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잤니?’ 인사는 지난 거 같고요. 요기는 하셨습니까?”
“네!”
“식사는 언제 할까요?”
“10시요.”
“아까 많이들 드시던데요~”
“집 나간 이강래 돌아와라!”
9월 22일, 한국도로공사 요금수납노동자들의 김천 본사 농성 14일 차 아침 집회가 평소보다 한 시간 늦게 시작된다. 일요일이기 때문이다. 벌써 이곳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일요일이다. 전날부터 태풍 타파로 비가 많이 내리고 있다.
“하루하루 어떤 때는 긴장으로, 어떤 때는 몸이 힘들게 14일을 보냈습니다. 연대 투쟁이 확산되어 이 곳 본사 투쟁으로 집중이 되고 있습니다.”
농성 중인 노동자들은 다음 주에 정부와 도로공사에 대한 집중 투쟁을 통해 1500명 직접고용의 결실을 맺겠다는 다짐을 하며 아침 집회를 시작한다.
▲ 대법판결 승소자 입장 발표 기자회견 장면 [출처: 연정 작가] |
다음 날인 9월 23일은 한국도로공사 사측이 공지한 대법원 확정 판결 노동자 중 직접고용 희망자를 대상으로 하는 소집일이다. 이와 관련하여 9월 23일 농성장에서 이를 거부하는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밖에서는 소집 장소인 화성시 도로공사 인재개발원에서 피켓팅을 진행할 예정이다.
22일 아침 본사 농성장에서는 민주노총 소속 대법원 판결 승소자 47명 중에 본사에서 농성 중인 24명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47명의 승소자들은 일방적인 도로공사의 소집 일정과 교육, 업무 배치 등을 거부하고, 1500명 직접고용 요구 투쟁을 계속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한국도로공사가 콩으로 콩밥 한다고 해도 안 믿어
대법 승소자 중 한 명인 성경아 씨(한국도로공사 서안성톨게이트)는 자신의 예감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아 떨어진 거 같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제가 대법 판결 나기 전에 우리의 싸움은 판결 이후에 본격적인 싸움이 될 거다 예상을 했는데. 진짜 그렇게 가는 거 같아요. 저희를 이렇게 갈라치기 해서 (승소한)이 인원만 들어가면 아마 한 달 버티기 쉽지 않을 거라고요. 저희가 한꺼번에 같이 들어가야 해요. 저 혼자는 약하지만 우리는 강합니다. 1500명이 다 같이 한 날 한 시에 들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법 승소자이자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 부지부장 박순향 씨(서산톨게이트 근무) 역시 자신들이 대법원 판결로 직접고용 되려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대법원 판결로 직접고용 될 거 같았으면 자회사 설립도 하지 않았겠죠. 그랬으면 우리가 용역업체에서 계속 일하다가 한명 씩 한명 씩 판결 받고 직접고용 갔을 거예요. 정부가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을 던져놓으니까 도로공사가 그걸 물었습니다. 좋은 방법이 아니라 수납원들을 정리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덥석 물었습니다. 이제는 도로공사가 콩으로 콩밥 한다고 해도 안 믿을 판인데, 맞죠? 저는 그거 하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박 부지부장은 “나 하나는 약하지만, 우리는 강하다”며 끝까지 투쟁해서 서로 손 잡고 웃으면서 회전문을 다시 열고 나가자고 이야기한다.
인천지역일반노조 톨게이트지부 구경숙 지부장은 지금 도로공사가 억지를 부리고 있다며, 이번 대법 판결로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1500명 모든 수납노동자에게 정규직 지위가 있는 것이니 절대 흔들리지 말자고 이야기했다.
“우리를 얼마나 좋은걸 시켜줄라고 4주 연수를 한답니다. 일반 정규직을 시켜 줄라나 봐요. 대기업에서 하는 4주 연수를 우리를 시킨답니다. 뭘 시킬지 모르겠어요. 내가 볼 때는 그냥 맨 날 원투쓰리 아침 점심 저녁 자회사 설명회만 할 거 같아요.”
구경숙 지부자은 갱년기가 오려고 했는데, 투쟁하면서 갱년기가 싹 없어졌다고 했다.
“밥 왔어? 하여튼 끝까지 함께 합시다. 그만할게요.”
임금소송 등 구 지부장의 이야기가 길어지는 중에 마침 밥이 오면서 발언이 종료되고, 아침 식사가 시작된다. 콩나물과 김치 등을 얹은 밥과 국을 먹으며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다.
도로공사의 일방적인 통보에 분노합니다
“본사에 계신 요금수납원께서는 공사 업무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으니 밖으로 나가주시기 바랍니다.”
9월 23일 농성 15일차 아침. 아침 집회도 하기 전에 한국도로공사 안내 방송이 먼저 나온다. 그저 로비에 앉아 있을 뿐인데 고속도로 유지 업무에 방해가 된다는 멘트가 나올 때도 있다. 지난 주 2~3일 정도 밤에 불이 꺼졌는데, 그 뒤로 다시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고 있다.
▲ 농성장에서 수면을 취하고 있는 요금수납노동자들 [출처: 연정 작가] |
“1500명 갈라치기 꺼져라!”
“1500명 직접고용 자아아~~”
“함께 투쟁하고 함께 직고가자!”
일반민주연맹 남정수 교육선전실장이 하루 일정을 공지한다. 11시에는 대법 승소자 소집 관련 기자회견이 있고, 오후 2시에는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가 이곳 도로공사 본사 앞에서 열린다. 남정수 실장은 임시대의원대회는 연대이기도 하지만 채무이기도 하다며, 당연한 권리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한다. 또, 84일차 고공농성 중인 영남대의료원 투쟁과 강남역 사거리 70미터 CCTV 철탑에서 106일 째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삼성 해고자 김용희 씨의 이야기도 공유한다. 하루빨리 타결되기를 바라는 전국 동지들의 결정이기에 좀 더 책임감을 갖고 투쟁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11시가 되자 ‘1500명 모두 일괄 직접 고용하라! 대법판결 요금수납원 일방적 교육소집 강행 규탄 대법판결 승소자 불참입장 발표 기자회견’이 시작된다.
한국도로공사 남인천영업소 톨게이트 등에서 12년 동안 요금수납원으로 근무했던 대법원 승소자 김상미 씨는 6년간의 긴 기다림 끝에 8월 29일 대법원 판결에서 도로공사 직원임을 인정받았다. 김상미 씨는 이를 통해 자신들이 옳다는 것이 증명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우리 1500명 수납원들은 해고되는 그날까지 도로공사의 지시를 받았고, 수납 일을 하다 해고되었습니다. 앞으로의 판결 또한 다를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도로공사는 당사자의 의견도 묻지 않고 협의 한번 하지 않은 채 일방적인 통보만 하고 있습니다. ‘수납 일을 하려면 자회사에 가야한다. 그러지 않으면 풀베기나 화장실 청소를 해야 한다. 23일 오지 않으면 인사 상 불이익을 주겠다’고 협박하고 있습니다. 도로공사의 일방적인 통보에 분노합니다.”
상미 씨는 해고된 1500명 수납원 모두 같은 일을 했고 요구하는 것도 같다며 모두가 직접고용 될 때까지 이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는 이야기로 발언을 마무리했다.
국민 혈세를 소송 비용으로 쓰는 한국도로공사
기자회견에 참석한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지난 대법원 선고 이후 도로공사가 보인 행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나라 대법원 판례에서도 부당해고 승소한 사람을 원직복직 시킬 때는 회사가 사전에 부당해고자와 충분히 교섭하고 성실히 협의해서 복직방법과 일시 장소를 정하라고 판시하고 있는데, 도로공사는 이를 다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법 승소자에게 어떤 일을 맡기겠다는 것인지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언제 어디서 소집하겠다는 것인지도 자기들 마음대로 정합니다. 이런 회사는 처음 봤습니다. 도로공사는 아직도 선별적 복직을 계속 주장하고 있습니다. 대법 승소자 이외에는 다 소송을 해서 받아오라는 건데요. 결론은 정해져 있습니다. 서울톨게이트가 불법이면 김천이나 여수 대구 톨게이트도 불법입니다.”
신인수 법률원장은 이렇게 하는 것은 사측을 대리하는 변호사 소송비용을 국민 혈세로 메꾸겠다는 공기업 운영자로서 도덕적 해이라고 이야기한다. 또, 이번 대법원의 승소자 교육훈련 소집 거부는 지극히 정당하며, 도로공사는 공기업 운영자의 마인드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성실하게 교섭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요금수납노동자들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도로공사가 이번 판결을 소송당사자만의 판결이라고 우기는 것은 마치 사과나무에 배가 열렸을 수 있으니 다 검사해봐야 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은 망발”이라며 도로공사의 행태를 비판했다.
농성 15일 차 긴 하루가 지나간다. 저녁 마무리 집회에서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 내용 등을 공유한다. 민주노총은 농성장 침탈 시 총파업에 돌입 하는 것을 결의하고, 조합원 모금을 통해 9월 말까지 1억 원의 투쟁기금을 전달하는 것을 결의했다고 한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요금수납노동자들의 본사 농성과 관련하여 "대화와 타협을 통해 풀어야 할 노사문제"라며 사실상 농성 진압 계획이 없음을 공언한 상태라 민주노총의 파업은 크게 실효성이 없다는 의견도 있다.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 시간에 맞춰 1층 로비에서는 한국도로공사 한국노총 노동조합이 임시대의원대회를 했다. 그리고 1층에서 1박 2일 간 상주하며 웅성웅성 한다.
▲ 임시대의원대회를 마치고 1층 로비에 있는 한국노총 소속 도로공사 직원들 [출처: 연정 작가] |
“앉으신 분들 간격이 너무 좁아요!”
“ㅂ자가 너무 커요!”
점심때는 농성 중인 노동자들이 몸으로 ‘직접고용’ 글자 쓰기 퍼포먼스를 했다. 한 시간 넘게 노동자들이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어렵게 글자를 완성했다.
▲ 농성 중인 요금수납노동자들의 퍼포먼스로 만들어진 글자 [출처: <노동과 세계> 정종배] |
아직 문제가 시원하게 해결 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민주노총 소속 수납원 6명이 노동조합에 아무 말 없이 사측이 주최하는 소집에 참석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오전 기자회견 5분 전에 확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노동조합이나 농성 중인 노동자들이 하는 전화를 받지 않고 문자 등에 대해서도 일절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노동조합에서는 규정에 따라 세 차례 농성 복귀 문자를 보낸 후 복귀하지 않으면 제명 처리를 할 계획이다.
저녁때가 되어 시원한 소식 하나가 들려왔다. 그동안 막혀서 사용하지 못하던 화장실 변기 4개 중에 3개가 뚫렸다는 소식이다. 상관영업소 톨게이트에서 근무하다 해고된 진정일 씨가 그 ‘큰 일’을 한 주인공이다. 진정일 씨는 이날 ‘뚫어뻥’이 들어오자마자 바로 화장실에 가서 막힌 변기를 뚫었다고 했다.
“제가 물품을 받은 김에 했어요. 하기 싫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요. 누구든 하면 되는 거잖아요. 영업소에서 일할 때도 그렇고 집에서도 그렇고 그런 일은 꺼려하지 않아요. 1개는 너무 심하게 막혀서 못 뚫었는데, 물품이 더 들어오면 하려고 해요.”
대법원에서 승소한 요금수납노동자의 한마디
한 번도 발언 안하고 넘어갔었는데, 안할 수가 없이 딱 걸렸네요. 여러분들 덕분에 대법 판결도 빨리 났습니다. 여러분과 같이 여기서 투쟁하는 것이 힘들기도 했지만, 즐거웠어요. 곧 좋은 소식이 있어서 다 같이 1500명 다 같이 근무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끝까지 하겠습니다. 투쟁! (최상례, 인천영업소 톨게이트)
예전에 처음 시작할 때 자료를 열심히 모았던 그 시간이 주마등처럼 기억이 납니다. 그때도 간절했고, 지금도 간절하기 때문에 우리가 한마음으로 간절히 원하면 꼭 이룰 거라고 생각합니다. 끝까지 함께 투쟁합시다. 감사합니다. (유경화, 매송영업소 톨게이트)
8월 29일 대법원 판결나던 날. 너무 즐거웠고 눈물로 하루를 보냈는데, 9월 9일 우리를 다시 울게 했어요. 우리는 대법 판결 받은 사람들이고 정당하게 도로공사 정직원이 되는 게 맞아요. 그래서 저는 항상 여기 도로공사에 출근했다고 얘기해요. 우리가 같이 다 출근했으니까 이강래 사장이 수납원들을 정직원으로 고용하면 되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고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투쟁! (김보경, 서안성영업소 톨게이트)
제 마음에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아보자는 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감사하고요. 저희들이 늘 함께 했듯이 가는 것도 같이 가야죠. 열심히 하겠습니다. 투쟁.! (김영미, 인천영업소 톨게이트)
직접고용을 위해 조직에 들어왔습니다. 동지와 조직을 믿고 한 날 한 시 한국도로공사에 함께 입사하기 위해 열심히 투쟁하겠습니다. (최양예, 서안산영업소 톨게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