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재난 상황은 누가 위험하고 불안정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를 드러내고 있다. 여성 노동자들의 취약성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노동자를 위한 정부 지원 또한 증명서 위주의 대책으로, 여성 노동자에게 끝까지 닿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 여파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은 공항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다수가 무급휴직에 이어 정리해고 위협에 처해있다. 다단계 하청 구조 속에서 ‘계약 만료’ 통보를 받은 하청회사들은 노동자에게 ‘근로 계약 종료’를 알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힘없이 떠밀려 간다. 대기업에서 하청회사,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책임이 전가되는 모양새다.
후배들이 서비스직의 불안정한 실태를 알았으면…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VIP라운지에서 파견돼 일했던 이정원 씨도 오는 4월 9일 회사로부터 계약 종료를 통보받았다. 이 씨가 2년 2개월간 일했던 회사는 롯데GRS의 하청을 받아 라운지를 운영하는 곳이었다. 회사는 코로나 19 이후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양사 간의 계약이 종료됐다고 알리며 직원들에게도 계약 종료를 통보했다. VIP 라운지에서 일했던 관리자급 직원 2명을 빼고 약 15명 정도가 모두 회사를 나가게 됐다. 롯데GRS의 요구로 지난 2월부터 2명분의 임금을 줄이기 위해 한 달에 12~15일까지 무급휴가를 쓰며 버티던 직원들이었다.
이 씨는 고용 유지를 위해 여러 방면으로 알아봤지만 이 씨 자신도, 이브릿지 회사도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더욱이 무급휴가를 계속 사용한 터라 퇴직금, 실업급여 등의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이 크게 줄어 이 씨는 그 부분이 속상하다고 했다. 이 씨는 “제2터미널 오픈멤버로 자부심을 갖고 일했다. 라운지 내의 주방, 홀, 미화 파트 부분을 지금처럼 꾸려놓은 것은 파견된 우리 직원들인데 롯데에서도 자사의 인력이 놀고 있으니 이쪽으로 옮기려는 것 같다”라고 밝혔다. 이 씨는 본인이 나올 때도 이미 많은 비정규직들이 퇴사한 상태였고, 지금도 그런 퇴사가 줄을 잇고 있다고 한숨 쉬었다.
공항은 이 씨가 10대 시절부터 꿈꾸던 일터였다. 일부러 대학교 항공과에 입학해 관련 아르바이트들도 모두 서비스직을 거쳤다. 하지만 이 씨는 이제 후배들에게 ‘항공과’ 입학을 비롯한 서비스직 취업을 뜯어말리고 싶다고 말한다. 이 씨는 “아르바이트부터 실제 취업까지 서비스직에서 일했는데 모두 간접 고용이었고, 불안정한 일자리였다. 운이 좋아 정규직에 취업했다고 생각했는데 하청의 정규직은 계약이 종료되면 언제든 나가야 하는 비정규직이었다. 항공과를 취업하면 불안정한 일터를 전전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 그리고 애초에 서비스직 일자리가 처우나 일자리 안정 측면에서 좋지 않다는 점을 모두에게 알리고 싶다”라고 말했다.
제4회 임금차별타파의 날…여성 비정규직 임금, 남성정규직 임금의 37.7%
한국여성노동자회와 전국여성노동조합은 18일 오전 광화문 광장에서 제4회 임금차별타파의 날을 맞이해 재난 속 여성 노동자가 겪는 해고 상황과 돌봄 책임의 0순위로 떠밀리고 있는 현실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는 여성 임시일용직은 누가 해고 1순위인지 가리킨다. 이 과정에서 다시 급증하고 있는 여성 초단시간 노동자들은 근기법 사각지대로서 악용되고 있는 현실을 드러낸다. 상용직마저 감소하고 있는 20대 여성노동자들은 해고와 채용성차별의 이중고를 겪고 있다. 여성노동자들은 각종 지원에서도 제외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정원 씨도 이 기자회견에 참가해 간접고용 구조 속 여성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대변했다. 이 씨는 “인천국제공항공사와 롯데GRS는 이번 해고사태에 대해 코로나발 불가피성을 강조한다. 인천국제공항은 노동자들이 해고되는 것을 방관하고 있고, 원청업체들은 위험을 하청업체에 떠넘기고 있다”라며 “인천국제공항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대부분이 서비스 직종에서 일하는 저와 같은 여성노동자들이다. 간접고용은 예산절감과 해고에 유연한 고용방식으로 원청의 완충재로써 남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한 채 특수고용노동자들에게 긴급 수혈되는 지원금조차 배제되고 있는 가사 노동자도 기자회견에 참가해 어려움을 호소했다.
김재순 전국가정관리사협회 협회장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가는 가사 노동자들이 코로나 이후 소득이 ‘0원’이 되어버렸다”라며 “정부에서 코로나 사태로 특수고용노동자, 프리랜서에서 3개월간 50만 원씩 재난 지원금 지급한다지만 우리는 그조차 못 받는다. 그 복잡한 서류를 개별적으로 일하는 가정에서 만들어줄 리 없지 않나. 증명서를 떼지 못해 국가 도움을 못 받는 우리 가사 노동자들은 그저 막막하다”라고 말했다. 김 협회장은 “제발 가사 노동자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정책을 수정해주길 바란다”라고도 당부했다.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돌봄 노동을 전담하는 것도 여성이다. 코로나 19는 지금껏 어렵게 구축해 온 사회적 돌봄시스템을 와해시키고 다시 그 책임을 가족에게, 여성 구성원에게 전가하고 있다. 프리랜서 작가 노동자 김지현 씨는 기자회견에서 돌봄 노동을 여성이 전담해야 하는 현실을 꼬집었다.
김 씨는 “얼마나 많은 할머니들과 여자 가족들이 손주 돌봄, 조카 돌봄에 차출되었을까 생각하게 됐다. 조부모, 이모, 고모가 봐줄 수 있는 상황은 그나마 낫지만 그조차 없을 경우 어렵게 구한 일을 그만두는 여성이 있을 것을 생각하니 아찔하다”라며 “돌봄을 아무런 대가 없이 하는 일로 여기는 사회적 인식과 정부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절망하는지 정부는 진심으로 생각해 봐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한국여성노동자회 등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8월 기준 남성정규직 임금 대비 여성 비정규직 임금 비율은 37.7%에 불과하다. 이를 1년으로 계산하면 5월 18일 이후 12월 말까지 여성비정규직은 무임금으로 일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여성노동자회 등은 차별받는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해결하기 위한 근본대책을 촉구하며 사회 안전망에서 제외된 임시 일용직, 특수고용노동자 보호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더불어 사회적 돌봄 시스템을 재정비할 것과 이를 위한 예산 확대 편성을 함께 요구했다.