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농도의 온실가스가 지층에 쌓이고, 석탄과 석유 연소 알갱이들은 에베레스트 산에서부터 1만 미터 심해에 이르기까지 전 지구에 걸쳐 발견된다. 1945년 핵폭탄 투하와 이후 각국의 핵 실험으로 방사성 동위원소는 10만 년간 서서히 붕괴하며 퇴적층에 쌓인다. 플라스틱은 썩지도 않은 채 땅과 바다를 오염시킨다. 매년 600억 마리가 소비되는 닭과 닭뼈는 이 시대의 화석증거로 남는다. 지질학자들은 지구가 1만 년 전에 시작된 홀로세(Holocene epoch)를 지나 이제 새로운 시대(epoch)에 들어섰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인류세(Anthropocene)’다. 탄소, 방사능, 플라스틱, 닭뼈로 상징되는 이 새로운 시대는 지구를 오염시킨 뚜렷한 지질학적 시대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이런 인류세가 적절한 명칭인지에 대한 논란도 뜨겁다.¹ 안드레아스 말름(Andreas Malm) 등은 “서구 중심 시각에서 다듬어진 이 담론이 기후 변화에 대한 책임을 그간 대부분의 오염물질을 배출하면서 부를 독점한 선진국 자본가들이 아니라 인류 전체로 돌림으로써 현실을 왜곡한다”고 비난한다. 그래서 그는 당면한 문제를 인류 전체의 문제로 만드는 인류세라는 용어 대신, 이 문제를 책임져야 할 주체를 명시한 ‘자본세’(Capitalocene)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²
지구 온난화를 넘어선 가뭄, 홍수, 폭풍, 폭염과 폭설 등의 기상이변으로 인간은 물론 지구상의 수많은 생명들이 죽어가고 있다. 기후변화는 특히 저개발국에 식량과 물 부족, 해수면 상승, 기근과 온갖 자연재해 등의 큰 피해를 안겼다. 수 주 동안 계속된 호주 산불, 시시때때로 몰아닥치는 미국과 중미 지역의 허리케인과 메르스,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 등 서구 국가들에서도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이 기후변화의 가장 큰 원인은 온실가스이며 여기에는 대규모로 늘어난 이산화탄소 배출이 자리 잡고 있다. 자본주의 산업생산이 확대되면서 인간해방도, 노예해방도 아닌 오직 탄소만이 해방돼 기후와 생태위기를 초래하고 있다.³
녹색전환의 비용
1992년 리우 지구환경 선언에서 유엔 기후변화협약 채택을 시작으로, 1997년 교토의정서 체결, 2015년 파리기후협약까지. 이들은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 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1.5℃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전지구적 장기목표 하에 모든 국가가 2020년부터 기후행동에 참여하도록 했다.
세계적인 저성장 국면에서 기후위기로 더 많은 비용을 추가로 지출해야 하는 자본은 기후위기 대응을 늦추고 줄이기 위한 시도를 한다. 교토의정서와 파리기후협약에서 미국 등은 비준거부와 탈퇴 등을 반복하고 탄소배출량과 온도상승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각국 정부가 산업화 이전 1.5℃ 상승을 목표로 한다면 대형 화석연료 에너지 기업이 보유한 매장량의 3분의 1(9천억 달러, 약 1천조 원) 가량이 쓸모없어질 위험에 처해 있다고 밝혔다.⁴
JP모건 등은 최근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으로 채취할 수 없는 석유, 석탄, 천연 가스 등 좌초된 화석연료 자산에 의한 재정 안정과 경제적 위험 문제를 계산했다. 1.8℃ 온도 상승을 목표로 한다면, 에너지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매장량의 상당 부분을 사용하지 못해 최고 20조 달러(약 2경3000조 원)가 주식 시장에서 사라질 수 있다고 평가한다.
그런데, 국제에너지기구(IEA)의 공표 정책 시나리오(각국 정부가 미래에 하겠다고 공표한 정책까지 포함)를 기준으로 하면 온도 상승 목표는 3.0℃가 되고, 이에 따라 석탄은 매장량의 67%가 남게 되지만(쓸모없어지지만),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은 오히려 모자란다. 실제로 2019년에서 2070년까지의 석유 추출(예정)량은 2018년 매장량에서 2,157억 배럴(2018년 매장량의 12%)만큼 증가했다. 2019년부터 2070년까지의 천연 가스 누적 배출량도 현재 매장량 수준을 초과했다. 이에 대해 JP모건 측은 “남겨질 화석연료 자산에 대한 심각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왜 기업들이 여전히 새로운 석유 및 가스를 탐색하는지 설명해준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화석 연료 사용과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기존의 정부 협약(미래에 하겠다는 정책을 포함)으로는 석유 및 가스 다국적 기업의 이익을 전혀 손상시키지 않을 뿐 아니라, 지구 온도 상승이 점점 파괴적인 수준으로 증가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⁵
그럼에도 기후변화 대응을 하지 않을 경우의 비용과 손실이 워낙 막대하기 때문에, 자본으로서는 녹색전환에 대한 개별 자본의 저항이 거세고 비용이 아무리 많이 들더라도 반드시 이뤄내야 할 문제로 사고된다. 큰 관심을 끌었던 ‘스턴보고서(The Stern Review)’⁶는 2050년을 기점으로 온도상승에 따른 1인당 GDP가 전 세계적으로 최대 35% 가량 감소하고 전 국가적인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한다. 기후위기 무대응에 따른 (사회적 손실이 아니라) 경제적 손실만으로도 그 금액은 추산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하다.
실패한 시장 솔루션
에너지 자본, 중동 산유국과 미국 등의 저항을 별도로 하더라도 녹색 전환과 파리기후협약에서 정한 2℃~1.5℃로의 온도 상승을 가능케 할 수단이 있을까? IMF는 ‘기후변화 완화를 위한 거시 및 금융정책’ 보고서에서 지구 온난화를 완화하기 위한 ‘시장 솔루션’이 작동하지 않는다며 슬픔에 찬 지적을 했다. “기업과 국가가 문제를 장기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50년 또는 백년 앞의 미래가 아닌 1년, 3년, 5년 후에 일어날 일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생산적인 자본 및 인프라에 대한 민간 투자는 항상 초기 가격으로 책정될 수 없는 높은 선행 비용과 중대한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다.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투자는 기후위기 완화에 대한 정책 접근과 예측할 수 없는 기술 발전에 따라 중요한 정치적 위험과 불확실한 수익에 추가로 노출된다”고 지적한다. 자본주의 기업의 경우 기후 변화 완화에 대한 투자는 수익성이 없기 때문에 시장 솔루션이 효과가 없다는 분석이다.⁷
1) 탄소배출권
기후위기 대응의 역사는 시장 솔루션이 실패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1997년 체결된 교토의정서는 실행방법으로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했다. 교토의정서는 각국의 이해관계와 산업계 요구에 따른 탈퇴와 비준 거부로 협약 자체가 유명무실해지기도 했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각국이 다양한 이유로 탄소배출 쿼터량을 계속 늘릴 것을 요구했고, 결국 배출권 자체가 별 의미 없는 상황까지 만들어졌다.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대기업들은 싼 값에 배출권을 많이 확보해 탄소배출량을 줄일 필요조차 없어졌다. 탄소배출권은 산업 활동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숫자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것에 불과했다.
2) 녹색 금융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저탄소 생산으로의 산업전환이 필요했고 결국 이 비용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관건이었다. 이에 대한 방법으로 금융시장을 통한 자금 확보가 구상됐는데, 바로 녹색금융(Green Finance)이다. 녹색금융으로 대표되는 것은 친환경 프로젝트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되는 그린본드(Green Bond, 녹색채권)다. 그러나 그린본드도 채권이라는 성격 때문에 수익률이 나지 않으면 투자도 없다. 현재 그린본드를 포함하는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채권 수익률은 일반 채권보다도 낮다. 게다가 ESG 채권시장 규모는 100조 달러가 넘는 글로벌 채권시장의 0.5% 수준으로 매우 미미하다. 이 채권시장이 성장한다 하더라도 새로운 생산성이 담보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갈색 시설에서 녹색 시설로 전환하며 기존 생산성을 유지하는데 그치기 때문에 일반 채권 수익률을 상회하리란 보장이 없다. 또한 글로벌 경기상황에 따라 채권 투자 규모 및 수익률이 요동치기 때문에 안정적인 자금 공급원으로 기능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따라서 이제는 공공자금까지도 녹색전환에 동원하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가령, 중앙은행이 자산 구매 프로그램에서 화석 연료 및 기타 에너지 집약적 산업을 배제하고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앞당겨 해당 부문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중앙은행도 연준(Fed)이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쓰레기가 된 MBS(모기지채권)을 미국 국채와 교환하거나 일정 가격으로 직접 매입했다. 마찬가지로 그린본드를 중앙은행이 매입해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이든 누구든 녹색전환을 희망하는 사업에 투자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녹색 양적완화(Green QE)’다. 그런데 이 방식은 공공자금을 조달할 뿐만 아니라, 자본의 녹색전환 비용을 전체 국민에게 부담시키는 효과를 갖고 있다.
3) 탄소세
화석연료 사용이나 탄소 배출 기업에 일종의 갈색 세금인 탄소세를 거둬 녹색 전환의 비용으로 사용하자는 주장이다. 이 세금이 규제로 작동하기 때문에 기업들이 탄소배출을 줄이고 녹색전환을 가속하게 된다는 것이다. 탄소세의 경우 일종의 가격 규제이기 때문에 시장방식을 통한 조정보다 위력적이다. 그런데 세금을 매기려면 정확한 가격이 나와야 하는데, 탄소(배출)가격을 정확히 매기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각국별로 각개 약진하고 있다. 탄소세를 도입한 나라도 많지 않을뿐더러, 탄소배출권의 가격도 천차만별이라 탄소배출량에 매기는 세금도 제각각이다.
또한 에너지는 필수재이기 때문에 에너지 소비를 줄이지 않는 한, 어떤 방식으로든 오른 세금만큼 소비자 가격에 반영할 수 있다. 탄소배출 상품의 상당수는 에너지이기 때문에 태양광 등 대체에너지 시장 가격이 화석연료 에너지 생산 가격보다 저렴해지지 않으면 여전히 화석연료 에너지가 주종을 이루게 된다. 결국 대체에너지 생산기술이 발전해 생산원가가 현재보다 월등히 싸질 경우에만 생산전환도 이뤄지고 소비자 가격도 하락하게 된다. 그 때가 언제가 될지는 아직도 미지수다. IMF와 투자자문기관들이 말하는 기술발전의 예측 불가능성은 이것을 말한다. IMF는 지구 온난화를 2°C 이하로 제한하려면 현재 1톤 당 2달러인 탄소세를 2030년에 75달러까지 올려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는 향후 10년 동안 가계 전기요금이 평균 43% 증가하고, 휘발유 가격이 평균 14% 오르는 것을 의미한다.⁸
그린뉴딜과 생산의 사회화
탄소배출권이든, 탄소세든, 지구가 더 망가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면 그것도 좋다. 그러나 현재의 생산방식에서 거시경제 수단으로 녹색 전환이 이뤄질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앞선 IMF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는다. “거시 경제 정책의 목표로 기후 변화 완화를 추가하면 정책 할당 및 재정 안정성, 경기 순환 안정화, 가격 안정성과 같은 다른 정책 목표와의 상호 작용에 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이 글은 이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지 않는다.” 현재의 거시경제 정책 환경에서 기후 완화에 대한 종합적인 정책이 현재로서는 없다는 의미다.
기후위기에 대한 전환은 시장주의적인 방식으로는 진행되지 않는다. 투자 수익률이 보장되지 않으면 ‘전환 비용’을 마련할 수 없고, 대체에너지 생산 가격이 화석연료 에너지 생산 원가보다 낮아지지 않으면 산업전환이 이뤄질 수 없다. 이 때문에 국가적, 사회적 계획이 필수적이지만 현재의 국가 개입은 전환 비용에 대한 국민적, 사회적 분담을 촉구하면서도 거대기업의 산업전환을 중심으로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이는 탄소배출 감축 총량과 속도를 늦출 뿐만 아니라 국가 간 눈치 경쟁마저 치열하게 만든다. 이윤주도의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에서 녹색 자본주의를 작동하려 한다면 전환에 따른 비용 상승으로 이윤 침식이 일어나 장기간의 성장률 악화를 경험할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이런 전환은 높은 비용은 물론이고 고용 친화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탈탄소로의 전환은 에너지 등 일부 산업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산업과 생활 전반의 구조적 전환을 의미한다. 가령, 전기차 전환, 항공기 탄소배출 저감을 위한 항공 산업 재편, 대체에너지로의 전환 등에 따라 전후방 연관 산업도 같이 조정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른 노동력 재배치도 필연적이다. 이를 종합적인 계획 없이 시장에서 요구하는 대로 해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렇게 되면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진행된 대규모 구조조정 과정 또는 최근의 조선, 해운업 등에서의 구조조정과 같이 상당수 노동자의 실업, 공동체의 파괴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전환은 노동자 생활의 안정과 고용의 안정을 위한 국가적, 사회적 계획이 함께 따라야 한다.⁹
이는 미국과 영국에서 주장하고 있는 그린뉴딜(Green Newdeal)과도 맞닿아 있다. 국가의 계획과 그에 따른 공적 자금조달, 아울러 이윤 중심이 아닌 에너지의 사회적 공공성과 공적소유를 확대하고, 산업전환에 대한 고용안전성을 확보하며 비차별적이고 각 공동체의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존중하는 전환 방안이다.[10]
이것은 전환비용을 국민부담으로 전가(손실의 사회화)하면서도 민간 자본 위주의 또 다른 성장주의 정책으로 포장한 이명박 정부의 녹색뉴딜과 큰 차이가 있다. 녹색전환은 그린뉴딜을 통해 생산의 사회화를 달성하기 위한 목적을 추가해야만 자본에 의한 반복되는 자연 침해를 종식시키고 사회적 성장을 이룰 수 있다.
1
Anthropocene, Capitalocene, Plantationocene, Chthulucene: Making Kin, Donna
Haraway,
Environmental Humanities (2015) 6 (1): 159–165.
2
“인류세(Anthropocene), 우리가 남긴 흔적”, 김보람, 유네스코뉴스, 2018.9.
3
Molecular Red Theory for the Anthropocene, McKenzie Wark, Verso, 2016.10.
4
Lex in depth: the $900bn cost of ‘stranded energy assets’, financial times, 2020. 2.3.
5
“The climate and the fat tail risk”, Michael Roberts, 2020.2.9
6
The Economics of Climate Change: The Stern Review, Nicholas Stern, 2006.10.
7
Macroeconomic and Financial Policies for Climate Change Mitigation: A Review of
the Literature, IMF, 2019.9.
8
https://blogs.imf.org/2019/10/10/fiscal-policies-to-curb-climate-change/
9
Degrowth, green capitalism and the promise of ecosocialism, Richard Smith, 2016.8.
10
“미국과 영국의 그린뉴딜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김선철, 워커스 61호, 201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