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코로나19 감염에 휩쓸리면서 각 주가 3월 중순부터 차례로 주민이동 제한령을 내렸고 연방정부는 경제 부양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그러나 미국 실업률 추이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노동자의 고용을 유지하는 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시장자유주의를 절대시하는 미국 고용 정책은 전통적으로 해고 보호 보다는 실업 지원이 중점이고 최근 긴급 대책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 미국 실업률이 유럽보다 왜 월등히 높은지 다룬 <포린 폴리시> 기사. 미국 실업률이 심각해지면서 여러 언론이 이 문제를 다뤘다 [출처: 포린 폴리시 화면캡처] |
미국 연방정부는 지난 3월 27일 2조200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CARES Act)을 도입했다. 이 조치 중 노동자를 직접 대상으로 한 내용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급여보호프로그램(PPP)과 △실업수당프로그램(FPUC, PUA, PUEC)이 포함됐다. 급여보호프로그램은 사업주가 고용을 유지할 경우 조건부로 탕감이 가능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실업수당프로그램은 기존 실업 수당에 4개월까지 주당 600달러를 추가 지원(FPUC)하고, 실업수당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에게 지원을 보장(PUA)하며, 제한적으로 최대 13주까지 실업수당(PUEC)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으로 구성(코트라)돼 있다. 그러나 이들 조치가 모두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다는 뒷말이 무성하다.
우선 6천억 달러 이상의 예산이 책정된 급여보호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시행된 지 한달이 지났지만 한 푼도 구경하지 못한 사업주가 많다. 중소기업 대신 대기업이 이 자금을 대출해가는가 하면, 대출 프로그램 규칙이 모호하고, 예외 조항이 많으며 은행도 신청자에 비협조적이어서 수혜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또 중소기업 사이에선 대출을 받더라도 추후 탕감이 정말 가능할지에 대한 의구심도 크다.
실제로 미국 연합통신 <에이피(AP)>의 4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같은 달 3일 이 프로그램이 시작된 뒤 보조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난 최소 94개 기업은 주식공개를 한 대기업이었다. 이중 일부는 시장가치가 1억 달러를 훨씬 넘는 기업도 있었다. 또 국제 투자그룹 골드만삭스가 1,70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설문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중 91%가 정부의 대출프로그램을 신청했지만 29%만이 받는 데 성공했다. 결과적으로 설문에 응답한 중소기업 노동자 수는 평균 11명에서 6명으로 45% 감소했다. 코로나19 감염이 확산하기 전, 미국 민간부문 노동자의 약 절반은 중소기업에 고용돼 있었다.
실업수당프로그램이 미치는 효과도 크게 제한적이다. 4월 24일 미국 싱크탱크 퓨리서치센터가 공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3월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 중 29%만이 실업수당을 받았을 만큼 수혜 폭이 크지 않다.
결과적으로, 미국 정부가 3월 2조 달러 이상의 위기 패키지를 도입했음에도 미국의 빈곤율은 현재 크게 악화한 상황이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가 지난 6일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12살 이하 자녀를 둔 미국 가정 17.4%가 돈이 없어 아이들을 충분히 먹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업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인구는 여성과 유색인종이기도 했다. 4월 20일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따르면, 3월 사라진 일자리 70만 개 중 60%가 여성이 일하던 일자리였다. 같은 시기 실업률이 증가한 규모는 흑인 1.2%, 히스패닉 1.6%, 아시아계 0.9%, 백인 0.9%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미국에선 정부가 노동자들을 해고로부터 보다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특히 같은 시기 유럽도 비슷한 봉쇄를 취했는데도 미국처럼 실업률이 크게 악화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사례를 참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으로, 미국 국제문제 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지난달 24일 “미국과는 대조적으로, 다른 선진국, 특히 북유럽은 미국보다 더 잘 대응하고 있다”며 “거의 모든 유럽은 기업을 통해 임금의 60-90%까지 노동자의 소득을 직접 보상한다”고 지적했다. 또 “무제한의 미국 자유주의 경제는 이미 2008년 금융 위기 후 신뢰를 잃었다”고도 설명했다.
총고용 우선한 해고 방지 대책에 방점
실제로 유럽 각국은 해고를 금지하거나 최대로 방지해 고용을 유지하는 대책에 중점을 둬 왔다.
덴마크는 지난 3월 15일, 해고방지를 위해 정부가 임금의 75%, 사용자가 25%를 지원하는 협약안을 발표했다. 3개월 간 매달 1인당 최대 3,418달러(약 4,244만 원)를 지불한다는 내용이다. 네덜란드는 더 나아가 해고를 피하기 위해 임금의 90%까지 국가가 지원한다.
독일은 10년 전 경제 위기 때 도입한 쿠르츠아르바이트(단축 근로) 프로그램을 확대해 경제위기 기간 자택에 머물러야 하는 노동자를 지원하기로 했다. 코로나 위기 전 임금의 67%, 비정규직에 대해선 60%를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프랑스의 경우엔 코로나 기간 해고를 금지하고, 고용주가 휴업이 필요할 경우에는 급여 부족분을 실업수당 형태로 국가가 지원하기로 했다. 실업수당은 최저임금의 100% 또는 최저임금의 4.5배까지 일반 급여의 84%를 보장하기로 했다. 이 같은 조치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3월 12일 “국가는 집에 머물러야 하는 사람들의 경제적 부담을 떠맡을 것”이라고 말한 뒤 실시됐다. 다음날 브루노 르 마리 경제부장관도 “어떤 노동자도 1센트도 잃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인 바 있다.
영국 정부도 매달 최대 2천500파운드(약 370만원)까지 임금을 지원해주기로 했다.
스페인 정부는 3월 27일 코로나 기간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을 포함해 해고를 금지하는 조치를 발동했다. 스페인은 또 정부 기금으로 노동자 임금의 최소 70%를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코트라 밀리노 무역관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탈리아에선 3월 중순, 기업 규모 및 직종에 따라 적용되던 근로자 일시적 휴직제도를 5명 미만 기업과 농업 및 단기 계절노동자, 관광과 공연문화 종사자까지 적용 범위를 넓혀 최대 9주의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고용을 유지하고 일시적 휴직 시행하면, 순임금의 80%까지 보장하는 조치를 말한다. 또 주문량이 급감하거나 부서가 폐쇄되는 등의 ‘합리화된 객관적 사유’가 있을 경우에도 60일간 해고를 금지했다.
결과적으로, 유럽연합 평균 실업률은 3월 6.6%로 전월에 비해 0.1%p 올라갔을 뿐이다. 현재 미국 실업률 14.7%의 절반도 되지 않는 셈이다.
이 같은 유럽의 코로나 위기 해고 보호 조치는 대개 독일의 쿠르츠아르바이트 정책을 모델로 한다. 그러나 이 모델 역시 일자리 불안정이나 노동빈곤에 대한 효과는 제한적이어서 현지에서는 비판을 받고 있다. 독일 좌파당은 국가가 보장하는 지급률이 현재의 60-65%가 아니라 90% 이상이 돼야 한다고 본다. 또 위기가 반복되며 쿠르츠아르바이트가 전 노동자에 확대된다면서 임금삭감 없는 고용 유지 정책을 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이러한 미국과 유럽의 사례는 한국에도 시사적이다. 한국 정부는 지난 3월 휴업수당의 90%에 상당하는 고용유지지원금을 사용자에게 지급하겠다고 밝혔지만 유인 효과가 크지 않아 실제 해고 방지 효과는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3월에만 일자리 22만5천개가 줄었는데, 2009년 통계작성이 시작된 이래 가장 큰 폭이었다. 말뿐인 미국의 급여보호프로그램이나 소상공인 대출을 선호하는 미국과 닮은 꼴이다. 또 최근에는 해고 방지보다는 미국에서처럼 실업 보호를 중점으로 하는 전 국민고용보험 추진에 방점을 뒀는데, 이마저도 뒷걸음치는 모양새다. 민주노총은 10일 문재인 대통령 취임 3주년 국정연설을 두고 “정부의 코로나 245조 원 중 직접적인 총고용 유지와 생계 대책에 사용하는 비용은 10%뿐”이라며 “해고금지와 취약계층에 대한 생계보장, 전국민고용보험”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한편, 조나단 하켄브로이치 유럽외교관계위원회 위원은 <포린 폴리시>에 “그것(현재의 위기가 나타내는 것)은 경제 문제에 있어서 국가의 복귀”라며 “그것은 금융위기로 시작됐지만 지금은 훨씬 더 절실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로머 미국 뉴욕대 경제학자도 “현재의 위기는 양당 모두를 감염시킨 레이건의 지침(신자유주의)에 죽음을 배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