트노동조합 조합원이 자회사 전환에 반대하고 한국도로공사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다.
41명이 고공농성을 시작한 서울톨게이트 케노피에는 8월 21일 현재 27명의 노동자가 53일 째 폭염을 견디며 고공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50대 이상이 대부분이라 그사이 십여 명이 고혈압이나 당뇨, 피부병 등의 지병으로 울면서 내려가야 했다. 케노피는 높낮이가 다른 디귿(ㄷ)자 모양이어서 노동자들은 허리와 무릎 통증, 발 부상 등으로 고생하고 있다. 매연과 소음도 힘들고, 화장실 문제로 처음에는 거의 굶다시피 했다.
고공농성 중인 도명화 씨(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전국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 지부장)는 “우리는 용역회사에서 당한 세월이 생생하기 때문에 자회사에 갈 수 없다. 임금 30% 올려주고 정년 1년 연장해준다는데, 우리가 정말 원하는 건 해고 위협 없는 안정적인 일터, 직접고용이다. 결실 보기 전까지 내려가지 않겠다”고 말한다. 한국도로공사 측과 공동교섭이 진행되고 있지만, 도로공사는 여전히 자회사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 측의 예측과 달리 직접고용 투쟁을 하고 있는 요금수납노동자들은 가족들의 많은 응원과 지지를 받고 있다.
유니폼을 영업소에 걸어놓고 왔어요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통행권 카드 받았습니다. 3천2백 원입니다. 3천2백 원 계산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이선주 씨가 필자의 요청을 받고 친절한 미소와 함께 양손을 공손하게 내밀며 고객에게 응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16년 동안 일하면서 최저임금이지만 그 덕분에 아이 둘 공부시키고, 대출도 갚고, 부모님 용돈도 드릴 수 있었다. 그렇게 일한 직장인데, 해고되기 전 마지막 근무하던 날 오랫동안 한솥밥 먹던 동료들과 인사도 하지 못하고 나온 게 선주 씨는 많이 허탈했다고 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은 안 했지만, 일 끝나고 ‘잘 가라. 다음에 보자’는 말도 없었어요. 저희가 뭘 잘못한 것도 아닌데 말예요. 지금도 가슴에 맺혀요. 그래서 더 열심히 투쟁해서 직접고용 돼 당당하게 돌아가는 모습 꼭 보여주고 싶어요. 입던 유니폼도 영업소에 걸어놓고 왔어요. 도로공사뿐 아니라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직접고용 되는 날까지 끝까지 투쟁해서 이길 각오가 돼 있습니다.” (이선주)[워커스 5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