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강남역 한복판, 매연이 날리는 사거리 철탑 속, 김용희 노동자가 삼성의 잔혹한 노조파괴를 세상에 폭로하러 그곳에 서있다.
혹자는 ‘노조 말 안 들어주면 벌컥 굴뚝 올라가 버리는 게 능사냐’, ‘과격하다.’, ‘그렇게나 관심에 목말라 있느냐?’, ‘노사정 합의로 해결하자!’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가진 자들과 거대 보수 양당의 목소리, 카인들의 물음이다.
노동자들은 왜 철탑 위에서 관심과 연대를 구하는 걸까. 그것은 자본과 보수 양당이 노동계급에게는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노조파괴로 노동자들의 입을 막는 것을 ‘경영 전통’이라고 주장하며, 해고와 전근으로 생계를 위협하는 것을 ‘생산성 향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언론에 재갈을 물려 사람들의 귀를 막으며 ‘언론 계열 투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모든 것을 빼앗긴 노동자들은 세상에 사람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높은 곳에 오를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정권으로부터 탄압을 받던 쌍용차 노동자들이 왜 송전탑에 올랐으며, 스타케미칼 해고자들이 왜 굴뚝에 몸을 맡겼으며, 선배 노동자들이 왜 골리앗 크레인에 올랐는지, 우리는 그 이유를 기억하고 있다.
죽음에 한없이 가까운 철탑 끝에 서게 된 뒤에야 비로소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그제야 사회에 존재하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공장 부품이 아닌 한 명의 목소리로서 존재하게 된다.
한 평도 채 되지 않는 고공에서의 생활은 죽음과 맞닿아있다. 고공 농성자들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극단의 상태에서 싸워야 한다. 그들은 자본의 폭거에 맞서면서도 병마와 싸워야하는 이중의 고통을 받는다. 그럼에도 그들이 하늘 길 위에 서 있는 이유는 승리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지상의 노동자들과 청년, 소수자들이 그들과 함께 연대하고 싸워, 투명인간이었던 노동자들의 주장을 현실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다.
그들이 온전한 삶으로, 지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의 연대뿐이다. 이 투쟁은 김용희 동지가 이야기했듯 단순히 한 사람의 투쟁, 한 사람과의 동정적인 연대가 아니다. 이 투쟁은 노동자를 기계 부품으로 취급하려는 독점자본 전체와 전체 노동계급의 싸움이어야 한다.
그가 서있는 저 철탑은 노동계급이 삼성자본에 겨눈 뾰족한 창끝이다. 이제 그 창을 쥐어 '이재용 구속'이라는 표적을 꿰뚫자. 그 창끝에 가해질 힘찬 모멘텀은, 탄압으로 시퍼렇게 날이 선 고공농성 노동자들과 함께 연대할 민중에게서 나온다.
세상 사람들에게 왜 저 하늘 감옥에 사람이 갇혀있으며, 그가 무엇을 위해 철탑에 올랐는지를 알리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김용희 동지가 비로소 땅으로 내려오고, 이재용과 삼성 재벌이 80년 무노조 경영의 대가를 받을 때까지 연대하고 투쟁하자. 진보정당을 현장에 세우고, 언론을 귀찮게 하고, 세상을 소란스럽게 만들자. 싸우는 사람의 힘은 자본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